소설리스트

남궁세가 무사님은 로판에서 환생했다-7화 (7/176)

7.

처음 진검을 잡은 이를 무림에서는 하급무사라고 일컫고, 시어런에서는 소드 비기너라고 부른다.

검을 천 번은 휘둘러 손에 굳은살이 빼곡할 무렵에는 삼류무사, 소드 유저가 된다.

이제야 검을 좀 다룰 줄 안다 행세하며 동시에 다섯의 삼류무사를 상대할 수 있으면 이류무사, 즉 소드 익스퍼트 하급에서 중급으로 친다.

거기에서 내공 즉 오러를 수발할 수 있게 되면 일류무사, 소드 익스퍼트 상급으로 분류한다.

이 내공을 자유자재로 수발하여 상대에게 타격을 가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절정고수, 소드 익스퍼트 최상급의 단계이다.

그리고 깨달음을 얻어 검 위에 검기를 씌울 수 있는 단계.

그것을 초절정, 소드 마스터라 부른다.

전생의 내가 간신히 말석이나마 차지한 자리가 바로 그것이었다.

지금의 나는 겨우 일류에서 절정의 턱걸이로 넘어섰을 뿐이다. 열세 살의 몸에는 이른 일이었으나, 이미 걸었던 길을 다시 걷고 있기에 퍽 대단한 일도 아니었다.

초절정 위의 세계는 여즉 겪어 본 일이 없었다.

상대의 경지가 눈으로 가늠되지 않는 것은 퍽 오랜만이었다. 내내 검을 들고 있었으되 강호의 도산검림을 벗어난 지 오래된 탓이었다.

십수 년 전, 사지로 뛰어드는 길. 무림맹에서 내 자리는 쉰여덟 번째였다.

서로부터 곤륜, 공동, 청성, 아미, 점창, 종남, 화산, 무당, 소림 아홉 개 파의 장문인과 장로, 직전제자, 개방의 걸개와 취개로 불리는 두 장로, 모용세가, 하북팽가, 사천당가, 제갈세가, 그리고 남궁세가의 이름을 단 다섯 개 세가의 가주와 직계 혈족들 중 초절정 이상의 무위를 가진 자가 딱 쉰일곱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고만고만한 자리들 중에서도 유독 빛나는 별은 따로 있기 마련이었다.

무림맹주이자 무당제일검 장무현이 그중 첫째로 꼽혔다. 무림맹에서는 화산과 남궁이 화경의 고수를 하나씩 더 머리에 이고 뽐냈다.

그들의 손짓 하나에 하늘이 울고 땅이 뒤집혔다.

수십의 검이 저절로 떠올라 사람을 베는 이기어검이, 검 하나를 매화 줄기로 삼아 피어난 검기가 꽃잎처럼 떨어져 수십 장에 늘어선 수백을 한 호흡에 도륙하는 이십사수매화검법이, 한 걸음에 열이 무릎을 꿇고 두 걸음에 이백이 흐느껴 신음하는 제왕검형이.

그들의 휘황찬란한 별호와 이름 석 자를 전 강호 무림인들의 뇌리와 가슴에 틀어박았다.

그들은 사람이 아니라 인세에 내린 무신이었다.

그들처럼 되고 싶었다.

인간의 몸을 가지고 신이 되고 싶었던 것인지, 태어나자마자 칼을 쥔 무인의 호승심인지.

그도 아니면 어릴 적부터 영약을 밥과 술처럼 들이키고 시시때때로 장로들에게 추궁과혈(*몸을 주무르고 타격하는 등의 안마로 내공과 진기의 수발을 원활하게 하는 행위)을 받아 가며 꼬박꼬박 오룡삼봉(*후기지수 중 가장 뛰어난 다섯의 사내와 세 여인)의 이름을 얻어내던 또래 후기지수가 샘이 났던 것인지 명확하지 않았다.

다만 죽는 그 날에도, 다시 태어난 이후에도 되고 싶은 것은 하나였다.

화경의 고수.

어깨가 뻐근하도록 목을 젖히고 턱을 들어도 시야에 걸리는 것이 없는 그 까마득히 높은 경지에 손끝이라도 걸어보고 싶었다.

만장단애(*만장의 높이에 이르는 아주 높은 절벽)를 기어오르다 손톱이 빠지고 온몸이 으스러진다 해도 그 끝을 한 번이라도 볼 수 있기를 바랐다.

