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회차 히로인이 조교를 기억함-146화 (146/354)

〈 146화 〉 성녀(??)님 말고 성녀(??)님 (4)

* * *

“퉤엣!”

자애와 고귀함의 상징이라 여겨지던 성녀의 얼굴에 침과 뒤섞인 정액이 들러붙었다.

...설마하니 여기서 비앙카가 침을 뱉을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베아트리스가의 장녀 따위는 눈조차 제대로 마주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지위에 있는 상대가 바로 성녀란 말이다.

“...후아...정..액...”

하지만 내게 더 큰 충격을 준 건 그 성녀가 황홀한 표정을 지으며 얼굴에 묻은 정액을 핥고 있다는 거다.

‘...이게 뭔데...’

릴리스 조교의 정석은 방법은 수면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신체개발이다.

순수한 정신과 달리 성을 깨우쳐버린 신체 탓에 나를 볼 때마다 느껴지는 알 수 없는 흥분과 쾌락 속에서 후회하고, 괴로워하다가 결국 참지 못하고 먼저 덮쳐오는 그런 조교란 말이다!

꼴깍─ 꼴각─

“...흐읏...”

하지만 지금의 릴리스를 봐라.

며칠째 사막에서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던 여행자가 오아시스라도 만난 듯 필사적으로 정액을 삼키고 있다.

‘...이걸 누가 성녀(??)로 봐.’

저건 누가 봐도 성녀(??)다.

마지막 한 방울의 정액까지 싹싹 긁어먹은 릴리스가 혓바닥으로 아쉽다는 듯 입술을 핥더니 탁한 눈에 서서히 빛이 돌아온다.

멍하니 이 광경을 지켜보던 나는 성녀가 제정신을 차리기 전에 비앙카가 가져다준 옷을 주워입었다.

“어...?”

잠시 후, 완전히 정신이 돌아온 듯 눈을 깜빡거리고 주변을 돌아보는 릴리스.

“...정신이 들어요?”

“꺄아아악...! 유...유진...칼리오페...?”

성녀가 내 이름은 어떻게 아는 걸까?

마르잔이 성녀에게 내 말을 전했다면 분명 보고했을 테니 마르잔을 통해서 안 것도 아닐 텐데 말이다.

이해하기 어려운 일의 연속이었다.

“....”

등 뒤에서 시선이 느껴진다.

뒤를 돌아보지 않아도만난 적 없다던 성녀가 내 이름을 부른 탓에비앙카의 심기가 불편한 것 같았다.

나는 애써 등을 찌르는 시선을 무시하며 물었다.

“혹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해요?”

“...그...그게....”

질문을 듣는 순간 릴리스의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다.

“...네...흐릿하지만...기억해요...”

차라리 기억을 잃었다면 좀 편했을 텐데 이런 건 또 기억하고 있다.

“그러니까...저...릴리 화이트플랑이...유진 칼리오페님의 정액을...마신거죠...?”

입술을 핥으며 야릇한 시선으로 내 다리 사이를 바라보는 성녀님.

쾅─

비앙카가 의자를 주먹으로 내리치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야, 씨발년아... 내 남자한테 꼬리 치지 마.”

“히이익..! 그...그쪽은 누...누구세요...?”

“그건 알 거 없고. 너... 한 번만 더 얘한테 꼬리 치면 나한테 죽어.”

아마도 태어나서 처음 받아봤을 직접적인 살해 협박에 릴리스가 굳어버린다.

릴리스가 굳어있는 사이 나는 비앙카를 끌고 문밖으로 나갔다.

“...선배 좀 진정해요.”

“하, 조금 전에 꼬리 치던 거 못 봤어? 정액 달라고 난리 친 거야 미친년이었으니 그렇다 쳐도 제정신일 때 저러는데 어떻게 진정해?”

콧방귀를 뀐 비앙카가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 됐으니까 너도 약속해. 이제 쟤 안 만나겠다고.”

“....”

“뭐야? 왜 대답을 안 해?”

지킬 수 없는 약속이기에 대답할 수 없었다.

