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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평범한 게 최곱니다-42화 (42/136)

그저 평범한 게 최곱니다 42화

한지우의 진술은 그럴싸했으나 여전히 왜 그는 남겨졌는지에 대한 의문이 풀리지 않았다.

‘저 자식 끝까지 질문에 대한 대답은 하지 않았어.’

어쩌면 그저 한지우만이 무사한 것에 화가 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육감이라고 부를 만한 본능이 어딘가 석연치 않다고 외쳐댔다.

“팀장.”

특히나 하진에 관해서는 그 본능이 누구보다도 강하게 발휘되는 백자안은 아예 한지우를 수상하게 여기고 있었다. 그는 이대로 넘어갈 것이냐는 뜻을 담고 차진우를 불렀다.

“지금은 하진 씨 구출이 최우선이다. 다른 건 그 이후에 할 일이다.”

백자안은 여전히 거슬려 하면서도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한편, 자신을 찾아왔던 이들이 사라지고 혼자 남은 공간에서 한지우는 무심한 손길로 얼굴에 번진 눈물을 닦아냈다.

‘끈질긴 놈들.’

한지우는 뒤돌아서기 전까지도 자신을 쳐다보던 시선에 몸서리쳤다.

만약 그가 조금이라도 어색하게 굴었거나 더듬거렸더라면 곧바로 그 짐승들의 아가리에 목이 꿰뚫렸을 것이다. 한지우는 괜히 멀쩡한 목을 쓸었다.

‘그래도 시선을 서주안에게 돌렸으니 당분간은 내 쪽엔 신경을 못 쓰겠지.’

그다음엔 자신은 S급으로 등급이 오른 상태일 테니 의심쩍어도 건드리지 못할 것이다. 한지우는 소리 없이 입꼬리를 끌어 올려 웃었다.

그들은 이하진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결국엔 S급이 된 자신의 가이딩을 찾을 수밖에 없을 거고, 지금은 이하진의 개처럼 구는 알파 팀의 태도도 바뀌게 될 것이다.

한지우는 하진을 향한 그들의 맹목적인 그 애정이 자신의 것이 될 미래를 상상하며 손으로 입가를 가렸다.

누구에게도 보여줄 수 없는 환희의 감정이 얼굴에 가득 들어찼다.

* * *

정신을 차리자 낯선 곳이었다. 하진은 오래 잠들어 뻐근한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몸을 일으켰다.

순순히 따라나섰건만, 비밀 기지라서 가는 길을 보여줄 수 없다며 서주안이 재워버리는 바람에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끄응…….”

약으로 인해 잠든 것이라 그런지 푹 잔 것 같은데도 개운하지가 않았다. 오히려 머리가 멍한 기분이라 하진은 문득 커피가 마시고 싶어졌다.

‘그보다 생각보다 사람 사는 곳 같네.’

협회에서 내준 숙소와는 비교할 수 없지만, 적당히 예전에 하진이 살던 집과 비슷한 공간이었다.

사람을 납치한 놈들이 사는 곳치고는 오히려 사람 냄새가 나서 기분이 묘했다.

침대에서 아예 빠져나온 하진은 닫혀 있는 방문을 돌렸다. 놀랍게도 닫혀 있지 않고 그냥 열렸다.

하진은 더더욱 의아해졌다. 납치한 주제에 문도 잠그지 않는다고?

문고리만 열렸을 뿐, 문짝을 밀지는 않았던 하진은 아주 잠깐 망설이다가 그냥 힘 있게 문을 밀었다.

그러자 하진이 일어났을 때부터 눈치채고 있었는지 그가 있는 쪽을 바라보고 있는 이들과 눈이 마주쳤다.

‘놀라라.’

“놀랄 줄 알았는데 안 놀라네?”

믿기지 않겠지만, 하진은 충분히 놀란 상태였다. 너무 놀라서 오히려 굳어버린 것이다. 그보다 먼저 입을 연 사내는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사실 서주안을 제외하고는 처음 보는 얼굴인 게 당연했다.

하진은 그 사실을 되새기고 칼칼한 목에 마른침을 삼키며 냉장고로 향했다. 그런 그의 뒤로 세 쌍의 시선이 꽂힌 채 떨어질 줄을 몰랐다.

