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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차 히로인이 조교를 기억함-333화 (333/354)

Chapter 333 - 뱀은 정력에 좋아 (2)

"절대로 안 돼요."

베를리오즈의 입에서 그냥 듣고 넘길 수 없는 말이 나왔다.

"서방님..."

"... 본녀라고 반드시 죽이겠다는 뜻은 아니었다. 하지만 만에 하나 저 아이가 폭주를..."

"만에 하나건! 억에 하나건! 허락 못 합니다!!"

이건 무슨 일이 있어도 바뀌지 않는 확정사항이다.

절대로, 누구도 내 여자에게 손을 대게 두지는 않을 것이다.

"만일 제 경고에도 베를리오즈님이 강행하겠다면..."

내가 백소소와 베를리오즈 사이에 끼어들며 말했다.

"우선 저부터 죽일 각오를 하고 오세요."

입술을 꽉 깨문 베를리오즈가 나를 노려보았다.

"... 본녀를 나쁜 사람으로 만드는구나... 본녀라고 누구든 죽이고 싶겠느냐? ... 하지만 세상에는 어쩔 수 없는 일도 있다!!"

"소소가 폭주를 한다면 그때는 제가 해결하겠습니다."

"네가 해결할 수 있다고 어떻게 확신하느냐!"

"할 수 있어요."

내가 단언했다.

베를리오즈의 말대로 나 혼자서는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왜 혼자서 해야 하는가?

내게는 나를 도와줄 사람이 넘치고 넘친다.

나와 함께 세계를 구해야 하는 사람들이 여자 한 명을 구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 하아. 일단 네놈을 믿고 진행하겠지만...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 그럼 아이야 이리 와서 앉아라."

"... 네."

백소소가 바닥에 가부좌를 틀자, 베를리오즈가 등에 손을 대며 말했다.

"백사 가문의 아이니 분명 '사신'이겠지. 길은 본녀가 뚫어주마. 너는 감정을 끌어올리고, 그 감정을 본녀가 뚫어놓은 길을 따라 돌리는 데 집중해라."

"... 네."

혹여나 폭주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일까 백소소의 손끝이 살짝 떨린다.

나는 다가가 백소소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너무 걱정 말아요. 무슨 일이 벌어지면 제가 반드시 막아줄 테니까."

"네... 서방님. 하지만 소녀는.... 괜찮사옵니다."

"... 그럼 간다."

베를리오즈가 뿜어내는 기운에 따라 백소소의 몸속에 막혀있던 길이 뚫리며 그곳으로 감정이 흘러 들어간다.

화아아아악─!

흘러 들어간 감정은 서서히 힘으로 전환된다.

마력이 차오르고, 전신의 감각이 극도로 예민해지는 게 느껴진다.

"집중하거라! 지금부터가 진짜다!"

쿵─!

그 말과 동시에 지금까지는 한 번의 막힘도 없이 뚫려왔던 백소소의 길이 처음으로 막힌다.

"... 하윽!!.... 크읏!... 아아아아아아아아아!!"

몸 안에서 불꽃이 터져 나오는 듯한 감각에 백소소의 입이 크게 벌어지고 전신에서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린다.

"아파도 어쩔 수 없다! 견디거라!"

쿵-!

그렇게 다시 한번 베를리오즈가 막혀있는 길을 뚫기 위해서 힘을 주자.

화아아악─!

백소소의 시야가 하얗게 물들었다.

아니, 물든 건 시야뿐만이 아니다.

스륵─ 스르륵─

마력의 흐름에 따라 흩날리던 검은 머리카락이 점차 뿌리 끝부터 흰색으로 변하고 있었다.

"조금만 더 참거라! 이게 마지막이다!!"

그리고 베를리오즈가 마지막 길을 뚫는 순간.

콰아아앙-!

백소소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짙은 마력에 베를리오즈가 멀리 튕겨 나간다.

"... 베를리오즈님!"

베를리오즈가 바닥에 부딪히기 직전, 내가 간신히 받아냈다.

"다치지 않으셨어요?"

"... 괜찮다 조금 지쳤을 뿐이니... 그 보다 백소소 저 아이에게서 눈을 때지 마라.... 제자야!"

"말 안해도 알아...!"

