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영과 일훈 –넷- (5/7)

남영과 일훈 –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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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 학년, 일훈과 같은 반이 됐다. “드디어!”라고 외치며 한차례 섀도우복싱을 한 일훈이 “내가 기도했거든”하고 나를 돌아보며 웃었다. 아이처럼 맑고 순진한 얼굴에 초치기 싫지만 그래도 잘못된 사실은 짚고 넘어가고 싶어서 입을 열었다.

 “네가 기도해서가 아니라, 내 성적이 떨어져서야.”

 내내 전교 10등 안에 들던 내가 전교 1등을 놓치지 않는 일훈과 한 반이 되기란 요원한 일.

 하긴, 성적이 떨어지자마자 한 반이라니, ‘기도빨’이 아예 없었다곤 못하겠네.

 일훈은 “어쨌거나 나이스”하고 나를 향해 엄지를 척 치켜세웠다.

 마치 중학생 때로 돌아간 것 같은 가벼움. 발랄함. 실없음. 활짝 웃을 때 보이는 송곳니 빠진 자리.

 일훈은 웃지 않는 아이가 됐다. 웃는 건 내 앞에서만. 그렇게 정해져 있다. 이젠 믿게 됐어? 반 정도는 믿고 있어? 라고 물어오지도 않고. 그저 내 앞에서만 웃고 겁내고 놀라고 토라진 체도 했다가 달라붙기도 했다가 순식간에 어른의 얼굴을 하기도 하는……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열여덟의 남자애.

 키는 더 자라 183센티미터쯤. 싸움은 못하는 주제에 운동은 잘해서 지난 체육대회 땐 농구와 계주에 출전했고, 웃지 않아도 여전히 인기는 많은지 무슨 날만 되면 초콜릿과 편지와 과자와 사탕이 한가득. 나를 좋아한다고 했으면서 그것들을 버리지도 않고 집에 가져와 “은숙 씨, 선물”하며 아주머니에게 자랑이나 하고. 그런 주제에 “섹스하고 싶다고 생각할 만큼 나를 좋아하게 만들고 싶어”라니.

 그랬다.

 일훈은 며칠 전 불쑥.

 식탁에 죽은 듯이 엎드려서는, 물을 마시러 나온 내게 불쑥, 말했던 것이다.

 “섹스하고 싶다고 생각할 만큼 나를 좋아하게 만들고 싶어.”라고.

 발기한 채 애처롭게 바들바들 떨었던 주제에.

 섹스하고 싶냐는 질문에는 충격이라도 받은 듯이 놀랐으면서.

 뻔뻔하게도.

 “너를 그렇게 만들고 싶어.”라고 나른하게 혼잣말처럼 중얼거리고는 내 교복 자락을 손가락 끝으로 하늘하늘 건드렸다. 나비가 날아다니듯 하늘하늘 팔랑팔랑 간지럽게.

 성희롱이냐고 쏘아붙이려다가 말았다.

 그렇게 쏘아붙였다간 울려버릴 것 같아서.

 왠지 울지도 모르겠다는, 그런 생각이 들어서.

 너의 ‘좋아해’를 내가 전부 믿어버리면, 그러고 나면 나의 ‘좋아해’는 네게 필요 없는 거야?

 가끔 그것을 물어보고 싶었는데, 그것에 대한 답을 들어버린 것 같아서.

 그래서 한 번 봐줬다.

 * 

 한 번은 봐줬는데 두 번은 못 봐줄, 그런 일이 생겼다.

 4월이 되자 교정의 벚꽃이 개화했다. 바람이 불면 작고 동그란 꽃잎이 눈처럼 흩날렸는데 그것을 보기 위해선지 나는 자주 시선을 창밖으로 돌리곤 했다. 봄이라서 평화롭다고, 정신을 차리고 보면 문득 생각하고 있을 때가 많았다. 봄도 평화도 그동안은 별로 떠올려본 적이 없던 어색한 단어인데, 이상했다. 교정에 벚나무가 있다는 것도, 그것을 새삼스럽게 보기 시작한 것도, 이상하긴 매한가지였다.

 그러던 중의 수요일. 그러니까 사흘 전, 5교시가 끝난 쉬는 시간에 일훈의 눈을 피해 잠깐 교문 밖에 나갔다가 그대로 6교시가 끝날 때까지 학교로 돌아오지 않았다. 눈처럼 날리는 꽃잎 때문은 아니었다. 그저 날씨가 좋았고 수업은 지루했고 핫도그가 먹고 싶었다.

 오랜만이었다. 무언가를 먹고 싶다고 구체적으로 어떤 음식을 떠올린 것이.

 교복 차림에 슬리퍼를 신고 근처 상가 핫도그집에서 핫도그를 먹고 있는데 재수 없게 학생부장에게 걸렸다. 방과 후 교무실에 불려가 훈계를 들었고 반성문이라는 벌을 받았다. 그것도 10장이나. 학생부실에 앉아 반성문 10장을 꽉꽉 채워 쓰고 나니 벌써 해질녘. 야간자율학습을 하는 애들은 벌써 이동했을 테니 교실엔 일훈만 남았으려니 했다.

 그 전날 일훈은 아저씨와 함께 친척의 장례식장에 다녀왔다. 가까운 친척도 아닌 오촌 당숙이 죽었다는데 일훈은 그 장례식장에서 하룻밤을 꼬박 새우고 이른 새벽에야 집으로 귀가했다. 하루 종일 피곤해 보였으니 오늘은 먼저 갔으려나 싶다가도 그럴 리 없다고 코웃음을 쳤다. 혼자 나갔다고 삐쳤으려나. 잔소리하겠지. 졸리다고 아이처럼 투정을 부릴지도……. 그러든가 말든가 나는 왜 이런 것들을 염려하고 있을까. 걔가 그러든 말든 평소대로 무시하면 그만인데. 그런 생각들을 하며 교실에 도착했는데 일훈은 혼자가 아니었다.

 잠이 든 듯 책상에 엎드려 있는 일훈 앞에 여학생이 한 명 서 있었다.

 같은 반, 이선화.

 예쁘장한 얼굴에 키가 크고 구불거리는 긴 머리카락을 늘 하나로 단정하게 묶고 다니는 아이. 남학생들과도 스스럼없이 잘 떠들고 직설적이고 조금 새침하고 나를 싫어하는 아이. 대놓고 나를 싫어해서 어쩌다 눈이라도 마주치면 순식간에 표정이 굳어버리곤 하는…….

 그 애가, 엎드려 있는 일훈의 앞에 서 있던 그 애가 갑자기 허리를 숙여 입을 맞췄다. 잘 보이지 않았지만 아마도 일훈의 입술에. 각도와 위치상 그 애의 입술일 수밖에 없는 자리에. 약 2초간 그러고 있다 떨어진 선화는 황급히 돌아서다가 뒷문 쪽에 서있던 나를 발견하곤 굳었다. 잠시 굳었다가 금세 새초롬해져선 ‘네가 봤으면 뭐 어쩔 건데’라는 듯이 내 어깨를 세게 치고 지나갔다.

 당당하게, 어쩌면 화가 난 듯 보이는 뒷모습. 가슴이 싸늘하게 식어서, 0도 이하로 떨어지는 심장의 온도를 고요하게 느끼며 선화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송일훈을 좋아하나? 그런 생각을 했다. 좋아하면 키스해도 되나? 그런 생각을 했다. 몰래, 도둑키스를 하는 건 범죄가 아닌가? 그런 생각도 했다. 키스했는데 왜 깨지 않지? 그런 생각으로 돌아봤는데 일훈이 눈을 뜨고 나를 보고 있었다. 막 잠에서 깨어난 듯, 어딘지 멍하고 나른한 표정. “왔어?”하고 시계를 보더니 “늦었네”했다. 토라진 척 약간 불퉁한 표정. 한쪽 뺨엔 붉게 눌린 자국.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긴 하냐. 누가 너 잡아간 줄 알고 심장 졸려 죽는 줄 알았어. 임신했으면 백퍼 유산이야.”

 재잘재잘 떠드는 미끈한 입술을 보다가 “키스만으론 임신하지 않아.”하고 말했다. 거의 무의식중에 흘러나간 말로 일훈이 “그게 무슨 소리야?”하고 의아해하는 걸 무시하고 책상을 정리하고 가방을 멨다.

 “기다려. 같이 가.”

 기다리지 않고 교실 밖으로 나갔다.

 “최남영, 기다리라니까.”

 기다리면, 여기서 멈추면, 돌아서면, 목이라도 졸라버릴 것 같았다.

 기다리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멋대로 기다려선. 키스해도 모를 만큼 둔감하지 않으면서. 기절할 만큼 피곤했으면 집에나 갈 것이지.

 좋아한다고.

 좋아해, 라고.

 필사적으로 말했으면서.

 반만 믿길 잘했다고.

 반이나 믿어서 억울하다고.

 이를 악물고 자꾸만 자꾸만, 할퀴듯이 생각했다.

 * 

 “왜 말 안 했어?”

 체육이 끝난 후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는 중이었다. 옆으로 소리 없이 다가온 선화가 마치 혼잣말을 하듯이 물었다. 시선은 정면을 향한 채, 교복 블라우스의 단추를 천천히 목 끝까지 채우고 머리끈을 풀어 기다란 머리카락을 다시 묶었다.

 “말해도 괜찮았는데.”

 조끼까지 반듯하게 입고선 나를 향해 싱긋 웃었다.

 나는 말없이 그 애를 한 번 봤을 뿐, 그 외에 어떤 반응도 하지 않았다.

 미안하지만 내 상대는 선화가 아니었다. 내 감정이 비틀렸다면 그 비틀림의 대상은 선화가 아니어야 했다. 잘못이 없더라도 아무것도 모르더라도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고 ‘억울해, 억울해’하고 울게 되더라도 내 상대는 송일훈이어야만 했다.

 그 외에 다른 건 아무래도 좋으니까.

 넌 내게 아무것도 아니야.

 그런 의미로 선화를 내버려두고 탈의실을 빠져나왔다.

 그렇다면 일훈은 내게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닌가. 그것에 대해 나름대로 생각해봤는데…….

 답은.

 그렇다.

 왜 그런 답이 나왔냐면 몰라. 모른다. 그냥…… 일훈은 내게 유의미하다. 적어도 나를 분노하게 만들 수 있는 존재다.

 나는 지금 화가 났으니까 그런 존재인 너를 울릴 거야.

 울리겠다고 울려버리겠다고 단단히 결심했으니까.

 방과 후 곧바로 가방을 챙겨 교문을 빠져나왔다. 주번인 일훈이 “기다려줘. 제발. 조금만. 한 번만.”하고 신신당부하듯 부탁했지만 기다릴 리가 있나. 화가 나지 않았어도 기다리지 않았을 텐데 화가 난 나는 절대로 기다릴 리가 없지.

