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평범한 게 최곱니다 24화
정신을 놓아선 안 된다는 생각에 백자안은 손바닥에 손톱을 박아 넣고 버텼다.
하진과 입을 맞추고 있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세상의 모든 것을 가진 기분이었다.
기세 좋게 다가온 하진이 그저 입술 위를 꾹 누르고만 있었지만, 상관없었다. 오히려 이대로 계속 입술을 마주한 채 시간이 멈췄으면 했다.
그러나 머뭇거리던 하진의 혀가 입술을 가르고 들어오자 그 생각마저도 오만에 가까웠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슬쩍 밀고 들어온 혀가 백자안의 욕망을 자극했다.
하진도 마냥 아무렇지 않은 건 아니었다. 아무리 의료 행위의 일종으로 여기기로 했다지만, 머뭇거림이 없을 수가 없었다.
말만 의료 행위일 뿐, 어쨌거나 입술을 맞대고 혀를 섞는 행위가 키스가 아니면 뭐란 말인가.
그래도 치료는 해야 하니 기세 좋게 백자안에게 먼저 입을 맞추고 혀를 밀어 넣긴 했는데 막상 그러고 나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소극적으로 움직였다.
누군가와 입술을 맞댄 것도 처음이니 어떻게 혀를 섞어야 하는지 몰랐던 탓이다.
‘일단, 가이딩부터 하면 되나?’
아까부터 굳어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는 혀를 찾았다. 혀끝이 스치는 순간, 백자안의 몸이 일순 움찔 떨렸다. 하진의 몸 또한 떨리기는 매한가지였다.
남의 혀와 제 혀가 맞닿는 느낌은 이상했다. 소름 끼치지만 역겨운 건 아니었다. 경험이 없는 하진은 이걸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어려웠다. 그냥, 그냥 이상한 기분이었다.
‘……빨리 끝내버려야지.’
손이 아닌 혀끝으로 가이딩한다고 생각하고 움직이려 할 때였다. 굳어서 움직일 생각을 않던 백자안이 훅 숨을 들이쉬더니 언제 굳어 있었냐는 듯, 열성적으로 혀를 섞어 오기 시작했다.
“으읏……!”
그에 그치지 않고 하진을 제 무릎에 앉힌 채 허리를 끌어당겼다. 그는 하진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뒤통수를 붙들고 고개를 꺾었다.
젖은 입술이 비벼지고, 떨어질 때마다 틈새로 혀가 섞이는 외설스러운 소리와 신음 섞인 거친 숨이 새어 나왔다.
‘이게, 무슨……!’
하진은 초점이 잡히지 않는 시야에 차라리 눈을 감았다. 그러나 시야가 차단되자 다른 감각이 예민해졌다.
등허리를 부드럽게 쓸어내리며 더듬는 손끝, 코끝과 코끝이 스치는 느낌, 단단한 치아가 아프지 않게 하진의 입술을 깨물었다가 놓았다.
다시 혀를 집어넣어 어찌해야 할지 몰라 굳어 있는 혀를 감는 그 모든 게 느껴졌다.
‘젠장, 의료 행위는 무슨!’
하지만 여기서 멈출 수도 없었다.
하진은 자꾸만 움찔거리는 몸을 억지로 진정시키려 해보았으나 익숙해질 틈도 주지 않고 자극해대는 백자안에 결국 제 몸을 통제하길 그만뒀다.
‘차라리 가이딩 먼저 끝내자.’
가이딩이 끝나면 이 행위도 끝날 것이다. 하진은 당황하는 바람에 시작도 하지 못했던 가이딩을 시작했다.
어쩐지 백자안이 더 흥분해서 여기저기 지분거리기 시작했으나 하진은 신음을 토해내면서도 꾸역꾸역 가이딩했다.
“아, 으읏, 응…….”
“하아, 좋아, 너무 좋아요.”
“이제, 흐으, 이제 그만.”
내상이 다 나았는지는 확인하지 못했으나 가이딩을 모자라지 않게 했으니 충분할 것이다.
힘이 빠질 대로 빠진 하진이 나른한 목소리로 백자안의 어깨를 밀었으나 단단한 몸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백자안……?”
