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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차 히로인이 조교를 기억함-280화 (280/354)

Chapter 280 - 네가 여기서 왜 나와? (2)

강의실에서의 소동은 로레오스가 들어오고 나서야 간신히 진정되었다.

물론 공짜는 아니었고 대가로 특훈을 받았다.

나를 특별취급하지 않겠다는 말은 거짓말이 아니었는지, 로레오스는 최선을 다해 갈궜지만...

'... 이젠 그렇게 힘들지 않네.'

이전까지는 로레오스가 내 수준에 맞춰 특훈의 강도를 조절해줬지만, 이제는 전력으로 갈궈도 그럭저럭할 만한 훈련으로 느껴진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루시아, 리아나, 비비안 같은 규격 외의 강자들이 곁에 있어서 그렇지.

이젠 나도 세계관 상위권의 수준의 무력을 갖췄다.

그리고 이쯤 되면 훈련으로 더 올라갈 수 없는 영역이었고.

'그걸 아니까 로레오스도 일찍 끝내준 거지.'

예전 같았으면 밤늦게까지 잡혀있었을 텐데 오늘은 고작해야 두 시간 정도 잡혀있던 게 전부였다.

오히려 훈련을 핑계로 여성진들이 흥분을 가라앉힐 시간을 챙겨준 것만 같았다.

'스승의 은혜가 하늘과도 같네... 혹시 모르니까 조금만 더 있다가 돌아가자.'

예상보다 특훈이 일찍 끝난 터라 시간을 때울 겸 아카데미를 빙 둘러서 걷고 있자, 정문 쪽에 사람이 모여서 웅성거리는 게 보였다.

"전학생이 온다고..?"

"... 이쁨?"

"말도 안 되게 이쁘다던데..."

문뜩 귓가에 들려온 흥미로운 대화에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 전학생이라.'

카르네아에 전학생이 오는 것은 드문 일이지만 전례가 없는 것도 아니다.

애초에 단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2학년 2학기를 진행 중이니 무슨 일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았다.

나는 자연스럽게 무리에게 다가가 목소리가 가장 큰 남자의 어깨를 두드렸다.

"누가 지금...?... 헉..!... 유... 유진님... 제... 제가 무슨 잘못이라도."

그 날 이후 딱 한 가지 편해진 게 있다면 어디 가서 자기소개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제국에 소문이 쫙 다 퍼졌는지 무조건 상대방이 먼저 알아봤으니까.

"아뇨, 그런 건 아니고 그냥 목소리가 들려서요."

"흡..!!... 시... 시끄럽게해서 죄... 죄송합니다! 입 닥치고 있겠습니다...! 요.. 용서해주십시오!"

"...."

넥타이 색을 보아하니 3학년이라 마음 같아서는 말 편하게 하라고 하고 싶지만 그런다고 편하게 할 리가 없었다.

"진정해요. 뭐라 하려고 한 게 아니라 궁금해서 온 거니까요."

"네... 네넵.... 어떤 것이 궁금하신지..."

"그냥 들렸는데 전학생이 온다고요?"

"아.. 아..! 넵! 그렇습니다."

"누가 오는지는 알아요?"

"그... 그게... 황녀라고만... 들었습니다."

대답을 듣자 오히려 의문이 치솟는다.

'... 황녀라니?'

내가 알기로 전대 황제의 자식 중 여자는 리아나 한 명뿐이다.

그리고 리아나는 이미 카르네아에 재학 중이었고.

"... 미안한데 황녀는 한 명뿐이지 않나요?

"헤... 헷갈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아스란 제국의 황녀를 마... 말한겁니다."

"흐음... 아스란 제국의..."

그 말에 내가 헛웃음을 흘렸다.

황녀라는 단어 때문에 아예 아스란 제국 쪽은 생각도 못 했다.

루멘하르크 제국과는 달리 아스란 제국에는 황실이란 개념이 없었으니까.