 눈치 빠른 일훈은 오늘도 몇 번이나 “왜 그래?”하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화났어?”

 “내가 뭐 잘못했어?”

 “무슨 일 있어?”

 “어디 아파?”

 “남영아…… 남영아……” 부르고는 “나 괴로워…….”했다.

 잔뜩 풀이 죽어서.

 그런 우리를 맨 뒷자리에 앉은 선화가 비웃듯이 쳐다봤다.

 내 앞에 쪼그리고 앉아 책상에 이마를 붙이고 있는 일훈은 정말로 괴로워 보여서 마음이 조금 느슨해지려고 했다. 최남영이 언제부터 이렇게 무른 사람이었다고. 나야말로 나 자신을 비웃으며 느슨하게 풀린 것을 팽팽하게 당겨 바로 잡았다.

 평소대로 지름길로 가면 일훈에게 따라잡힐지도 몰라 도서관 쪽으로 둘러 가는 길이었다. 횡단보도를 건너 은행나무 가로수가 이어진 보도를 걷는데 “저기, 학생.”하고 누군가가 불렀다.

 다른 날, 다른 장소였다면 무시했을 것이다. 길을 묻는 거면 귀찮고, 다른 도움을 요청하는 거라도 귀찮고, 종교인이라면 그야말로 최악이니까.

 그런데 멈춰 섰다. 멈춰 서서 나를 불러 세운 사람을 봤다.

 3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남자. 하얀색 트레이닝복을 입고 동네 산책이라도 나온 듯한 모습. 작은 키에 짧은 스포츠머리. 사람 좋아 보이는 인상. 나를 보며 웃고 있었다.

 “교복을 보니까 K고등학교 다니는구나? 나는 요 근처 N중학교 체육 교사거든. 선생님이 지금 논문을 하나 쓰고 있는데, 시간 괜찮으면 도움 좀 줄 수 있을까?”

 처음 보는 남자. 그러나 나는 이 남자를 알고 있었다. 나뿐만 아니라 우리 학교 애들이라면 대부분 다 이 남자를 알고 있었다. 1학년이 아니고서야 알 수밖에 없었다. 아니, 1학년이라도 몇몇은 알고 있을 것이었다.

 유명했으니까.

 하얀 츄리닝, 도서관 변태.

 논문. 논문이라니…….

 타인을 상처주기 위해 사람은 얼마나 자기 파괴적일 수 있나, 에 대한 논문도 있을까.

 완전 똑같지는 않더라도, 뭐 비슷한 거라도 있지 않을까.

 있겠지. 있을 거야. 아저씨는 알 텐데. 모를까. 알지 않을까.

 그런 생각들을 하며 남자를 따라갔다. 남자를 따라가는 중에 우리 학교 교복을 입은 남학생들을 마주쳤다. 나와 남자를 번갈아 보며 놀란 듯 동그래지는 눈들. 쟤 최남영 아니야? 하는 소리가 들렸다. 저거 완전 또라이네. 소문대로 미친년. 모르고 따라가는 거 아냐? 모르고 따라가는 거면, 네가 도와주게? 됐어, 그냥 가자. 멀어지면서 나와 남자를 흘긋흘긋 돌아보는 눈들이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빤했다.

 남자애들은 입이 얼마나 쌀까. 모르긴 해도 새털만큼 싸겠지.

 새털만큼 먼지만큼 입 싼 놈들이면 좋겠다고 조금 웃었는데, 사실 나는 그 애들이 말하는 대로 미친년도 아니었고 그다지 자기 파괴적이지도 않았다.

 도서관 변태가 변태이긴 한데 굳이 따지자면 중범죄는 저지르지 않는 변태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들려오는 모든 소문이 그랬고, 내 감이 그랬고, 무엇보다 남자는 주변의 시선을 나름대로 신경 쓰는 것 같았으니까. 내게 끊임없이 “정말 괜찮아?”하고 물었고 “선생님이 쓰는 논문이 좀 그래. 학생들 성교육에 대한 거랄까…… 싫은 건 싫다고 말해. 억지로 할 필요 없으니까.”하고 변명을 하듯 방어적으로 중얼거렸다.

 아마도 가족이 있는 사람. 어쩌면 멀쩡한 직장도 있는 사람. 이 지역이 아닌 다른 먼 곳에 사는 사람. 출몰 장소를 주기적으로 바꾸며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켜 온 사람.

 신고를 당하지 않으려고 자꾸만 자꾸만 밑밥을 까는 꼴이 비굴해보이기까지 했다.

 남자는 나를 아파트 단지 근처에 있는 낡은 상가 건물로 데리고 갔다. 5층 건물의 옥상까지 올라가 시멘트만 발린 작은 창고로 들어갔다. 문을 활짝 열어 놓은 채 나를 입구 근처에 세워 둔 남자는 ‘성’과 관련된 여러 가지 질문을 하다가 트레이닝복을 내리고 자위를 하기 시작했다.

 이쯤 되면 본성을 드러내는 것. 그것도 남자의 수법일 것이다.

 여기까지 따라왔으니 너도 눈치 챘겠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도망가지 않고 소리 지르지 않는 것으로 암묵적 동의를 얻어냈다고 안도하면서.

 나는 남자의 질문엔 입도 벙긋 않고 남자가 자신의 성기를 주무르는 것만 지켜보았다.

 성인 남자의 성기, 그것도 발기한 것을 실제로 보는 것은 처음이었는데 생각보다 별 감흥이 없었다.

 그다지 더럽다는 느낌도 흉물스럽다는 느낌도 신기하다거나 놀랍다는 느낌도 없었다.

 “만져볼래?”

 거친 숨을 내쉬며 남자가 물었다.

 싫다는 뜻으로 고개를 한 번 저었다.

 “그럼, 빨아볼래?”

 또 고개를 저었다.

 “너, 거기 털 많이 났냐?”

 대답하지 않았다.

 “사실 아저씨도 이러는 거 조금 부끄럽거든.”

 남자는 더 이상 자신을 ‘선생’이라고 하지 않았다. 눈을 감고 점점 더 빠르게 손을 움직이고 있었다.

 “사실은 나도 수치스러운데…… 아……아……아…….”

 그러고 끝이었다. ‘아’ 세 번과 묽은 정액.

 멋쩍은 듯 웃은 남자가 상의 주머니에서 물티슈를 꺼내 뒷정리를 했다. 뒷정리를 마치고 말끔히 옷매무새까지 가다듬은 남자는 창고를 나서며 소감이 어땠냐고 물었다.

 소감이라니…….

 싱겁고, 하찮다.

 소감이라면 그게 소감이지.

 4층으로 내려가는 층계참에서 남자는 너 먼저 가라는 듯 턱짓을 했다. 남자를 일별하고 말없이 계단을 내려가는데 등 뒤에서 남자가 조용히 말했다.

 “오늘 일은 잊어라.”

 굳이.

 그러니까 굳이 따라갈 필요는 없었다. 내가 그 남자와 함께 있는 걸 우리 학교 애들이 이미 봤으니까. 그 애들은 그것만으로도 충실하게 소문을 내줄 테니까. 그러면 소정의 목표는 달성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따라간 이유는, 역시 어느 정도는 자기 파괴적 욕구가 있었던 것일까.

 네가 키스 당했으니까, 나도 뭔가 당해버려야 공평하다.

 그렇게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계산이 왜 그렇게 되는지는 모르겠고, 도대체 뭘 당했는지 말았는지도 모르겠지만.

 상가 건물을 나와서 다시 도서관 쪽으로 걸었다. 은행나무 가로수를 따라서 쭉 걷고 있는데 멀리 일훈이 보였다. 일훈이 가방도 없이 뛰어오고 있었다. 봄인데, 아직 봄인데, 혼자만 여름인 것처럼 땀에 흠뻑 젖어서.

 나를 발견하곤 멈춰 섰다. 가쁜 숨을 괴롭게 들이쉬고 내쉬며 손등으로 턱 끝의 땀을 닦았다.

 “너…… 괜찮아?”

 허리를 숙이고 양손으로 무릎을 짚은 채 물었다.

 “애들이, 하아…… 이상한, 소리를 해서……”

 역시나, 먼지만큼 입 싼 놈들.

 “무슨 이상한 소리?”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내숭을 떨었다. 언젠가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징그럽게.

 “네가, 변태 새끼랑 가는 걸 봤다고…….”

 몇 번이나 호흡을 고른 일훈은 허리를 펴고 나를 내려다봤다. 땀에 젖은 얼굴이 걱정과 불안으로 잔뜩 경직되어선…… 그걸 어떻게든 숨기려고 애쓰는 모습이었다.

 “아니지? 아닐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걱정이 돼서…… 무사한 거 보니까, 다행……”

 “왜 아닐 거라고 생각하는데?”

 무심한 한 마디에 일훈의 모든 말과 행동이 고장이라도 난 것처럼 뚝 멈췄다.

 “애들이 그러지? 도서관 근처에서 봤다고. 그러니까 제대로 찾아왔을 거고. 그런데 왜 아닐 거라고 생각해? 이상한 남자랑 방금까지 같이 있었던 거 맞아.”

 숨소리조차 내지 않는 일훈을 향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실제로 대수롭지 않았으니까. 싱겁고 하찮다. 단지 그게 전부였으니까.

 “이상한 남자, 누구……?”

 “애들이 봤다는 변태.”

 “같이 있었다니…… 왜? 혹시 그 새끼가, 너 억지로……”

 “내 발로 따라 간 거고, 알고 따라간 거야.”

 “……어째서?”

 “궁금해서.”

 충격에서 분노로, 분노에서 공포로, 조금씩 하얗게 질려가는 얼굴을 물끄러미 올려다봤다.

 “뭐가, 뭐가 궁금한데? 대체 궁금할 게 뭐 있다고 그런 위험한 새낄 따라가는데? 너는 대체! 대체, 왜 그렇게……!”

 말을 끝까지 잇지 못하고 이를 악물듯 입을 다물어버린 일훈은 평소 습관대로 거칠게 머리를 쓸어 올렸다. 고개를 숙인 채, 힘을 얼마나 주고 있는지 부들부들 안쓰러울 정도로 턱관절을 떨어대면서.

 “대체 뭐? 나 이런 애인 거 모르지도 않았잖아.”

 나는 한담이나 나누는 사람처럼 느긋하게 굴었다. 바람 좋은 날 소풍이라도 나온 사람처럼. 눈앞의 일훈과는 극명하게 대비되도록. 그걸 일훈도 알 수 있도록.

 “내가…….”

