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03 - 루시아 우르엘라 (6)
"루시아. 상황이 좋지 않아. 자칫하면 지휘권을 빼앗기는 건 물론이고 군사 재판까지 벌어질 거야."
"...."
"씨발. 그 남자를 살리기라도 했으면 정보를 빼낸다는 명목이라도 있지... 결국, 아무것도 못 알아내고 뒤졌잖아!"
"...."
"야! 듣고 있어? 지금 너 좆됐다고! 생포하라는 네 명령 때문에 우리 측에 희생만 쓸데없이 늘린 꼴인데 뭔가 대책을 말해보라고!!"
"....."
까득-
아무 말 없는 내 모습에 비앙카가 멱살을 잡으며 소리쳤다.
"정신 똑바로 차려 루시아 우르엘라!! 그깟 남자 하나 때문에 지금 뭐하는 짓이야!!! 지금까지 우리가 쌓아온 모든 게 날아가게 생겼다고!!"
"... 비앙카..."
"왜! 씨발! 내가 멱살 잡으니 좆같아? 그럼 닥치고만 있지 말고 욕이라도 해보던가!!"
"... 당신은... 절대로... 모르겠죠."
목숨마저 바칠 수 있을 정도로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고 그 사람을 눈앞에서 몇 번이나 잃어버린 고통을.
"이이익...!!"
그러자 뺨이라도 때리려는듯 손을 들어올린 비앙카.
"...."
나는 피하거나 막지 않고 그저 눈을 감았다.
맞는 것으로 비앙카의 마음이 풀린다면 얼마든지 맞아줄 수 있었다
"씨이발!! 진짜..!!"
하지만 결국 비앙카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나를 밀치며 소리쳤다.
"병신같은 년! 내가 지금까지 너 같은 것 때문에 낭비한 시간이 아까워!! 여기서 계속 그렇게 찌질대든지 마음대로해!!"
콰앙─!
비앙카가 떠나고 홀로 남은 방에서 나는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말은 거칠어도 저것이 비앙카 나름의 격려라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 미안해요.'
나는 너무 지쳐버렸다.
이제 더는 유진의 죽음을 지켜볼 자신이 없었다.
그저 모든 것을 끝내고 싶었다.
스으윽─
나는 침대 아래에 숨겨 놓았던 단검을 들었고.
푸욱─
루시아 우르엘라의 삶을 끝냈다.
**
7회차, 입학식 4년 전.
무섭다.
두렵다.
그만두고 싶다.
허나, 이 저주 같은 회귀는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그렇기에 나는 세계가 멸망하는 순간을 기다리며.
나는 나를 방안에 가뒀다.
***
그렇게 5년이 훌렀다.
철컥─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 가끔 방을 정리하고 식사를 놓고 가는 고용인일 것이다.
평상시라면 무시하겠지만...
오늘은 또 그 꿈을 꾼 상황이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나는 이불을 푹 눌러 쓴 채 말했다.
"... 필요없으니까 나가..."
"...."
보통 이 한마디면 대부분의 고용인들은 즉시 방을 떠난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저벅─ 저벅─
방을 떠나기는커녕 오히려 내게 다가오는 발소리.
"...."
그래, 몇 번인가 있었다.
아버지의 총애를 받고자, 억지로라도 나를 방안에서 꺼내려는 인간들이.
그 결과는 언제나 좋지 않았다.
"... 마지막으로 말할테니까... 나가."
두 번째 경고.
화아악─
그리고 갑자기 느껴지는 밝은 빛.
"....?"
나는 약간 늦게 상황을 이해했다.
누군가 내게서 이불을 억지로 빼앗은 것이다.
까득─
이건 고용인의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다.
솟아오르는 분노에 나는 마력을 뿜어내며 소리쳤다.
"... 내가 꺼지라고... 말했!!!"
그리고 눈앞에 보이는 얼굴에 할 말을 잃었다.
'... 이건 꿈인가?'
나는 아직도 악몽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건가?
심장이 죽을 만큼 아파 왔지만, 그와 동시에 영원히 깨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때, 눈앞의 남자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루시아님.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유진 칼리오페라고 합니다."
꿈이 아니었다.
정말... 유진 칼리오페가 눈앞에 있었다.
"갑작스럽게 숙녀의 방에 들어와 침구마저 뺏은 제 무례를 부디 너그럽게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 어... 어떻게... 당신이.. 왜... 여기에...?"
"아, 가주님께 부탁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게 아니더라도 '제국의 달'을 다시 한번 뵙고 싶었고요. 하하하."
시원스럽게 웃는 유진의 모습에 나는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돌아가... 주세요..."
더는 너의 죽음을 지켜보고 싶지 않았다.
나는 지금까지 충분할 정도로 노력하지 않았는가.
