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화 〉 일상 속의 불청객 (9)
* * *
질은 제르반에 관한 생각을 정리하는 데에 2주라는 시간을 들였어요.
오히려 어린 나이에 다른 이의 죽음을 겪는다는 건 트라우마가 될 수도 있는 일인데, 짧은 기간 안에 잘 극복해냈다고도 할 수 있겠죠.
이는 2주의 끝에 열린, 제르반의 장례식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을 거예요.
고아원의 아이들도 만나보고, 그의 새로운 가족들도 만나면서 여러 이야기를 나눴을 테니까요.
물론 그 장례식에 제르반은 없었지만요.
뿔 3개짜리 마기노…. 그러니까 삼뿔이와 싸워 패배한 사람은 그 마기에 침식되어서 몸이 먼지가 되어 흩날리게 되거든요.
그런데 제르반에 대한 문제가 해결된 직후, 질에게는 새로운 문제가 또 하나 생겼어요.
바로 집에 들어온 불청객들에 관한 일이었죠.
“언니, 왜 이 범죄자가 또 우리 집에 있는 거예요?”
“이해해주세요, 황궁과 관련된 복잡한 사정이 있어서 데리고 있게 되었으니까요. 그리고 질, 사람을 범죄자나 다른 별명으로 부르는 것은 좋지 못해요. 시멜리를 감싸는건 아니지만 그러다 다른 사람에게도 똑같이 하게 되면 어쩌려고 그래요?”
탈리안은 자신이 앉아있는 의자 옆, 그러니까 바닥에 앉아있는 시멜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어요.
무슨 일이 있었는지 탈리안의 손길을 가만히 받아들이고만 있는 순해진 시멜리를 보고선, 질은 잠깐 당황하다가도 다른 곳으로 시선을 옮겼어요.
그리곤 곧바로 표정을 구기며 탈리안에게 다시 큰소리로 항의했죠.
“치잇…. 시멜리 씨가 여기 있어야 하는 일을 언니가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건 알겠어요, 그렇지만 적어도 이유는 말해줘요. 시멜리 씨 한 명만 있다면 모르겠지만…. 얼마 전에 저한테 기분 나쁜 말만 늘어놓던, 저 언니도 같이 있잖아요!”
그래요, 시멜리만 있다면 어른들의 사정이니 이해하고 넘어갈 질이었겠지만요.
지금 이 자리에는 아이펠슈에까지 함께 있었어요.
질은 그 일이 있던 후로 아이펠슈에가 꽤 싫어졌는지, 그녀에게 손가락질까지 하며 말했어요.
아이펠슈에는 ‘완전히 미운털이 박혀버렸는걸~’이라며 태평하게 소파에 기대 탈리안을 바라봤죠.
하지만 질이 누군가에게 삿대질을 한다는 행동을 탈리안이 좋게 볼 리가 없었죠.
“질, 사람에게 손가락질을 하는 건 좋지 못해요.”
“그, 그건! 그렇지만…! 저는 저 언니가 싫다구요!”
잔소리를 들은 질은 억울하다는 듯이 호소했어요.
제르반이 죽은 것을 하나부터 열까지 질의 탓으로 돌려 말한 것이 아이펠슈에이니, 싫어하지 않을 리가 없는데….
아무리 질의 행동을 교정하기 위해서라지만 탈리안이 그녀를 감싸들었으니까요.
항상 자신의 편을 들어주었던 탈리안이 그럴 줄 몰랐을 거예요.
“저번 일을 생각하면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아니지만요, 질…. 아이펠슈에는 이곳저곳을 떠도는 모험가이기도 하고, 저와 같이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처지라 계획을 세우려면 어쩔 수 없이…. 어떤 일인지 말해줄 수는 없지만, 정말로 중요한 일이에요. 한 번만 이해해줄 수 없을까요?”
“으으, 몰라요! 그래서 둘 다 언제까지 여기 있어야 하는데요?!”
모른다고 대답은 하지만 그렇다고 싫다고는 하지 않네요.
뭐 어린아이들이 대개 그렇듯이 ‘집에서 나가게 해요!’라거나, ‘제가 왜 이해해야 하는데요!’라고 말하거나 하는데….
탈리안을 생각해서 억지를 부리지만은 않는 모습이에요.
