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99 - 루시아 우르엘라 (2)
유진 칼리오페가 죽었다.
사인은 황녀의 반란.
대비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만일의 사고가 일어날 걸 대비해서 과하다 싶을 정도의 경호 인원을 배치해두었으니까.
다만, 내가 한가지 몰랐던 건...
유진이 도망치던 길에 미처 대피하지 못했던 어린아이가 존재했다는 것.
너무나 당연하듯 유진은 아이를 구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했다.
정말 그 다운 죽음이었지만...
"...."
그가 없는 세상에서 나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 싸움을 이어가야 하는가.
차오르는 허무감을 억누르며 눈앞에 있는 여인을 향해 다시 한번 말했다.
"비비안양. 당신의 힘이 필요합니다. ... 복수는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
"... 언제까지 그렇게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습니다."
쾅!
그 순간 비비안이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쳤다.
"당신은 유진님과 아무런 관계가 없으니까 그렇게 쉽게 말할 수 있겠지!! 유진님은 내 전부였어!!! 내 목숨보다 소중한 사람이었다고!!!"
텅 빈 눈을 한 채 절규하는 비비안의 모습에 주먹 사이로 손톱이 파고들었다.
그녀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내가 너보다 더 오래 그를 지켜보았다고.
내가 너보다 그를 위해 더 많은 것을 희생했다고.
그런데 아무것도 모른 채, 그저 그의 울타리 안에서 마음 편하게 곁에 있던 네가...
무엇보다 그의 곁에 있으면서도 그를 지키지 못한 네가...
도대체 무슨 자격으로 그딴 말을 내게 내뱉는 거냐고.
그렇게 소리치고 싶었다.
하지만...
"... 그렇군요. 죄송합니다.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비비안에게 고개를 숙였다.
비비안의 말대로 나는 유진과 아무런 관계가 아니었으니까.
"... 나중에라도 진정이 되면 언제든지 제 제안을 다시 생각해주시기 바랍니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나는 도망치듯 방을 떠났다.
****
쨍그랑!
책상에 있던 물건이 바닥에 내팽개쳐진다.
"... 으... 으아아아아아아아!!!"
아무리 절규하고 물건을 때려 부숴도 분노와 자기 혐오가 가라앉지 않는다.
내가... 내가 그 자리에 있었더라면 유진은 죽지 않았을 것이다.
유진이 죽던 날.
나는 황녀의 에르덴과 힘을 합쳐 레이카와 가르시아를 물리치고 칼리오페 가문을 되찾았다.
그건 분명 올바른 선택이었을 것이다.
칼리오페 가문이 아군이 된다는 건 훗날 닥칠 재앙에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고, 만일 내가 없었더라면 칼리오페 가문은 되찾지 못했을 테니까.
그러나...
설령 이 세계가 해피엔딩을 맞이한다고 한들 유진이 없다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다는 말인가!
퍼억-
벽을 때린 주먹이 깨져 피가 흘렀다.
우스웠다.
유진을 잃고 나서야 내 모든 삶의 목표가 그를 위해서 존재했다는 걸 깨닫다니 우스운 광대 짓도 정도가 있었다.
"... 하... 하.. 하하..."
그리고 더욱 우스웠던 건...
그 사실을 깨닫고 나서도 유진을 잃은 슬픔조차 표출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혹여나 밖에 들릴까, 몇 번이고 방음 마법을 친 끝에야 나는 비명을 지를 수 있었으니까.
"... 유진..... 유진아..."
모든 것을 토해낸 나는 엉망이 된 바닥에 웅크린 채 흐느꼈다.
***
언제 잠들었을까.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 들어..."
바닥에서 일어나 반사적으로 들어오라고 말하려던 찰나 방 안의 상태를 보고 말을 삼켰다.
누가 보더라도 감정을 제어하지 못한 방의 상태.
지휘관으로서 이러한 광경을 보여줄 수는 없었다.
자신의 선택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놓고도 냉정하게 상황을 분석하는 자신에게 적잖은 혐오감을 느꼈다.
끼익─
그러면서도 나는 방안을 가리듯 서서 문을 열었다.
"... 비비안양?"
문 앞에 서 있던 비비안이었다.
다시 만난 비비안의 눈은 더 이상 비어있지 않았다.
"... 저... 죄송해요.... 루... 루시아님은 잘못이 없는데.... 제... 제가 화풀이를 했어요."
"... 괜찮습니다. 비비안님의 말대로 비비안님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으니까요... 이해합니다."
