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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평범한 게 최곱니다-30화 (30/136)

그저 평범한 게 최곱니다 30화

“우연히 지나가는 길에 하진 형을 발견한 것뿐이거든? 나랑 형이 운명이라는, 악! 미쳤어? 왜 때려!”

“뭔가 빡쳐서.”

한승호와는 좀처럼 의견이 일치하는 법이 없는 백자안도 이번만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자신을 중심으로 둘러싼 소란에 하진은 몇 시간 전에 했던 생각을 고쳐먹었다.

‘다음엔 한지우 씨 부르자.’

이 셋을 데리고 다닐 바에야 한지우와의 어색한 시간이 몇 배는 편할 것 같았다.

* * *

숙소로 돌아온 하진은 곧장 제 방에 틀어박혔다.

그나마 차진우가 함부로 하진의 방에 들어갔다간 무슨 수를 써서건 팀을 바꿔버리겠다고 엄포를 놓아준 덕에 방에 있을 때만큼은 온전히 하진 혼자만의 시간이었다.

‘그러고 보니 진우 씨는 임무가 아직 끝나지 않은 건가.’

나이가 비슷해서인지 하진은 차진우가 그나마 제일 편했다. 그리고 이제 막 뛰기 시작한 아이처럼 통제가 안 되는 에스퍼들을 그나마 제어할 수 있는 것도 차진우뿐이었다.

하진은 그런 그가 며칠이나 자리를 비우자 너무도 그리워졌다.

다음 날 아침, 잠에서 깬 하진은 거실로 내려갔다.

“일어나셨어요, 형?”

“네……. 그런데 어디 가세요?”

목이 말라서 깬 터라 부스스한 모습 그대로 내려간 하진은 꼭두새벽부터 에스퍼 정복을 차려입은 백자안과 마주했다.

그러자 백자안이 인사를 건넬 때와는 달리 우울한 기색으로 대답했다.

“임무 가야 해요…….”

“이른 시간부터 가네요. 몸조심하세요.”

하진의 위로에 백자안이 더욱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는 다가갔다.

“기운 나게 안아주시면 안 돼요?”

하진은 잠시 고민했다. 안아주는 거야 어렵지 않지만, 정말로 포옹에서 그칠 수 있을 것인가.

고민하는 것도 잠시, 생각할 틈을 주지 않겠다는 듯 백자안이 불쌍한 표정으로 안 된다면 어쩔 수 없죠, 라며 발을 뺐기 때문이다.

“임무 나가면 며칠이 걸릴지 모르니 가이딩도 받고 형한테 응원도 받고 싶었는데…… 아직은 제가 불편하시겠죠. 이해해요.”

저렇게까지 말하니 잠깐 망설인 게 미안해졌다.

“아, 아뇨. 포옹이 뭐 어렵다고. 오세요.”

씻지 않은 것도 망설인 이유 중 하나였지만, 막말로 키스할 것도 아닌데 무슨 상관인가 싶어진 하진은 오라는 말과는 다르게 자신이 먼저 백자안의 품에 안기듯 다가갔다.

백자안은 제 품에 스스로 들어온 하진을 꼭 끌어안고 편한 옷을 입어 훤히 드러난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었다.

냄새라도 나는 건 아닐까 싶어 하진이 몸을 움찔 떨었으나 백자안은 오히려 더 좋았다.

하진의 살 내음이 물씬 머금은 것만으로도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하아…….”

그러니 이리 한숨이 터져 나오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어떻게 된 게 시간이 지날수록 익숙해지기보단 새롭게 좋아질 수 있는 건지 궁금했다.

이대로 한 달, 일 년이라는 시간을 보낸 후엔 하진이 얼마나 더 좋아질지 상상하면 어떤 의미에선 무서워지기도 했다.

하진은 제 목덜미에 고개를 파묻고 쪽쪽 소리만 내지 않았지, 입술을 문지르고 코를 비벼대는 백자안을 잠시 받아주다가 가이딩을 시작했다.

이런 상태에서 가이딩을 해봤자 오히려 흥분을 부추기는 것밖에 안 되지만, 가이딩이 필요하다고 들러붙은 사람과 포옹만 하고 떨어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아…… 너무 좋아요.”