대신 열두 개의 가문에서 한 명씩 내놓은 후계자끼리 경쟁시켜, 가장 뛰어난 한 명을 첫 번째 제자로 이름을 붙이며 차기 황제로서 선발되는 것이다.

'... 그러고 보면 아스란 제국 플레이도 몇 번 했었지.'

예전에 '아카조교사'를 플레이할 때는 카르네아는 답이 없다고 생각해 시작부터 아스란 제국으로 가서 플레이한 적이 있었다.

처음에는 성공적인 아이디어라고 생각했지만, 후반으로 갈 수록....

'... 아니,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나는 가볍게 고개를 저어 잡념을 떨치고는 물었다.

"누가 몇 번째 제자... 아니, 몇 번째 황녀가 오는지 들었어요?"

"그... 그건까지는 잘.... 죄... 죄송합니다..!!"

하긴, 가문이 열두 개인 만큼 황녀만 해도 수십 명이다.

직접 플레이해본 나도 전부 기억 못 하는데 일반인이 어떻게 알고 있겠냐.

"아니에요. 모를 수도 있죠. 신경 쓰지 마요."

".. 정말... 죄송... 아! 저... 저기 들어옵니다!"

그 말에 나는 남자의 손가락이 향한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또각─ 또각─

그녀를 보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아름답다였다.

양 갈래로 땋은 검은 머리카락은 밤하늘을 녹여 만든 듯했고, 붉고 투명한 눈동자는 리아나의 것을 떠올리게 했다.

"....?"

두 번째로 든 생각은 심장이 미친 듯이 두근거린다는 것이었다.

아름다운 외모 때문은 아니었다.

'... 네가 여기서 왜 나와?'

그녀와 한 번 관련되면 상당히 골치가 아파질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저쪽은 날 모른다.

아니, 알 수는 있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유진 칼리오페'를 아는 거지 '나'라는 개인을 아는 건 아니다.

당연하다.

이번 회차에서 나와 '아스란 제국'은 아무런 연관도 없지 않았던가.

이것도 나비효과인지 아니면 원래 2학년 2학기가 시작되면 자연스럽게 전학 오는지는 몰라도 지금 나와는 그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완벽한 타인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곳에 오래 있어서 좋을 것도 없었다.

자기 자랑 같아서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일단 나는 유명인이니까.

'눈에 안 띄는 게 최고지.'

내가 빠른 걸음으로 정문에서 멀어지자 웅성거리는 소리가 작아진다.

그렇게 소리가 완전히 사라질 정도로 거리가 벌어졌을 때.

후우웅─

등 뒤로 한 줄기 바람이 스쳤고...

"아아~."

... 눈앞에 그녀가 서 있었다.

"소녀를 놔두시고 어딜 그렇게 급히 가시옵니까?"

선악과를 먹으라고 유혹하던 뱀이 속삭이던 목소리가 이러할까.

오싹하면서도 지독하게 달콤한 목소리가 여자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 설마 이렇게 도착하자마자 마주칠 줄이야... 역시 운명인 것 같사옵니다."

붉은 눈을 반짝이는 미소녀는 뺨에 손을 대고 고개를 살짝 옆으로 갸웃거리며 말했다.

"... 나를 아나?"

철렁이는 속마음과는 반대로 '침대 위의 황제'를 사용한 내 신체는 완벽한 평정을 유지한 채 대답했다.

"그런 말은 농담이라 할지라도 재미없사옵니다."

내 질문에 짐짓 서운하다는 듯 표정을 짓는 소녀.

"...."

도저히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다.

이 세계에서 나는 단 한 번도 그녀와 관련된 일을 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유진 칼리오페'가 아닌 '나'를 알고 있는 듯한 반응을 보여준단 말인가.

나는 숨을 길게 들이쉬고는 물었다.

"... 어떻게 나를 알지?"

"후후훗... 당연한 것을 묻사옵니다. 얼마만큼의 시간이 흐른다고 한들 소녀가 잊을 리 없지 않사옵니까."

