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91 - 백소소 (4)
".... 소녀를 이쁘다고... 말씀... 해주십시옵소서."
"소소님?"
"... 부, 부탁... 부탁 드리옵니다..."
두근─ 두근─
스스로도 어리광을 부리고 있다는 건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해서라도 서방님께 이쁘다는 말을 듣고 싶었다.
"...."
잠시 머뭇거리던 서방님은 이내 부드럽게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속삭였다.
"네, 아주 이쁩니다. 소소님."
쿵! 쿵! 쿵! 쿵!
예상은 했지만, 서방님의 이쁘다는 말 한마디에 이러다 터져서 죽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심장이 거칠게 뛰었다.
"... 가... 감사옵니다! 유진님!.. 소녀! 정말... 정말 진심으로 기쁘옵니다."
이 두근거림이 조금이라도 전해지길 바라며 서방님을 와락 껴안았다.
하지만...
"소소님... 제가 몇 번이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이런 식으로 달라붙으시면 안 됩니다."
냉정하게 나를 떼어놓고 물러나는 서방님의 태도에 서운함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 어째서입니까."
서방님이 내게 거리를 두는 걸 진작에 눈치채고 있었다.
비록 말로서 전하지는 않았다고 한들, 셀 수 없을 정도로 감정을 표현해도 서방님은 한 번도 답해주지 않았으니까.
"... 소녀는... 어째서 유진님께 달라붙으면 안 되는 겁니까?"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계속해서 함께한다면 언젠가는 반드시 서방님은 내게 곁을 허락할 것이라 여겼으니까.
"소소님..."
"유진님도 알고 계시지 않사옵니까!!... 소녀는...!!"
그러나 시간은 나의 편이 아니었다.
하루하루가 너무나도 행복해 떠올리고 싶지 않았지만...
이제 얼마 있지 않아 '자리 쟁탈전'이 열린다.
만약 내가 그곳에서 제대로 된 결과를 내지 못하여 실망한 서방님에게 버림받는다면?
아니 설령 기적같이 '첫 번째 제자'가 되었다고 한들 목표를 이룬 서방님이 내 곁을 떠난다면?
두렵다.
지는 것 보다, 죽는 것보다.
서방님을 잃는 것이 너무나도 두려웠다.
".... 소녀는...."
그렇기에 나는...
설령 이것이 서방님의 날개를 얽매는 사슬이 될지라도.
"유진님을..."
처음 서방님을 뵌 날부터 조금씩 키워온 이 감정을 말로써 전했다.
".... 사모하옵니다."
"... 소소님..."
"대답해주십시오.... 혹여... 저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가 이미 마음 속에... 다른 여인을 품고 계시기 때문이옵니까?"
내가 아닌 다른 여인을 사랑하는 서방님을 상상만으로도 숨이 멎을 것 같다.
"...."
침묵의 시간이 영원처럼 느껴질 때쯤, 천천히 서방님의 입이 벌려졌다.
"... 그런... 게... 아닙니다. 소소님... 저는 누구도 마음에 품고 있지 않습니다."
누구도 품고 있지 않다는 말에 살짝 가슴이 아렸지만, 최악의 결과는 아니었다.
비어있다면 그 안에 내가 들어가면 되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소녀를...! 소녀를 유진님의 마음에 소녀를 품어주시옵서... 소녀는 결코 유진님을 실망 시키지 않겠사옵니다!"
자신이 있었다.
서방님이 바란다면 정말 무엇이든지 할 수 있었다.
"... 죄송... 합니다."
"... 읏...!"
하지만, 돌아온 것은 명백한 거절.
조금 전까지 기쁨으로 뛰었던 심장이 이젠 고통으로 찢어질 것 같다.
나는 고개를 치켜들어 차오르는 눈물을 억지로 삼킨다.
"... 실... 시례... 했사옵니다... 예, .. 알고... 있었사옵니다... 유.... 유진님께 소녀로는 부족한 것이지요.. 소... 소녀가... 주제넘었습니다.."
"소소님...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왜...!!"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지르는 순간, 애써 억누르던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낸다.
"어찌하여 소녀를 내치시는 것이옵니까!!"
"....."
"소녀는 몰랐습니다..!! 연심이라는 것이 이토록...!!.. 이토록...!! 아플 줄 몰랐습니다!"
영혼이 갈기갈기 찢겨나가는 듯하다.