하진의 손이 맨살을 드러낸 백자안의 목덜미에 닿았다. 그곳에서부터 가이딩이 퍼져나가자 백자안은 깊게 한숨을 내쉬며 하진을 끌어안은 팔에 힘을 주었다.

급기야는 단단한 허벅지가 상대적으로 가느다란 허벅지 사이를 벌리고 들어왔다.

거의 한 몸이 될 기세에 하진이 어깨를 밀어내보려 했지만, 백자안은 투정이라도 부리듯 조금만, 조금만 하면서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읏, 그럼 조금만 떨, 음…… 떨어지는 게 어떻습니까?”

뜨거운 숨이 목덜미에 닿고, 다리를 벌리고 들어온 허벅지가 민망한 부분을 자꾸 자극하니 하진은 부끄러워 어디론가 숨고만 싶었다.

그런 하진을 구해준 건 비슷한 차림으로 차려입은 한승호였다.

“이 새끼가!”

두 사람이 붙어 있는 꼴을 본 한승호가 눈에 불을 켜고 달려와 엄청난 힘으로 백자안을 떼어냈다.

사실은 그 힘을 버텨내지 못할 백자안이 아니었으나 그랬다가 하진이 다치기라도 하면 큰일이었기에 순순히 힘에 끌려갔다.

멀찍이 백자안을 집어 던진 한승호는 불만 어린 눈으로 하진을 쳐다보았다.

“맨날 백자안만 먼저 해주고…….”

하진은 억울했다. 해달라는데 그럼 안 해줘야 하는가. 하진이 알파 팀 담당 가이드인데 말이다. 동갑이어서 그런지 경쟁심을 많이 느끼는 듯했다.

하진은 입술을 닷 발은 내밀고 투덜거리면서도 눈으로는 연신 자신을 살펴대는 한승호를 보며 결국 한숨을 내쉬었다.

“한승호 씨도 임무 가는 겁니까?”

“응. 하여튼 이놈의 협회는 사람이 쉬는 꼴을 못 본다니까.”

떠올리니 또 화가 났다. 원래도 제일 바쁜 게 알파 팀이긴 했으나 하진을 가이드로 붙이고 나니 아주 작정하고 사람을 돌려대니 화가 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진과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도 부족한 시간인데 그 시간을 제대로 즐기지도 못하고 또다시 임무를 나가게 생겼다.

그 와중에 백자안이 하진에게 들러붙어서 헉헉대고 있는 꼴까지 봤으니 기분은 끝을 모르고 나락으로 떨어졌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얼굴에서 다 티가 나는 한승호를 보며 하진은 애를 키우는 심정으로 팔을 벌렸다. 안으라는 뜻이었다.

그 뜻을 아주 기가 막히게 알아들은 한승호는 백자안을 욕할 땐 언제고 아주 하진을 제 몸속에 집어넣을 기세로 끌어안았다.

“으윽. 좀 살살…….”

마치 돌덩이 사이에 끼인 것 같은 기분에 하진이 끙끙 앓는 소리를 내자 한승호가 화들짝 놀라며 숨통을 트여주었다.

“후우…….”

편해진 숨소리가 들려오자 한승호는 제 욕심을 채우기 위해 하진을 꼭 끌어안고 맞닿은 뺨에 입술을 쪽쪽 맞춰댔다.

“저 안 씻었습니다. 하지 마세요.”

그러나 이 에스퍼들은 하진과 엮일 때면 귀가 막히는 경향이 있었다.

“괜찮아.”

‘내가 안 괜찮다고.’

억지로 떼어낼까 하다가 그렇지 않아도 백자안을 들먹이며 기분 상한 티를 낸 한승호가 아주 차별한다고 삐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그게 더 귀찮았다.

게다가 며칠간 못 볼 테니 봐주지 싶은 마음도 조금은 들었다.

접촉에 부담스러워할 때는 언제고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살아온 하진답게 어느새 그들의 애정 공세에도 조금은 익숙해졌다.

적당히 받아주다가 백자안의 표정이 불만으로 구겨질 때쯤, 가이딩한 하진은 한승호의 팔에 힘이 풀리는 순간 품에서 쏙 빠져나왔다.

