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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차 히로인이 조교를 기억함-247화 (247/354)

Chapter 247 - 이제는 숨길 필요가 없으니까 (4)

"저한테 뭘 감추고 있는지 말해요."

"감추다니요?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불초 멜피사. 공자님께 감추는 게 있을리 없지 않습니까."

갑작스러운 추궁에도 불과하고 조금의 흔들림도 존재하지 않는 멜피사의 얼굴.

하지만 저 완벽한 무표정이 내게는 오히려 확신을 심어 주었다.

"... 멜피사. 내게 거짓말까지 할 셈이야?"

"정말입니다. 저는 공자님께 아무것도 감추지 않습니다."

"...."

"...."

그리고 긴 침묵이 흘렀지만, 멜피사가 말할 기색을 보이지 않자 나는 짧은 한숨을 쉬고 말했다.

"좋아. 그럼, 파볼리에의 직계의 혈통을 잇는 자로서 파볼리에 멜피사에게 명령하지."

"... 고... 공자님?"

설마 파볼리에의 이름까지 사용할 줄은 몰랐는지 멜피사의 목소리가 떨려온다.

"대답해. 파볼리에 멜피사. 뭘 감추고 있지."

"....."

파볼리에의 이름 앞에서 거짓말을 할 수도, 그렇다고 진실을 말을 할 수도 없는 멜피사가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나는 그런 멜피사의 뺨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걱정하지 말아라. 네가 무엇을 감추고 있던 뒷일은 내가 책임지마."

"... 고... 공자님.. 저는... 저는..."

떨고 있는 멜피사를 조심스럽게 품으로 끌어당기자, 축축해진 어깨와 함께 속삭임이 귓가에 닿았다.

"... 죄... 죄송합니다... 제... 제가... 부족해서."

"혼자서 고생 많았다."

"... 고... 공자님..."

나는 한참이나 멜피사가 진정하도록 쓰다듬어주고는 말했다.

"뒷일은 걱정하지 말고 쉬어라. 이제부터는 내 방식대로 해결할 테니까."

멜피사가 걱정하지 않도록, 분노로 끓어오르는 속과는 달리 미소를 유지하며 방 밖으로 나갔다.

"유진아, 대화는 끝났어?"

"유... 유진님...."

방문 앞에서는 용서 받았는지 단정하게 옷을 차려입은 리아나와 비비안이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평정심을 유지하고자 천천히 숨을 내쉬고 리아나를 바라보았다.

"리아나."

"응, 유진아."

"폐하께서 돌아가셨다."

"... 흐음... 그래? 생각보다 일찍 갔네."

예상대로 황제의 부고 소식에도 리아나는 덤덤하게 반응할 뿐이다.

"화... 황제께서요?!"

오히려 놀란 건 비비안이었다.

두 눈을 크게 뜬 채 입을 양손으로 틀어막은 비비안.

상당히 귀여운 모습이었지만, 멜피사의 일로 머리가 가득 차 있는 상황이라 웃음이 흘러나오지 않았다.

"리아나, 너의 반란에 대한 처벌도 황위 계승권 박탈로 끝내기로 했으니 황태자는 곧바로 황위를 계승하겠지."

"응! 잘됐네. 근데 오라버니의 계승식이면... 어쨌든 황실에 다녀오기는 해야겠네. 유진이는 계승식에 올 거야?"

신분으로만 따지면 내가 계승식에 1순위로 초대받을 수 있을지 애매하다.

칼리오페의 혈통이기는 하지만 삼남, 그것도 모계 쪽은 완전히 멸문한 가문.

가고자 하면 갈 수는 있겠지만 반드시 첫 날에 초대받는다고 확신은 못하는 위치.

하지만 나는 이번 계승식에 무조건 첫 날 참석할 생각이었다.

"그래, 참석한다."

"흐음~, 그럼, 유진이를 내 파트너로 적어 놓을까~♪"

"상관없다. 마음대로 해라."

"... 어? 정말로?"

설마 순순히 허락할 줄은 몰랐는지 리아나의 눈이 크게 떠졌다.

"그 대신 도움이 필요하다."

나는 황태자가 멜피사에게 한 짓과 그 복수를 위한 계획을 둘에게 설명했다.

"유... 유진님 지.. 진심이세요?"

"응, 진심이야."

"하지만 유진아. 그렇게 되면 앞으로는 제국 어디를 가던 네 이름을 들을 수 있을걸?"