 억지로 쥐어짜낸 것 같은 목소리로 간신히 입을 열었다가 다시 입을 다물어버린 일훈은 무언가를 힘들게 눌러 삼키듯 한참 말이 없었다. 한참 말없이 시선을 비끼고 있다가 괴롭게 나를 내려다보며 “내가 좋아한다고 했잖아.”하고 중얼거리듯 말했다.

 “널 많이, 정말 많이, 미친놈처럼, 정신이 나가버릴 만큼 많이, 좋아한다고…….”

 “믿는다고 한 적 없잖아.”

 “반은…… 반은 믿어주겠다고 했잖아.”

 “거의 반…… 믿을 뻔했는데, 이젠 믿지 않아.”

 “왜 이젠 믿지 않아?”

 눈시울이 붉어져서 이제 조만간 정말로 울어버리지 않을까 싶었다. 왜 이젠 믿지 않아? 하고 묻는 목소리가 거의 울먹이는 것처럼 들려서. 마지막 음절은 너무 떨고 있는 나머지 제대로 들리지가 않아서.

 나는 이런 일훈을 보고 싶었나. 허탈하게 그런 생각을 했다. 보고 싶었던 걸 보고 있는데 왜 조금도 만족스럽지가 않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기계적으로 대꾸했다.

 “믿지 않는 게 좋지 않을까, 그런 기분이 들어서.”

 선화가 일훈에게 입맞춤했기 때문이 아니고, 그걸 모른 채 당해버린 일훈을 정말로 못 믿게 돼서도 아니고, 그러니까 나는 겨우 그런 일로 동요하는 나 자신이 옳지 못하다고, 옳지 않게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옳지 않다는 건 약하다는 것. 약하다는 건 혼자서는 살 수 없다는 것. 세상을 혼자서 살아내지 못하면 어쩌자는 거야. 죽자는 거야? 지루해도 참고 살았는데 이제 와서 죽자는 거야? 하고 나를 이렇게 만든 일훈에게 분노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아니…… 정말로 그게 그런 분노였나? 정말 그뿐인가…… 모르겠다. 모르겠다. 모르겠어서 다 귀찮아. 그렇게 넌더리를 내고 있는데 일훈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내게 고백했던 그날처럼.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그런 새낄 따라 가냐. 그 새끼가 어떤 새낀지 알면서. 정말 위험했으면 어쩌려고, 너 정말 위험했으면 어쩌려고……. 넌 내 생각은 조금도 안 해? 내가 걱정할 거라는 생각, 내가 괴로울 거라는 생각, 내가 미칠지도 모른다는 생각 같은 거…….”

 “그런 생각을 내가 해야 돼?”

 아니,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했기 때문에 따라간 거야.

 그러니까 역시 이건 나를 약하게 만들었다는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라, 그런 분노 때문이 아니라…….

 “그래, 그렇네.”

 허탈하게 중얼거린 일훈이 바닥에서 일어났다. 나를 보지도 않고 돌아서서는 길게 뻗은 은행나무 가로수 길을 따라 걸어갔다. 한 번 뒤돌아보지도 않고 천천히 걷고 또 걸었다.

 처음이었다.

 일훈이 나를 내버려두고 혼자 가버린 것은.

 * 

 도둑키스 같은 걸, 그 비슷한 거라도 당해선 안 되는 사람.

 너는 그래. 그런 사람.

 나는 괜찮아. 하지만 너는 안 돼.

 나는 괜찮지만 너는 싫어.

 너도 똑같이 생각하지 않을까.

 나는 괜찮지만 너는 안 된다고.

 그래서 그랬어.

 그래. 아마도 이게 정답.

 1 

 천천히 걸었다. 아주 천천히. 네가 혹시 쫓아와 주지 않을까 해서. 네가 혹시 내 이름을 부르지 않을까 해서. 길이 끝나는 곳까지 걸었는데도 너는 결국 쫓아오지 않았고 내 이름을 부르지도 않았다.

 멀리 가방이 보였다. 너를 찾아 뛰던 중에 버리듯 내던졌던 가방. 가방을 줍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 새끼는 갔을까. 정말 갔을까. 혹시 남영일 따라오고 있던 건 아닐까. 남영인 괜찮을까. 정말 괜찮을까.

 다시 뒤돌아 미친 듯이 달렸다. 도서관 근처를 샅샅이 훑고 그래도 너를 찾지 못해 집까지 정신없이 달렸다.

 다행히도 현관에 네 단화가 있었다. 숨이 목 끝까지 차올라 현관 바닥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헛구역질이 올라올 것 같았다.

 괜찮아 보여서, 괜찮아 보였으니까, 그러니까 네가 정말로 괜찮을 거라고 별일 없었을 거라고 그렇게 최면을 걸 듯 생각하고 있었는데…… 사실은 그랬다. 사실은 네 방까지 쫓아가 네 방문을 열고 소리라도 지르며 묻고 싶었다.

 정말 괜찮은 거냐고, 아무 일도 없었냐고, 그 새끼가 너한테 무슨 짓을 했냐고,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고…….

 묻고 싶었는데 물을 수가 없었다.

 무서워서.

 네 입에서 나올 말이, 내가 할 행동이, 무서워서.

 무섭고 무섭고 무서워서.

 내가 사실 이렇게나 겁이 많다고, 내가 이렇게 겁 많은 사람인 걸 너를 만나기 전엔 몰랐다고, 그렇게 너에게 말해주고도 싶었는데 말할 수가 없어서, 앞으로도 말할 수가 없을까봐 그게 나는 너무 무서웠어.

 ‘남영인 착하고 불쌍한 아이.’

 아버지가 어째서 그런 말을 했는지 예전엔 이해할 수 없었는데, 이제 반쯤은 이해하고 있다.

 남영인 착하진 않지만 불쌍한 아이.

 불쌍한 아이.

 너를 불쌍하다고 생각하지 않고선 내가 견딜 수가 없으니까, 그러니까 불쌍하다고 해서 미안해, 최남영.

 * 

 아침 등굣길. 멍하게 걷다가 자전거에 부딪쳐 넘어졌다. 자전거의 주인인 선화가 넘어진 나를 일으켜 세우며 “야, 너 피나.”하고 호들갑을 떨었다. 원래도 목소리가 큰 아이인데 더 크게 떠들어대니 앞서 걸어가는 남영의 귀에도 들렸을 게 빤한데 남영은 한 번 돌아보는 법도 없이 묵묵히 걷기만 했다.

 가방을 멘 남영의 등을 물끄러미 보다가 고개를 숙였는데 과연, 오른쪽 팔뚝에 기다란 상흔이 생겨 피가 번져 나오고 있었다. 넘어지면서 돌이나 유리조각에 긁힌 모양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교실에 도착한 선화가 다짜고짜 나를 끌고 보건실로 향했다.

 “너 요즘 이상해. 잠 못 자는 거 아니야?”

 문이 열린 채 비어있는 보건실에서 잘도 이것저것 찾아온 선화는 상처에 소독약을 거의 들이붓다시피 하며 고개를 숙이고 물었다.

 잠을 못 자고 있는 게 맞았지만 “잘 자는데”라고 건성으로 대꾸했다.

 “잘 자는 애가 왜 그렇게 초췌하냐.”

 나무라듯 쏘아붙이고 빠른 손놀림으로 약을 바른 후 붕대까지 감았다.

 “이거 너무 과한 거 아냐? 누가 보면 중환잔 줄 알겠다.”

 오른팔을 내려다보며 어이가 없어 조금 웃는데 갑자기 뻗어 나온 손이 내 입술 양쪽 끝을 잡고 당겼다. 고개를 흔들어도 집요하게 따라와 강제로 입을 벌리려는 손을 결국 거칠게 쳐내고 말았다.

 여자애를 대할 때는 되도록 정중히.

 유치원도 다니기 전부터 들어온 은숙 씨의 가르침이었는데, 싫어도 따르기 위해 항상 애를 썼는데, 이럴 땐 좀처럼 쉽지가 않았다.

 “뭐하는 거야?”

 화내지 않으려 노력했으나 튀어나간 목소리는 어쩔 수 없이 까칠해서 요즘의 나는 내가 보기에도 여유가 없다고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눈을 새침하게 치켜뜬 선화가 “너 요즘 왜 안 웃냐?”고 뜬금없이 물었다.

 “내가 웃든 말든 네가 무슨 상관인데.”

 “최남영 때문에 그래?”

 남영을 함부로 거론하는 건 싫다. 그건 누구라도 안 돼.

 선화는 예전에도 한 번 남영의 이름을 화제에 올린 적이 있었다. 싸이코패스. 그래, 싸이코패스라고 했었지.

 가슴이 싸늘해져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치료해준 건 고마워.”

 더는 얘기하기 싫다는 의미로 돌아섰는데 뒤에서 선화가 빠르게 말했다.

 “최남영이랑 같이 있었다는 도서관 변태. 나 알아. 어디 사는지 안다고. 가나도 예전에 그 새끼한테 당한 적 있어서 몰래 뒤 밟은 적 있거든. 같이 가볼래?”

 갑자기 그 말을 하는 저의가 뭐야? 사실은 그렇게 물었어야 했다. 선화가 남영을 싫어한다는 건 알고 있었으니까. 왜 갑자기 나서는 거야? 하고. 그런데 나는 “진짜 알아? 어디 사는지.”하고 묻고 말았다. 머릿속 생각과는 다르게 이미 그렇게 묻고 있었다.

 선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든 말해. 오늘이라도 난 괜찮으니까.”

 “그럼 오늘 가.”

 그렇게 내뱉고 보건실을 나오면서 ‘그 새끼 찾아서 어쩔 건데.’하고 자문했다.

 죽여버릴까.

 역시 죽여버릴까.

 아니, 죽이지 않을 수 있을까.

 * 

 “오늘은 일이 있어서 먼저 갈게.”

 남영의 등에 대고 말했다.

 내가 먼저 가든 말든 남영은 신경도 안 쓸 테지만 그래도 말했다. 혹시 모르니까. 혹시 나를 찾을 수도 있으니까.

 차갑게 무시할 줄 알았는데 남영은 말없이 나를 한 번 봤다. 할 말이 있는 것처럼 나를 보다가 다시 시선을 돌렸다.

 최근에 남영은 말수가 부쩍 줄었다. 원래도 말이 많은 애는 아니었는데 요즘은 말을 잃어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굴었다.

 그래서 더 걱정이 돼.

 그래서 더 미칠 것 같고.

 그래서 오늘, 그 새끼한테 직접 물으려고.

 직접 묻고 죽여버리려고.

 학교를 나와 선화와 함께 버스를 탔다. 다섯 정거장을 가서 지하철로 갈아탔다. 둘 다 말이 없었다. 한 시간 가까이 지하철을 갈아타며 이동했는데 그동안 선화가 한 말이라곤 이것뿐이었다.