납치된 주제에 제집인 양 당당하게 돌아다니는 하진이 신기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이미 그런 시선에는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하진은 그들을 신경 쓰지 않고 냉장고에서 생수를 꺼내 성에 찰 때까지 마셨다.

대체 얼마나 잠들었기에 목이 이렇게 마른 건지 모를 일이었다.

“S급쯤 되면 가이드라도 육체적으로 강해지나?”

“그, 그건 아니지 않을, 까?”

“그럼 저건 왜 저래?”

속닥거림도 아니고 대놓고 나누는 대화에 하진은 시선도 던지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 현재 있는 곳이 어떤 곳인지 파악해야겠다는 듯, 여기저기 벌컥벌컥 문을 열어댔다.

기묘한 대치가 깨진 것은 궁금함을 참지 못한 반정부 에스퍼가 먼저 하진에게 다가갔을 때였다.

“저기, 무섭지도 않아?”

그제야 하진은 그를 돌아보았다. 사실 구경이라고 할 것도 없이 방문 몇 개 열어본 것으로 할 일이 끝났기 때문이다.

“제가 왜 무서워해야 합니까?”

“어? 그야 납치당했으니까?”

“그쪽이 에스퍼고 내가 가이드인 이상 내가 무서울 건 없는데요. 오히려 그쪽이 나한테 잘 보여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러네?”

‘뭐지. 이 맹한 놈은.’

생긴 건 눈만 마주쳐도 돈 뜯을 것처럼 생겼으면서 하는 행동이 맹했다.

하진은 교육을 받아서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교육을 받기 전에 납치당했거나 처음부터 반정부 측에 잡혀 왔다면 살고 싶어서 그들이 하라는 대로 다 하며 호구 잡혔을 게 분명했다.

하진의 말에 어수룩한 소리를 내며 고개를 기울였던 남자는 어딘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나 이내 하진은 딱히 신경 쓰지 않겠다는 듯 말했다.

“잘 보이면 예뻐해 주나?”

서주안처럼 능글거리는 것도 아니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어오니 오히려 더 진심 같았다.

하진은 납치범 일당 주제에 말간 눈을 잠시 바라보다 시선을 돌렸다. 물이나 더 마셔야지.

“글쎄요. 잘 보이기엔 그르지 않았습니까? 사람을 납치했는데.”

“흐음, 그것도 그렇긴 한데…….”

귀가 얇은 건지, 그냥 생각이 없는 건지 하진의 말을 곧이곧대로 듣던 남자의 말 뒤로 다른 음성이 끼어들었다.

“이곳에서만 지내다 보면 선택지라는 게 사라질 텐데 무슨 상관이야.”

지독하게 무심한 시선과 눈이 마주쳤다. 그러나 그 순간은 짧았다. 마치 마주친 것이 우연인 것처럼 남자는 시선을 돌렸다.

“아, 그것도 그러네.”

그걸 미처 의아하게 여기기도 전에 또다시 튀어나온 어수룩한 음성에 하진의 시선이 눈앞의 남자에게로 돌아갔다.

‘귀가 얼마나 얇은 거야.’

하진은 정상적으로 이들을 이해하는 걸 포기하기로 했다. 애초에 쓸데없는 시도였다. 납치범을 어떻게 정상적인 기준에서 이해한단 말인가.

컵에 한가득 물을 따른 하진은 그대로 발길을 돌려 자신이 눈을 뜬 방으로 향하려고 했다.

“어라? 일어났네?”

어느새 익숙해져 버린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더라면 말이다. 서주안은 신발을 벗고 거실을 통과하며 하진에게 다가왔다.

집 안이니 당연히 신발을 벗어야 하는 게 맞는데도 그의 행동은 유난히 얄미운 구석이 있었다. 납치범이라서 그런 걸까.

“계속 안 일어나면 내가 키스로 깨워주려고 했는데 아쉽다.”

“으…….”

하진이 질색하는 소리를 내자 서주안이 상처받았다는 듯 흑흑 우는 소리를 내었다. 그러고는 마치 친한 친구에게 그러듯, 물 흐르듯 하진의 곁에 다가와 그의 어깨에 고개를 기대었다.