‘되살아난 타락’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녀가 필요했다.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꼭 같이해야 하는 일이 있어서요.”

“싫어!”

“...비앙카.”

“싫어! 싫다고...! 이건 이름 부른다고 안 넘어가! 불안하다고...!”

비앙카가 고개를 저을 때마다 한쪽으로 묶은 머리카락이 말꼬리처럼 흔들렸다.

“꼭 쟤여야 하는 이유가 뭔데? 나는 안 되는 거야?”

“...네. 위험한 일이에요. 선배가 들어서 좋을 게 없어요.”

지금 비앙카의 상태를 보아하니 상황을 설명하면 자기도 같이 가겠다고 말할 게 분명해 보였다.

“그렇다면 더 싫어! 위험한 거 때려치우고 나랑 같이 있어! 너가 해달라는 거 다해줄 테니까! 꼭 너가 해야만 할 필요는 없잖아! 왜 하필 넌데!”

내가 해야만 하는 이유...

그 답은 너무나 간단했다.

“...저밖에 할 수 없는 일이니까요.”

내 말을 들은 비앙카가 입술을 꽉 깨물며 말했다.

“그래도 싫어... 어떻게해도 해야 한다면 나랑 같이해!”

“...선배, 이건 장난이 아니에요. 위험한 일이라고요.”

“나도 장난 아니야! 병신아! 너가 위험한 걸 알면서 나 혼자 안전한 곳에 있으라고? 지랄하지 마!”

비앙카가 작은 손으로 내 멱살을 붙잡고 소리쳤다.

“나도 위험한 거 하기 싫어! 하지만 너가 위험한 건 더 싫어! 그러니까 내가 널 지키겠다고! 내가 죽더라도 너 지키겠다고! 그만큼 널 좋아한다고! 왜 이걸 못 알아 처먹는건데 병신아!”

감정에 북받쳐 쏘아붙인 비앙카가 이내 무슨 말을 했는지 깨달았는지 얼굴이 붉게 물든다.

“...아...아니...그렇다고 진짜 죽을 만큼 좋다는 건 아니고...”

비앙카의 태도에 한숨과 웃음이 동시에 튀어나오려 한다.

‘...어떻게 하지?’

‘되살아난 타락’을 상대하는 최적의 인원은 나와 성녀, 이 둘로 정해져 있다.

그러니 만일 비앙카가 ‘되살아난 타락’을 상대할 때 저 말을 했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떼어놓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하려는 건 어디까지나 ‘숙주’를 찾는 거지 ‘되살아난 타락’을 상대하는 건 아니다.

‘...아직 시간 여유가 있으니까...’

드물지만 사전답사 때 페이크보스가 나올 때도 있으니, 육체파인 비앙카를 데리고 가는 것도 고려해볼 만했다.

“...알았어요. 선배. 설명 해줄테니 잠시만 지켜보고 있어요.”

“응...”

쪽팔림 때문에 얌전해진 비앙카를 데리고 다시 교실로 들어가서 릴리스를 불렀다.

“...성녀님.”

“네...?”

반사적으로 대답한 릴리스가 잘못을 깨닫고 눈을 데굴데굴 굴린다.

“...흐앗...아...아니요? 서..서..서..성녀님이라니 저는 리...릴리스가! 아니라 그냥 릴리 화이트플랑인데요? 릴리스 성녀님같이 훌륭한 사람이 아니에요.”

“....?”

릴리스의 반응을 본 비앙카의 표정이 묘해진다.

비앙카도 알아챈 거다.

진짜 성녀가 아니라면 이렇게까지 당황할 필요가 없다는 걸.

“그런가요. 그렇다면 여신님께 맹세할 수 있나요?”

“아...안돼요!...읏...!...저...저는 성녀가 아니지만 그래도 안 돼요!”

“성녀님... 이미 다 알고 있습니다. 변장을 푸시고 본래의 모습을 보여주시죠.”

“...아...안된다고 했잖아요?”

이 어리숙한 성녀는 자기가 부정하는 것 자체가 잘못됐다는 걸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았다.