"... 흐윽... 끄윽.... 이... 이처럼... 아플 줄 알았다면..!!.. 흐끄윽... 소녀는 그때 그냥 죽어버리는게 좋았사옵니다!"
지금 가슴에서 느껴지는 고통은 가문에서 버려졌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아팠다.
"... 제발... 대답... 해주십시옵서서.. 소녀가 유진님의 마음에 들기 위해서는 어찌하면 되겠습니까."
"... 소소님... 울지 마십시오.. 이쁜 얼굴이 망가지지 않습니까."
"흐윽.... 상관없습니다!"
서방님의 말대로 거울을 보지 않아도 눈물과 콧물로 얼굴이 엉망이 되어버렸다는 게 느껴졌다.
그게 어쨌다는 건가?
어차피 서방님께 버림받은 내게 외모 따위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 제발..., 이유라도... 말씀해주십시오... 왜.. 왜.. 소녀를 받아주시지 않은지..!"
내 간절한 애원에 서방님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제가 소소님을 마음에 품게 되면... 저는 선생으로서 소소님을 가르칠 자신이 없습니다."
"... 소녀는! 그딴 건 어찌 되든 좋습니다! 유... 유진님만 제 곁에 있어 주면 아무것도 배우지 않아도 좋습니다! 그러니까...!!"
"소소님."
그러자 내 손을 붙잡은 서방님이 차분한 말투로 말했다.
"제가 소소님을 처음 만난 날. 제가 했던 맹세를 기억하십니까."
서방님의 말에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 흐윽.... 기... 기억합니다. 소녀가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
한순간도 잊은 적이 없다.
주먹밥의 맛.
서방님의 향기.
나를 부르던 목소리.
모든 것이 어제의 일처럼 똑똑히 기억난다.
"그때 저는 소소님을 '첫 번째 제자'로 만들겠다고 맹세했습니다. 제가 부디 그 맹세를 지킬 수 있게 해주십시오."
"... 어째서입니까! 저... 저는 '첫 번째 제자'가 되고 싶다고는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그동안 노력했던 건 그저... 그저 유진님과...!!"
"아니요... 소소님은 반드시 첫 번째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
차라리 서방님이 욕심 때문에 나를 이용하는 것이었다면 얼마든지 이용당해줄 수 있었다.
그렇지만 서방님의 눈빛에서 느껴지는 건 나를 거부하는 괴로움이었다.
무엇일까.
도대체 무엇이 서방님을 이토록 괴롭게 만드는 것일까.
그것을 너무나도 묻고 싶었다.
"...."
하지만...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서방님의 눈을 보니 도저히 물을 수 없었다.
"... 그렇다면."
나는 입술을 꽉 깨물며 말했다.
".... 제가 '첫 번째 제자'가 되고 난 뒤라면 그때는... 제 곁에... 선생이 아닌... 다른 의미로서 있어 주겠습니까?"
꽉 쥔 주먹이 공포로 떨린다.
거절당할지도 모르는 공포 때문이 아니었다.
이것마저 거절당하면 나도 내가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르겠다는 두려움이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마지막 질문에 서방님은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 그리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알겠사옵니다. 소녀..."
그 대답을 들은 순간 나는 결심했다.
"... 첫 번째 제자가 되겠사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첫 번째가 제자'가 되겠다고.
**
짧고도 소중한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이제 내일이면 쟁탈전이 펼쳐지는 날.
"... 유진님."
나는 이불 속에서 조심스럽게 서방님의 손을 붙잡으며 물었다.
"... 저... 정녕... 소녀가 해낼 수 있겠사옵니까?"
그러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서방님께 답이 돌아왔다.
"할 수 있습니다."
"... 네... 유진님이 믿어주신다면... 소녀는... 해내겠사옵니다."
그리고 다음 날.
나는 쟁탈전 등록이 진행 중인 청룡 가문의 정문을 당당히 정문을 뛰어넘어 들어갔다.
"누구지? 허가받지 않은 자는 들어 올 수 없었을 텐데?"
"소녀. 백사 가문의 제자 후보, 백소소라고 하옵니다."
나를 소개하자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백사 가문...?"
"백사의 후보는 한참 전에 도망쳤다고 하던데?"
"... 나는 죽었다고 들었소."
여기저기서 터져나온 잡소리를 무시하며 나는 품속에서 제자의 증표를 꺼냈다.
