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6화 〉 부부사기단 (3)
* * *
“... 흐음, 너무 뻔한 수를 쓰네. 재미없어~”
재판 서류를 읽던 리아나가 책상에 엎드려 볼을 부풀렸다.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페드로 롱기스트’에게 유리하게 이루어진 재판.
이런 식으로 나올 거라 짐작은 했지만, 예상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않으니 짜증이 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참관인 리스트가 문제였다.
자신을 제외하고는 롱기스트를 지지하는 귀족들의 이름만 적혀있다.
우르엘라의 차기가주는 이런 뻔한 수를 쓰지 않았을 테니 분명 페드로 쪽에서 직접 작업했을 것이다.
“멍청하긴 자기 목을 조르는 줄도 모르고...”
짧은 한숨을 내쉰 리아나가 혀를 찼다.
한심했다.
아직도 페드로 쪽은 이 사건이 단순히 개인과 개인의 문제라 생각하는 게 분명했다.
최소한 평등했다는 ‘구색’이라도 맞추려면 평민과 귀족들의 수 정도는 비슷하게 했어야지.
이렇게 눈에 띄는 방식으로 몰아주면 평민들의 반발만 심해질 뿐이었다.
“하긴 거기까지 예상하기 바라는 건 내 욕심인가. ...뭐, 나야 더 편해졌으니 상관없지만.”
서류의 내용은 한 번 훑은 것만으로 완전히 암기했다.
서류를 구겨 쓰레기통에 집어 던지려던 순간.
“...응?”
뒷면에 적혀진 한 이름이 눈에 띄었다.
“유진 칼리오페...유진이가 참여한다고?”
혹여나 잘못 봤을까, 다시 한번 이름을 확인해봐도 여전히 ‘유진 칼리오페’가 참관인 자격으로 재판에 참여한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무슨 짓을 하려고...후훗♬”
리아나의 눈이 초승달처럼 휘어지고 즐거움이 가득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유진의 얼굴을 떠올린 것만으로도 지독하게도 괴롭히던 지루함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설마 유진이는 이 사건이 어떤 의미인지 눈치챈 걸까?”
관계자도 아닌 그가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참관인에 적힌 유진의 이름을 보자 제멋대로 기대하게 된다.
‘...10년 전 자신의 본성은 눈치챘던 유진이라면.’
그 정도 수준의 관찰력을 가진 그라면...
어쩌면 이번 사건이 제국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짐작하고 있을 수도 있다.
“과연 어떻게 나오려나?”
자신을 막아설 유진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두근거린다.
유진에게 패배한 자신의 모습을 떠올려도 좋았고, 반대로 막아서는 유진을 엉망진창으로 만드는 것도 좋았다.
재판의 승패 따위는 리아나에게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리아나에게 있어 중요한 건 승패가 아니라 이런 재판이 벌어졌다는 자체와 ‘루시아 우르엘라’가 재판장을 맡았다는 것.
이 두 가지 사실만 있다면 리아나는 얼마든지 불꽃을 키울 수 있다.
“막기 쉽지 않을텐데~♪...후훗 기대하고 있을게.”
***
재판 당일.
제이빗과 페드로 롱기스트는 각각 피고인석과 원고인석에 앉았다.
그리고 그 가운데인 재판장의 자리에는 루시아가 있었다.
내가 참관인석에 앉자 앞에 있는 황녀 전하께서는 나를 발견하고 가볍게 손을 흔들었고 나는 목례도 답했다.
“그럼 개정하겠습니다.”
루시아의 정갈한 목소리가 재판소에 가득 울려퍼졌다.
재판 내용은 따로 설명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단순했다.
페드로의 일방적인 공격과 제이빗의 침묵으로 진행되었으니까.
제이빗의 침묵에 나도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이내 의도를 짐작할 수 있었다.
‘...황녀 전하의 노림수다.’
제이빗이 멋대로 떠들다 말실수를 하는 것보다는 묵비권을 행사하는 쪽이 훗날 침묵의 이유를 붙일 때 편하다.
아마 침묵의 이유는 롱기스트 가문의 살해 협박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존경하는 재판관님. 이상으로 저는 결투의 무효 신청과 제이빗의 정중한 사과를 요청하는 바입니다.”
그런 리아나의 계획은 짐작도 하지 못한 페드로는 자신의 언변 때문에 제이빗의 말문이 막힌 줄 아는 듯.
루시아를 향해 느끼한 미소를 지으며 허리를 살짝 숙였다.
저런 역겨운 미소를 보면서도 루시아는 표정 하나 바뀌지 않은 채 제이빗에게 물었다.
“피고측, 변론이 있으신가요?”
“...없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판결을 내리겠습니다.”
천천히 눈을 감았다 뜬 루시아가 입을 열었다.
“피고측에서 어떠한 변론도 없는 관계로 원고측의 모든 주장을 인정하겠습니다.”
루시아의 판결이 내려졌지만, 누구도 들뜬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이들에게 있어서는 이 판결은 당연한 결과이니까.
“그럼, 지금 이 자리에서 사과를 받아 볼까요.”
옷깃을 정리한 페드로는 능글맞은 웃음을 지으며 제이빗에게 다가갔다.
