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5화 〉 핑크 & 핑크 (1)
* * *
카르네아로 향하는 마차 안에서 상태창을 확인했다.
‘...이상하다.’
비비안의 조교도가 제멋대로 오르고 있다.
분명 95%에서 멈춰있던 조교도가 96%를 뚫더니 어느새 99%까지 차올랐다.
‘..도대체 왜 오르는 거지? 방치 플레이?’
조교도가 올라서 나쁠 건 없지만 비비안의 조교도가 95%를 넘기 위해서는 비앙카의 공략이 필수조건이라 생각했는데...
‘내가 모르는 방법이 또 있었나?’
애초에 ‘아카조교사’는 워낙 변수가 많은 게임이니 내가 모르는 공략법이 있다고 해도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띡
그 순간, 비비안의 조교도가 변했다.
[조교도 : 99% > 100%]
이렇게 실시간으로 조교도가 오르는 건 처음 보았다.
지금까지는 조교를 끝내고서야 상태창을 확인했으니까.
[비비안 베아트리스의 트라우마가 사라졌습니다.] [비비안 베아트리스의 능력치 제한이 삭제됩니다.]
───
[이름 : 비비안 베아트리스]
[직업 : 마법사]
[칭호 : 없음]
[조교도 : 100%]
[능력치]
근력 15 민첩 13 체력 15
지력 54 마력 55 행운 8
───
‘오.’
비비안의 능력치를 확인한 내가 감탄했다.
역시 마법 쪽 재능은 비비안이 압도적이었다.
‘이러면 비비안도 1반에 넣어달라고 청탁 해야겠네.’
이전까지는 약간 애매했지만, 지금이라면 비비안을 1반으로 편입시켜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
내가 만족스러운 얼굴로 상태창을 닫으려고 할 때 무언가 이상한 것이 눈에 띄었다.
조교 된 히로인
─루시아 우르엘라
─비비안 베아트리스
─레이카 칼리오페
─가르시아 마이샤
─엠마
─파볼리에 멜피사
─비앙카 베아트리스 (NEW)
“....?”
비비안이야 그렇다 쳐도 왜 비앙카는 혼자서 조교 되었단 말인가?
“무슨 일 있으세요?”
루시아의 질문에 내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냥 좀 지루해서.”
“후훗. 주인님. 그럼 아~ 하세요.”
나는 루시아가 먹여준 과일을 우물거리며 비앙카의 상태창을 확인했다.
───
[이름 : 비앙카 베아트리스]
[직업 : 고유 능력자]
[칭호 : 노력가]
[조교도 : 80%]
[능력치]
근력 38 민첩 41 체력 35
지력 13 마력 20 행운 9
───
비앙카의 능력치는 카르네아에서 상위권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부족함이 있었다.
그러나 비앙카의 진짜 힘은 고유능력을 발동할 때 나온다.
고유능력 : [신체강화 (Rank A)]
무려 A랭크의 고유능력.
내 염동력이 최근 들어서야 겨우 C랭크에 도달한 걸 생각했을 때 A랭크의 고유능력은 그야말로 압도적이다.
이 정도의 고유능력을 갖춘 비앙카가 어째서 2학년의 수석을 차지하지 못 했냐고 묻는다면...
신체 강화 계열의 능력은 쉽게 강해지는 만큼 단순해 한계가 명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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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교사 (Rank EX)
주인님의 것은 주인님의 것 육변기의 것도 주인님의 것!
일정 수준 이상 조교 된 히로인의 스킬(마법)‘3 > 4’개를 최대 ‘74’% 위력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사용 가능한 스킬의 개수와 위력은 히로인의 조교도에 따라 변화합니다.
[바람─칼날 (하급 바람 원소 마법)] [‘루시아’에게서 조교사로 생성됨, 위력 74%]
[베어라─바람—칼날 (중급 바람 원소 마법)] [‘비비안’에게서 조교사로 생성됨, 위력69 > 74%]
[그림자 (파볼리에 혈족 마법)] [‘멜피사’에게서 조교사로 생성됨, 위력 74%]
[신체 강화 (Rank A)] [‘비앙카’에게서 조교사로 생성됨, 위력 5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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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교사’로 여러 마법과 고유능력을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나로서는 능력치를 올려주는 능력은 일단 넣어둬서 손해 볼 게 없었다.
우웅—
‘미친...’
위력을 확인할 겸 신체강화를 사용해보니 마력과 행운을 제외한 모든 스탯이 8이나 상승했다.
‘신체 내구도가 올라가지 않는 건 아쉽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비장의 한 수로는 충분했다.
“슬슬 카르네아에 도착합니다.”
신체 강화를 해제하자 마르잔의 목소리가 들렸고얼마 지나지 않아 마차가 멈춰섰다.
“후우...”
예상대로 개학까지는 아직 며칠간의 여유가 있는 터라, 입구에는 사람 하나 보이지 않았다.
“먼저 들어가 계시죠. 마차를 세워놓고 따라 들어가겠습니다.”
마르잔의 말을 들은 내가 되물었다.
“...호위는 같이 못 들어 올 텐데?”
시종이라면 몰라도 무력을 휘두를 수 있는 호위는 카르네아의 출입이 엄격히 제한 되어 있었다.
“아, 죄송합니다. 유진님. 말씀드리는 걸 깜빡했습니다. 저도 올해 카르네아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
내가 눈을 크게 뜨고 놀라자 루시아가 설명을 덧붙였다.
“주인님, 마르잔은 성녀의 감시역으로 입학시켰어요.”
“아...”
나는 웬만하면 메인스토리에는 관여하지 않는게 좋다고 생각하지만, 예외적인 인물이 두 명 존재했다.
첫 번째는 두말할 것도 없이 황녀고 다른 한 명이 성녀다.