“시멜리는…. 마암석을 유통하고 있다는 리니아 가문의 혐의가 벗겨질 때까지, 아이펠슈에는 리니아 가문이 흘린 단서를 찾을 때까지예요. 그러니 조금만…. 질? 어디 가는 거예요!”
“언니 정말 너무해요! 저한테는 한마디 상의 없이! 언제 돌아간다는 기약이 없잖아요! 방에 갈 거예요!”
질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돌아보지도 않고 바로 방으로 향했어요.
탈리안은 지금껏 이런 질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기에 말리는 것도, 붙잡는 것도 하지 못하고 질을 보낼 수밖에 없었죠.
“자, 잠깐만요! 질!”
“쟤 왜 저렇게 화나 있는 거야?”
“…누구 때문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불과 며칠 전만 해도 실리아와 함께 방에서 사이좋게 떠들던 질이었는데, 집에 불청객이 찾아왔다고 이렇게 화낼지 어떻게 알았겠어요.
아이펠슈에는 이런 심란한 마음을 품고 있는 탈리안에게 눈치도 없이 빈정댔어요.
곧바로 살기 어린 눈빛을 받으면서 주춤거리며 변명을 늘어뜨려 놨지만요.
“그, 원래 애를 키우는 게 어려운 일 아니겠어! 아, 안 그래?”
“…알면 조용히 하세요.”
“으, 으흠! 어쨌든, 슬슬 베리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은데. 저 녀석이 들어도 되는 이야기야?”
아이펠슈에는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시멜리를 가리키며 말했어요.
마녀라 불리는 탈리안, [S+] 랭크의 모험가인 아이펠슈에, 그리고 황궁 직속 기사단의 부기사단장인 아비.
이 셋이 동맹을 맺어가면서까지 상대해야 하는 베리아라는 인물.
그 인물과 싸우기 위해 대응 방법을 이야기할 거라면 제삼자가 듣지 않는 게 좋기는 합니다.
“오히려 옆에서 듣는 게 나을 거에요. 시멜리는 리니아 가문의 자제이기도 하니까요. 저희보다도 속사정에는 더 자세히 알고 있을 수도 있으니 의외의 정보를 얻을 수도 있어요. 베리아가 리니아 가문과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을 수도 있고, 혹은 뒤에서 조종하고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아니 근데 재판소에서는 알고 있는 정보를 다 불라고 고문을 해도 입도 뻥끗 안 하던 애였는걸? 감탄할 정도로 말이야.”
재판소에서의 일을 떠올린 아이펠슈에는 순수하게 시멜리를 칭찬했어요.
고문이라는 말에 탈리안은 일순간 눈썹을 찡그렸지만, 그뿐이었어요.
이러나저러나 살인자는 살인자이니 이름까지는 빼앗지 않더라도 변호해줄 생각은 없다는 거겠죠.
“제 말은 잘 듣게 되었으니, 그 점은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렇게까지 말하니까 저 녀석한테 무슨 짓을 한 건지 걱정될 수준이네.”
“심한 짓은 안 했어요. …아마도.”
“진짜야? 저 녀석 눈 초점이 나가 있는데.”
말끝을 흐리는 걸 보면 무슨 짓을 하기는 했다는 거네요.
시도 때도 없이 시시덕거리며 말하던 시멜리가 지금은 한마디도 없이 조용히 애교나 부리고 있는 꼴이라니.
질이 시멜리를 보고 당황했던 게 다 이유가 있었어요.
몇십 명을 죽인 살인자가 탈리안의 손길에 고양이처럼 고로롱거리고 있을지 누가, 어떻게 알았겠어요?
“어쨌든, 평원에서 제가 죽였던 마기노…. 그 녀석한테서는 확실히 베리아의 냄새와 마나가 느껴졌었어요. 그래서 제가 재판이 멈췄던 때에 뛰쳐나왔던 거니까요.”
“자알~ 알지, 덕분에 고생 좀 했으니까.”
“베리아에 관한 일이라면 어쩔 수 없었잖아요? 그리고 만약 제가 뛰쳐나오지 않아 질이 다치거나 죽기라도 했다면…. 동맹이고 베리아고 다 내팽개치고 세계를 부수려 했을지도 몰라요. …그처럼.”
“그 녀석처럼이라니 끔찍한 소리 하지 마! 어쨌든, 그날 대단한 거라도 발견했어?”