그 순간, 손을 치켜든 리아나가 입이 살짝 벌어졌다.
“...이 판결 저는 인정 할 수...”
“이의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런 리아나의 목소리를 지우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크게 소리쳤다.
“...참관인께서는 발언권이 없습니다. 조용히 하시고 자리에 앉으시길 바랍니다.”
날을 세운 칼처럼 매서운 눈빛으로 노려보는 루시아.
나는 그런 루시아의 말을 가볍게 무시하고 더욱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애초에 재판이 벌어진 이유가 무엇입니까! 제이빗이 비겁한 수를 사용했다는 이유입니다! 웃기지도 않는 소리입니다! 제이빗은 마검사입니다! 결투 전 제출 서류에도 마법과 검을 같이 사용하겠다고 적었습니다! 그런데 이제와서 결투 중에 마법이 사용되었다고 비겁하다니요!”
재판장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멋대로 떠들어대는 모습에 수많은 시선이 날아와 박힌다.
그 시선 중에는 황녀 전하의 것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
리아나의 시선에 담긴 감정은 의문이었다.
당연한 의문이다.
리아나는 내가 자신을 견제하기 위해서 이곳에 왔다고 생각할 테니까.
그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다만 방식만큼은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나는 리아나와 반발하는 대신 리나아의 자리를 빼앗을 생각이니까.
‘...리아나의 계획은 크게 3단계.’
첫 번째, 리아나를 구심점 삼아 하급 귀족들과 평민들을 집결시킨다.
두 번째, 그들을 선동해 카르네아에서의 폭동을 일으킨다.
마지막으로 카르네아의 폭동을 제국의 내전을 퍼트린다.
부실하지만 리아나라는 압도적인 구심점이 존재하기에 성립할 수 있는 계획.
...하지만 그 구심점이 두 개가 되면 어떻게 될까?
단결되지 못한 조직은 오합지졸에 불과하다.
내전은커녕 폭동조차 제대로 일으키지 못한채 진압당할 것이 뻔하다.
물론 내겐 리아나 같은 초인적인 능력이 없기에 시간이 흐를수록 내가 아닌 황녀쪽에 붙는 사람들이 늘 것이다.
‘...하지만 내겐 루시아가 있다.’
허나, 내게도 사람들을 끌어올 방법이 존재했다.
그것도 ‘리아나 루멘하르크’가 직접 만들어준 방법이.
‘...인간은 공통의 적이 있을 때 단결한다.’
언제 어디서나 통용되는 법칙이다.
그리고 여기서 가장 큰 적은 ‘페드로 롱기스트’가 아니다.
롱기스트 가문이 아무리 힘이 있다고 한들 모든 평민들의 적이 되기에는 격이 부족했다.
하지만 우르엘라 가문은 어떤가?
롱기스트 가문은 들어보지 못한 사람조차 우르엘라 가문은 들어봤을 것이다.
리아나가 재판장으로 루시아를 고른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평민들의 알기 쉬운 공통의 적.
그것이 루시아다.
하지만 일방적으로 미워한다고 해서 적이 될 수는 없다.
적이라는 건 서로 상대를 해야 하는 법이니까.
그렇기에 지금 이 순간까지 루시아와 나는 서로를 증오하는 연기를 해왔다.
“애초에 제이빗은 ‘렌치 페르벨’의 부상으로 인해 대리로 결투에 참여했습니다. 그런데 이걸 보십시오. 렌치 페르벨은 순수 마법사입니다! 그렇다면 만일 렌치 페르벨과 결투가 성립됐다면 어떻게 결투를 할 생각이었습니까?"
[나는 루시아를 증오하기에 루시아에게 맞선다.]
“...다시 한번 경고합니다. 참관인께서는 발언권이 없습니다. 입을 다무세요!”
[루시아는 나를 증오하기에 황녀가 아닌 나를 공격한다.]
모든 사건의 개연성은 ‘증오’라는 감정으로 정리가 되는 것이다.
“아뇨, 다물지 못하겠습니다! 순수 마법사에게 마법을 쓰지 말고 주먹으로 싸우자고요? 그거 참으로 롱기스트 같은 공정한 방식입니다!”
내가 비웃음이 가득한 얼굴로 페드로 롱기스트를 노려보자 그가 눈에 핏발을 세우며 이를 갈았다.
설마하니 참관인석에서 그것도 대가문의 일원인 내가 자신을 공격할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한 모습이다.
“저 녀석은 마법을 숨겨두었다! 결투 시작 후부터 줄곧 마법 사용 계열의 마법을 사용하던 녀석이 갑자기 안개를 뿌렸단 말이다!”
“기술을 감추는 것은 실력입니다. 그쪽은 어떤 기술을 사용할지 결투 전부터 다 떠들어 대는 모양입니다.”
쾅─
그때 루시아의 자리에서 커다란 소음이 일었다.
사람들의 시선을 모은 루시아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미 판결을 내린 사건입니다. 판결에 번복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결투의 결과는 무효이며 제이빗은 페드로 롱기스트에게 정중한 사과를 해야 합니다.”
증오스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루시아를 보며 나는 미소를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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