"상관없다.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나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가 뜨며 말했다.

"더는 숨길 필요가 없으니까."

***

베를리오즈가 피식 코웃음을 쳤다.

그녀의 시야에 보이는 것은 곤죽이 된 마물의 사체들.

중심으로 다가갈수록 마물의 등급이 올라가고 사체의 숫자도 늘어났다.

"... 호오."

사체를 확인하던 베를리오즈가 작은 감탄을 흘렸다.

신선한 사체일수록 남은 상흔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

처음에는 완전히 온몸이 짓뭉개졌던 것이, 점차 가슴이나 배를 꿰뚫는 수준으로 올라섰고, 가장 신선해 보이는 사체는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상처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깔끔하게 처리되어있었다.

'... 빠르게 느는구나.'

사체에 흔적이 남지 않는다는 건 점차 힘의 사용법이 능숙해진다는 증거였다.

"캬캬캿! 언제까지 계속 보고만 있을 게냐?"

사체를 살피던 베를리오즈가 경박한 웃음소리와 함께 말하자.

─슈우욱!

나무 위에서 작은 신형이 잔상과 함께 쏘아진다.

날카롭게 벼려진 손톱이 베를리오즈의 경동맥을 끊어내기 위해 날아왔다.

"이 정도로는 어림도 없다."

허나, 고개를 살짝 까닥이는 것으로 손톱의 궤도에서 벗어나는 베를리오즈.

습격자는 땅에 착지함과 동시에 개처럼 뛰어 베를리오즈의 심장을 다음 목표로 삼는다.

"캬캬캬캿! 본녀의 가슴을 주무르려 하다니 아직 10년은 이르다."

베를리오즈가 습격자의 주먹을 손바닥으로 쳐내자.

휘리릭!

습격자는 예상했다는 듯 그 힘을 이용해 제자리에서 회전하며 반대쪽 팔로 베를리오즈의 눈을 뽑아내려 한다.

"...!"

처음으로 예상을 넘어선 습격자의 움직임.

순간, 베를리오즈의 동공이 세로로 길게 찢어지며 세계의 흐름이 느려진다.

"... 처음부터 이걸 노리고 있었구나. 캬캿!"

느려진 시간 속에서 입꼬리를 올린 베를리오즈가 비앙카의 팔목을 붙잡은 수백 미터는 떨어진 나무를 향해 집어 던졌다.

뿌드득─!

관절이 뽑혀나가는 끔찍한 소리에 이어서 비앙카는 마치 물수제비처럼 땅에 부딪혔다 튕겨 오르는 것을 반복하며 날아갔다.

쿠웅─ !

결국, 목표로 했던 나무에 부딪히고 나서야 멈춘 비앙카를 보며 베를리오즈가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음, 본녀가 제자를 제대로 고르기는 했구나."

정신을 잃은 비앙카에게 다가간 베를리오즈가 뺨을 철썩 때리며 말했다.

"정신 차려라. 밥 시간이다."

"... 흐에... 에?... 바... 밥이다!!!"

밥이라는 말에 눈을 번쩍 뜬 비앙카가 머리통만한 주먹밥에 얼굴을 처박고는 정신없이 주먹밥을 씹어대었다.

그렇게 주먹밥을 반 정도 먹고 나서야 비앙카는 자신의 왼쪽 팔의 이상을 알아챘다.

"꺄아아아악! 파... 팔이 부러졌어!!"

"캬하핫!! 빨리도 눈치채는구나."

"아니, 진짜! 사람 팔을 부러트리면 어쩌자는 건데!!"

"부러트리지 않았다. 관절을 뽑아냈을 뿐이다. 맞추면 그만이다."

"그거나 그거나.... 씨이... 좀 봐주면서 하라고!"

비앙카의 투덜거림에 베를리오즈는 조금 전 비앙카의 움직임을 떠올렸다.

'... 캬하하핫! 그걸 봐주면서 하라고...?'

얼마 전까지는 베를리오즈는 상처하나 입히지 않고 비앙카의 폭주를 막아 낼 수 있었다.

하지만 성장한 비앙카는 베를리오즈가 팔을 뽑아내지 않으면 멈출 수 없는 수준까지 올라온 것이다.

"죽이려고 한 주제 팔 하나 뽑힌 거 같고 시끄럽구나. 됐으니까 그만 처먹고 팔부터 끼우거라."