"... 아... 아니요... 죄... 죄송해요... 하... 하지만... 루시아님의 말이 맞아요..."
대신 그곳에는 광기가 깃들어있었다.
"저... 저는... 이대로.. 앉아있으면.. 안돼요..!!. 유... 유진님을!!. 제... 제게서... 빼.. 빼.. 뺏어간... 그.. 사람들에게...! 보.. 복... 복수를.. 해야해요.. 복수를... 복수를....!!"
"...."
지금 비비안을 말리지 않으면 얼마 가지 않아 망가지고 말 것이라는 게 너무나 뚜렷하게 보였다.
하지만...
나는 비비안을 포기 할 수 없었다.
"... 고맙습니다. 많은 도움이 될 거에요."
***
"주... 주.. 죽어!!.. 죽어죽어죽어..!!"
막대한 마력을 바탕으로 비비안이 미친 듯이 마법을 쏟아부었다.
"저... 저... 전.. 전부.. 주... 죽어버려!!"
비비안을 노리고 반란군 측에서 화살과 마법이 날아오지만, 비비안은 피할 생각조차 하지 않고 계속해서 폭격을 쏘아낼 뿐이었다.
"루시아님..."
"무슨 일이죠?"
"비비안님이 투입된 이후 아군과 적군 양쪽 모두 사상자가 지나치게 늘어났습니다... 그리고 비비안 양의 부상도 당장은 생명의 위협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이대로 내버려 두면 큰일일 날 겁니다. 지금이라도 전장에서 물러나게 해야..."
"그렇다면 당신이 비비안을 대체 할 수 있나요?"
부관의 말을 끊으며 내가 물었다.
"... 그건..."
"지금은 양쪽 모두 사상자가 늘어났지만, 비비안이 빠지게 되면 우리 측에만 사상자가 늘어날 겁니다. 그래도 비비안을 빼고 싶다면 부관께서 방법을 찾아오던가 아니면 닥치고 자리로 돌아가세요."
"... 알겠습니다."
나도 안다.
내가 잘못됐다는 것을.
흘리지 않아도 될 피가 흘러서 바다를 이루고 있었다.
유진이라면 결코 이런 선택을 하지 않겠지.
'... 하지만.'
이제 유진은 없다.
설령 죽어서 그에게 저주를 듣는다 할지라도 나는 그의 죽음을 헛되게 할 수 없었다.
그게 내가 살아가는 유일한 이유였으니까.
***
'... 너라면 좀 더 멋진 결말을 보여 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째서인지 황녀의 유언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말 그대로 부대를 갈아 넣는 듯한 대규모 작전을 펼쳐서 황녀를 토벌했다.
냉정하게 판단해서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어차피 시간이 조금만 더 흐르면 황녀는 죽음을 맞이 할 테니까.
그러나 황녀를 보는 순간 참을 수가 없었다.
유진을 죽음으로 내민 황녀가 지금 눈앞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것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다.
복수의 대가로 나는 이어질 재앙을 막아설 인원들을 잃었다.
그 결과가 이것이다.
"하아...."
가슴에 뚫린 구멍에서 끈적한 혈액이 묻어나온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나는 많은 정보도, 권력도, 무력도 있었다.
허나, 결국 1회차의 근처에조차 가지 못했다.
사랑하는 사람도, 그가 지키고자 한 미래도 무엇하나 지키지 못한 것이 나였다.
어리석고, 어리석고, 어리석었다.
그것이 루시아 우르엘라였다.
"... 죄송... 죄송.. 합니다..."
누구에게 전하는지도 모르는 사과를 하며 나는 눈을 감았다.
**
3회차, 입학식 1년 전.
"....!!... 하아... 하아..!!"
호흡이 가쁘고 머리가 어지럽다.
"괜찮으냐?"
그렇게 한참 동안 숨을 내쉬고 있자 익숙한 풍경과 함께 돌아가신 아버님의 얼굴이 보였다.
"아... 버님...?"
말을 듣자 서운하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 아버지.
"... 루시아. 공식석상이 아닌 곳에서는 아빠라고 부르겠다고 하지 않았느냐..."
환상? 아니면 꿈인가?
어찌 됐건 아버님에게 달려가 안겼다.
설령 닿으면 흩어질 신기루라 할지라도 한순간이라도 온기를 느끼고 싶었다.
"아버님!"
"하?.... 흐하하하하! 그래! 루시아! 아빠다!"
나를 꽉 껴안은 아버님의 현실감 넘치는 감촉에 문뜩 머리에 한가지 생각이 스쳤다.
