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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냐 내 최애를 죽인 게-41화 (41/88)

#41

그 자리에서 소주로 가득 찬 맥주잔을 비워 낸 나는 미친 사람처럼 박수를 쳐 대는 임효린의 모습에 짜게 식었다.

“와! 곧죽이 잘 마신다! 이러다 한 방에 훅 가는 거 아니야? 낄낄!”

“제발… 조용히 마십시다. 조용히….”

왜 똥은 저들이 쌌는데 내가 치워야 하죠? 먼 산을 응시하며 말없이 후회를 억눌렀다. 과거의 나를 두들겨 패고 싶어졌다. 한 번도 이런 자리에 나온 적 없었으면서 이번에는 왜 나온 거냐, 나 자신아. 그냥 일 있다 하고 쨌어야지!

“쪽팔리니까 조용히 해요. 어려운 거 부탁하는 게 아니잖아?”

“에에엥…. 우리 조용히 있었는데? 그치이?”

“맞습니다. 저희는 조용히 있었습니다. 곧죽을놈 님께서 과한 반응을 보이시는 것 같습니다.”

“말 놓기로 했잖아.”

“아, 맞다.”

이마를 짚으며 처치 곤란한 주정뱅이들을 한차례 훑은 나는 어느새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는 한도윤의 모습에 아련하게 허공을 응시했다. 주정이 같은 말 반복하는 놈도 싫지만 우는 놈도 싫다. 한쪽은 떠들지 못해 안달이고 한쪽은 울고 있다. 설마 다른 사람들 중에 우는 이가 있나 싶어 돌아봤으나 다행히 우는 건 한도윤뿐이었다. 조금 아쉽다. 두 명이나 울면 그냥 튀려고 했는데.

“곧죽을놈 님….”

“왜 하필 닉네임.”

“곧… 죽을….”

“좀 닥쳐 봐요….”

맥주잔을 양손에 꼭 쥔 채 뚝뚝 눈물을 흘리던 한도윤이 고개를 떨궜다. 속이 터지는 기분이 들어 가슴께를 내리치던 나는 어느새 내 손을 붙잡는 한도윤을 보며 입을 다물었다. 어금니에 힘을 줬더니 턱이 다 아프다.

“후우… 왜요.”

“그러면… 아프잖아요….”

“지랄 한번 참….”

서럽게 우는 그를 뒤로하고 계산을 하기 위해 카운터에 가려는데 한도윤이 잡은 내 손을 놔주지 않았다. 좋게 좋게 놓으라고 말해 봤으나 아련하게 나를 올려다보던 그가 도리질을 치며 거부했다. 내 손인데 왜 내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거죠. 말로 할 때 놓는 게 좋을 텐데. 까딱하다가는 솜방망이 주먹 날아간다.

“어디… 가요?”

“계산하러 가요. 그러니까 좀 놔 봐요.”

“계…산…?”

“예. 그러니까 좀 놔 봐요. 내가 힘이 없는 거야, 아니면 주정뱅이들이 힘이 센 거야?”

“밥은… 잘 먹고 다녀요…?”

“X발…. 정태원 씨, 정신 차려 봐요. 이것 좀 어떻게 해 봐!”

“이게 뭐죠? 저는 처음 보는데요?”

니 친구요, 이 새끼야. 진짜로 때려 버릴까 심각하게 고민했다. 살면서 누군가를 때려 본 적 한번 없지만, 어쩐지 지금이라면 양심에 꺼릴 것 없이 폭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진짜 한 대 쳐? 때려?

“세상에 이런 게 다 있네. 저는 이거 처음 보는데요?”

“정태원… 개새끼……. 죽었으면….”

“멍멍으르렁컹컹컹! 컹! 크엉!”

“진짜 돌았나 봐…. 저기요! 죄송한데 여기 계산 좀 해 주실래요?”

때마침 알바생이 별 미친놈들 다 본다는 눈을 하며 스쳐 지나갔다. 나는 그를 붙잡은 채로 재빨리 카드를 찾았다. 핸드폰에 껴 놨는데…. 핸드폰이 어디 갔지? 주머니를 뒤적여 핸드폰을 찾아낸 내가 카드를 꺼내자 다른 사람도 아니고 김현호가 내 팔을 붙잡으며 소리쳤다. 와, 난 베타 누나인 줄?

