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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평범한 게 최곱니다-49화 (49/136)

그저 평범한 게 최곱니다 49화

최지형이 어떤 사람인지를 떠나서 그의 곁에는 서지한이 있었다.

하진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렇게나 가이드에게 집착해서 사람을 끝내 잘못된 선택을 하게 만들고 저 혼자 새로운 사랑을 찾다니.

하진은 쯧 하고 혀를 찼다. 아무튼 최지형을 노리기 위해서는 서지한을 먼저 치워버려야 했다.

하진은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자신이 첩보 영화 주인공이나 할 법한 짓을 해야 한다는 사실에 이마를 짚었다.

* * *

한지우는 자신이 그리던 미래를 그대로 밟아나가고 있었다. 그의 예상대로 협회는 또 다른 S급 가이드가 나타나자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알파 팀을 가이딩하는 데 성공한 한지우가 그에 그치지 않고 다른 S급 에스퍼들까지도 가이딩해 버리고, 그러고도 지치지 않으니 이전과는 대우가 달라졌다.

A급 가이드일 때도 좋은 대우를 받지 못한 것은 아니었지만, S급이 된 이후와 비교하면 그때 받았던 대접은 대접도 아니게 느껴졌다.

“한지우 가이드! 정말 대단하네요! 역시 A급일 때부터 효율에 신경 써와서 그런지 가이딩 효율이 말도 안 되게 좋아요.”

“감사합니다.”

한지우는 치켜세우는 말에 수줍은 척 웃었다.

“방사 가이딩도 측정해보고 싶은데…….”

“아…… 그건 다음에 해도 될까요? 조금 쉬고 싶어서요.”

“그럼요! 물론이죠.”

능숙하게 다음 요구를 쳐낸 한지우는 연구실을 빠져나갔다.

숙소로 돌아가는 와중에도 여기저기서 자신의 이름을 불러댔고, S급 가이드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가이드들의 질투 어린 시선이 꽂혔다.

특히나 한지우와 같았던 A급과 그 아래 B급 가이드들의 시선이 가장 매서웠다.

한지우가 S급 에스퍼만을 가이딩하는 것에서 만족하지 않고 실험을 핑계로 등급이 낮은 에스퍼들까지도 마구 가이딩했기 때문이었다.

‘흥. 그래봤자 하급들 주제에.’

속으로는 코웃음을 치면서도 겉으로 드러나는 표정만은 마치 저 질투 어린 시선들에 기가 죽은 척했다.

이러고 있으면 저 멍청한 하급 가이드들은 마치 자신들이 우위에 선 것처럼 자신만만하게 다가와 시비를 걸곤 했다.

“한지우, 인생 폈다? 아주 좋아 보이네?”

바로 이렇게 말이다. 한지우는 비죽 새어 나오려는 비웃음을 가리고자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숙였다. 그에게 다가온 두 명은 예전에 한지우의 곁을 졸졸 쫓아다니던 A급 가이드였다.

저들은 한지우가 하진을 속이기 위해 반성한 척, 만들었던 무리도 내팽개치고 소심한 척 돌아다니니 조금씩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콘셉트를 유지하기 위해 몇 번 시비 거는 걸 받아줬더니 아예 머리 위에 있는 양 굴기 시작했다.

“오랜만이네.”

무어라 할 말이 없는 척 어색하게 인사를 건네자 그들은 마치 잘 걸렸다는 듯 건들거리며 한지우의 어깨에 팔을 걸쳤다.

보는 눈이 있으니 친한 척 위장하려는 모양새였으나 안타깝게도 억지로 끌려가는 모습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A급은 어깨 위에 걸친 팔을 조금 조이며 물었다.

“무슨 짓을 했기에 갑자기 등급이 오르냐? 좋은 거 알고 있었으면 같이 공유도 하고 그래야지. 치사하게 혼자 써먹네?”

‘무식한 게 힘만 세선.’

한지우는 목을 조이는 힘에 짜증이 왈칵 솟았으나 구겨진 인상을 최대한 순하게 꾸며내 그저 답답해 보이는 정도로 보이게끔 했다.