 “최남영 어디가 그렇게 좋아?”

 어디라니…… 몰라.

 몰라서 대답해줄 말도 없으니 그냥 침묵했다. 선화도 더는 묻지 않았다.

 도착한 곳은 연립주택이 늘어선 한적한 주택가였다. 좁은 골목이 복잡하게 얽힌 동네를 빙빙 돌다가 이윽고 멈춰선 선화는 이 부근까지 그 남자를 미행했었다고 말했다.

 “기다리다 보면 나타나겠지.”

 그렇게 2시간을 기다렸다. 골목에 어둠이 내리자 가로등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했다.

 “그 새끼 인상착의만 말해주고 넌 먼저 집에 가.”

 그 말이 웃겼는지 선화가 소리 내어 웃었다. 한참 웃다가 “됐어.”라고 차갑게 대꾸했다. 그러곤 잠시 후에 “배고픈데 먹을 거나 좀 사다줘.”했다.

 근처 편의점에서 간단한 먹거리를 사서 돌아가는 길이었다. 멀리 선화가 보였다. 원래 있던 장소에서 벗어나 골목 아래까지 내려가 있는 선화는 어떤 남자와 실랑이 중이었다. 하얀색 트레이닝 복을 입은 남자. 남자가 선화의 팔을 잡자 선화는 화를 내면서 뿌리쳤다. 팔을 휘젓고 발을 구르며 뭐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말 걸지 마! 싫어! 짜증나! 싫다고! 저리 가라고!

 저 새끼구나, 하고 생각했다. 생각하자마자 뛰었다. 들고 있던 편의점 봉지를 남자에게 던지고 곧바로 주먹을 날렸다. 쓰러진 남자를 타고 올라 몇 번인지 셀 수도 없을 만큼 주먹을 휘둘렀다. 거세게 저항을 해오던 남자가 꿈쩍도 못하게 될 때까지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머릿속이 새하얘져선. 진짜 괴물이라도 된 기분이었다. 흥분으로 숨이 차고 감각이 둔해지고 세상이 멀어지고 너 같은 새끼는 살 자격이 없다고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그런 악의만이 가득해서.

 “……만해.”

 시야가 좁아져서 쓰러져있는 남자 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는데 옆에서 선화가 자꾸 뭐라고 하는 게 들렸다.

 “그만해. 그만해, 송일훈.”

 선화가 내 교복셔츠를 쥐고 거세게 흔들고 있었다.

 “그만해. 그만하라고. 그만해. 우리 아빠란 말이야……”

 내 교복셔츠를 쥐고 찢을 것처럼 흔들면서 선화가 울고 있었다.

 * 

 그날의 폭력으로 정학을 받았다.

 남자는 선화의 아버지였고, 선화는 부모님의 이혼으로 아버지완 따로 살고 있다고 했다. 도서관 변태를 미행한 적이 있다는 건 새빨간 거짓말이었고 선화는 자신이 예전에 살던 동네로 나를 데려갔을 뿐. 그뿐인 바보 같은 해프닝.

 왜 그랬냐고 묻는 경찰과 담임과 은숙 씨와 아버지의 질문엔 나도 선화도 제대로 대답하지 않았다. ‘왜’라는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기 위해선 남영의 얘기를 꺼낼 수밖에 없었고, 남영의 얘기를 하지 말아달라고 선화에겐 미리 당부해둔 상태였다. 나는 남자가 선화에게 해코지를 하고 있는 줄 알았다는 빈약한 답변만 반복했다. 단지 그만한 이유로 그렇게 정신없이 사람을 때렸냐고, 넌 그런 애가 아니지 않냐고, 담임도 아버지도 도무지 믿을 수가 없다는 듯 침통한 표정을 지었고 은숙 씨는 언젠가 그랬던 것처럼 또 눈물을 보였다. 코뼈가 부러지고 턱뼈에 금이 간 선화의 아버지는 선처는 없다고 못을 박았지만 선화의 설득에 결국 합의를 해주었다.

 정학 10일.

 사람을 그토록 때렸는데 내가 받은 징계는 고작 정학 10일.

 운빨 타고난 징그러운 놈일 뿐.

 그렇게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어댔는데 어느 순간 깨닫고 보니 병신이 되어있었다.

 그것도 괴물 같은 병신이.

 남영은 나를 보지 않는다. 보려 하지 않는다. 내가 주방에 있으면 주방에 들어오지 않고 내가 거실에 있으면 거실에 들어오지 않는다. 어쩌다 마주치면 더러운 것을 피해가듯 굴고 무슨 일이 있더라도 무슨 말을 걸더라도 고개를 들어 내 얼굴을 보지 않는다.

 나는 여전히 그날을 생각하면 미칠 것 같고, 나를 차갑게 대하는 남영 때문에 하루하루가 고통스럽다.

 네가 이렇게 속을 썩일 줄 몰랐다는 은숙 씨의 한탄을 매일 같이 듣던 중 선화가 집으로 찾아왔다. 정학을 받은 지 7일째였다.

 “그날 거짓말한 건 사과 안 해.”

 책상 의자에 다소곳이 앉아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선화가 말했다.

 “그런 거짓말은 대체 왜 한 건데? 나 놀리려고?”

 별 뜻 없이 물었다. 물어나 보자 싶어서.

 “너랑 같이 있고 싶어서.”

 의외의 대답이었다.

 “나 너 좋아해. 몰랐어? 가나도 너 좋아해. 몰랐지? 너 때문에 가나랑 나, 요새 틀어진 것도 넌 몰랐잖아.”

 화를 내는 것처럼 쏘아붙이고 눈물이라도 쏟을 듯 쏘아보던 선화가 “나 너 진짜 좋아해. 그래서 최남영이 죽어버렸으면 좋겠어.”하고 독하게 내뱉곤 의자에서 일어났다.

 “대답은 필요 없어. 듣지 않아도 아니까. 할 말 끝났으니 이만 갈게.”

 그대로 방 밖으로 나가 현관 쪽으로 빠르게 걷던 선화가 갑자기 멈춰 섰다. 바로 앞에 남영이 있었다. 선화는 어깨로 남영을 밀치고 발소리까지 쿵쿵 내며 현관으로 똑바로 걸었다. 세게 밀쳐진 남영이 휘청하고 뒷걸음을 치기에 급하게 팔을 붙잡았다. 남영은 중심도 제대로 못 잡은 상태에서 온힘을 다해 나를 밀었다. 온몸으로 거부하듯이. 어찌나 힘껏 밀었는지 남영도 나도 벽에 등을 찧고 말았다. 선화가 그런 우리를 비웃듯 돌아봤다. 비웃듯이, 그러나 두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0 

 오늘은 일이 있어서 먼저 갈게.

 그렇게 말하고 먼저 가버린 날, 일훈은 선화의 아버지를 폭행했다. 선화와 선화의 아버지가 다투는 모습을 보고 오해를 한 탓이라고 했다. 오해란, 그러니까 선화가 남자에게 무언가 나쁜 일을 당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것.

 모두에게 공평하게 나누어주는 그 애의 관심과 애정.

 나를 좋아한다고 말해도 그것만은 변함이 없는지.

 어째서 그런지.

 나는 그런 건 필요 없는데.

 처음부터 필요 없었고 지금은 더더욱 필요가 없는데.

 일훈을 만나기 위해 선화가 집에 다녀간 다음날, 학교에서 마주친 선화는 내게 말했다. 일훈에게 고백했다고. “그래서?”하고 아무렇지 않게 받아쳤으나 실제로는 아무렇지 않은 게 아니었다. 아무렇지 않은 게 아닐 뿐만 아니라 무척 동요하고 있었다는 걸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난 뒤에 확연하게 깨달았다.

 그날, 그날은 모든 것이 공교로웠다. 저녁 식사 전, 잠시 거실에 나왔는데 마침 거실 탁자 위에 일훈의 휴대폰이 있었다. 흘깃 보고 지나치려는 순간 문자메시지가 왔고 나는 그 문자메시지를 읽어버리고 말았다. 선화로부터 온 것이었으니까. 선화라는 이름이 뜬 것을 보자마자 메시지창을 터치하고 있었으니까. 일훈은 휴대폰에 잠금을 걸어두지 않는 허술한 아이였으니까. 그 허술함을 이용한 나는 선화의 문자메시지를 읽어버렸고 결국 지워버렸다. 그날은 바람이 몹시도 많이 불었다. 밤 아홉시가 넘어서부터는 비까지 내렸다. 다음날 선화는 결석을 했고, 그 후로도 쭉, 학교에 나오지 못했다.

 [K공원에서 기다릴게. 너 올 때까지 기다릴 거야. 밤을 새우는 한이 있더라도 기다릴 테니까 꼭 나와.]

 K공원이라고 장소를 지정한 것이 영악하다고 생각했다. K공원은 일대에서 유명한 우범지역으로 늦은 시간엔 근처도 가지 말라고 학교에서도 가정에서도 당부를 하는 장소였다. 동네 양아치들과 노숙자들의 집합소. 밤만 되면 쓰레기들이 모여드는 곳. 오토바이를 몰고 와 소음을 일으키고 술을 마시고 욕설을 내뱉고 폭력을 휘두르고 그보다 더한 범죄도 알게 모르게 일어나는 곳. 그런 곳이라면 일훈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했겠지. 내 생각도 그랬으니까. 그래서 지워버렸다.

 선화는 그날 K공원에서 일훈을 기다렸다. 문자메시지에 썼던 것처럼 일훈이 올 때까지, 아주 늦은 시간까지, 일훈을 기다렸다. 정말로 밤을 새울 작정이었을 것이다.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는데. 그 바람과 비를 다 맞으며 일훈을 기다리던 선화는 근처에서 술을 마시던 놈들과 시비가 붙었다. 시비 끝에 끌려갔고 폭행을 당했다. 폭행이란 즉, 그런 것. 남자 여러 명이 여자 한 명에게 저지를 수 있는 가장 몹쓸 짓. 가장 악랄한 짓. 가장 짐승 같고 가장 악마 같은 짓. 누군가에겐 상상 속에서나 가능할, 또 누군가에겐 상상조차 하지 못할, 그런 짓.

 그런 일이 있고 며칠 뒤 선화의 어머니가 집으로 찾아왔다. 응접실에 앉아 아주머니와 일훈을 죄인처럼 앉혀두고 일훈을 향해 너 왜 그날 나오지 않았냐고 다그쳐 물었다. 우리 선화가 그런 일을 당한 건 너 때문이다. 다 너 때문이야. 그 쓰레기 같은 놈들과 네가 다를 게 뭐냐. 넌 선화 아버지도 때린 적이 있지 않느냐. 너 같은 놈이야말로 천벌을 받아야 되는데 왜 너는 멀쩡하게 학교를 다니고 있느냐. 집안 믿고 그러냐. 그래 얼마나 잘난 집안이기에 그러냐. 사내자식이 얼굴값 하느라고 그러냐. 너 같이 겉으로만 멀끔해 보이는 놈들이 알고 보면 최고 쓰레기다. 내 딸 살려내라. 다 죽어가는 내 딸, 송장 같은 내 딸, 살려내라.