‘그’라는 말에 몸서리를 치며 거부하는 아이펠슈에에요.
저런 반응을 봐서는 ‘그’도 베리아처럼 보통 인물이 아니겠죠.
“마기노가 흘리고 다닌 마나를 따라 추적해보니, 도시 리니스 전체에 커다란 공간이 하나 숨겨져 있더군요.”
“커다란 공간? 베리아가 거기 숨어있다고 말하고 싶은 거야?”
“아뇨, 이 지도를 보세요.”
탈리안은 아무것도 없는 공중에 손을 뻗었어요.
그리고 눈 깜짝할 새에 마나가 모여들어 하나의 지도를 만들어냈죠.
지도를 펼쳐놓은 그 크기가 앞에 놓인 테이블을 다 덮을 정도의 크기를 했어요.
아이펠슈에는 펼쳐진 지도를 한참이나 구경하며 ‘음, 음음!’같은 소리를 냈어요.
뭔가 알아내고 있다는 것처럼요.
“으음…. 역시 탈리안은 대단해! 지도를 봐도 아무것도 모르겠어!”
하지만 그 입에서 나온 말은 전혀 다른, 무지성의 결정체와도 같은 말이었어요.
그를 보고 탈리안이 손으로 이마를 짚고 한동안 말이 없었죠.
어떻게 이런 인물이 [S+] 랭크의 모험가가 되었는지 속으로 끝없이 의심 중일 거예요.
“…모르겠으면 말을 하세요. 이 배치도를 보고서 짐작이 가는 게 전혀 없나요? 예를 들어 이상할 정도로 많은 뒷골목의…. 찌르지 마세요.”
게다가 이번엔 설명을 끊고 손가락으로 탈리안의 볼을 찔러왔어요.
짜증 섞인 말투로 찌르지 말라고 해야 꾸욱 누르고 있던 손가락을 떼는 아이펠슈에였어요.
손가락을 떼면서도 부드럽고 탄력 있는 피부에 감탄하면서 한마디 하는 것도 잊지 않았죠.
“아, 미안. 나도 모르게…. 가끔 보면 신기하단 말이야, 정말 생기가 하나도 없는 얼굴이구나 하고…. 그 정도로 하얗잖아?”
“칭찬인 거예요, 아니면 비꼬는 거예요?”
“칭찬이야, 어디 가서 이렇게 곱고 흰 얼굴을 볼 수 있다고?”
“당신에게 칭찬받아도 기쁘지 않아요. 그리고 집중 좀 하세요.”
칭찬이라는 말을 들으니 막상 기분이 나아진 탈리안은 집중하라며 잔소리를 하며 다시 지도의 이곳저곳을 손가락으로 짚으며 설명을 시작했어요.
그 노력이 소용없다고 생각될 정도로 아이펠슈에는 계속해서 탈리안에게 장난을 걸어왔지만요.
뭐, 베리아에 관한 이야기는 여기까지 듣도록 해요.
대단한 인물들만 모여서 작전회의까지 하고 있는데, 실패하는 게 더 이상할 거예요.
혹시라도 이들이 실패하는 일이 생긴다면 그때 보도록 하고, 지금은 방에 틀어박히러 가버린 질을 보도록 하죠.
질의 방문 앞에는 저번처럼, 실리아가 서 있었어요.
탈리안이 직접 가기에는 질의 말처럼 상의 한번 하지 않고 외부인을 들인 잘못이 있으니 미안했기에 그럴 수 없었을 거예요.
하지만 몇 번이고 질을 불러보고, 노크를 해봐도 방 안에서 대답이 들려오기는커녕 부스럭거리는 소리조차 들려오지 않았죠.
이상함을 느낀 실리아는 어쩔 수 없이 마나를 문틈 사이로 흘려 넣어 방 안을 탐색했어요.
그리고 방 안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했죠.
“열쇠를 사용한 흔적이…. 어디 간 거예요? 곧 점심시간인데….”
사실 탈리안이나 실리아가 질을 추적하려면 못할 것은 없었지만, 지금껏 한 번도 그러지는 않았어요.
질도 들키고 싶지 않은 일이 있을 것이고, 그것을 탈리안도 알고 있거든요.
어찌 됐든 그 시각, 질은 라피아가 지내는 학원의 기숙사에 도착해 있었어요.
