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회차 히로인이 조교를 기억함-236화 (236/354)

〈 236화 〉 이제 제 차례 맞죠? (1)

* * *

시간을 조금 거슬러 올라, 여성진 사이에서 제비뽑기가 이뤄진 날.

“설마... 마르잔. 제가 모를 줄 알았어요?”

루시아의 속삭임이 마르잔의 심장을 움켜쥐었다.

“죄..죄...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루시아님...”

변명해야겠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는 차가운 목소리.

마르잔은 즉시 무릎을 꿇고 머리를 박으며 자신이 저지른 죄에 대해 고백했다.

“제...제가...잠시...정신이...나갔습니다.”

루시아님이 얼마나 유진님을 사랑하는지 누구보다 가까이서 지켜보았기에 차마 용서해달라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정말...죄송...합니다...두...두번..다시는...루시아님과..유진님의...앞에...나타나지..않겠습니다...”

혹시 용서를 강요하는 것처럼 보일까, 마르잔은 입술을 꽉 깨물며 눈물을 참았다.

죄를 저질러 놓고 염치도 없이 눈물을 흘릴 수는 없다.

“죄송....죄송합니다...”

빈민가에서 쓰레기처럼 사라졌을 목숨을 루시아님에게 주워져 이 자리까지 왔다.

하지만 그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한낱 성욕에 눈이 멀어 주인의 연인을 덮쳐버린 자신이 너무나 죄스러웠다.

“...하아. 마르잔. 고개 들어요.”

얼굴보기가 두려웠지만 루시아님의 명령을 거부 할 수는 없다.

천천히 고개를 든 마르잔의 눈에는 툭 건들면 쏟아질 만큼 눈물이 가득했다.

“....정말...울릴 생각은 아니었는데 말이죠.”

흐려진 시야 속에서 간신히 루시아님의 얼굴은 뭐랄까....

마지막에 먹으려고 아껴놓았던 딸기 케이크의 딸기를 빼앗긴 아이의 얼굴 같았다.

입술을 삐죽 내밀고 못마땅해 보였지만 목소리에서 느낀 만큼 차가운 얼굴은 아니었다.

“제가 조금 심술부렸네요. 미안해요.”

“아...아닙니다...루...루시아님...사과하실 일은 아닙니다. 전부 제가 성욕에 눈이 멀어서 저지른 일입니다...”

루시아의 사과에 마르잔이 기겁하며 손을 내질렀다.

하지만 루시아는 담담히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아뇨, 대충 예상은 했거든요. 마르잔이 덮칠 수도 있다고.”

“어...어떻게...”

마르잔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루시아를 보았다.

예상 가능할 리 없다.

면죄부로 사용할 생각은 없지만, 그날 유진을 덮친 건 어디까지나 충동적이었다.

그러자 루시아는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그야... 마르잔... 개변태잖아요? 계기만 있으면 덮치는 건 뻔하죠.”

“개..개변태!...그...제...제가....음란...하다는 말씀이십니까?!”

“네. 당연하죠. 방안에 음란 서적만 가득하고, 매일 밤 자위하지 않으면 잠도 못 자고, 몰래 냄새 맡는 걸 좋아하는 개변태녀가 마르잔이잖아요?”

“...그...그걸...루시아님이 어떻게...!!”

자신의 치부를 들켰다는 사실에 순간 마르잔의 목소리가 올라갔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다시 고개를 숙였다.

“...큰...소리를...내어서...죄...죄송합니다...”

“됐어요. 저한테 사실대로 말하지 않은 건 몰라도... 일단 주인님을 덮친 건 용서할게요.”

“....”

다른 것이면 몰라도 유진님과 관련된 일에서는 전혀 다른 사람 변하는 루시아님이다.

과연 저 말을 믿어도 되는지 고민하고 있자 루시아는 살짝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못 믿는 거 같네요. 하지만 진심이에요. 저 마르잔에게 빚이 있거든요.... 이걸로 빚은 갚은 거예요.”

“...네?”

루시아의 말에 마르잔이 눈을 끔뻑였다.

자신이 루시아님에게 빚이 있으면 몰라도 루시아님이 자신에게 빚이 있다니.

무엇을 말하는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다.

“...죄..,죄송합니다. 루시아님 무엇을 말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사실대로 고백하는 마르잔.