화경의 경지를 다른 말로 반박귀진이라고도 불렀다. 지극히 높은 경지에 이르러 무공을 익혔음에도 평범한 범부처럼 보이게 되는 경지였다.

무당제일검 장무현이 그러했고, 지금 내 눈앞에 선 마엘로 샌슨이 바로 그러했다.

안력을 돋워 살펴보면 태양혈(*양 관자놀이의 두드러지는 혈)이 판판했고, 표정이 온화하였으며, 단단한 어깨에서부터 몸통, 발끝에 이르기까지 모조리 균형 잡혀 있어 쓸모없이 힘이 들어간 곳이 없었다.

평범한 중년인처럼 보이는 금빛 머리칼의 사내는 그렇게 조용하고 휘황찬란한 기도를 지녔다.

상대를 살핀다는 것은 내공의 수발이다. 기의 움직임이다. 기감을 돋울 적부터 마엘로 샌슨이 바로 알고 내 편을 바라본다는 것을 알았으되 시선을 떼지 못했다.

화경의 스승이라니.

너무나 기뻐 몸을 사릴 수가 없었다. 기연이었다. 이런 기연이 또 없다 여겼다.

“수업이 시작하기도 전에 기세가 대단한 걸, 미카엘 에른하르트.”

“예!”

“아니, 날 그렇게 잡아먹을 것처럼 보지 말란 소리였지만⋯ 그래, 신입생들 중에서 내 이름을 듣고 알게 된 녀석들도 있을 거고⋯ 지금 우리 막내처럼 눈으로 보아 알게 된 친구도 있겠지. 내가 좀 유명하긴 하지?”

“예!”

“⋯제국기사단에 그랜드 소드 마스터가 한 명 더 있지만, 그 친구는 누굴 가르칠 인사가 못 돼. 그래서 특별히 내가 제국의 미래와 여러분들을 위해 아카데미에서 생활하고 있다.”

“예!”

“연무장 사용 시간 중에는 간단한 교습이 가능하니, 필요할 경우 찾아오도록 해. 다만 날 찾아온다면 쉬엄쉬엄할 생각은 버리는 게 좋을 거다.”

“예!”

첫 번에도, 두 번째도, 마지막에도 대답하는 것은 나 혼자였다. 몇몇 학생들이 작게 웃었고, 또 몇몇은 나를 따라 허리를 곧게 세우고 샌슨을 또렷하게 응시했다.

훌륭한 스승 아래에서 땀을 빚을 생각을 하니 절로 가슴이 벅차올랐다.

마엘로 샌슨은 학생들의 면면을 유심히 살피고는, 다시 나를 한 번 바라보고, 손에 들린 유인물을 허공섭물(*물건이나 사물 따위를 내공을 사용하여 원하는 곳으로 옮기거나 끌어오는 신비 무공)을 사용하여 학생들의 앞에 내려놓았다.

허공섭물이라니! 그것도 이렇게 숨 쉬듯 간단하게! 나는 거의 까무러칠 지경이었다.

유인물 첫 장에는 검술부 학생들이 들을 수 있는 수업들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각 수업 명 아래에 작은 글씨로 담당 교수명과 교과 내용이 적혀 있었는데, 나는 생각도 전에 펜을 들어 기초 검술과 고급 검술을 두 번째 장의 시간표에 적어 넣었다.

화경의 고수에게 직접 사사할 수 있는 기회는 일분일초라도 놓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화경의 안력으로 그 모습을 당연히 볼 수 있었을 마엘로 샌슨의 표정이 떨떠름한 기색을 보였다.

그러나 나는 이 기회가 겨우 삼 년밖에 유지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아쉬워 벌써 가슴이 아리던 중이었기에 애써 모르는 체했다.

마엘로 샌슨은 유인물에 적힌 수업 중 꼭 들어야 할 것과 유익한 것, 취미 삼아 들을 만한 것들을 구설로 안내해주고는 잠시 침음했다.

“열두 시부터 한 시까지는 점심 식사 시간이라, 그 시간에는 수업이 없다. 나도 그 시간에는 밥 먹을 거니까 부르러 오지 마.”

날 보고 하는 소리나 다름없었다. 난 최대한 순하고 선량한 어린아이인 양 웃어 보였다.

* * *

이제 막 검술부 동기가 된 쉐이든 로제가 그 붉은 머리통을 가까이 붙이고 내 시간표를 들여다보았다.

내 옆자리에 앉아 있어 이렇게 가까이 붙지 않아도 되는 것을. 눈이 좋지 않은가 싶었다.