그 이유는...
“아무래도 그 성녀님은 조금... 순수하시잖아요?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필요할 거 같아서...”
루시아가 열심히 말을 돌려서 하고 있지만, 쉽게 말해 ‘빡대가리’라는 거다.
그것도 심각한...
...하지만 내가 놀란 이유는 그 부분이 아니다.
“...마르잔이 나보다 연하였어?”
“어머나.”
내 말을 들은 루시아가 입을 가리며 눈을 동그랗게 떴고 마르잔은 엄청난 충격을 받은 듯 얼굴이 떨린다.
“...죄...죄송합니다...유진님....제..제가...노안이라.”
“아니.... 그런 의미가 아니라...”
마르잔의 표정을 보자 굉장히 미안한 기분이었다.
‘그러보니...’
마르잔의 얼굴을 천천히 뜯어보니, 당당한 태도와 분위기 때문에 눈치채지 못했지만, 확실히 얼굴에 앳된 부분이 남아있었다.
“...미안.”
“아닙니다... 유진님. 사과하실 필요 없습니다... 이게 전부 세월의 풍파를 피하지 못한 제 잘못이 아니겠습니까...하하...”
...바로 저런 말투와 태도가 문제였다.
잠시 우울해하던 마르잔은 고개를 힘껏 젓고는 언제나처럼 시원한 느낌으로 돌아왔다.
“어쨌든! 유진님, 루시아님. 이 마르잔 두 분의 명령을 받들어. 최선을 다해 성녀를 제대로 감시하겠습니다.”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리고 카르네아 안에서부터는 호위가 아니니까 그렇게 부를 필요 없어.”
“그럼 호칭을 어떻게 할까요?”
마르잔의 질문에 잠시 고민하던 내가 말했다.
“선배. 선배라고 불러.”
아카데미에서 연하에게 불릴만한 호칭은 이것밖에 없었다.
“어...어떻게 제가 감히 루시아님의 부군되실...”
“...마르잔?”
마르잔이 무언가 이유를 대며 거절하려고 하자 루시아가 앞으로 나오며 말을 끊었다.
“주인님이 시키시잖아요?”
“...읏...네. 루시아님.”
루시아의 압박에 마르잔이 다소곳해진 태도로 말했다.
“...아..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유진 선배.”
***
알버스 싱글도어.
겉모습은 어디 동네 술집에서 맥주에 취해 있을 같은 아저씨였지만, 그를 요약하자면 카르네아 아카데미 계급도의 꼭대기... 의 바로 아래에 위치한 남자였다.
즉, 카르네아의 부교장이란 말이다.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그런 싱글도어도 지금 눈앞에 있는 소녀에게는 함부로 말을 편하게 할 수 없었다.
“물론이에요.”
갈색 머리의 소녀가 방긋 웃으며 대답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정체를 숨기고 생활하는 건 쉽지 않을 겁니다.”
“후후훗. 신경을 써주시는 것은 감사합니다. 하지만 제가 누구라고 생각하시는 거죠?”
“...그야. 당연히 성녀님이라고...”
콰앙!
그때 성녀, 릴리스가 책상을 내리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요! 저, 성녀 릴리스! 파르테논의 전체 수석이자! 여신님을 가까운 곳에서 섬기는 자! 이런 제가 정체를 들킬 리가 없잖아요!”
동시에 릴리스의 고유능력이 발동했는지 한결 상쾌해진 공기가 싱글도어의 코끝을 스쳤다.
‘하아...’
...문제는 고유 능력 때문에 갈색으로 바꿔놓았던 성녀의 머리카락도 본래의 색인 진한 분홍빛으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지금부터 이런 실수를 하는데 과연 ‘정화’가 끝날 때까지 정체를 들키지 않을 수 있을까.
싱글도어가 지끈거리는 이마를 감쌌다.
“...성녀님의 위대함은 익히 들어 알고 있지만... 파르테논과 카르네아의 분위기는 완전히 다릅니다. 혹여나 지내는데 불편함이 있을까...”
“후훗! 그 정도는 예상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부교장님께서는 아무 걱정하지 마시고 입학 서류에 도장을!”
눈을 빤짝거리는 릴리스가 얼굴을 들이밀었다.
저 눈을 보아하니 더는 설득해봤자 소용이 없을 것 같다.
책상에 올려진 서류를 보며 한숨을 깊게 내쉰 싱글도어가 도장을 찍었다.
“...여기 있습니다. 이걸 입학처에 제출하면 될 겁니다.”
“후후훗! 감사합니다!”
서류를 품에 안아 든 릴리스가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서둘러 달려나간다.
“...!”
그 모습을 본 싱글도어가 소리쳤다.
“...성녀님!”
“왜, 왜 그러신지...?”
서류를 빼앗으려는 걸로 오해했는지 릴리스가 등 뒤로 서류를 감추며 대답했다.
속으로 한숨을 삼킨 싱글도어가 반쯤 벗겨진 자신의 머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머리카락이 분홍색입니다.”
“후후훗. 그럴 리가요. 분명히 염색된 걸 확인까지 했는... 흐엣! 언, 언제 풀렸지...”
스스슥─
릴리스는 다시 마도구에 마력을 불어넣어 머리를 갈색으로 바꿨다.
“흠..흠...잠깐 마도구에 문제가 생긴 것 같군요. 어쨌든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저는 이만!...어라? 문이 잠긴 것...”
“...미는 게 아니라 당기는 문입니다.”
“흐앗...! 아..알고 있었습니다! 그럼, 진짜 이만!”
빨개진 얼굴을 숨기려는 듯 달려나가는 릴리스를 보며 싱글도어가 몇 번째 일지 모르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걱정이군요...정말로....”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