“딱히 아무 짓도 안 했어. 그냥, 너희도 알다시피 내가 S급 에스퍼 가이딩하겠다고 기를 써댔잖아. 그러다 보니까 오른 거 아닐까?”

“야. 넌 내가 바보로 보이냐?”

납득이 가능한 대답을 들려주었건만 A급은 오히려 정색하며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고작 그딴 걸로 등급이 오를 거였으면 진즉에 올랐어야지. 지우야, 속일 걸 속여. 뭔지는 몰라도 너 무슨 짓 했잖아.”

한지우는 정색하지 않기 위해 애썼으나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허를 찔린 탓에 순간 표정 관리를 하지 못하고 인상을 쓰고 말았다.

그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은 A급은 잘 걸렸다는 듯이 한지우를 더욱 몰아세우기 시작했다.

“그러지 말고 말이나 좀 해봐. 좋은 건 좀 나눠야지. 어? 뭐 협회에서 실험이라도 했냐?”

이쯤 되면 사실 다 알고 있는데 일부러 떠보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협회라는 것만 빼면 실험이나 다름없는 행위를 했다는 걸 맞춘 셈이니까 말이다.

그러나 저놈이 그 사실을 알 리가 없고, 설사 모든 걸 알고 있다고 해도 증거가 남아 있지 않았다.

한지우는 눈을 한 번 감았다 뜨며 흔들리던 마음을 다잡았다. 그러고는 어딘가 의기양양해 보이는 A급에게 말했다.

“정말로 별거 없어. 그냥 내가 하던 대로 한 게 다야. 실험이라니, 하하. 재밌는 발상이네.”

여유롭게 웃으며 끝끝내 원하는 대답을 들려주지 않자, 화가 나기라도 한 건지 A급의 표정이 좋지 않아졌다.

그와 동시에 목을 조이고 있던 팔에도 힘이 들어가 한지우는 점점 숨 쉬기가 힘들어졌다.

“콜록, 주, 준수야. 이것 좀, 콜록!”

그때였다. 정준수가 좀 더 한지우를 몰아세우려던 순간, S급 가이드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있던 직원 하나가 다가와 그를 제지했다.

“팔 놓으시죠.”

그는 한지우와 자신을 말린 직원을 한 번 노려보고는 거칠게 팔을 떼어냈다.

덩치도, 힘에서도 그에게 밀리는 한지우는 굳이 연기하지 않아도 거친 힘에 밀려 비틀거렸다.

“한지우 가이드! 괜찮으십니까?”

하나 남은 귀한 S급 가이드가 비틀거리자 직원이 화들짝 놀라며 부축했다.

정준수는 그 꼴을 노려보고는 발길을 돌렸다. 그는 한지우의 말을 믿지 않았다.

한지우가 S급이 되었다는 소식이 돌자마자 가장 크게 영향을 받은 것은 다름 아닌 A급 가이드들이었다.

한지우가 유난스레 독하다고 소문이 났을 뿐, A급 가이드들 중 S급 에스퍼에 욕심이 없는 사람은 없었다.

다만 한지우의 패악이 심하기도 하고, 그런 그마저도 등급의 한계를 넘지 못하니 일찌감치 포기한 것뿐이었다.

그런데 평생 넘을 수 없을 거라 여겼던 등급의 한계를 한지우가 뛰어넘어 버렸으니 A급 가이드들 사이에서 동요가 없을 수 없었다.

그들은 노력만으로 한계를 뛰어넘었다는 한지우의 말을 믿지 않았다.

서로를 가장 믿지 못하면서도 아이러니하게도 한지우의 노력을 가장 가까이서 봐왔던 A급들이었다.

그렇게 노력할 때도 되지 않았던 게 갑자기 된다?

그 노력을 꾸준히 이어왔으면 모를까, 하진이 나타나고서 어느 순간 독기가 빠진 한지우는 이전만큼 열심히 가이딩 훈련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저 노력해온 대로 했을 뿐이라고? 그저 S급이라면 좋아 죽는 협회 놈들이라면 몰라도 한지우의 곁에 있던 이들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분명 뭔가가 있어…….’

뒤를 돌아보는 준수의 시선이 매섭게 빛났다.

‘저 망할 새끼. 끝까지 도움이 안 되네.’