나의 질문에 '아카조교사'의 마지막 메인히로인이자 '아스란 제국'의 유일한 히로인....

백소소가 새빨간 눈동자를 빛내며 말했다.

"소녀의 서방님을 말입니다.♡"

***

난 빠르게 루시아의 방으로 향하며 백소소와 나눈 대화를 떠올렸다.

'... 백소소.'

'흐읏...♡.... 서방님께 이름을 불린 것만으로도 황홀하옵니다. 소녀가 이날을 얼마나 기대하고 기대했는지... 하지만 백소소가 아닌 예전처럼 소소라고 불러주신다면... 소녀는 더욱 기쁠 것 같사옵니다.'

'그렇다면 역시 너는...'

백소소의 기억에 대해서 질문을 던지려고 하는 순간 방해꾼이 나타났다.

'이곳에 계셨군요. 백소소님. 모시러 왔습니다.'

뒤늦게 나를 알아본 교직원이 내게 목례를 하자 백소소가 말을 이었다.

'지금은 소녀에게 있어서 중요한 시간이니 방해하지 말아 주시옵소서.'

'네...? 하지만...'

'.... 소녀와 서방님의 대화를 방해하지 말라고 했사옵니다.'

'백소소님 지금 전학 수속을 하지 않으면 곧...'

'....'

교직원의 말과 함께 백소소의 손이 소매 안으로 들어가는 걸 본 내가 입을 열었다.

'다녀와라.'

'음... 서방님...?'

여전히 소매에 손을 넣은 채 고개를 갸웃거리는 백소소.

나는 침을 억지로 삼키고 말을 이었다.

'보니까 아직 수속이 끝나지 않았잖아.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을 텐데... 먼저 일을 다 끝내고 느긋하게 대화하고 싶지 않아?'

내가 최대한 평정을 가정한 채 말하자, 백소소가 방긋 웃으며 손뼉을 마주쳤다.

'후후훗, 역시 서방님입니다! 서방님은 언제나 옳은 말씀만 해주사옵니다. 이미 몇 년이고... 몇 년이고.... 기다려온 것을 고작 몇 시간을 더 참지 못하는 것도 풍류가 없지요.'

'....'

'그럼, 소녀.. 수속을 끝내는 대로 곧 서방님을 찾아뵙겠사옵니다'

그렇게 말하며 백소소가 교직원을 따라갔지만....

'... 솔직히 잘 모르겠다.'

루시아의 경우 내가 '아카조교사'를 클리어한 것이 한 번뿐이니 어느 회차를 기억하고 있는지 확실히 알고 있지만...

백소소의 경우 워낙 플레이 횟수가 많은 만큼 정확히 몇 번째 회차를 기억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 기억을 더듬고 있자 어느새 루시아의 방앞에 도착했다.

나는 방문을 열며 소리쳤다.

"루시아!"

"하으으!... 네.. 넷! 주인님!"

침대에서 폴짝하고 뛰어오른 루시아가 환하게 미소짓는다.

그리고 마치 주인의 퇴근을 기다리던 강아지처럼 내게 쪼르르 달려왔다.

"주인님께서 이렇게 급하게 저를 찾으시고...!! 이게 얼마만인지... 쓰흡... 하아... 주인님의 냄새... ♥... 아! 우선.. 벗을께요!!"

루시아가 어깨에 걸친 네글리제의 끈을 내리려고 하자 내가 다시 올려주며 말했다.

"아니. 지금은 그럴 시간이 없다."

내 여자들과 관계를 맺는 건 언제나 환영이지만 지금은 그럴 시간 없었다.

백소소가 전학 수속을 마치고 오기 전까지 대응책을 짜야 했다.

"아.... 네에... 주인님...."

냉정한 대응에 루시아가 눈에 띄게 풀이 죽었지만 말했다시피, 달래주기에는 시간이 없었다.

찬물을 한잔 들이킨 나는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 백소소가 전학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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