이젠 그만 포기하게 해주길 바랐다.
그러자 한 걸음 더 다가온 유진이 내 손을 붙잡으며 말했다.
"루시아님... 저는 루시아님이 어떤 아픔을 지녔는지... 어째서 마음을 닫았는지 모릅니다."
"....."
그럴 수밖에 없다.
나의 회귀는 누구에게도 전할 수 없는 나 혼자만의 저주이니까.
그것을 어겼을 때 무슨일이 있었는지 똑똑히 보지 않았던가.
"그러니까 노력하겠습니다."
"...."
5년이었다.
"제가 루시아님이 가진 아픔을 이해하도록, 당신이 마음을 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그러니 부디 제게 노력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겠습니까."
지난 5년이란 시간 동안 마음을 죽여가며 포기하고자 했다.
그렇게 이제야 겨우 마음을 정리했다고 생각했는데...
'... 왜.'
차갑게 얼어붙었던 심장은....
유진과의 만남과 동시에 너무나 쉽고 따스하게 녹아버렸다.
***
"... 루시아님. 정말 방에만 있던 거 맞아요?"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 아니.. 그건 아닌데... 하아... 뭔가... 좀... 대단하네요."
유진이 놀라움이 섞인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았지만, 내게는 당연한 일이다.
내용이 조금 달라졌어도 몇 번이고 비슷한 일을 했으니까.
".. 후후훗... 저는 천재 미소녀인걸요."
"...."
내 자화자찬에 슬쩍 시선을 피하는 유진.
나는 그런 유진의 눈앞에 가슴을 들이대며 말했다.
"어머, 왜 대답이 없으신가요? 아닌가요?"
"... 루시아님. 그렇게 앞으로 가로막으시면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 그럼 대답하시면 되잖아요. 자, 맞나요? 아니나요?"
계속되는 유진이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 맞습니다."
"뭐가 맞다는 건가요? 천재 쪽이요? 아니면 미소녀인 쪽이요? 참고로 제 추천은 둘 다예요."
그때, 날 선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 야. 거기 내 남자한테 적당히 꼬리 치지?"
"흐음.... 비앙카."
"뭐야 그 재수없는 표정은..."
"몇 년을 들이 대놓고도 차인 주제 '내 남자'라고 하는 게 웃겨서요."
"... 야이... 씹...!"
발끈해서 달려들려는 비앙카를 뒤따라온 비비안이 붙잡았다.
"... 어... 언니...!.. 지... 진정해요."
"놔봐! 아! .. 비비안... 진정했으니까 놔보라고...!!"
"하하핫... 사이가 좋네요."
"... 유... 유진님! 유진님도... 웃지만말고 도와주세요...!"
짝─ 짝─ 짝─
유진이 상황을 정리하며 말했다.
"자, 그럼 다들 농담은 그쯤하고 다들 보고서는 확인했죠? 이솔스 마을 근처에 최상급 마물의 무리가 나타났다는데 우리가 같이 가서 해결..."
"아뇨."
나는 유진의 말을 끊으며 선언했다.
"저 혼자서도 충분해요."
***
《찢어발겨라 - 폭풍 - 용 - 송곳니》 《눌러 - 죽여라 - 거인의 - 발걸음》
".. 하아... 하아... 커흑..."
기침 사이로 붉은 핏덩이가 섞여 나왔다.
"...."
스스로도 느끼고 있었다.
지금 나는 지나치게 무리를 하고 있다는 걸.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내가 낭비한 지난 5년간, 리아나는 강해졌다.
이 정도 힘으로는 리아나를 상대하기에는 아직 한참 부족하다.
"좀... 더... 좀.. 더.. 강해져야해..."
나는 피 묻은 입술을 닦으며 앞으로 걸어나갔다.
***
8회차, 입학식 1년 후.
"퍼져나가는 악몽."
나는 유진과 일행을 향해 말했다.
"악몽에 감염된 사람은 더 이상 같은 인간이라 생각하지 마세요. 그게 설령 가족이나 연인이라도 주저 말고 죽이세요."
이 녀석을 상대로 한 번이라도 실수하면 끝이다.
실수를 하는 순간, 이 녀석은 이름 그대로 '퍼져나가는 악몽'이 되어 우리를 휩쓸 것이다.
유진에게 다시 구원받은 6회차에 나는 결국 리아나를 쓰러트렸지만 '퍼져나가는 악몽'을 넘지는 못했다.
그리고 7회차의 끝 무렵.
문자 그대로 수명을 갈아 넣을 끝에 마침내 '퍼져나가는 악몽' 거의 쓰러트렸다고 생각했을 때.
비앙카가 악몽에 휩쓸렸다.
'....'
자신이 악몽에 감염된 걸 확인한 순간 비앙카는 유언 한마디조차 남기지 않고, 주저 없이 자신의 목숨을 끊었다.