“너무해. 낭만적이지 않아?”

잠시 말을 멈춘 서주안은 고개를 들더니 손끝으로 하진의 턱 끝을 돌려 제게로 돌렸다. 두 사람의 코끝이 스쳤다.

생소한 감각과 너무 가까운 거리에 하진이 몸을 빼려 하자 서주안이 손을 뱀처럼 움직여 그의 허리를 감았다.

“키스로 잠든 공주를 깨우는 거 말이야.”

점차 다가오는 얼굴을 피하려 했지만, 서주안의 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등 뒤에서 누군가 침을 꿀꺽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눈요기 따위가 되었다는 사실에 하진이 미간을 찌푸리며 손을 들어 제 입을 막았다.

아슬아슬하게 닿지 못하고 막혀버린 입술에 서주안이 잠시 눈을 가늘게 떴지만, 이내 능청스레 손등에 입술을 한 번 맞춘 뒤 몸을 떼어냈다.

“왕자님은 슬퍼요.”

“왕자가 아니라 마녀겠죠.”

“하긴 그게 맞지. 근데 자기야. 그놈들도 왕자는 아니야.”

하진은 서주안이 말하는 ‘그놈들’이 누구인지 단번에 알아들었다.

“오히려 왕자는 자기지. 그놈들은 그런 왕자를 노리는 또 다른 마녀거나 혹은 왕자가 갇힌 탑을 지키는 용 새끼들이겠지. 발목이나 묶인 용 새끼들 말이야.”

“……저한텐 차라리 용이 낫겠네요.”

“이런, 내가 많이 밉보였나 보네.”

차가운 하진의 반응에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겠다는 듯 서주안이 성큼 뒤로 물러나더니 그가 오기 전에 먼저 도착해 있던 사내들을 소개해 주었다.

하진에게는 참으로 쓸데없는 시간이었다.

“혹시 통성명했어요? 솔직히 안 했을 같긴 해. 여기 애들이 워낙 사교성도 없고, 사회성도 없어야지.”

“성격 제일 더러운 새끼한테 그런 말 듣기 싫은데.”

무심한 시선을 던지던 한 남자가 대놓고 서주안을 욕했으나 그는 어깨만 으쓱인 뒤 소개를 이어갔다.

서주안에게 한 방 먹여서인지 하진의 시선이 계속해서 그곳에 머물렀다.

탄탄한 근육질 몸매에 선이 굵은 미남이었다. 이런 곳에서 만난 게 아니었다면 체대생이나 운동선수라고 생각했을 인상이었다.

“방금 말한 애는 서지한이에요. 나랑 이름 비슷하지? 나랑 쌍둥이예요.”

“진짜 안 닮았네요.”

하진은 저도 모르게 진심을 내뱉어버려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러나 오히려 서주안과 서지한은 그런 하진의 반응을 기꺼워했다.

“칭찬 고마워요.”

본디 사이좋은 형제자매란 어른들의 판타지에 불과할 뿐이다.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게 아니어서 더욱 판타지스러운 존재였고. 그러나 외동인 하진은 이해할 수 없었다.

“형제인데 안 닮았다는 소리가 더 좋은 겁니까?”

이번 대답은 서지한에게서 나왔다.

일부러 하진에게 관심을 두지 않으려는 것처럼 기를 쓰고 시선을 주지 않더니 서주안과 엮여서인지 울컥한 얼굴이었다.

“저 새끼랑 닮았다는 소리 들으면 인생 헛산 거니 자살해야지.”

‘반정부 납치범도 그리 인생을 잘산 건 아닐 건데.’

아무리 거리낄 게 없는 하진이라도 이 말을 입 밖으로 내진 않았다. 반면에 서지한의 날 선 말에도 서주안은 빙그레 웃기만 했다.

“우리 지한이는 솔직하지 못하다니까. 형아 따라서 협회도 뛰쳐나와 놓고는.”

“시발, 더러운 말 지껄이지 말라고.”

결국 험한 말이 튀어나왔다. 서지한은 진심으로 화를 내고 있었다.

주먹을 어찌나 꽉 쥐었는지 핏줄이 아주 우둘투둘한 게 하진은 저 주먹에 맞으면 그대로 골로 갈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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