그러자 루시아는 부드럽게 웃으며 마르잔의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주었다.

“기억하지 못하는 게 당연하니까 죄송할 필요 없어요.”

“죄...죄송...”

다시 한번 사과하려는 마르잔의 입술에 루시아가 손가락을 가져다 대어 막았다.

“쉿, 죄송할 필요 없다니까요. 저는 기억하니까요. ....제 목숨보다 소중한 걸 구해준 마르잔의 모습을.”

루시아가 내민 손을 잡고 일어난 마르잔이 참았던 눈물을 흘린다.

“가...감사합니다....루시아님...용서해주셔서...감사합니다.”

“울지 마요. 전부 용서한 건 아니니까.”

“....에?”

“마르잔이 성욕에 미쳐서 주인님을 따먹은 건 용서했어요... 하지만 그걸 저에게 비밀로 하고 있던 건 별개죠.”

거기까지 말한 루시아의 눈이 차갑게 빛났다.

“...설마 마르잔 전부 용서받을 거로 생각한 건 아니죠?”

“아...아닙니다.”

“좋아요. 그럼 기대하고 있어요. 합당한 벌을 내릴 테니까요.”

***

3일 뒤.

루시아와 마르잔이 합법적으로 유진을 독점할 수 있는 날.

“마르잔. 일단 제가 오늘 하루 종일 주인님과 있을 건데 불만 있나요?”

“...없습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완전히 불만이 없지는 않았다.

오늘 하루 중 절반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었으니까.

하지만 이 상황에서 그걸 표현할 정도로 마르잔은 눈치가 없진 않다.

마르잔의 대답에 루시아가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그럼, 마르잔 벗어요.”

“네...?”

“벗으라고요. 벌을 내린다고 했잖아요. 지금 내릴게요.”

“...읏...네에...”

스륵─ 스르륵─

마르잔의 옷이 한 장씩 바닥에 쌓여간다.

곧이어 나신이 된 마르잔이 창피하다는 듯 몸을 꼼지락거렸다.

“버...벗었습...니다...루...루시아님...”

“흐음... 제법 야하네요. 이런 야한 몸으로 주인님을 덮친 거네요.”

마르잔의 몸은 비비안처럼 특별히 가슴이 크거나 한 건 아니었지만, 딱 보기 좋을 정도로 드러난 복근이라던가 매끄러운 피부는 시선을 끌기 충분했다.

“죄...죄송합...”

“저한테 사과할 필요는 없어요. 덮쳐진 건 주인님이니까요. 주인님에게 사과드려야죠.”

“...네...”

마르잔이 고개를 살짝 숙이자 루시아가 뜬금없는 말을 꺼냈다.

“그럼, 마르잔은 뭐로 할까요?”

“무...뭐가 말입니까?”

“암캐도 있고, 암코양이 있으니 마르잔은 음....”

잠시 턱 끝에 손을 대고 고민하던 루시아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암퇘지 정도로 할까요?”

“루...루시아님...?”

다른 동물도 아니고 하필이면 돼지라니...!!

최근에 살짝 체중을 신경 쓰기 시작한 마르잔에게는 꽤 큰 충격적인 선택이었다.

“마르잔도 좋죠?”

“....네.”

하지만 어쩌겠는가.

루시아는 ‘갑’이고 마르잔은 ‘을’이다.

마르잔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하자 루시아의 손가락이 마르잔의 아랫배를 꾹 누른다.

“암퇘지라고 했잖아요. 지금부터 마르잔의 모든 대답은 ‘꿀’이에요. 이해했나요?”

“...꿀.”

“좋아요. 그럼, 지금부터 마르잔의 몸에 낙서를 할게요.”

“꿀...”

“우선 배에는 ‘저는 성욕에 눈이 멀어 주군의 연인을 따먹은 암퇘지입니다.’라고 적어볼까요.”

“...그건...”

마르잔이 반사적으로 대답하려고 하자.

루시아의 손가락이 다시 자궁이 있는 쪽을 꾹 누른다.

“대답은 어떻게 하라고 했죠?”

“...꿀...”

“잘했어요. 자, 그럼 거울 앞에 가서 서요.”

“꿀...”

거울에 비친 마르잔의 나신은 어째서인지 평상시보다 더욱 야릇하게 보였다.