협회 직원에게 어색한 웃음을 흘리면서도 끝까지 자신을 흘기는 모양새에 속으로 욕을 뱉었다.

들키지 않을 자신은 있었지만, 누군가의 의심을 받는 건 꽤 신경에 거슬리는 일이었다.

그리고 한지우를 의심하는 이가 저 A급만은 아닐 것이다. 지금은 이대로 물러나지만, 한지우는 저들이 입을 다물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분위기를 흩트려 놓기 위해 아마 여기저기에 분란을 일으키고 다닐 것이다.

물론 내부가 흔들리는 것을 협회가 두고 볼 리는 없지만, 그들이 나설 때면 이미 내부에 소문이 쫙 퍼진 후일 거다.

‘그 전에 어떻게든 에스퍼들을 내 걸로 만들어야 하는데…….’

문제가 있다면 한지우가 예상했던 것과 달리 에스퍼들의 반응이 시원치 않다는 점이었다.

가이딩에는 문제가 없었다. 이전에는 S급 하나만 가이딩해도 지쳐 나가떨어졌는데 지금은 S급 에스퍼를 몇 명을 가이딩하든 간에 멀쩡하기만 했다.

효율에도 문제가 없었다. 가이딩 한 번에 수치가 쭉쭉 떨어지는 걸 눈으로 몇 번이고 확인했다.

그가 A급일 때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일이었다. 고작 한 등급만으로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에 전율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렇게 가이딩에는 아무 문제가 없는데, 오히려 좋아졌는데도 불구하고 알파 팀의 에스퍼들의 반응은 그저 무덤덤했다.

하진을 만난 적 없는 에스퍼들은 한지우의 가이딩에 뚝뚝 떨어지는 폭주 수치를 보고는 놀란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한지우가 바라던 반응은 그게 아니었다.

단순히 놀라는 것에서 그칠 게 아니라 이 세상에 한지우밖에 없다는 듯이, 그만이 자신의 세상이라는 듯이 굴어야 하는데 그들은 그저 신기해하는 게 다였다.

당황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하진에게 가이딩을 받아본 전적이 있는 이들은 오히려 반응이 더 좋지 않았다.

“으음, 네 가이딩은 뭔가 이상하다?”

“이하진 가이드는 아직 못 찾았나? 그 가이드의 가이딩이 받고 싶은데…….”

대놓고 하진의 가이딩과 한지우의 것을 비교하는 게 눈에 보였다.

수치가 떨어지고, 파장이 안정되어 편해지긴 했으나 이게 아니라는 반응에 한지우는 터져 나오는 욕을 참아야 했다.

‘대체, 대체 뭐가 다른 거지? 약으로 올린 등급이라 그런 건가?’

한지우는 이런 부작용에 대해서는 입도 뻥긋하지 않았던 서주안을 씹어댔다. 망할 새끼. 눈앞에 있다면 멱살을 쥐고 주먹을 날렸을 것이다.

한참을 불안과 초조함에 입술을 가만두지 못하고 씹어대던 한지우는 기어코 피를 보고서야 스스로를 진정시켰다.

‘진정하자. 그렇다고 해도 협회는 날 놓지 못한다. 이하진만 없으면 모든 게 내 거야.’

다만 S급 에스퍼들을 가이딩하는 시기를 조금 조절할 필요성은 느꼈다.

자신의 중요성을 각인시키기 위해 쉬지 않고 가이딩해 댔으나 에스퍼들이 가이딩에 감흥을 느끼지 못한다면…….

강제로라도 느끼게 만들 수밖에.

폭주 수치가 다시 높아지고 파장이 불안정해지면 결국엔 한지우를 찾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자신의 가이딩을 받기 위해 애가 닳을 에스퍼들을 상상하니 초조함이 가라앉았다.

‘그래. 어차피 시간은 내 편이야.’

생각을 마친 한지우는 우선적으로 가이딩 횟수를 서서히 줄여나가기 시작했다.

열 번 하던 것을 아홉 번으로 줄이고, 여덟 번으로 줄이고, 일곱 번, 여섯 번으로 줄이자 처음엔 별생각 없던 협회가 초조해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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