 그렇게 악다구니를 치는 선화 어머니 앞에서 아주머니도 일훈도 입도 벙긋하지 않고 앉아있었다. 잘못한 것도 없으면서. 문자메시지를 읽은 건 난데. 일훈은 그런 메시지가 왔었다는 사실을 알지도 못하는데. 일훈이 상처받길 바랐지만 이런 식은 아니었다. 선화 어머니라는, 어디서 튀어나왔는지도 모를 그런 사람이 함부로 상처 입혀도 되는 아이가 아니었다. 그래서 끼어들었다. 끼어들어서 선화 어머니를 향해 차갑고 낮게, 모질게 말했다.

 “그 문자메시지 지운 거 나예요. 내가 지웠으니까 송일훈은 전혀 모르는 일이에요. 애초에 그런 식으로 일방적인 메시지를 보내는 게 폭력이잖아요. 그렇잖아. 그런 위험한 곳에서 기다리겠다니. 올 때까지 밤을 새워서라도 기다리겠다니. 완전 협박이잖아. 올 수밖에 없게 사람 마음 이용해먹는 거잖아. 그래서 송일훈이 나갔으면 어떻게 되는데? 그럼 무사했다는 보장 있어? 둘이, 둘 다, 큰일을 당했을지도 모르잖아. 혼자 당한 게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 안 들어요? 이선화가 그런 꼴을 당한 건 다 자업자득이야. 그렇게 생각 안 해요? 그렇게 생각 안 하……”

 자리에서 일어난 일훈이 내 뺨을 때렸다. 언젠가 의진에게 그랬던 것처럼, 그러나 전혀 다른 방식으로 내 뺨을 때렸다.

 눈물을 마지막으로 흘린 게 언제였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데, 그렇게 까마득할 정도로 눈물이란 걸 오랫동안 흘리지 않았는데, 갑자기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내 뺨을 치고 지나가는 일훈의 손에 힘이 전혀 실려 있지 않아서. 쳤다기보다 건드렸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무력해서. 조금도 아프지가 않아서. 그런데도 일훈이 떨고 있어서. 주먹 쥔 손을 부들부들 떨고 있어서.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 

 아저씨에게 전학을 가고 싶다고 말했다. 멀리 떨어진 작은 도시로. 그곳에 있는 기숙형 대안학교의 안내책자를 내밀었다. 여기로 전학가고 싶어요. 아저씨가 학비는 걱정하지 말라고 했으니까. 수험공부보다 어쩌면 더 유용한 것들을 배울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나 같은 사람도 차별당하지 않고 지낼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러니까 어차피 졸업을 해야 한다면 남은 시간만이라도 마음 편히 학교를 다니고 싶다고.

 그러면서 일훈에겐 비밀로 해달라고, 마지막까지 비밀로 해달라고, 덧붙였다.

 아저씨는 왜냐고 묻지 않았다. 이즈막엔 아저씨도 아주머니도 눈치를 채고 있었다. 지금까지 있었던 일련의 일들, 때리거나 맞거나 정학을 당하거나, 일훈이 전혀 그 애답지 않은 행동으로 속을 썩였던 그 사건들이 크건 작건 모두 나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아저씨도 아주머니도 이젠 모두 깨닫고 있었다. 억지로 다른 이유를 둘러대며, 이미 소문이 날대로 난 사건조차 진실은 그게 아닌 것으로 웃어넘기려던 일훈의 모든 노력들이 한 순간에 소용없어졌다. 물거품이 터지는 것처럼 퐁, 퐁, 하고 허무하게 터져버렸다. 정학 건 만큼은 순전히 선화 때문이었는데도 아저씨 아주머니는 그조차 나 때문이라고 여기는 듯했다.

 전학 수속을 조용하면서도 빠르게 진행시키는 동안 아주머니는 일훈을 데리고 제주도에 내려가 있었다. 제주도엔 아주머니의 친정집이 있다고 했다. 아주머니는 일훈과 내가 한집에 사는 것을 더는 두고 볼 수 없다는 완강한 입장을 취했다. 선화의 어머니가 다녀간 저녁, 아저씨와 아주머니는 몹시 다퉜고 다음날 아주머니는 일훈을 끌고, 그 우아하고도 가녀린 몸 어디에 그런 힘이 숨어있었는지 일훈을 거의 질질 끌다시피 끌고, 제주도로 내려가버렸다.

 전입이 결정된 J시로 떠나는 날, 일훈은 돌아왔다. 아저씨의 차를 타고 출발하기로 되어있는 시간이 오후 1시였는데 그보다 한 시간 일찍 일훈은 집에 도착했다. 아주머니는 없고 그 애 혼자였다.

 열린 방문 밖에서 언젠가 그랬던 것처럼 땀에 흠뻑 젖은 채, 기척을 죽이고 조용히 그러나 원망하듯 노려보는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오랜만이었으므로 반가웠다.

 반갑네, 라고 떠올리고 나서야 보고 싶었다는 걸 깨달았다. 적어도 떠나기 전에 한 번쯤은 얼굴을 보고 싶었다고.

 선화가 무슨 일을 당했건 나는 상관없었다. 나는 괜찮았다. 그게 내 탓이라도, 전부 내 탓이고 언젠가 죗값을 치러야만 한다고 해도 나는 콧등으로 웃어넘길 수 있었다. 그런데 너도 그게 되는지. 너도 상관없는지. 너도 괜찮은지. 그걸 알 수 없어서 내내 그걸 생각하고 있었다.

 네가 상처받지 않았을까 하고. 나 말고 다른 것 때문에 네가 상처받지 않았을까 하고.

 싫다고 생각했다. 지금껏 살아오는 동안 좀처럼 싫은 것이 없었는데 싫다, 너무 싫다고 선화의 도둑키스를 목격했을 때보다 더 강하게 더 독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역시 이건 좋아한다는 것일까. 너의 ‘좋아해’를 믿건 믿지 않건, 그것과는 상관없이 너를 좋아한다는 것일까.

 정리하던 짐을 내려놓고 일훈의 앞에 가서 섰다. 말없이 손을 내밀어 일훈의 입술을 만졌다. 딱딱하게 굳어버린 일훈을 달래가며 살살 입술을 어루만지고 손가락을 넣어 입을 벌렸다. 순순히 벌어지는 입안을 들여다보며 송곳니 빠진 자리를 찾았다. 그 자리를 오른손 검지로 쓸었다. 어깨가 작게 한번 들썩였고 괴로운 듯 내쉬는 숨은 뜨거웠다. 그러나 얌전했다. 내가 이대로 목을 졸라도 순순하고도 얌전히 몸을 맡길 것만 같았다. 이대로 목을 조르고 입술을 물어뜯고 입 안에 혀를 집어넣고 이가 빠진 자리를 아프도록 핥아도.

 내 안에 그런 욕망이 있다는 것을 조용히 응시하다가 일훈을 놓아주었다. 어느새 다가온 아저씨가 일훈의 등 뒤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말없이 복잡한 표정으로 입을 굳게 다문 채였다.

 할 말이 있어 보이는 일훈을 그대로 두고 방문을 닫았다. 여러 번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했다. 나를 부르는 소리도 무시했다. 문을 열려고 하는 것 같아서 잠가버렸다. 시간이 다 됐다고 아저씨가 큰소리로 여러 번 부르고서야 여행가방을 끌고 밖으로 나갔다. 방 밖에 우두커니 서있는 일훈의 손에 작은 쪽지 하나를 쥐여 주었다. 그러곤 빠르게 차고로 내려가 아저씨의 차에 올랐다. 대문 밖으로 급하게 나오는 일훈에겐 시선도 주지 않고 아저씨와 함께 J시로 향했다.

 차창 너머로 스치는 풍경을 무심히 바라보며 일훈이 망가져간다고 생각했다.

 나 때문에 망가져간다고.

 일훈의 은숙 씨가 옳았던 거라고 인정했다.

 일훈이 아주머니를 은숙 씨라고 부르는 것조차 나는 질투하고 있었으니까.

 그렇다는 걸 깨달았으므로, 너와 나는 역시 떨어지는 것이 좋아.

 어떻게 봐도 일방적으로 손해 보는 쪽은 너.

 나는 그것이, 그것조차도, 싫어져버리고 말았으니까.

 차창 밖이 지나쳐서, 지나치게 환해서, 지나치다 지나치다 중얼거리며 눈을 감았다.

 5월, 여전히 봄이었다.

 * 

 J시는 높고 낮은 언덕이 많았다. 언덕들 사이로 뻗은 한적한 도로를 기점으로 시내와 시외가 확연히 구분되는, 그런 호젓하고 조그만 도시였다.

 치유를 목적으로 지어졌다는 학교는 높은 언덕배기에 있었다. 한여름 땡볕에 오르내리노라면 목 끝까지 욕이 치받고 한겨울 폭설에 오르내리노라면 목 끝까지 조마조마함이 치받는다는 악명 높은 언덕. 나는 그 언덕을 오르내리며 치유학교에서 봄을 보내고 여름을 보내고 가을을 보내는 중이었다.

 방학이 되어도 기숙사에 머무를 수 있었으므로 나는 이곳에 온 이후 어디에도 가지 않았다. 어디에도 가지 않고 다만 조용히 겨울잠을 자는 짐승처럼 웅크리고 숨죽이며 지내고 있다.

 휴대폰도 가지지 않았으니 누구와도 연락하는 법 없이. 아주 가끔 생활관이나 교무실로 아저씨가 전화를 걸어올 뿐이다. 일훈도 가끔씩 전화를 걸어오는 것 같은데 받지 않는다. 일훈의 전화는 받지 않는 것으로 정해 두었으니까. 내가 전화를 받지 않으니 그 애는 편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특별할 것 없는 편지지에 우체국에서 구매한 듯한 규격봉투. 네모반듯한 우표. 내용은 대부분 짤막하게 끝나, 잘 지내? 라거나 보고 싶어 라거나 좋아해 라거나 보고 싶어 라거나 보고 싶어 라거나…….

 J시로 오던 날 일훈에게 건넨 쪽지에 나는 이렇게 적었다.

 [그날 나는 아무 짓도 당하지 않았어. 빠진 이는 이제 치료받도록 해.]

 재생종이로 만든 거친 소포 용지를 아무렇게나 찢어 연필로 휘갈겨 썼다.