“...??”

비앙카의 머리 위에 물음표가 몇 개는 떠오른 것처럼 보인다.

그야 그럴 것이다.

대외적으로 알려진 이미지와 릴리스의 이미지가 너무 다르니까.

“...성녀님. 마지막 기회입니다. 성녀님 스스로 정체를 드러내시던가. 아니면 제가 파르테논에 성녀님에 정체에 관한 편지를 보내던가 선택하시죠.”

“...유..유진 칼리오페님... 저..릴리스...한테...왜...이러는거에요...!”

카르네아에서 쫓겨 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눈물을 글썽거리는 릴리스를 보자 마음이 약해지지만 어쩔 수 없다.

“나쁜 의도는 없습니다. 성녀님의 힘이 필요한 일이 있어서 그런 것뿐입니다. 성녀님의 정체에 대한 건 여신님께 맹세코 비밀로 하겠습니다.”

“저...정말...저..릴리스에 대해....비밀로 해주실 건가요?”

“네.”

내가 주저없이 대답하자 릴리스가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알았어요...약속은...꼭 지켜야해요...”

그 순간 평범했던 갈색 눈동자와 머리카락이 벚꽃색을 녹여낸 듯한 진한 분홍빛으로 물들고, 이윽고 양호 마망과 닮은 릴리스가 나타났다.

“여기요...”

“...말도 안 돼...진짜...성녀라고...?...저...걸레가...?”

비앙카가 입을 벌리고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저...걸레가 뭔가요?”

“너 말이야! 너! 아무하고 섹스하고 다니는 년!”

비앙카가 쏘아붙이자 릴리스가 시선을 내리깔며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 릴리스... 걸레 아니에요... 처녀의 몸인데요.”

“지랄하지 마! 너 같은 처녀가 어디있어!”

“...저..정말이에요... 아이리스 선생님께서 저한테는 아직 진짜 보지는 이르다고 손보지랑 입보지랑 젖보지 사용법만 알려줬어요.”

“...”

성녀의 입에서 천박하기 짝이 없는 단어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모습을 보자 머리가 지끈거린다.

‘...아이리스...!’

그럼 성녀가 이렇게 된 게 다 양호 마망의 탓이란 말인가?

며칠 전 양호실을 잠깐 들렸을 때도 이런 짓을 하고 있었단 말은 없지 않았던가.

양호 마망이 도대체 나 몰래 무슨 짓을 했길래 성녀가 이렇게 됐는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아니야... 이건 중요한 게 아니다. 지금 중요한 건 숙주를 찾는 거지.’

간신히 제정신을 차린 내가 릴리스에게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성녀님. 성녀님의 힘이 필요한 일이 있습니다.”

“도와드릴께요!!...대신 조...조건이 있어요!”

성녀의 즉답에 내가 미간을 좁혔다.

원래 릴리스의 성격이라면 누군가의 도움에 이런 조건을 내밀리 없다.

바보 같기는 해도 한없이 착한 게 릴리스였으니까.

누구든지 도와달라고 하면 조건 없이 도와줬을 것이다.

‘....죄송해요!죄송해요!’

유진의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지금 릴리스는 도움에 조건을 달았다는 사실에 엄청난 죄책감을 느끼며 괴로워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동족을 만나 깨어나 버린 릴리스의 ‘피’가 이성을 잡아먹고 있었다.

‘그래도...저 릴리스 놓칠 수 없어요!’

흐릿한 의식 속에 릴리스는 느껴벼렸다.

지금까지 인생에서 경험했던 그 무엇보다 압도적인 황홀한 감각이 몸 안을 가득 채우는유진의 정액을.

이걸 한 번 맛 본 순간, 육체가 유진 전용으로 귀속되어 버렸단 말이다.

‘입으로도 이정도인데... 보지로 받게 된다면...?’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자궁이 애달프게 떨려온다.

침을 꿀꺽 삼킨 릴리스가 눈을 감고 외쳤다.

“저...릴리스에게...진짜 보지를 사용하는 방법을 알려주세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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