한 번 실수가 발생하자 무너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 도망가세요...!!'
자신에게 심장이 찢기는 마법을 건 비비안은 우리를 위해 시간을 벌어주었다.
그동안 나는 유진을 데리고 도망쳤다.
결국, 이 끝이 죽음인 걸 알면서도 미친 듯이 도망치고 도망쳤다.
'루시아...'
'유진아...'
그렇게 얼마나 도망쳤을까.
마침내 끝이 찾아왔다.
마력은 바닥, 뒤는 끝이 보이지 않는 절벽, 앞은 악몽의 군세.
'... 미안해요.'
유진과 나는 서로를 끌어안은 채 절벽에 몸을 던졌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번에는 다를 것이다.
***
9회차, 입학식 7년 전.
안돼.
안돼안돼안돼안돼안돼안돼안돼안돼안돼안돼!
이래서는 안 된다.
정상적인 방식으로는 어떻게 해서도 유진이를 구할 수 없다.
'... 처음부터 생각이 잘못했어.'
이 세계가 악의를 가지고 유진이를 공격한다면...
나 또한 세계에 악의를 가져야만 했다.
더 이상 유진이를 위해 희생하는 건 나 혼자만이 아닐 것이다.
설령 이 세계의 모든 것을 희생하더라도...
나는 유진이를 구해 낼 것이다.
***
입학식 6년 전, 황태자의 생일파티.
리아나는 내 미행을 진작에 눈치챘겠지만, 오히려 꼬드기듯 인기척이 드문 곳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마침내 인기척이 완전히 사라졌을 때.
'... 지금!'
우우웅─!
나는 황실 전역에 깔려있는 마법 감시를 피할 수 있는 아티팩트를 사용했다.
하지만 이것으로 눈을 속일 수 있는 시간은 단 30초 뿐.
그 안에 모든 것을 끝내야 했다.
29초 전─
"...?"
리아나가 이상을 깨달았다.
28초 전─
내가 리아나를 향해 마법을 쏘았다.
《꿰뚫어 ─ 죽여라》 사람을 죽이는 것은 가장 기초 마법인 바람 칼날로도 가능하다.
하지만 직접 살해를 명령하는 마법은 흑마법으로 분류되어 엄격히 금지되어있다.
이유는 단순했다.
흑마법은 상대뿐만이 아닌 사용자를 해치는 마법이니까.
한 번 사용한 것만으로도 영혼이 더렵혀지고, 수명이 갈려나간다.
《터트려 ─ 죽여라》 《얼려 ─ 죽여라》 《태워 ─ 죽여라, 빠져 ─ 죽여라, 눌러 ─ 죽여라, 떨어져 ─ 죽여라》 15초 전─
하지만 흑마법만이 30초 안에 리아나를 잡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 크읏..!!"
처음에는 잘 막아내던 리아나였지만, 무영창에 가까운 속도로 흑마법을 쏘아내니 점차 밀려난다.
'남은 시간은...!'
5초 전─
리아나의 죽음을 확인하는 것까지 생각하면 이번 공격에 반드시 끝을 내야 했다.
《찔러서 ─ 죽여라!!!!》
콰아악─!
땅에서 솟아나 리아나를 향해 쏘아지는 장미 줄기들.
리아나는 그 사이에서 기적같이 피해냈지만...
톡─
마지막 한 줄기에서 솟아난 가시가 리아나의 새끼손가락을 찔렀다.
"....!"
"....!"
치명상이라기에는 한 없이 작은 상처.
하지만 내가 사용한 마법이《찔러서 ─ 죽여라》인 이상.
가시에 찔린 리아나의 죽음은 확정되어있다.
"... 아."
0초─
실이 끊긴 인형처럼 리아나가 바닥에 쓰러졌다.
"... 아하핫... 축하해.... 루시아... 어떻게... 알았는지는 몰라도... 나를 죽이는데 성공했네... 그런데... 이래도.. 네... 가족은.. 괜찮을까?"
"... 상관없어."
이미 이곳에 오기 전, 아버님과 어머님에게는 목숨에 지장이 없는 부위에 커다란 상처를 입혀 놓았다.
그 소식이 들어가면, 우르엘라의 가문의 차기 가주가 황녀를 죽인 게 아닌 단순히 미쳐버린 내가 저지른 일이 될 것이다.
"... 후후훗... 그래?.. 그럼... 이제.. 도망쳐.... 저쪽... 계단.. 뒤... 세번.. 째... 나만... 아는... 비밀통로가... 있... 그곳으로....."
"..."
리아나의 유언.
그러나 당연하게도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 가자.'
망토를 뒤집어쓰며, 미리 확보해놓은 탈출 루트를 통해 황실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