"그건 이성을 잃었으니까 그런거고... 아이씨 이거 맞추기 아픈데."

비앙카는 투덜거리면서도 익숙하게 빠진 관절을 단숨에 끼워 넣는다.

뿌드득-!

".... 끄으으으...!! 하아, 그런데 여긴 왜 왔어? 벌써 다음 단계를 배울 때야?"

베를리오즈가 비앙카를 찾아온 건 언제나 단계를 넘어설 때뿐이었다.

하지만 베를리오즈는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

"아니다. 그것보다 애초에 다음 단계는 없다."

"뭐...? 다음 단계가 없다니?"

"말 그대로다. 본녀가 가르친 강신법(降神法)은 두 단계로 이루어진다."

나뭇가지를 하나 꺾은 베를리오즈가 바닥에 글을 쓰며 설명을 이었다.

"강신법의 첫 단계는 감정을 극한까지 끌어 올리는 것. 감정의 종류는 어떤 것이든지 상관없지만 너는 살의를 골랐지."

"... 네가 살의을 끌어올리라면서요."

"캬캬캿. 그래 그랬지. 넌 살의에 익숙한 상태고 전투에서 살의 만큼 도움이 되는 감정은 많이 없으니까 말이다."

고개를 끄덕인 베를리오즈가 글을 이어 적었다.

"어쨌든 두 번째 단계 극한까지 끌어 올린 감정을 연료로 12지신 중 한 가지 신을 강신(降神)을 이루는 게 두 번째 단계다."

"... 근데 궁금한 게 있는데. 이 세계의 신은 여신 한 분뿐인 거 아니야?"

여신교를 믿지 않는 비앙카지만 여신이 유일신으로 추앙받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맞다. 여신님만이 이 세계의 유일한 신이고 모든 것들의 어머니지."

"그런데 12지신은 뭔데."

"캬캬캿! 이름만 그런 것이다. 사실 이것들은 신이라기보다는 인간에게 잠들어있는 본성이라고 불러야 한다. 애초에 내가 처음 제자를 들였을 때는 강신이 아니라 탈각(脫却)이라고 가르쳤는데 어느 순간부터 자기들끼리 강신이라 부르더니 그 이름으로 퍼졌지."

여신과 제자들의 이야기를 하는 베를리오즈의 눈에는 그리움과 희미한 슬픔이 깃들어 있었다.

"쯧, 잡소리가 길어졌구나! 강령이든 각 어쨌든 본녀는 네가 호신(虎神)이나 묘신(猫神)을 강신시킬 줄 알았는데 견신(犬神)을 강신시킨 건 예상외였다. 캬하하핫!"

설명을 들은 비앙카가 묘한 표정을 지었다.

베를리오즈의 말이 칭찬하는 것인지 욕하는 것이 애매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뭘 말하고 싶은데? 너무 잘 배워서 이제 더 가르칠게 없다고?"

"... 쯧, 교만한지교. 강신법은 2단계부터 시작이다. 이제 겨우 입문한 주제 벌써 교만해졌구나."

"아니! 교만한 게 아니라 네가 절대 풀지 말라던 강신을 억지로 풀어놨잖아!"

"본녀도 풀고 싶어서 푼 것이 아니다. 그저 네 주인이 네가 반드시 필요하다길래 어쩔 수 없이 깨웠을 뿐이지."

"뭐? 유진이가?"

한치의 주저도 없이 대답한 비앙카가 이윽고 자기의 실수를 깨닫고 얼굴이 새빨개졌다.

"아.. 아냐!.. 그... 그 자식이 내 주인이라는 게 아니라."

"캬캬캬컀! 견신이라면 그럴 만도 하지. 본래 개라는 동물은 충성심이 강하니까 말이야."

"웃지 마! 그런 거 아니라고!!"

"캬하하하하핫!"

한참 웃어대던 베를리오즈가 아담한 가슴을 내밀며 말했다.

"어쨌든 자랑해도 좋다. 강신법을 배웠다는 건 본녀의 유일한 제자라는 소리니까."

"유일한 제자는 무슨 소리야... 아까는 제자를 들였다며?"

앞뒤가 맞지 않는 베를리오즈의 말에 비앙카가 되물었다.

"캬캬캿! 유일한 제자가 맞다. 본녀가 제자로 받은 것들은 전부 죽거나..."

거기까지 말한 베를리오즈가 비앙카를 바라보며 입술을 비틀었다.

"... 본녀가 죽였으니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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