준비하고 있었는지 비앙카가 곧바로 견신을 사용해 전투태세로 들어간다.

이윽고 마력의 안개가 걷히고, 그 속에 감싸져 있던 백소소가 천천히 눈을 떴다.

"...."

새하얗다.

루시아가 달빛 같은 은발이라면, 지금의 백소소는 눈송이를 닮은 순순한 흰색이었다.

샤악─

눈을 깜박이는 순간, 어느새 내 앞에 도착해있는 백소소.

동시에 반응한 베를리오즈와 비앙카가 백소소의 목과 가슴에 손날을 가져다 댔다.

"움직이지 말거라!"

"... 뒤로 천천히 물러나."

하지만 백소소는 그런 건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오직 나만을 바라보며 말했다.

"서방님."

"... 소소야."

내가 이름을 부르자 잠시 눈을 감고 숨을 길게 내쉰 백소소가 물었다.

"... 소녀의 이 모습은 어떻사옵니까?"

"이쁘다... 많이 이쁘다."

내가 진심을 담아 말했다.

흑발의 백소소가 귀여운 소녀에 가까운 느낌이었다면, 백발의 백소소는 어딘가 성숙해진 미녀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후후훗.... 서방님께서 그리 말해주니 소녀 기쁘옵니다! 소녀, 가문의 탓에 백발은 그리 좋아하지 않지만... 서방님이 이쁘다고 해주셨으니 지금부터 좋아하도록 하겠사옵니다."

폭주 할 거라는 예상과 달리 평범하게 대화하고 있는 백소소의 모습에 베를리오즈가 눈을 크게 떴다.

"사신을... 그것도 사랑으로 깨웠는데... 저리도 안정되어 있다고?"

열두 신 중 가장 단순한 '견신'을 각성한 비앙카조차 처음 각성하고 일주일 가까이는 이성을 놓았다.

헌데 다루기 어렵기로는 1위를 다투는 '사신'이 어떻게 저렇게 안정될 수 있단 말인가?

그러자 백소소가 베를리오즈를 바라보며 말했다.

"... 폭주의 원인은 감정의 격류라 하지 않으셨사옵니까."

"... 그래, 그랬었지."

"그렇다면 당연한 일이옵니다. 이미 소녀 서방님에 사랑이 대해(大海)와도 같은데, 바다에 고작 한줄기의 물줄기가 더해진다 한들 변화가 있을 리가 없지 않사옵니까?"

거기까지 말한 백소소가 나를 꽉 껴안으며 말했다.

"소녀, 서방님에 대한 사랑이라면 이미 한참 전에 차고 넘쳐 흘러서 이미 더할 곳이 없는 곳까지 와있사옵니다. 소녀의 피 한 방울, 살 한 점, 영혼 한 조각까지 전부 서방님의 것이옵니다."

"아... 갑자기 짜증나네... 괜히 긴장했어."

옆에서 비앙카가 인상을 찌푸리며 한 마디를 내뱉었다.

"후훗, 짜증이 날 만도 하지요. 눈앞에서 이런 사랑을 보았는데 말이옵니다. 이 세상에 누가 감히 소녀의 사랑에 비할 수 있겠사옵니까?"

"... 나. 내가 너보다 이 새끼 더 사랑하는 거 같은데."

"... 흐음. 강신을 사랑으로 깨우지도 못했으면서 말이옵니까?"

백소소의 말에 대답한 건 비앙카가 아닌 베를리오즈였다.

"그 말은 틀렸다. 네가 사랑으로 강신을 이뤘다고 해서 네 사랑이 본녀의 제자보다 깊다고는 할 수 없다."

"자... 들었지?"

"... 흥, 그렇다고 한들 소녀가 서방님을 더 사랑하옵니다."

"지랄마 내가 더 사랑한다니까? 너 이 새끼랑 뭐까지 해봤는데? 나는 엉덩이도 따먹혔어."

"읏...!! 소... 소녀도 곧 먹힐 겁니다!"

"하, 엉덩이도 안 따먹힌 애가 뭔 사랑을 알겠냐."

"... 부탁이니까. 둘 다 그만 해요."

나를 넘치도록 사랑해주는 건 감사하지만 저런 이야기는 침대에서만 듣고 싶다.