 그 애는 그 내용을 제대로 알아들었을까.

 그만 잊어. 그만 잊으라는 내 바람을 제대로 이해했을까.

 언덕을 내려가 오른쪽으로 꺾어 두 블록 쯤 걸어가면 작은 서점이 있다. 소설이나 시집, 인문학 서적은 별로 없고 학년별 문제집과 보충교재가 가득한 동네 서점. 그래도 잘 찾아보면 몇 년째 스테디셀러라는 유명 소설이나 세계문학 같은 건 구할 수 있어 종종 들르는데 그곳에서 오늘 민수를 만났다. 민수가 누구냐면 장 씨 아저씨의 아들. 나는 그 애를 몰라봤는데 그 애는 나를 알아 봤는지 먼저 말을 걸어왔다. 듣고 보니 어릴 적 얼굴이 남아 있는 것도 같았다. 장 씨 아저씨의 손을 잡고 우리 집에 몇 번이가 놀러온 적도 있었으니까.

 몇 주 전, 번화가에 나갔다가 장 씨 아저씨와 마주쳤으므로 그 애를 서점에서 만난 것이 그다지 놀랍지는 않았다. 기숙사에서 같은 방을 쓰는 수연과 새로 개봉했다는 영화를 보러 가던 참에 나는 이미 장 씨 아저씨를 만나 인사를 나누었던 것이다. 고향으로 내려간다고 했는데 장 씨 아저씨의 고향이 J시였던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민수는 내게 “저 위에 치유학교 다닌다며?” 묻고는 “부럽다”고 했다.

 “거기 학비 비싸기로 유명해서 아무나 못 간다고 울 아빠가 그러더라.”

 학교생활은 어떠냐, 어떤 걸 주로 배우냐, 너네도 국영수 같은 거 하냐고 물으며 수학 문제집과 모의고사 기출문제집 따위를 뒤적거리다가 “며칠 전에 울 아빠 만났지? 아빠가 그러는데 너 좀 변했대.”하고 생각났다는 듯 말을 꺼냈다.

 “옛날엔 울 아빠가 아직 앤데도 왜 그렇게 인간미가 없냐며 너더러 막 뭐라 했었거든. 근데 그날은 너 만나고 와서 애가 좀 변한 것 같다면서 치유학교가 괜히 치유학교가 아닌 모양이라고 돈이 좋긴 좋다, 그러는 거야. 그 말 듣는데 나도 그 학교 진짜 가고 싶더라. 사실 나도 좀 우울증도 있고 그렇거든. 요새 시험 때문에 압박도 너무 심하고……”

 민수의 이어지는 말을 흘려들으며 내가 변했다면 그건 학교 때문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내가 만약 변했다면 그건 일훈 때문에. 세상 아무도 몰라도 나만은 알고 있고 알고 있어야만 하는 사실.

 일훈의 무엇이 나를 변하게 했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역시 애정……이라고 말해야 할까. 나는 애정이란 것을 이전엔 받아본 적이 없으니까. 하지만 기숙사에 돌아와 저녁을 먹으면서 또 잠자리에 들어서도 불쑥불쑥 이런 생각들이 떠올랐다.

 방임과 학대에 대해서. 아빠가 내게 한 것은 방임. 할머니가 내게 한 것은 학대. 쭉 그렇게 여겨왔으나 그것이 그렇게 간단한 문제일까 하는 것에 대해서.

 집보다 밖을, 가족보다 장 씨 아저씨를 더 좋아하던 사람이었는데, 내 나이는 몰라도 민수의 나이는 알아서 민수를 떠올려 내 나이를 가늠해보던 사람이었는데, 그런 사람이라도 이런 적이 있었지, 하고.

 어느 크리스마스, 잠에서 깨어보니 머리맡에 털장갑이 놓여 있었다. 너무 작아 손이 들어가지 않았지만 어쨌든 그건 아빠가 내게 준 처음이자 마지막 크리스마스 선물.

 또 이런 적도 있었다.

 초등학교 3학년, 유독 나를 괴롭히던 남자애가 내게 먹물을 끼얹었다. 머리와 얼굴과 옷에 온통 먹물을 뒤집어쓴 채 집에 돌아왔더니 아빠가 ‘누가 그랬냐’고 물었다. 엄하게 묻고는 ‘아빠가 혼내 줄까’하고 장난스럽게 웃었다. 말뿐이었지만 말뿐이어서 그건 애정이 아니었을까.

 하얗고 조그만 개를 내게 주기도 했었는데, 그건 정말 애정이 아니었나.

 할머니도 그래. 30센티미터의 두꺼운 자로 자주 나를 때렸다. 그 때문에 내 팔다리엔 시퍼런 멍이 가실 날이 없었다. 영하의 추운 날 팬티 한 장만 입혀 문밖으로 내쫓기도 했다. 뱃속에 뜨거운 화가 펄펄 끓던 사람이라 늘 눈치를 봐야만 했다. 그래도 밥을 굶긴 적은 없었고, 계절에 맞지 않는 옷을 입힌 적도 없었다. 소풍날이면 김밥을 싸주기도 했다. 얇게 저민 소고기를 볶아서 소고기 김밥을…… 차갑게 얼린 보리차와 함께.

 그런 것은 애정이 아니었을까, 애정이 아니면 무엇이었을까, 다만 책임감이었을까, 이런 생각조차 나는 너를 만나 비로소 하게 되었다고…… 그러니 내가 만약 변했다면 그건 모두 너 때문이라고, 그런 것들을 떠올리느라 그 밤을 꼬박 지새웠다는 걸 나는 언젠가 너에게 말하게 될 날이 올까.

 겨울이 시작될 무렵 너에게서 또 편지가 왔다.

 여느 때와 같이 짧은 한 줄의 문장.

 [만나러 갈게.]

 정성스럽게 꾹꾹 눌러쓴 글씨로 만나러 갈게, 라고 적혀 있었다.

 * 

 12월도 중순이 넘어 크리스마스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니 아무래도 분위기는 들뜬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크리스마스이브쯤 집으로 간다. 집에서 가족들과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다시 학교로 돌아오는 것이다. 나는 어디에도 가지 않고 학교에 남기로 했다. 보육시설에서 아이들과 함께 크리스마스를 보내지 않겠냐는 제안도 있었지만 거절했다. 마음에도 없는 봉사활동 같은 거,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런 식으로 말해버려도 훈계하거나 정색하는 일 없이 부드럽게 받아들여주는 것. 그런 것이 아저씨와 비슷하다. 치유학교는 아저씨와 비슷한 어른들이 학생들을 가르치는 곳이다.

 내가 이 학교에서 가장 마음에 들어 하는 수업은 철학, 그리고 미술이다. 가장 흥미롭고, 흥미와는 별개로 편안하다. 나와 잘 맞기 때문일 거라고 미술 선생님은 말했다.

 수업에 필요한 정물이 부족하다는 푸념을 듣고 내가 사오겠다고 했다. 미술 선생님은 “그럼 오렌지 다섯 개만 사다 줄래?”하고 반색했다. 미술실 한쪽에 몰래 두었던 오렌지를 누가 먹어버렸다고, 미술실 소품은 먹는 거 아닌데, 하고 선생님이 중얼거렸다.

 일요일이었다. 커다란 야상점퍼를 입고 점퍼에 달린 모자까지 푹 눌러 쓴 채 외출을 했다. 올해 들어 가장 추운 날이라고 아침 라디오에서 디제이가 말했다. 원래도 TV는 잘 보지 않았는데 여기 와서는 아예 보지 않게 되었다. 대신 라디오를 듣는다. 인터넷 접속도 꼭 필요할 때 외엔 잘 하지 않고 마치 90년대를 살아가는 사람처럼 살고 있다.

 언덕 아래 과일가게에서 오렌지 다섯 개를 샀다. 검은색 비닐봉지에 그것들을 담아 들고 언덕을 올랐다. 중년 남자가 언덕을 내려오면서 누가 여기에 물을 끼얹어놨냐고, 상식이 없다고 투덜거렸다.

 “저거 얼어가지고 동네 노인이나 누구 하나 미끄러지면 어쩌려고.”

 가파른 언덕이라 물이 고이지 않을 텐데. 고이지 않아도 얼어버리면 위험할까. 미끄러질까. 그런 생각들을 하며 열심히 언덕을 올랐다. 목련미용실을 지나 우리식당 앞을 걷고 있는데 식당 문이 열리더니 “감사합니다.”하는 소리가 들렸다.

 감사합니다.

 그 소리를 듣고 돌아봤다. 익숙해서. 많이 들어 본 목소리고 많이 듣고 싶던 목소리라.

 식당 밖을 나오던 일훈이 나를 발견하고 멈춰 섰다. 잠시 그러고 있다가 식당 문을 닫고 내 앞에 와서 섰다.

 만나러 오겠다고 했었지.

 만나러 오겠다고 했으니 만나러 올 것이 분명한데도 나는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던 사람처럼 조금 당황했다.

 당황해서 시선을 언덕 저편으로 주었다가 다시 일훈을 바라봤다.

 그새 키가 조금 더 큰 것 같았다. 키는 컸는데 살은 조금 빠진 것 같았다. 추워서인지 얼굴에 생기가 없어 보였다. 생기 없이 메말라 보이고 쓸쓸해 보였다.

 나는 살이 조금 쪘다. 아저씨가 통장에 꼬박꼬박 넣어주는 돈으로 얼마 전 미용실에서 머리도 했다. 어깨에 닿도록 자란 머리카락을 조금 자르고 C컬 펌을…… 미용실 언니의 추천을 받아서 했다. 어울린다고 그랬다. 미용실 언니도, 같은 방 수연이도, 선생님들도. 어울린다고, 예쁘다고, 그 말을 질릴 만큼 들었다.

 나는 이제 너 아니어도 예쁘다는 말을 듣고 있어. 그런데 너는 왜 그러고 있어. 왜 여기서 생기도 뭣도 없는 그런 얼굴로 그러고 있어.

 하고 싶은 말도 묻고 싶은 말도 잔뜩 있는데 “식당엔 왜?”라고 아무래도 상관없는 것을 물었다.

 탁하게 잠긴 음성으로 무심히.

 내가 말하기만을 기다렸다는 듯 길게 숨을 내쉰 일훈이 “길을 물으려고.”하고 짧게 대답했다.

 “우리 학교?”

 “응.”

 그러고 또 한참 말이 없었다. 일훈은 초조한 듯 머리를 한 번 쓸어 올리고 “할 말이 있었어. 계속 하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꼭 만나서 해야 할 것 같아서. 그래서 만나러 왔어.”하고 빠르게 내뱉었다.

 “할 말이 뭔데?”