“무슨 애기가 계산을 해! 돈이 어디 있어서! 쓰읍, 이따가 어른들이 알아서 계산할 거야!”

“별…. 몇 살 차이 난다고 그러세요. 어른이 어른답지를 못해.”

“아직 계산하면 안 돼! 나 덜 마셨어!”

“쌍으로 돌았나? 거울이나 보고 말해! 지금 댁들 상판 하나같이 썩은 사과가 됐거든? 여기서 끝내고 집에 가야 한다고!”

짜증스럽게 내뱉은 말에 이세영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자유의 여신상인 양 술병을 하늘 높이 들어 올렸다. 이건 또 뭔 개짓거린가 싶어서 입을 벌리자 그녀의 노호가 떨어졌다.

“2차도 못 갔는데 여기서 죽을 수는 없다! 제군들이여! 일어나라!”

“우와아아아! 가자아아!”

“2차는 나를 따르라!”

스트레스성 위염이 도지는 것 같다. 고통스럽게 배를 붙잡으니 알바생이 짜게 식은 표정으로 괜찮냐고 물어 왔다. 안 괜찮아요….

“그… 힘내세요.”

“예…. 그쪽도…. 아니, 저희 일행이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이럴 때마다 나도 술 좀 취했으면 좋겠다. 다른 사람들은 싹 다 술에 취해서 진정한 개새끼가 되었는데 나만 정신이 또랑또랑해서 이걸 싹 다 해치워야 하지 않나. 양손에 얼굴을 묻으며 썩어 빠진 인생에 대해 한탄을 하고 있는데 묵직한 무언가가 내 허리께를 감싸는 것이 느껴졌다. 이건 또 뭐야.

“돌겠네.”

술에 꼴아 버릴 대로 꼴아 버린 한도윤이 내 허리를 꽉 붙잡고 있었다. 웃긴 건 한도윤의 팔을 풀려고 할 때마다 점점 힘이 들어가 놓지를 않는다는 거다. 역시 싸우자고 이러는 게 분명해.

“내가, X발, 이것들이랑 또 술 마시면 빡대가리 새끼다.”

결국 한도윤의 머리통을 솜방망이 주먹으로 한 대 후려쳤다. 빠각, 하는 소리가 주변 소음에 묻히고 한도윤이 고개를 들어 올려 멍하니 나를 바라보았다.

“어……?”

“이거 좀 놔주실래요? 경찰 불러 버린다.”

“네, 에…….”

진작에 이럴걸…. 나는 아무렇지 않게 팔을 풀고 엎어져 자는 그를 짜게 식은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 짧은 시간 사이, 다른 이들은 어영부영 계산을 마치고 2차를 가겠다며 날뛰고 있었다. 그야말로 실소가 절로 새어 나오는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진짜… 이게 뭐냐.

“자자, 2차는 세영이가 좋아하는 랜덤 술집! 무슨 술집? 술집 스타트!”

“곧죽이 뭐해? 패치 님 데리고 빨리 따라와!”

“저분 연중 님이랑 친구니까 연중 님이 챙겨야 하는 거 아냐?”

“네? 전 저런 거 모르는데요?”

안 되겠다. 난 여길 빠져나가야겠어. 잘 있어라, 총체적 난국 같은 새끼들아.

(3)

유일하게 취하지 않은 사람은 나 혼자였기 때문에 만취한 이들의 뒤처리 또한 내가 해야만 했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토하는 인간은 없었다는 것 정도일까. 만약 거기까지 해 버렸잖아? 그럼 오늘부터 여기가 너의 집이다, 하고 쓰레기 더미 위에 던져두고 왔을 것이다.

자칭 어른 세 명은 여기서 멈출 수 없다며 2차를 달리러 여정을 떠났고, 말 그대로 개가 되어 으르렁거리는 정태원과 눈물 콧물을 흘리며 나를 놓지 않는 한도윤은 우여곡절 끝에 근처 모텔에 던져 놓을 수 있었다.