새로 생긴 버릇과도 같은 것이라고 해야 할까요.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생긴다면 탈리안이나 라피아에게 달려가 불만을 토로하는 버릇이요.
보통은 탈리안에게 가서 어리광을 부리지만, 가끔 어쩌다 한 번씩 탈리안이 자리에 없거나 바빠서….
혹은 이번처럼 정말 드물지만, 탈리안과 갈등을 빚을 때.
그럴 때마다 라피아를 찾기 시작했어요.
“지일…. 이번엔 무슨 일로 찾아온 거야? 아하암….”
이 행동이 버릇으로 자리 잡은 건 라피아가 딱히 거부하지 않은 탓도 있었죠.
흐트러진 모습으로 겨우 침대에서 상체만 일으켜선 눈을 비비며 일어나려는 라피아에요.
자다 일어났으면서도 짜증 한번 내지 않고 대해주는 걸 보면 버릇이 되지 않을 리가 없죠.
“언니! 진짜아, 이번에 탈리안 언니가!!”
“질 일단, 진정, 진정. 세수 좀 하고 오자…. 으긋! 흐으아…!”
라피아는 기지개를 켜며 침대에서 일어났어요.
잠에서는 깬 것 같지만 끝까지 이불을 놓지 않고 한술 더 떠서 몸에 두른 채로 화장실로 향했죠.
투덜거리며 바닥에 앉던 질은, 화장실 앞에서 이불을 내려놓는 라피아를 보고서 놀랄 수밖에 없었어요.
방을 혼자서 쓴다지만 최근 들어서 질이 자주 찾아오는데, 누가 알몸으로 잘 거라고 생각이나 했겠어요?
잠결에 알몸을 보였다는 사실도 모르는 라피아는 세수만 한다더니 샤워까지 하고 나서야 질보고 아무렇지 않게 옷을 가져다 달라고 했어요.
같은 여자끼리이기도 하고, 친한 데다가, 질이 어리다는 것들을 감안하면 알몸을 보여도 상관없다는 걸 수도 있겠지만….
질은 그렇지 않은 거 같은걸요.
“언니 저번엔 엄청 부끄러워하지 않았어요?”
역시 저번에 엄청난 소리를 질렀던 그때를 기억하고 있네요.
잊어버릴 수가 없는 일이기는 했어요.
그 뒤로도 자기 집 찾아오듯이 몇 번을 드나들긴 했다지만 쉽게 적응할 일이 아니기도 하고요.
“응? 으응…. 너만 있다면 괜찮은데, 흑기사까지 있으면 좀 부끄럽기는 해.”
“아, 저한테 보이는 건 괜찮은 거예요…? 이유를 모르겠는데.”
“어, 안 되는 거였어? 아니, 그야 네가 싫어한다면 앞으로 알몸으로 잔다거나 하진 않겠지만….”
자다가 일어난 지 얼마 안 되어서 그런 걸까요, 남 듣기에 이상한 말을 하는 라피아에요.
이건 분명히 질도 이상하다고 생각할 거예요.
“언니 말하는 게 조금 이상한데…. 방 주인은 언니인데 왜 저한테 맞춰주는 거예요?”
“으음~ 너한테는 그렇게 해도 손해를 보는 게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해야 될까? 그런 이상한 느낌이 있어.”
“이해가 안 가요….”
옷을 다 입고 나서 냉장고에 있는 마실 것을 꺼내 건네주는 라피아에요.
탈리안이 건네주던 음료는 대부분이 씁쓸한 맛을 가지고 있어, 질이 망설이는 느낌이 있었는데 말이죠.
라피아가 건네주는 건 맛도 신경 쓰지 않고 고맙다며 바로 받아 마시는 모습이에요.
그 정도로 맛있다는 거겠죠.
“뭐 어때? 우리 사이에. 어쨌든 오늘은 무슨 일이야? 탈리안이 잔소리라도 했어?”
“아! 들어보세요, 언니! 탈리안 언니가 있잖아요!!”
뭐어… 이렇게 질의 길고 긴 푸념을 늘어놓는 시간이 시작됐습니다만, 라피아는 머리를 말리며 경청하기 시작했어요.
너무나도 익숙한 그 모습이 하루 일과의 시작이라도 된다는 것처럼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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