“그럼 적을게요.”

움찔─!

루시아의 손가락이 움직일 때마다 마르잔의 몸이 떨린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간지러운 감각과 함께 마르잔의 아랫배에 글씨가 새겨진다.

“잘 적혔네요. 그쵸?”

[저는 성욕에 미쳐 주군의 연인을 따먹은 암퇘지입니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본 마르잔의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다.

수치스럽다.

기사로서 감당할 수 없는 수치에 정신이 나갈 것 같다.

하지만...

“꿀...꿀...”

이런 수치를 당하면서도 마르잔은 몸이 점점 달아오르는 게 느껴졌다.

“그럼 가슴에는 뭐라고 적을까요?”

“...꿀..?”

이걸로 끝이 아니란 말인가.

마르잔이 놀라 눈을 크게 뜨자 루시아는 방긋 웃으며 말했다.

“꿀꿀거리기만 하는 암퇘지랑은 말이 안 통할 테니까 미리 할 말을 적는 거죠. 자, 그럼 양손으로 가슴을 잡고 모와봐요.”

“꿀...”

파이즈리를 하듯 모인 가슴 사이에 손가락을 대고 글씨를 적어가는 루시아.

[암퇘지가 벌을 받는 중입니다. 마음껏 괴롭혀주세요.]

가슴을 모은 상태에서 적은 글씨다.

즉, 유진님에게 이걸 보여주려면 다시 가슴을 모을 수밖에 없는 뜻.

그 광경을 상상한 마르잔은 체온이 급격하게 상승하는 걸 느꼈다.

“그럼, 다음은 엉덩이에요. 엎드리세요.”

“꿀...”

“혹시 주인님이 질문 할 수도 있으니 대답하기 편하게 왼쪽에는[네]를 오른쪽에는[아니요]를 적어드릴게요.”

스윽─ 스윽─

그 외에도 허벅지, 겨드랑이, 같이 몸 이곳저곳에 잔뜩 낙서 당한 마르잔.

잠시 뒤, 낙서를 끝낸 루시아가 이마를 닦으며 말했다.

“후, 이정도면 충분하겠네요. 그럼 이제 주인님을 모셔오세요.”

“꿀...?”

그렇게 말하며 루시아가 던져준 건 얇은 코트 한 장뿐이었다.

여름이 끝나갈 무렵이라 제법 선선해지기는 했지만, 아직 이런 코트를 입기에는 이른 날씨.

분명 입고 나가면 사람들의 눈에 띌 테지만...

“자, 마르잔 주인님을 모시고 오세요.”

“...꿀...꿀...”

루시아님의 명령을 절대적이다.

어쩔 수 없이 코트 하나만을 걸치고 밖을 나서는 마르잔.

‘미...미쳤어...이...이런...꼴로...카르네아를.....’

뭔가 이상했다.

분명 처음에는 수치심만이 가득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잠든 유진님을 몰래 따먹었을 때 느꼈던 흥분과 배덕감이 마르잔을 감쌌다.

‘...보...보고있어...’

예상했던 대로 아직 코트를 입기에는 이른 날씨다.

엄청나게 시선을 끌 정도는 아니더라도 지나가는 사람이 한 번씩은 쳐다보는 수준은 된다.

두근─ 두근─

‘...으...음란한..말이..잔뜩...적혀있는데...코...코트...하나만...입고...카르네아를...거...걷고...있어..’

사람들과 눈을 마주 칠 때마다 코트에 스친 젖꼭지가 점점 딱딱해지고, 애액이 보지를 적시는 걸로 부족해 허벅지를 타고 흘러내린다.

‘...흐읏....조...조금만...천천히...’

민감해진 몸 탓에 어색하지 보이지 않도록 걸음 속도를 늦춘다.

그렇게 평상시보다 몇 배의 시간이 걸려 유진의 방 앞에 선 마르잔.

‘....하아...하아....유...유진님에게...이...이런...변태..같은..모습을...보여줘야...한다고..?’

흥분으로 이빨이 딱딱 부딪치고 다리가 덜덜 떨린다.

‘노...노크...노크...한다..♥“

몇 번이고 심호흡을 한 끝에 마르잔이 마침내 문을 두드렸다.

─똑똑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