“그럼 두 사람 다 몸조심하고 잘 다녀오세요.”

그 인사에 한승호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내 씩 웃었다.

“누가 배웅해주는 건 처음인데 이거 꽤 기분 좋네. 빨리 해치우고 올게.”

그 말대로 알파 팀만 있을 때는 그 누구도 배웅이라는 걸 하지 않았다.

애초에 각자 맡은 임무가 넘쳐나 시간이 안 맞기도 했지만, 굳이 살가운 인사를 나눌 필요성을 못 느낀 탓이었다.

그런데 처음으로 받아본 배웅은 꽤 괜찮았다. 그 상대가 하진이어서 그런 거겠지만 말이다.

“다녀오겠습니다, 형.”

백자안도 지지 않겠다는 듯 하진에게 인사를 건넸다.

사소한 거로도 경쟁하려 드는 두 사람을 겨우 내보내고 하진은 잊고 있던 볼일을 떠올렸다.

“목말라.”

원래 일어나는 시간보다도 한 시간은 일찍 일어났던 하진은 물만 마시면 도로 잘 생각이었는데 한승호와 백자안을 배웅하면서 잠이 몽땅 달아나고 말았다.

“이른 아침이라도 먹을까.”

냉장고 문을 열자 다양한 반찬이 가득했다. 알파 팀이 집에 붙어 있는 시간이 그리 길지 않은 탓에 종류에 비해 반찬의 양은 그리 많지 않았으나 현재 집에 남아 있는 인원도 하진과 이도윤뿐이었으니 이 정도면 충분했다.

밥을 안치고 간단한 국을 준비하자 평소 일어나는 시간이 되었다. 식탁으로 옮기기만 하면 되게끔 준비를 마친 하진은 이도윤을 깨우기 위해 그의 방으로 향했다.

똑똑.

“이도윤 씨. 아침 먹읍시다.”

그러나 방 안에서는 아무런 소음도 들리지 않았다. 방음이 좋은 건지 일어나지도 않은 건지 알 수 없어 결국 한 차례 더 문을 두드리자 문이 열렸다.

이제 막 깬 건지 눈도 못 뜬 이도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옷은 어디다 버려둔 건지 바지는 멀쩡히 입고 있으면서 상반신은 튼실한 근육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마냥 어리게만 보이는 얼굴과 달리 몸에는 흉터도 많았고, 근육이 쩍쩍 갈라져 어쩐지 낯설었다.

“흐아아암. 아침이라고……?”

평소 아침잠이 많은 이도윤은 아침을 거르는 한이 있어도 본인이 원하는 만큼 잠을 자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었다.

원래부터 그랬던 건 아니고 임무를 한 번 나가면 며칠씩 못 자는 상황이 생기니 보상심리가 생겨 잘 수 있을 때 원하는 만큼 자려는 편이었다.

그래서 평소였다면 아침이고 나발이고 깨우러 온 이에게 욕을 뱉었을 이도윤이지만, 하진이 직접 깨웠다는 이유로 하품이나 쩍쩍해댈 뿐, 화라고는 요만큼도 나지 않은 사람처럼 보였다.

“응? 뭘 그렇게 보는…… 아하.”

하진의 시선이 어디로 향하는지 따라간 이도윤은 속으로 쾌재를 외쳤다. 그렇지 않아도 나이 때문에 애 취급을 당하던 이도윤은 드디어 자신을 어필할 수 있는 상황에 올라가는 입꼬리를 감추지 않았다.

“변태. 뭘 그렇게 뚫어져라 봐요?”

“아……. 실례했습니다. 몸이 좋으시네요.”

“어? 어……. 고마워요.”

이게 아닌데? 이도윤의 상상대로라면 여기서 하진은 좀 더 민망해하면서 저를 신경 써야 했다. 그런데 이 건조한 반응은 뭐란 말인가. 정말 근육의 훌륭함을 칭찬할 뿐이지 않나.

그러나 여기서 무언가 더 해봤자 다시 어린애 취급으로 돌아갈 뿐이었다.

이도윤은 결국 입술을 삐죽 내밀며 방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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