안력이 좋지 않으면 검을 수련하는 데에 뚜렷하게 불리하기 때문에, 어쩐지 조금 안쓰러운 기분이 들어 내 시간표를 그쪽으로 밀어 주었다.

쉐이든이 쫑알쫑알 중얼거리며 내 시간표를 채우는 것을 도와주었다.

서로 반말로 대화하는 동기는 남들 눈에도 친밀해 보일 것을 알았다. 이미 그가 아명이며 애칭이며 멋대로 불러 젖히고 있어 더욱 그랬다.

이전 언젠가 정신없는 와중에 허락했을 것이 분명하여 지적하지 않았다.

“초급 검술이랑 고급 검술을 둘 다 들을 거야? 너랑 시간표 맞추려고 했는데.”

“이런 기회가 쉽게 오는 게 아니니까.”

“그야⋯ 그렇긴 한데. 그래, 다른 수업은 뭐 들을 거야? 필수교양으로 세계사는 들어야 할 테고⋯ 예법 수업은 이미 가정 교육으로 끝냈을 테니 필요 없고⋯.”

“마법과 수식 원리 기초.”

“어? 그걸 니가 왜?”

“마법사 친구를 사귀고 싶어서.”

“어?”

쉐이든의 목소리가 너무 높고 커다랬던 탓인지, 같은 반 학생들이 이켠을 바라보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떳떳했고, 아무렇지도 않았기에 한 번 더 말했다.

“마법사 친구를 사귀고 싶어.”

“아니, 그래서⋯ 그냥 들어 보겠다고? 중간고사, 기말고사에 과제도 있어. 다 할 수 있겠어?”

“아직 안 해봤으니까.”

“미카. 진심이야? 아카데미에 입학하는 마법부 애들은 열 살 때부터 아이스볼 메모라이즈 정도는 할 수 있다고. 타고난 마력이 있어야 하는⋯.”

“해 보려고, 이제.”

설득의 여지가 없는 상대를 설득하는 것은 의외로 쉽다. 강하게 주장하거나, 먼저 행동하면 된다.

내가 잘할지, 못할지는 나도 모르는 것 아닌가. 단호하게 대꾸하며 시간표를 채웠다. 쉐이든은 잠시 고민했지만, 곧 자신의 시간표를 나와 맞추어 채우는 것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했다.

그가 옆에 있으면 심심하지 않을 것 같았으나, 새 사람을 사귀는 데에 방해가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기에 나는 순순히 수긍했다.

그리하여 나는 1학년 첫 학기 수업을 쉽게 정했다.

월, 수, 금 오전에는 열 시부터 열두 시까지 마엘로 샌슨의 초급 검술 시간이고, 화, 목 오전에는 열 시부터 열두 시까지 마엘로 샌슨의 고급 검술 시간이었다.

역시 화경의 무인이라 그런지 휴일 이틀을 제외한 나머지는 상당히 규칙적으로 보내는 사람이었다. 본받아야 할 일이다.

검술을 제외한 나머지 수업과 교양들을 모조리 오후 시간으로 밀어 두었다.

그중에서도 금요일 오후는 혹시나 마엘로 샌슨을 부르고 싶어질지 모르니 비워두겠다 결정한 순간, 눈앞에 불쑥 가무잡잡한 손 하나가 들어왔다.

“반갑습니다, 에른하르트 영식. 제 이름은 벤자민 클라우디안. 클라우디안 후작가의 셋째입니다.”

* * *

“샌슨 경. 왜 그렇게 표정이 죽상이야? 이번 신입생 중에 재능있는 녀석들이 많다고 들었는데. 그 뭐야, 조기 입학한 분홍색 머리 꼬마는 좀 어때? 걔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다섯 살부터 소드 마스터 된다고 혼자 연병장 돌고 난리도 아니었다며.”

“⋯세드릭. 전에 2학년 애들이 수업 시간에 만들었던 그, 햇빛 차단 연고 아직 남았어?”

“어? 있을걸? 그건 왜.”

“나도 한 열정 하는 꼬마였긴 한데⋯ 이렇게 미쳐 도는 제자는 내 생애 두 번째라서. 하는 꼴이 딱 리틀 키아드리스야. 저 녀석보다 내가 먼저 죽겠는데.”

“그랜드 소드 마스터는 쉽게 죽는소리하는 거 아니야, 어허. 제국에 빛나는 별이 뜨면 기쁜 줄을 알아야지.”

“내가 내일모레 정년 퇴임할 나이인데, 너무 어리고 힘센 친구가 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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