 일훈을 학교로 데려 가고 싶지 않았다. 데려 가고 싶지 않아서 지금 여기서 말하라는 듯 퉁명스럽게 턱 끝을 까딱거렸다.

 하다못해 커피숍이나 근처 편의점이라도 들어가면 될 텐데 그러고 싶지 않았다. 따뜻한 실내에서 시간을 두고 일훈을 보고 싶지가 않았다. 그래버리면 마음이 약해질 테고 마음이 약해지면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해버릴지도 모르니까.

 “추우니까 얼른 말해.”

 내가 그러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추워 보이는 애를 길에 세워둔 채 말을 재촉했다.

 얼른 말하라고. 얼른 말하고 가버리라고.

 생각을 정리하려는 듯 잠시 시선을 내렸던 일훈이 다시 나를 보며 입을 열었다.

 “그때……. 그날, 내가 너 때렸던 거……”

 힘들고 어렵게 꺼낸 말은 그날의 일이었다. 그날, 선화의 어머니가 다녀간 날, 충격을 받은 아주머니가 나를 다그치고 일훈을 다그쳤던 날, 그렇게 각자의 방으로 쫓기듯 들어간 우리는 이후, 대화를 나눈 적이 없었다.

 “때려서 미안하다고, 쭉 사과하고 싶었어. 미안해.”

 “아프지도 않았어.”

 그것도 때린 거라고 쭉 사과를 하고 싶었다니. 고작 그까짓 힘으로 건드린 것도 때린 거라니. 굶어죽기 직전인 사람이 때렸어도 그것보단 아팠을 텐데.

 “아프지 않았어도 미안해.”

 “할 말은 그게 다야?”

 어이가 없을 정도로 바보 같은 말이고, 바보 같은 말을 진지하게 해대는 일훈이 짜증나서 거칠게 물었다.

 따뜻한 실내가 아니어도 마음이 약해졌다. 추운 바깥에서 이러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물러졌다. 안 되겠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생각하며 시선을 내렸는데 일훈의 발이 보였다.

 “아니, 또 있어. 할 말.”

 두꺼운 패딩을 입고 있어서 그런가 보다 했다. 이상하게 추워 보여도 그런가 보다 했다. 생기 없는 얼굴에 입술이 새파래도 그냥 그런가 보다 했다. 그런데 맨발이었다. 맨발로 슬리퍼만 신고 있었다.

 “물어 보고 싶은 게 있어.”

 “야.”

 “어?”

 “너 발이 왜 이래. 양말 없어? 너네 집 망했어? 양말도 못 사서 신을 정도로?”

 이마가 뜨끈해질 정도로 열이 올라서 거의 쏘아붙이고 말았다.

 “아, 이거…….”

 일훈은 어색하게 웃음을 흘리고 “은숙 씨 때문에.”라고 했다.

 “은숙 씨, 아니 엄마가 요즘 감시가 심해. 강박적일 정도로. 아버지가 병원 가서 약 처방 좀 받는 게 어떠냐고 권할 정도여서. 의심 받지 않으려면 이러고 나올 수밖에 없었어.”

 “그렇다고 맨발에 슬리퍼만 신고 여기까지 와?”

 거기서 여기까지 거리가 얼만데.

 “버스 탔으니까. 버스 안은 히터 틀어서 따뜻했어.”

 발등이 시퍼렇게 질려선. 발가락이 새하얗게 곱아선. 얼굴까지 생기 없이 얼어선. 그런데도 따뜻했다고 일훈은 장난스럽게 씩 웃었다. 그리고 여전히…….

 여전히 비어있는 왼쪽 위 송곳니 자리.

 “너 아직 치과치료 안 받았어?”

 “정기적으로 검진은 받고 있어.”

 “검진 말고 치료 받으라고 했잖아.”

 “평소엔 이렇게 안 웃어. 네 앞이고, 네가 걱정을 하니까 그래서……”

 “걱정이라니 누가……”

 누가 걱정을 했냐고 따져 물으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걱정을 했고, 걱정을 너무 과하게 한 나머지 이마가 뜨끈해질 정도로 화가 났고, 그래서 화를 내버렸고, 들켰다.

 사실은 그랬다. 일훈의 발을 본 순간, 일훈이 맨발이라는 것을 알게 된 순간, 머릿속은 양말 파는 상점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 동네 구석구석 제대로 된 양말을 파는 곳이 어디인지. 깜찍한 그림이 그려진 발목까지 오는 그런 양말 말고 두껍고 질기고 길고 따뜻하고 아무튼 제대로 된 걸로. 그리고 운동화. 마땅한 게 없으면 동네 할머니들이 신는 덧버선이나 털신이라도.

 시장에 파나. 시장이 여기서 얼마나 멀지. 이왕 들켰으니 하다못해 양말이라도 신겨 돌려보내야…… 두서없는 생각에 골이 지끈거리고 팔이 저리고 팔이 왜 저리나 했더니 왼손에 오렌지 다섯 개가 들어있는 봉지가 들려있어서…… 그걸 오른손으로 바꿔 들려는데 그 순간, 봉지가 터졌다.

 봉지가 터져서 오렌지 다섯 개가 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다. 언덕을 따라 아래로 아래로 끝도 없이 데굴데굴 굴러가는 오렌지들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주울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걸 줍기 위해 허둥거리며 동분서주할 바엔 다시 사는 게 낫겠다고, 그렇게 단념하고 여전히 손에 들려있던 찢어진 봉지를 패대기치듯 버렸다. 패대기치듯 버렸는데 패대기쳐지진 않고 마치 나를 놀리듯이 붕 떠올라 허공을 날았다.

 열 받게.

 그런 생각을 했다.

 미간을 확 찌푸린 채.

 그때 일훈이 말없이 언덕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언덕 여기저기를 구석구석 훑으며 저만치 아래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왔다. 올라와선 식당에 들어가 투명한 봉지 하나를 얻어왔다. 투명한 봉지에 주워온 오렌지를 넣어 내게 내밀었다. 봉지 안엔 오렌지 네 개가 들어 있었다.

 나는 봉지를 받으며 “다섯 개야.”하고 말했다.

 주워오라는 뜻은 아니었다. 그런 뜻도 아니면서 불퉁하게 심통을 부리듯 말했다.

 다섯 개야, 하고. 마치 나머지도 주워오라는 듯이.

 그런 뜻도 아니면서 그런 뜻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말을 왜…… 그러니까 왜…….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언덕을 따라 내려가는 일훈의 등을 바라보며, 그 애의 슬리퍼 신은 맨발을 바라보며, 됐으니까 그냥 오라고 나머지 하나는 필요 없다고 그 말은 차마 하지도 못한 채 생각만 했다.

 그러니까 왜…….

 왜…….

 왜긴, 어리광이지.

 마음 한쪽에서 나 아닌 내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어리광을 다 부리네. 어린애도 아니면서.

 징그럽게.

 일훈의 앞에선 징그럽게 내숭도 떨고 어리광도 부리고…….

 그러게, 내가 참 징그럽네.

 그래서 쟤는 만나지 말아야 되는 건데. 내가 징그러워지니까. 그런데 쟤는 대체 어디까지 내려갈 셈일까.

 일훈은 언덕 아래 인도까지 내려가 있었다. 잠시 멈춰 서서 이쪽저쪽으로 고개를 돌리다가 사차선 도로변의 갓길로 걸어갔다. 도로와의 경계선에 커다란 화분들이 띄엄띄엄 놓여있는 자전거 전용로. 그곳에서 허리를 굽혀 무언가를 주워든 일훈이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한손엔 오렌지를 들고 아이처럼 기쁘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게 뭐 그리 기쁜 일이라고. 입을 삐죽이고 있는데 반대쪽 차선에서 검은색 자가용 한대가 불법 유턴을 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미처 대비를 하지 못한 트럭이 갓길 쪽으로 핸들을 꺾어 돌진했다. 놀란 일훈이 돌아보는 순간 트럭이 일훈을 덮쳤다.

 보고도 무엇을 봤는지 알 수 없어 한동안 멍했다.

 눈으로 본 게 아닌 것만 같았다.

 상상이 아닐까 했다.

 내가 대체 왜 그런 상상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상상이 아닐까.

 하지만 다리가…… 상상일 뿐인데도 다리가…… 저 혼자 의지를 가지기라도 한 것처럼 저절로 움직여서 종내는 달리기 시작했다.

 내리막길을 넘어질 듯 달리며 오렌지가 든 봉지를 떨어뜨렸다. 일훈이 힘들게 주워준 건데 그걸 다 떨어뜨리고 화를 내면서, 바보 같은 놈이라고 화를 내면서 달렸다.

 그러게 내가 오지랖 부리지 말라고 했잖아.

 오지랖이 넓으면 밟히고, 밟히면 넘어진다고.

 그랬잖아, 내가.

 남의 일에 나서지 말라고 했잖아.

 너 그러다 큰일 난다고…… 큰일 난다고 내가…….

 내가…….

 말하지 않았다.

 말하려고 했지만 말하지 않았다.

 말해주지 않았어.

 왜 말해주지 않았지?

 등신 같은 년이 그걸 왜 말 안 했지?

 왜 안 했지, 왜…….

 오렌지가 다섯 개라고 그 따위 건 말한 주제에 정작 중요한 건 왜…….

 사고 장소엔 이미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그들에 가로막혀 일훈이 잘 보이지가 않았다. 보이지가 않아서 눈앞의 어깨와 등을 마구잡이로 밀치며 비키라고 소리를 질렀다. 비키라고 비키라고 소리를 지르면서 사람들을 밀고, 사람들을 밀면서 울었다.

 울면서 보고 싶지 않다고, 보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나는 사실 겁이 많으니까.

 아빠가 죽었을 때 만져서 확인하지도 못했을 만큼 겁이 많으니까.

 그래도 울진 않았지.

 할머니가 죽었을 때도 또또가 죽었을 때도 울진 않았지.

 하지만 네가 죽으면 울 거야. 네가 죽지 않았는데도 울고 있으니까. 그러니까 네가 만약 죽어버리면 울고 울고 너무 울어서 죽어버릴 만큼 울 거야. 울다가 죽어버릴 거야. 그러니까…….

 그러니까…….

 1 

 그날, 내가 너를 때렸다.