"서방님은 잠깐 기다려주십시오! 제가 얼마나 서방님을 사랑하는지 똑똑히 보여주겠사옵니다."

"지랄마. 무조건 내가 더 사랑하니까. 난 쟤 대신 죽어 줄 수도 있어. 너 유진이 구하려고 배에 구멍 나 봤어?"

"... 그건 아니지만... 비슷한 건..."

"에휴, 엉덩이도 안 따먹혀, 배에 구멍도 안 나. 넌 한데 뭐냐?"

"소... 소녀도... 서방님이랑!"

"...."

말려도 소용없을 것 같으니, 최소한 베를리오즈에게 못 듣게 해야겠다.

"그런데 베를리오즈님."

"어... 엉덩이에 그런 것까지...!"

보통 이런 대화가 나오면 피할 만도 한데 베를리오즈는 정말 열심히 집중해서 듣고 있었다.

"베를리오즈님..."

"읏!.. 왜... 왜... 그러는고...?"

"그냥, 갑자기 궁금해졌는데 베를리오즈님은 무슨 감정으로 강신하셨어요?"

".... 아, 본녀 말이냐?"

그러자 베를리오즈가 갑작스레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행복이다."

"..."

전혀 예상치도 못한 대답.

과거를 떠올리는 듯 베를리오즈가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돌아갈 수 없겠지만.... 여신의 제자로서 세 명이 다 같이 있을 때는... 정말.... 정말로 행복했다."

"여신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이옵니까?"

그때, 결론이 났는지 갑자기 백소소가 얼굴을 들이밀었다.

"... 이제 끝났어요?"

"아직이옵니다. 돌아가서 승부를 보기로 했사옵니다. 그런데 서방님, 스승님이 여신의 제자라니..."

"아, 넌 몰랐냐? 내 스승이 여신의 세 제자 중 한 명이야."

"... 여신이라니... 농담이시옵니까?"

"진담인데."

눈빛으로 내게 진짜냐고 묻는 백소소.

"진짜야."

대답을 듣은 백소소가 눈과 입을 살짝 벌리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 서방님이 그렇다면 그런 것이겠지만... 그러고 보면 자연스럽게 넘어갔는데 제 선조의 스승이라고도 하지 않았사옵니까..? 스승님께서는 도대체 몇 살이옵니..."

"자, 이번에는 네놈의 차례다. 네놈에 가장 깊은 감정은 무엇인고?"

백소소의 말을 끊으며 베를리오즈가 말했다.

".... 음."

잠시 입술을 만지며 생각하던 내가 대답했다.

"... 저도 사랑인 거 같은데요?"

"하! 뭔 놈의 사랑이냐, 사랑이 그리 흔하게 사용할 수 있는 감정인 줄 아느냐? 네놈이 사랑일리가 없다."

"... 아니, 그래도 진짜인데."

사랑 말고 다른게 떠오르는 게 없다.

내가 이 세계를 구하고자 하는 건, 딱히 대단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그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살아갈 세계를 지키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베를리오즈는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쯧, 그럼 여기 앉아 보거라."

"근데 저도 사랑인데 경고 안 해도 돼요? 저도 사신이면 어떻게 하려고요?"

"시끄럽다. 백소소 저 아이는 재능이 뛰어나 본녀라도 해도 죽일 생각이 아니면 못 막을 정도지만, 네놈 정도의 재능은 한 손으로도 막을 수 있느리라."

"....."

내가 재능이 없다는 건 알고 있지만, 눈앞에서 대놓고 들으니 마음이 아프다.

그러자 당황한 베를리오즈가 말을 덧붙혔다.

"그... 그래도 네놈이 약하다는 건 아니다...!! 무슨 방법을 사용했는지 모르지만 마법쪽에서는 과분한 힘을 가지고 있지 않느냐!"

"...."

이게 과연 위로란 말인가.

상처에 칼을 넣고 후벼버리는 듯한 베를리오즈의 말에 내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 베를리오즈님... 그냥... 전수 부탁드립니다."

"크흠... 알겠다."

소소 때와 똑같이 가부좌를 튼 내 등에 손을 댄 베를리오즈가 기운을 뿜어내 길을 뚫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 이건...!!"

무언가를 확인한 베를리오즈의 눈이 크게 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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