어쩐지 불길한 예감이 들어 빠져나가려 하자 귀신같이 허리에 팔을 감고 잡아당겼다.
그렇지 않아도 충분히 민망한 자세가 더욱 민망해졌다. 게다가…….
‘세웠잖아…….’
하필이면 하진의 하반신과 맞닿는 곳에서 두툼한 무언가가 느껴졌다. 아무리 경험이 없다고 해도 이게 뭘 뜻하는지 모를 수가 없었다.
“일단, 이것 좀 놔주, 읏…….”
‘비비지 말라고!’
얼굴이 붉어질 대로 붉어진 하진은 손을 들어 눈을 가렸다. 무시하려고 해도 꾹꾹 눌러대는 것은 무시하기조차 힘든 크기였다.
계속해서 백자안을 밀어내보았으나 소용없는 짓이었다. 그는 이성을 잃은 것처럼 하진의 이름을 불러댔다.
“하아, 하진 씨……. 읏, 너무 좋아요. 좋아해요. 하진 씨.”
‘제정신이 아니군.’
비꼬는 게 아니라 목을 잘근잘근 씹어대다 고개를 들어 올린 백자안은 눈에 초점이 없었다.
그는 연신 좋아한다는 말을 중얼거리며 하진을 소파에 눕혔다. 자연스레 백자안이 하진의 몸을 덮치듯 눌렀다.
‘아.’
이제는 누르고 비비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무엇을 뜻하는지는 너무도 뻔했다.
‘이거 잘못하면 일 치르겠다.’
생전 처음 겪는 일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굳었던 하진이 언제 그랬냐는 듯 손을 뻗었다.
백자안의 뒤통수를 감싸고 잡아당긴 하진이 그대로 입을 맞추고 이번엔 먼저 혀를 섞었다.
고작 한 번의 키스로 숙맥에선 벗어난 하진이 혀를 움직이자 백자안 또한 반응하며 혀를 섞어왔다.
어느새 상의 안으로 들어왔던 손이 전진을 멈춘 것을 느끼며 하진은 뒤통수를 감싼 손을 내려 목덜미를 손끝으로 더듬었다.
“읏, 하진 씨…….”
고작 목덜미에 닿은 손길에 얼굴을 붉힌 백자안이 다시 입을 맞추려 다가올 때, 하진이 강하게 가이딩을 불어넣었다. 어쩌면 폭주하던 백자안을 재웠을 때보다도 강하게.
풀썩.
“윽, 무거워.”
작정하고 불어넣은 가이딩에 백자안은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못하고 잠들어버렸다. 그 탓에 밑에 깔린 하진이 앓는 소리를 냈다.
낑낑대며 어떻게든 몸을 일으켜 세우는 중인데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하필 임무를 마친 차진우가 들어와 그 꼴을 보고 말았다.
‘이걸 타이밍이 좋다고 해야 할지, 안 좋다고 해야 할지…….’
민망한 상황을 들킨 것에 하진이 얼굴을 붉혔다. 그러나 차진우에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백자안이 하진의 몸을 덮치듯 깔고 누워 있는 그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눈이 돌아갈 일이었다.
바람처럼 다가온 차진우가 강하게 백자안을 잡아채는데 축 늘어진 몸뚱어리가 힘없이 끌려왔다.
“……자고 있군.”
굳었던 어깨에 힘이 쭉 빠졌다. 하긴 백자안이 미쳐서 하진을 덮친 거라면 이렇게 쉽게 등 뒤를 내주지도 않았을 것이다.
차진우는 상황 파악보다 먼저 눈이 돌아가 손부터 움직였다는 생각에 작게 한숨을 쉬었다. 어쩔 수 없었다. 하진과 연관된 일이면 본능이 먼저 앞섰다.
“괜찮으십니까?”
하진은 차진우 덕에 수월하게 몸을 일으킬 수 있었다. 흐트러진 옷차림을 정리하는 하진을 보며 차진우가 물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물어도 됩니까?”
구겨진 셔츠를 손으로 털어 펴던 하진이 그 물음에 손을 멈췄다. 이걸 말해야 하나? 물론 숨길 것도 아니었다. 하진은 내상을 입은 에스퍼를 치료하려 했을 뿐이니까.