 갑자기 들이닥친 선화 어머니가 고통에 가득 차서 울부짖듯 나를 다그쳤던 저녁, 은숙 씨도 나도 눈앞에 앉아있는 여자의 고통과 분노에 압도되어 있었다. 여자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한 채, 뭔가 오해가 있는 모양이라고 생각하면서, 하지만 입도 벙긋하지 못할 정도로 압도되어 여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선화가 그런 일을 당했다는 것은 쉬쉬하면서도 소문이 나 있었고, 그 소문은 어느 정도 나를 숙연하게 만들었기에, 슬픔도 충격도 동정도 없이 다만 숙연하게 만들었기에, 여자의 분노가 얼마나 황당하고 부당하든 그것과는 상관없이 그저 숙연하게 앉아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남영이 끼어들었다. 끼어들어서 내가 모르는, 내가 몰랐던 사실을 말하기 시작했다. 이해할 수 없었던 여자의 말이 남영의 말과 합쳐져 하나의 사실이 되었고, 나는 그 사실에 조금씩 들떠갔다. 그래, 들떴다. 나로서는 가늠할 수조차 없는 고통과 분노를 앞에 두고, 그런 것을 시장바닥의 썩은 생선이나 시든 야채 취급을 하며 조용히 그리고 열렬히 들뜨고 있었던 것이다.

 선화의 문자메시지를 남영이 지운 이유에 대해서 생각을 하고 생각을 하고 또 생각을 해봐도 답은 하나뿐이라서. 그게 너무 기뻐서 그 애를 안아버리고 싶었는데, 그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란 사람이 타인의 고통에 이토록 무감한 사람이었나, 하는 자괴감이 들어서.

 타인의 고통을 앞에 두고 이토록 기뻐할 만큼 잔인한 사람이었나, 하는 죄책감이 들어서.

 그런 자괴감과 죄책감을 안고 선화 어머니를 보았는데, 그녀가 귀신같이 시뻘건 눈으로 남영을 노려보고 있었다.

 은숙 씨가 내온 물잔을 힘주어 쥐고. 손가락과 팔뚝과 어깨가 전부 다 부들부들 떨릴 정도로 억세게 쥐고.

 던진다, 고 생각했다.

 남영에게 저걸 던진다.

 저 유리잔을 던진다.

 남영이 맞는다.

 머리보다 몸이 빨랐다. 남영에 한에선 항상 그래왔듯이.

 정신을 차려 보니 내 손이 남영의 뺨을 치고 지나가 있었다.

 때렸다는 감각도 없이 툭 떨어지는 손. 남영의 체온만이 남아있는 손바닥.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이성이 납득하고 있었다. 선화 어머니를 말리는 것보다 남영을 감싸는 것보다 남영을 멈추게 하고 나무라는 것이 최선이었다고. 어른들의 감정을 누그러뜨리는 데 더 효과적이었다고. 그런데 남영을 때리고 싶었던 건 아니라서. 죽어도 그건 아니라서. 그럼에도 남영이 그렇게 생각할까봐서 나는 겁이 났다. 겁이 나서 떨고 있었다.

 남영의 눈시울이 붉게 달아올랐다. 내가 했던 대로 나를 때릴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면 울 거라고. 때릴까. 아니면 울까. 우는 걸 본 적이 없으니 역시 때릴까.

 울고 싶은 심정으로 너를 내려다봤는데 너는 나를 때리지도 울지도 않았다. 그저 조용히 등을 돌리고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너와 대화를 하고 싶었다. 하고 싶은 말도 묻고 싶은 말도 많았다. 하지만 상황이 여의치가 않았지. 제도 안에서 만큼은 자유롭고자 노력했는데 가족 앞에선 도무지 자유로울 수가 없었지. 은숙 씨에게 끌려다니는 동안 네가 전학을 갈 거라는 소식을 들었다. 집을 떠나 아주 먼 곳으로 갈 거라고 했다. 나는 그 소식을 아버지에게 들었다.

 은숙 씨 몰래 비행기를 탔다. 제주도에서 집으로…… 너를 만나지 못하고 네가 떠나버릴까 봐 속이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다행히 너는 아직 떠나지 않았고, 다행히 너의 얼굴을 볼 수 있었는데, 결국 아무것도 말하지도 묻지도 못해서, 너를 보내고 나는 잠깐 웃었다. 등신. 병신. 이런 상등신 이런 상병신이 없다고 허탈해서…….

 그 후 내가 어떻게 지냈는지 네가 궁금해 할까. 궁금해 하지 않아도 좋으니 네게 얘기하고 싶다.

 네가 떠나고 나도 전학을 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결국 자퇴를 했다. 생활기록부 상태가 썩 좋지 않았다. 은숙 씨의 성화가 대단해서 아버지도 설득을 포기한 상태였으니 나라고 별 뾰족한 수는 없었다. 너도 알겠지만 은숙 씨는 화초 같은 사람. 온실 속 화초처럼 작고 예쁘고 까다롭고, 어쩌다 바람이라도 불면 그 바람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온몸을 떨어대는 사람. 예민하고 유치하고 고집스럽고, 마음의 병이 고스란히 몸으로 드러나는 사람.

 몸으로 드러난 마음의 병은 가족을 협박하는 용도로 아주 유용했다. 이렇게 말하면 나쁘게 들리나. 역시 나쁘게 들리겠지. 하지만 마음의 병이라면 나도 만만치 않게 앓고 있었으니까. 이 정도는 말해도 되지 않을까.

 가끔 선화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받으면 아무 말 없이 숨소리만 적막하게 울리는 전화. 아니, 너에겐 솔직해질게. 나는 그 숨소리가 적막한 것이 아니라 소름끼친다고 생각했다. 소름끼치지만 전화가 걸려올 때면 매번 어김없이 받았고 저절로 끊길 때까지 잠자코 기다렸다. 그 정도는 해주고 싶었다. 소름끼쳐하는 본심과는 상관없이 그 정도는 해주고 싶다고 생각하는 마음. 너는 이 마음을 위선이라고 욕할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위선인지도 모르지. 하지만 내가 전화를 받지 않으면 선화가 네게 전화를 걸 것만 같았다. 어떻게든 너를 찾아 너에게 뭔가를 해버릴 것 같았다. 그런 불안이 내겐 있었다. 습관처럼 자리 잡은 오래된 불안.

 그래, 나에게도 마음의 병이 있었다. 너를 떠올리면 불안해지는 마음. 이건 확실히 병이겠지. 왜 이런 병이 생겼는지 모르겠지만 나를 불안해하는 은숙 씨를 보며 어쩌면 유전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좋아하든 말든. 그렇게 모든 걸 놓아버리듯 염원할 때도 있었다. 좋아하든 말든, 그 따위 건 아무래도 상관없으니 너를 내 눈 앞에 두고 너와 함께 살고 싶다고.

 응, 억지지. 좋아하지 않으면 같이 살 수 없는 건데. 제멋대로지.

 그래서 너를 찾아갔어.

 은숙 씨의 의심을 피하느라 맨발에 슬리퍼만 신고.

 집 앞 편의점에 다녀오겠다는, 아이일 때도 하지 않던 거짓말을 하고.

 너를 만나서 하고 싶은 말이 있었어.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그중에서도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은…….

 묻고 싶었던 말은…….

 나를 좋아해?

 선화의 문자메시지를 지운 너는 나를 좋아하는 건가?

 적어도 그만큼은 나를 좋아한다고 생각해도 될까?

 하지만 묻지 못하고 나는 여기 누워있어.

 멀리 네가 뛰어오는 게 보이는데, 모자가 벗겨지고, 오렌지를 다 떨어뜨리고, 그런데도 달려오는 네가 보이는데, 나는 그런 너를 보며 50미터를 6초대에 주파하던 열다섯 살의 최남영을 떠올리고 있어.

 눈이 마주친 것 같아서 내가 손을 흔들었지.

 무시를 당하고는 차갑다고 투덜거렸지.

 사실은 설레고 있었다는 걸 그때는 왜 알지 못했을까.

 오후 내내 수업을 듣지 못했을 정도로 설레었는데 그것도 모르고 바보 같이 콜라나 사다 마시고.

 속이 갑갑하다고 생각했거든.

 이런 얘기도 언젠가는 웃으며 할 수 있겠지.

 나를 좋아하냐는 물음과 함께 너에게 할 수 있겠지.

 나는 그렇게 믿고 있어.

 그러니까 울지 마. 울지 마, 남영아.

 사람은 그리 쉽게 죽지 않아.

 적어도 나는 쉽게 죽지 않아.

 죽지 않아.

 0 

 지옥 같았던 그날 오후를 나는 잘 기억하지 못한다.

 기억에 남아 있는 거라곤 단편적인 몇 가지들.

 일훈을 따라 구급차를 타려했던 것.

 보호자냐는 질문을 받고 고개를 끄덕였던 것.

 응급처치를 하는 대원들 옆에서 일훈의 창백한 맨발을 내도록 바라보고 있었던 것.

 그리고…… 아주머니를 만난 것.

 수술실 앞에서 아주머니가 내 뺨을 때렸다.

 두 번, 세 번, 세차게 때리고는 물기 없이 메마른 눈으로 나를 봤다.

 “우리 애, 앞으론 만나지 않겠다고 약속해.”

 이전엔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던 목소리로.

 “약속해. 만나지 않겠다고. 약속하면 아줌마가 너 용서할게.”

 무섭도록 차분하고 완강하게 요구했다.

 대답하지 않자, 가느다란 팔을 휘둘러 한 번 더 따귀를 올려붙였다.

 “너 때문에 우리 애 죽는 꼴 난 못 본다.”

 메마른 눈만큼이나 메마른 손바닥이 온통 젖은 채인 뺨을 다시 한 번 매섭게 치고 지나갔을 때.

 어째서인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너 때문에 우리 애 죽는 꼴 난 못 본다.

 그것만큼은 동감이라서.

 그 말만큼은 동의했기에.

 그렇게 병원에서 쫓겨난 나는 매일매일 아저씨의 연락만 기다렸다.

 수술이 잘 끝났다는 아저씨의 전화와 중환자실에서 일반병실로 옮겼다는 아저씨의 전화를 받으며 그럼 됐다고 그걸로 됐다고 속으로 안도하고 또 안도하면서…… 아저씨에게 죄송하다고 사과를 했다. 죄송하다고, 처음으로. 아마도 태어나 처음으로.

 일훈은 두 달을 입원해 있는 동안 두 번의 수술을 받았고, 예후가 좋아 후유증은 없을 거라고 했다.

 그렇게 전해 들었다.

 아저씨로부터.

 신장 하나를 적출했지만 이제 건강하다고.

 이제 무사하다고.

 그러니 너도 마음 놓으라고.

 그 후 일 년이 지나는 동안 나는 조금 더 변했다.

 무엇이 변했냐면 마음이.

 생각이 아니라 마음이.

 낯선 이의 사소한 친절을 더 이상 비웃거나 귀찮아하지 않게 되었고, 삶이 지루하다는 건방진 소리를 겁도 없이 하지 않게 되었다. 지루함과는 별개로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내게 되었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나 너를 다시 만났을 때, 내 이름을 부르는 너를 두고 나는 모른 척을 했다.

 아주머니와 했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나 때문에 네가 죽을 수도 있다.

 진심으로.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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