나보다 키가 적어도 머리 반 개 이상은 큰 인간들을 나 혼자 업고 가는 건 당연하게도 불가능했다. 혼자서 처리했으면 닉값 했겠지. 선량한 마음씨의 알바생이 사장의 허락을 받아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나는 그들을 그냥 버려 버렸을지도 모른다.

이제 막 씻고 나와 물기가 떨어지는 머리를 수건으로 대충 닦으며 핸드폰을 확인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건지 단톡방은 조용했다. 아니면 월요일이니 숙취에 찌든 채로 일하러 가 정신없을 수도 있겠다. 집에는 잘 들어갔으려나. 불현듯 ‘눈을 떴는데 친구와 모텔에.avi’가 되어 버렸을 두 남정네를 떠올리자 상상만 해도 웃겨 낄낄 웃음을 흘렸다.

수건을 대충 머리 위에 올려놓은 뒤 프리지아에 접속한 나는 앵벌이를 뛰기 위해 외치기를 올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들어오는 귓속말을 보며 선금을 받고 파티에 들어갔다. 아직 발할라 장비조차 맞추지 못한 유저들이 여럿 있어 이스카리아가 아니라 발할라에 가게 되었다.

물 흐르듯 흘러가는 진행에 만족스럽게 웃는 한편 단톡방이나 길드 채팅 창에 누군가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앵벌이를 뛰면 골드가 들어오기는 하지만, 역시 같이 놀던 사람들이 없으니 조금 지루하게 느껴졌다.

[파티/나한테명령하지마: 고생하셨습니다]

5판짜리 버스였기에 5판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파티를 탈퇴한 나는 멍하니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추가로 앵벌이를 더 뛸까. 할 일이 없다는 게 이렇게 심심한 거였나 싶을 정도로 조용한 채팅 창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누구 하나 들어왔으면 좋겠는데.

[길드원 퇴사기원 님이 접속하였습니다.]

[길드/퇴사기원: 헐 곧죽님 자는 시간 아니에요?? 왜 이 시간에 있지????]

[길드/나한테명령하지마: 님 왤케 오랜만이에요]

[길드/나한테명령하지마: 잘됐다 이스카리아 가실?]

[길드/퇴사기원: ㅋㅋㅋㅋㅋㅋㅋㅋ저 멘퀘부터 밀어야 해요ㅠ 아직 덜 밀었으뮤ㅠㅠ]

그동안 현생이 바빠서 들어오지 못한다고 들었는데, 이렇게 보니 새삼 반가워졌다. 퇴사기원은 메인 퀘스트를 밀며 동시에 길드 채팅 창에 채팅을 올렸다.

[길드/퇴사기원: 저 이제 시간 개많음 퇴사함ㅎㅎㅎㅎ]

[길드/나한테명령하지마: 그렇게 막 나와도 돼요?]

[길드/퇴사기원: 바로 퇴사하는 건 안대져 저는 한달 전에 퇴사할거다 얘기하고 일 끝내고 나왔어요]

[길드/퇴사기원: ㅋㅋㅋㅋ아 윾쾌상쾌통쾌!!!!! 제가 일 젤 잘했는데 퇴사해서 원형탈모 새1끼 똥줄 좀 탈듯ㅋㅋㅋ]

[길드/나한테명령하지마: 퇴직금 받을 거라고 1년은 채울거라더니]

[길드/퇴사기원: 아 당빠 퇴직금은 받죠 딱 1년 다녓음ㅎㅎ]

퇴사기원은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퇴사할 걸 그랬다며 신명 나게 메인 퀘스트를 클리어해 나갔다. 조금 묘한 기분이 든다. 나도 나중에 직장을 다니면 저렇게 되는 걸까. 겉옷 안주머니에 사직서를 넣어 둔 채 빡치는 일이 있을 때마다 매만지며 이 X같은 회사 퇴사해야지 하고 마음의 안정을 찾게 되나. 왠지 아닐 거 같다. 내 성격이면 그 자리에서 사직서를 던졌으면 던졌지 마음의 평화는 얻지 못할 것이다. 큰일 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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