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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평범한 게 최곱니다-28화 (28/136)

그저 평범한 게 최곱니다 28화

그렇게 1층부터 5층까지 차례대로 설명을 들은 하진은 드디어 체력 단련실로 향할 수 있었다.

“생각보다 사람이 많군요.”

상대적으로 에스퍼보다 덩치가 작을 수밖에 없는 가이드다 보니 운동을 그다지 하지 않는 줄 알았는데 체력 단련실에는 제법 사람이 북적거렸다.

“가이딩은 체력이 가장 중요하니까요.”

한지우와 하진이 함께 들어서자 시선이 몰려들었다. 대놓고 쳐다보는 이는 없었지만, 힐긋거린다고 해도 여러 명의 시선이 한꺼번에 움직이다 보니 오히려 눈에 띄었다.

그러나 한지우도 하진도 신경 쓰지 않고 움직였다.

“오신 김에 기구도 보실래요?”

“좋죠.”

헬스장 고인 물같이 우락부락한 근육의 소유자는 소수에 불과했지만, 전부 자신보다 굵고 튼튼한 팔뚝을 지니고 있어서 그런지 괜히 운동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단련실에는 상주하시는 트레이너님도 계시니까 처음 운동 시작하실 때는 그분한테 물어보는 걸 추천해 드려요. 거의 개인 PT나 다름없거든요.”

단련실을 둘러보는 것을 끝으로 안내가 마무리되었다.

“만약 헷갈리시는 게 있으면 언제든 저한테 물어보세요.”

“귀찮지 않겠습니까?”

“저 때문에 아셔야 하는 것도 못 들으신 건데요. 아, 다른 곳은 가보셨어요?”

하진과 걸음을 맞춰 건물 밖을 나서던 한지우가 문득 떠올랐다는 듯 물었다. 굳이 되묻지 않아도 어딜 말하는지 알 수 있었다. 하진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숙소와 교육장을 제외하고는 아직…….”

“다음에 한번 가보세요. 제가 맛집 추천해 드릴게요.”

‘그게 가능할까.’

교육장 가는 것도 혼자 보내지 않으려고 하는 에스퍼들을 떼어놓고 혼자 느긋하게 즐기는 게 말이다. 한지우는 대답 없는 하진을 이해한다는 듯 말을 이었다.

“하긴 에스퍼들 데리고 다니는 게 보통 일은 아니죠.”

“……이해하십니까?”

반사적으로 물었던 하진은 입안을 깨물었다.

생각지도 못한 사람에게 공감받았다는 것에 놀란 건데 자칫 오해하기 쉬운 말이 튀어 나가버렸다. 그러나 한지우는 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저도 가이드인데. 형이 오기 전까지는 제가 최대한 많은 에스퍼를 책임져야 했어서 페어는 없지만, 그중에서도 매칭률이 높은 사람들이 있거든요. 그래서 에스퍼가 떠는 유난이 뭔지 어느 정도는 알아요.”

“미안합니다. 무시하려는 의도가 아니었습니다.”

“괜찮아요. 제가 한 짓이 있으니 복수하고 싶으신 것도 이해해요.”

비꼬는 건가 싶어 순간 옆을 보자 한지우는 흑흑 하고 과장되게 우는 소리를 내면서 없는 눈물을 닦아내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곧 못 참겠다는 듯 푸슬푸슬 웃어버렸다.

“장난이었어요. ……이 정도는 괜찮죠?”

먼저 저지르고 나서 눈치를 보는 게 숙소에 두고 온 어떤 똥강아지를 떠올리게 했다.

긍정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인 하진은 자신이 나이가 어린 사람에게 유독 약한 건가 뒤늦게 고민했다.

“아니면 에스퍼들 데리고 다니는 게 귀찮으시면 저 부르세요. 아무리 극성인 에스퍼들이라도 다른 가이드와 함께 간다는 말에 안 된다고는 못할걸요?”

이 동네에서 나가겠다는 것도 아니고요. 덧붙인 말에 하진도 공감했다. 나쁘지 않은 생각인 듯했다. 그러나 한지우와 둘이 돌아다니는 것도 고민은 좀 해봐야 할 문제였다.

“다음에 그럴 일이 생긴다면 부탁드리겠습니다.”

여전히 한지우가 껄끄럽거나 수작을 부릴까 걱정되는 건 아니었다. 다만 둘이서 돌아다니는 게 부담스러웠다.

교육장 내를 돌아다닌 거야 목적이 있는 행위였다. 반대로 말하자면 목적의식 없는 동반은 불편하다는 뜻이었다. 누누이 말하지만 하진은 낯을 가리니까.

한지우는 하진에게 확답을 받지 않았다. 그거면 됐다는 듯 오히려 깔끔하게 인사를 남기고 제 갈 길을 가버렸다.

혼자 남은 하진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생각해보니 왜 자신이 혼자 다녀선 안 되는 건가.

거주지를 벗어나는 게 아닌 이상, 이곳에서 위험할 일은 없을 게 분명한데 말이다.

낯선 세상에 뚝 떨어진 기분에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던 게 분명했다. 하진은 이리 수동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일찍이 고아가 된 이가 수동적이었다면 어떻게 이 험한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겠는가.

만약 하진은 주변을 지키는 에스퍼들도 없고, 언제 어디서 반정부 세력이나 에스퍼 반대 단체가 튀어나올지 모르는 곳이었더라면 굳이 혼자를 고집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여긴 쥐새끼 한 마리까지도 감시하는 눈들이 있는 곳이었고, 굳이 그게 아니어도 거리에 돌아다니는 사람이 널리고 널려 있었다.