그런데 막상 가이딩을 위해 백자안과 혀를 섞고 하마터면 숙소 거실에서 큰일 치를 뻔했다고 말하기가 민망했다.
“그…….”
그런데 그 망설임을 다르게 오해한 것인지 차진우가 백자안의 뒷덜미를 쥔 손에 힘을 꽉 주고 다시 물었다.
“설마, 이 새, 아니 이 녀석이 강제로 덮친 겁니까?”
“예? 아니, 아닙니다.”
오히려 입을 먼저 맞춘 건 하진이었다. 그러나 차진우는 좀처럼 괜찮다는 그의 말을 믿지 못했다.
“솔직하게 말씀하셔도 됩니다.”
“정말로 아닙니다.”
결국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부 설명하는 수밖에. 한평생 이렇게 수치스러운 적은 없었다.
서른두 살이나 먹고 이제 막 동료가 된 이에게 다른 동료와 키스하게 된 이유와 과정을 설명해야 한다니. 아니지. 이건 의료 행위니까 부끄러울 필요는 없었다.
“……그랬군요.”
그러나 차진우의 시선이 부어오른 입술로 향한 것을 느낀 하진은 결국 참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그래봤자 귀는 물론이고 뒷목까지 달아올라 소용없었지만 말이다.
* * *
백자안과 어색한 사이가 되면 어쩌나 싶었는데 정말이지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생각보다 가이딩을 강하게 해버렸는지 다음 날 저녁이 되어서야 눈을 뜬 백자안은 곧바로 하진에게 뛰어오더니 지난밤에 한 잘못에 대해 사과했다.
“죄송해요, 형. 많이 놀라셨죠…….”
“조금 놀라긴 했지만, 괜찮습니다. 다음부터는 조심해 주세요.”
“다음……. 네, 다음부터는 조심할게요.”
듣기 좋은 웃음을 흘린 백자안은 하진이 사과를 받아주기 무섭게 곁에 달라붙어 이것저것 조잘거렸다.
“저 새끼, 눈 뜨자마자 저러고 있네. 그냥 아주 영원히 자지 그랬냐?”
그런 백자안의 즐거운 꼴은 절대 못 보는 한승호가 부리나케 뛰어왔다.
둘만의 시간을 방해받은 백자안도 표정이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승호야. 가서 밥이나 먹어. 너 연비가 나빠서 배 속이 비면 머리도 비잖아.”
“이게 누구더러 연비가 나쁘대? 내가 꺼졌으면 하면 너부터 좀 꺼져. 형 귀찮게 하지 말고.”
이제 하진은 잘 알 것 같았다. 저를 가운데에 두고 다투는 상황이 귀찮았으나 자신이 끼어든다고 이들이 싸우지 않는 게 아니라는 것을.
이럴 땐 그냥 자리를 피하는 게 나았다.
“너 이 새……! 형, 어디 가?”
“저녁 시간이니 밥이나 먹을까 하고요.”
“같이 가요, 형.”
그러면 이렇게 싸우던 것도 멈추고 알아서 따라온다. 지금 숙소에는 하진을 비롯해 한승호와 백자안뿐이었다.
하필 이들을 말려줄 차진우가 없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알파 팀은 처음 만났을 때와는 달리 팀으로 움직이는 경우가 적었다.
에스퍼 중에서도 가장 능력이 뛰어나고 실적이 좋은 이들로만 구성된 팀이다 보니 한 사람, 한 사람 개인의 능력이 출중해 따로 차출되어 임무를 나가는 경우가 잦았다.
그래서 한 지붕 아래에 살면서도 다섯 사람이 모이는 경우가 잘 없었다.
‘차라리 나도 나가고 싶다.’
하지만 하진이 나가려고 준비만 해도 저들을 따라붙을 것이다. 오히려 밖으로 나가려고 하면 에스퍼도 없이 어딜 가냐고 잔소리하고 떨어지지 않으려고 하겠지.
‘밖에서 저 꼴을 볼 바엔 그냥 집에 있는 게 낫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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