'... 회귀!'
이미 한 번 경험한 일이다.
두 번이라고 불가능 할 리가 없었다.
나는 아버님에게 떨어지며 물었다.
"아버님 오늘은 몇 년도 몇월 며칠입니까?"
"... 갑자기 뜬금없구나... 그러니까...."
아버지의 입에서 나온 날짜는 정확하게 입학식의 1년 전이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아버님. 마차를 빌려주세요. 급하게 갈 곳이 있습니다."
"그거야 얼마든지 빌려줄 수 있지만... 어디를 가려는 거냐?"
아버지의 물음에 나는 긴 숨을 내쉬며 말했다.
"... 칼리오페 가문입니다."
***
말을 갈아치우며 하루도 쉬지 않고 달려서 칼리오페 가문에 도착했다.
"... 어서오세요."
그 사이, 아버님이 전보를 보냈는지 누군가 마중을 나와 있었다.
"이렇게 우르엘라의 후계자께서 찾아오시다니. 영광입니다."
레이카 칼리오페였다.
그녀를 보는 순간 살의가 치솟아 오른다.
만일 레이카와 가르시아가 칼리오페에서 반란을 일으키지 않았다면...
나는 유진의 곁을 떠나지 않았을 테고, 그랬다면 유진은 죽지 않았을 텐데.
그렇게 생각하면 레이카를 당장이라도 죽여버리고 싶었지만...
아직 벌어지지 않은 일이다.
나는 애써 살의를 억누르며 말했다.
"유진 칼리오페... 아니, 삼공자는 어디있습니까?"
"유진이요...? 왜 갑자기..."
"말씀해주시지요."
늦어지는 대답에 나도 모르게 삐져나온 살기.
그것을 느낀 레이카가 뒷걸음질 쳤다.
".. 거... 거기 영애께 유진의 방으로 안내해드려라."
"... 네. 이쪽입니다."
저벅─ 저벅─
천천히 걸어가는 메이드의 걸음이 너무나도 답답하다.
결국, 나는 참지 못하고 그녀에게 물었다.
"삼공자의 방은 어디입니까?"
"이제 저 복도 끝에 있는 계단을 오르면 도착입니다. 조금만... 앗..!"
타타탓─!
체면 따위는 신경쓰지 않고 복도를 달리고, 계단을 몇 개씩 뛰어오른다.
그러자 마침내 보이는 문.
벌컥!
노크를 하는 것 조차 잊은 채 문을 벌컥 열자 그토록 보고 싶었던 얼굴이 보였다.
"유진...!!"
한 걸음에 달려가 그를 껴안는다.
'살아있어.... 유진이가... 살아있어...'
유진의 체온, 감촉, 향기... 느껴지는 모든 것에 감사했다.
그러자 유진이 나를 밀쳐내며 말했다.
"... 왜... 왜 이러시는 건가요?"
"아..."
이해한다.
그는 나에 대한 기억이 없을 테니까.
아니, 설령 기억이 있다 한들 전생의 나와 그는 이런 관계가 아니었으니 어색했을 것이다.
고개를 숙이고 있던 나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 죄송합니다. 유진님. 제가 잠시 실수를..."
그러자 심장이 멈추고, 피가 차갑게 식는 걸 느꼈다.
"... 왜...?"
견디기 힘들 정도의 공포에 몸을 떨고 있자 뒤늦게 에르덴이 찾아왔다.
"... 하아, 공녀님. 오랜만입니다."
유진을 제외하고 이 가문에서 유일하게 신뢰 할 수 있는 에르덴의 목소리에 나는 그에게 달려가 말했다.
"... 에르덴님... 유... 유진님이 이상합니다."
그러자 유진의 얼굴을 바라본 에르덴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무엇이 말입니까? 혹시 유진이가 공녀께 무슨 실수라도 하였습니까?"
"저걸 보고도 아무런 느낌이 안 드십니까!! 저... 저건...!"
"... 공녀?"
에르덴 뿐만이 아니다.
어디를 둘러봐도 다들 나를 이상하게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 왜?'
왜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건가?
어째서 누구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건가?
유진의 눈을 보는 순간 나는 바로 알아챘다.
저건 어디까지나 잘 만들어진 인형처럼 주어진 상황에 대해서 대응할 뿐.
지금의 '유진 칼리오페'에게는 영혼이 없다는 걸.
".... 아."
뒤틀려버린 세계 속.
어찌할 도리 없는 깊은 절망감이 나를 집어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