폐쇄적인 공간을 찾아 헤매는 게 아닌 이상 하진이 위험할 일은 없어 보였다.

‘그럼 나온 김에 근처나 좀 돌아볼까.’

고민은 짧았다. 습관적으로 챙긴 지갑도 있고 마침 출출한 참이니 뭐라도 먹으러 갈 요량으로 하진이 걸음을 옮겼다.

‘이럴 줄 알았으면 맛집이라는 곳을 물어볼 걸 그랬나.’

그러나 이내 고개를 저었다. 물었다간 같이 가자고 했을지도 모른다.

친하지도 않은 사람과의 식사라니 그것만큼 어색한 게 어디 있겠는가, 라고 누가 봐도 낯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 생각했다.

하진은 휘적휘적 긴 다리를 옮겨 앞을 향해 걸었다. 걷다가 괜찮아 보이는 곳이 나오면 아무 곳이나 들어갈 생각이었다.

산책이라도 하듯 느긋하게 걷던 하진은 샌드위치를 함께 파는 카페로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아메리카노와 계란 샌드위치 부탁합니다.”

경쾌하게 인사를 건넨 직원이 주문을 받았다. 하진에게서 카드를 건네받고 결제를 하던 직원은 하진을 잠시 힐긋거리더니 그에게 물었다.

“처음 보는 것 같은데 새로 오셨어요?”

“아, 네.”

“그러시구나~ 앞으로 자주 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사교성이 좋아 보이는 것과는 별개로 직원은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아마 이곳만의 정해진 규칙이 있는 듯했다.

하진으로서는 질문이 없으면 오히려 좋은 일이었다. 그는 창가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주문한 음식이 나오기 전까지 멍하게 창밖을 내다보았다.

길거리에는 북적거릴 정도로 사람이 많은 것은 아니었으나 시야에서 사람이 사라지지는 않을 정도였다. 새삼 우리나라에 이렇게 에스퍼와 가이드가 많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라 전체에 퍼진 던전은 물론이고 안보까지 책임지려면 오히려 적을 수도 있겠군.’

내리쬐는 햇빛과 가게에 퍼지는 커피 향에 나른해지는 기분이었다.

살짝 눈을 감는데 딸랑거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그러나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라는 생각에 하진은 눈을 뜨지 않았다.

제 앞자리 의자가 끌리는 소리가 나기 전까지 말이다.

나무 의자 끌리는 소리가 드르륵 나자 하진의 눈이 뜨였다. 그리고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이도윤 에스퍼?”

임무를 나갔던 이도윤이 하진의 앞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는 살짝 놀란 하진의 표정이 마음에 드는지 씨익 웃으며 말했다.

“나 보고 싶었어요?”

“여긴 어떻게 알고 왔습니까?”

이도윤은 자연스럽게 제 플러팅을 넘겨 버리는 하진의 태도에 입술을 삐죽 내밀며 투덜거리듯 대답했다.

“복귀하고 돌아가려는데 형이 보여서 들어왔어요. 이렇게 우연히 마주친 거 보면 운명 아닐까요?”

이도윤은 나름대로 열심히 하진을 꼬시고 있었다. 그러나 한 가지 안타까운 사실은 그가 어설프게 행하는 플러팅에 설레기엔 하진에게 이도윤은 아홉 살 어린 막내에 불과할 뿐이었다는 것이었다.

하진은 한 시간도 채 가지지 못한 혼자만의 시간에 한숨을 삼켰다.

이도윤이 일부러 찾아온 것도 아니고 우연히 지나가다가 발견하고 들어온 건데 그걸 두고 뭐라고 하겠는가.

혼자 있고 싶으니 가달라고 해볼까 생각도 했지만, 방금 들어온 사람에게 할 말은 아니었다.

“밥 먹었습니까?”

“아뇨. 형 보고 바로 온 거라니까요.”

그 말에 하진은 제 카드를 내밀었다. 얼결에 받은 이도윤은 이게 뭔가 싶어 하진을 쳐다봤다.

“이게 뭔데요?”

“카드요.”

“아니, 누가 그걸 모르겠냐고요. 왜 주는 건데요?”

“이왕 이렇게 된 거 같이 점심이나 먹고 들어가죠. 저는 이미 주문했으니 이도윤 에스퍼도 먹고 싶은 걸로 주문하세요.”

이도윤은 말문이 막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 사람은 에스퍼가 돈을 얼마나 많이 버는지 모르는 걸까.

특히 S급 에스퍼에게 떨어지는 임무는 목숨을 걸어야 할 때도 있을 만큼 위험천만한 임무가 많다.

그러니 당연히 위험수당도 어마어마하고 말이다. 그럼 그런 일을 5년 가까이 해오고 있는 이도윤은 그동안 모아놓은 재산이 얼마나 많겠는가.

여기저기 불려 다니는 S급이니만큼 돈은 쓸 새도 없이 모이기만 했으니 아마 하진이 상상하는 그 이상일 것이다.

그런데 사달라고 하기는커녕 사 먹으라고 카드를 주다니.

생전 처음 하는 경험이었다. 얼굴을 본 지 오래인 가족들도 연락할 때면 어떻게든 그에게 돈을 얻어가려고 혈안인데 말이다.

“……돈은 내가 더 많은데요?”

“어른이 사주면 고맙습니다, 하고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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