"지난 일이 무엇이 중요하겠사옵니까? 지금 중요한 건 제가 백사의 후보 자격으로 이곳에 있다는 것 아니겠사옵니까? 확인해보시지요. 후보의 증표입니다."
증표를 확인한 녹가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 진품이군요. 그럼, 백사 가문의 백소소를 마지막으로 열두 가문의 최종 후보를 등록을 마칩니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나로 인해, 잠깐의 소란이 있었지만, 생각보다 훨씬 빨리 소란은 가라앉았다.
이 안에 있는 누구도 백사 가문의 후계인 내게 기대를 품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상관 없었다.
'... 기다려주십시오. 서방님.'
오직 서방님만이 나를 믿어준다는 생각에 기쁠 뿐이었으니까.
'소녀 곧... 돌아가겠나이다.'
**
쟁탈전은 농담이라도 쉽다고 말할 수 없었다.
적견赤犬은 강했다.
지칠지 모르는 체력과 끈질기게 달라붙는 전투 방식은 강함이 무엇인지 알게 해줬다.
허나, 나를 넘어트릴 만큼은 아니었다.
흑호黑虎는 사나웠다.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을 이용해 직감적으로 베어오는 공격은 사나웠다.
하지만, 나를 베어낼 만큼은 아니었다.
청룡靑龍은 압도적이었다.
타고난 괴력과 마력에 더해진 기교로 모든 상대를 짓누르며 올라왔다.
그렇지만, 나에게서 서방님을 빼앗아 갈 만큼은 아니었다.
"하아.... 하아...!.. 해... 해냈... 사옵니다...! 소녀가... 소녀가... 이겼사옵니다!"
저들에 비해 무엇하나 제대로 가지고 태어난 게 없는 나였다.
그러나 서방님에게 받은 것과 서방님에게 이어지겠다는 마음 하나만으로 '첫 번째 제자'가 되었다.
***
─백소소를 '첫 번째 제자'로 임명한다.
쟁탈전이 끝나고 황제의 입에서 그 말이 나오는 순간.
내게 쏟아지는 수많은 시선과 인사를 뒤로하고 나는 서방님이 기다리고 있는 오두막으로 달려왔다.
"유진님! 소녀...! 해냈사옵니다!"
"알고 있습니다. 경축드리옵니다."
나는 환하게 웃으며 나를 안아주는 서방님을 그대로 쓰러트렸다.
"... 소... 소님? 지금 무엇을??"
서방님께서는 잠깐 저항했지만 '첫 번째 제자'가 된 나를 막을 수준은 절대로 아니었다.
"유진... 아니, 서방님. 진심으로 사랑하고 사랑하옵니다."
".... 소소님!! 갑... 갑자기 이러시면 안 되옵니다."
"서방님... 소녀는 이제 '첫 번째 제자'이옵니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서방님의 말을 무시하며 입술을 핥았다.
"그러니 누구의 명도 듣지 않사옵니다. 그리고 서방님께서도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소녀가 첫 번째 제자가 되면 선생이 아닌 다른 의미로서 곁에 있겠다고!"
"배... 백소소님? 아무리 그래도 순서라는 게 있는 법입니다...! 이건..!!"
"시끄럽사옵니다! 소녀는 더는 참을 수 없사옵니다! 아프게 하지 않을 테니 부디 얌전히 계시옵셔서!!"
그날 나는 서방님과 처음으로 맺어졌다.
그리고...
"... 흐에.. ♥... 흐에...? ♥... 셔.. 셔방님...? 흐읏... 이... 이제... 끄... 그마아안.. ♥"
"소소야. '첫 번째 제자'라고 큰소리친 것 치고는 별것 없구나."
짜악─!
엉덩이를 얻어맞자 서방님의 손에서 퍼져나간 열기가 등골을 타고 온몸을 태운다.
"히으으읏! ♥... 서... 서방님... 하아... 하아... ♥... 소... 소녀가.. 잘못했사옵니다..!! ♥.. 그... 그러니까... 잠깐만... 쉬었다가... 하으으읏!! ♥ 흐에.. ♥흐에엣!!"
"전부 네 잘못이다. 그토록 도발했으면 얌전히 받아들여라."
"... 그... 그치만... ♥흐으으읏..! ♥... 서... 서방!... 하윽... ♥.. 아... 안대.. ♥... 흣!!"
정말 미치도록 행복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