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회차 히로인이 조교를 기억함-100화 (100/354)

〈 100화 〉 칼리오페가의 후일담 (1)

* * *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평온한 일상의 연속이었다.

가끔 복도를 걷다 케일을 마주치면 방긋 웃어줘 도망치게하고, 밤마다 가르시아나 레이카를 번갈아서 어떨 땐 동시에 불러 관계를 맺기도 하며 말이다.

...그리고 지금은 방 청소를 하러 온 엠마를 괴롭히는 중이었다.

“...흐읏...!도..도련님...이러시면...안되여..!”

“안된다면서 보지는 잔뜩 적셔 놓았네? 기대한 거 아니냐?”

“...아...아니에요..!..하읏...저..정말...방청소만..하려곳!...흐윽..저..정말..이러면..안돼는데..!”

“그럼 그만둘까?”

내가 손을 떼며 속삭이자 엠마가 팔목을 꾹 잡아당긴다.

“...계속해주세요.”

“엠마는 솔직해서 귀여워.”

“...흐읏..!..그래도...이런건...!...용서..받지..못해요...!저는..메이드고..도련님은...도련님이신데...”

그동안 잘만 관계를 맺어 놓고 갑자기 음란 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대사를 뱉는 엠마.

“....”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몰라서 입을 다물고 있자 엠마가 힐끗힐끗 쳐다본다.

요즘 서재에 들락거린다고 하더니 저런 계열의 소설을 읽나 보다.

한숨을 짧게 쉰 나는 엠마에게 맞춰주기로 했다.

“...닥치고 다리를 벌려라! 메이드 주제 내 말을 듣지 않겠다는 거냐!”

“...흐윽...아..알겠어요...요..용서해주세요...도련님.....”

ㅡ똑똑

엠마가 순식간에 팬티를 벗고 허리를 들자 노크 소리가 울려 퍼졌다.

“도련님 알프레도입니다.”

“...히익! 지, 집사장님! 도..도련님..자..잠시만! 저...저는 여기 없는 거예요?”

갑작스러운 알프레도의 등장에 엠마는 화들짝 놀라서 이불 속에 몸을 감춘다.

“에휴...”

고개를 저은 내가 잠옷을 대충 걸치고는 문을 열었다.

“도련님,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응, 알프레도는?”

“저야 항상 건강합니다. ...그보다 방에 누가 같이 있는지요?”

눈치 빠른 알프레도가 눈을 가늘게 뜬 채 방안을 슬쩍 살펴보고는 이름을 불렀다.

“엠마양.”

“...!”

여기에 숨어있다고 광고하듯 움찔거리는 이불.

그래도 들키지 않았다고 생각하는지 엠마는 밖으로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엠마양, 그만 나오시죠.”

“헤헤...어? 지...집사장님...아..안녕하세요?”

엠마는 이불로 몸을 감싼 채 얼굴만 빼꼼 내밀었다.

“거기서 무얼 하고 계십니까?”

“..그..그러니까..이불청소를...”

“청소? 그렇습니까? 훌륭하군요. 그런데 거기 떨어져 있는 팬티는 무엇이죠?”

“흐엑!”

바닥에 떨어진 검은 팬티를 확인한 엠마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지만, 알프레도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엠마양, 도련님과 노는 것도 좋지만 아직 업무시간입니다. 메이드장을 노리고 있다면 좀 더 성실한 모습을 보여야지요.”

“...죄..죄송합니다.”

“그래, 좀 더 성실해야지.”

알프레도의 훈계에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한마디를 거들었다.

“...도련님 그래서 제가 분명 안 된다고 말했는데...!”

엠마가 억울하다는 듯 입을 벌리며 바라본다.

하지만 억울한 건 나도 마찬가지다.

물론 시작은 내가 방을 청소하는 엠마의 엉덩이를 쓰다듬는 것부터였다.

하지만 그건 팬티가 보일락 말락 할 정도로 짧은 치마를 입은 채 엉덩이를 씰룩거리는 엠마의 잘못이 아닌가.

그리고 내가 엉덩이를 쓰다듬을 때마다 엠마가 “도..도련님...이러시면...안되여..”라고 말은 했지만 누가 봐도 더해달라는 거지 그게 어떻게 진짜 안된다는 건가!

무엇보다 마지막에는 엠마가 직접 더 해달라고 했으니 나는 무죄가 확실했다.

“...기억에 없네.”

“도련님! 너무해요! 진짜! 너무해요!”

나는 옆에서 볼을 부풀리는 엠마를 무시하고는 알프레도에게 말을 걸었다.

“그래서 알프레도 무슨 일이야?”

“...가주님께서 도련님을 부르십니다.”

“아버지가? 왜?”

“글쎄요. 저는 그저 말을 전할 뿐이라…. 그래도 꽤 기분이 좋아 보였습니다.”

모른 척 시치미를 뗐지만 지금 시점에서 아버지가 나를 부를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확정이 났구나.’

차기 가주로 에르덴이 확정됐다는 것이다.

당연한 일이긴 하다.

가주 쟁탈전에서 가르시아와 레이카가 손을 놓았으면 케일이라도 알아서 행동해야 할 텐데, 정조대를 찬 케일이 다른 생각을 할 여유는 없을 테니까.

“응, 알았어. 바로 옷 갈아입고 갈게.”

“알겠습니다. 저도 방까지 동행할까요?”

“아니, 바쁜데 그럴 필요 없어.”

“네, 도련님 그럼 다시 업무로 돌아가겠습니다.”

알프레도가 고개를 숙이고 방을 떠나려고 하자 어느새 옷을 단정하게 입은 엠마가 뽈뽈 지나갔다.

“...저..저도..다시..청소를 하러 갈게요.”

“아, 거의 잊을 뻔했군요. 엠마양은 일주일간 화장실 청소를 전담하세요.”

“...엑! 그...그건...견습...메이드가 해야하는...”

“아시겠죠?”

“...네.”

엠마가 눈동자를 굴리며 어떻게든 피해 보려 했지만, 알프레도의 한마디에 제압당하고 만다.

“엠마야 힘내렴.”

내가 머리를 쓰다듬으며 위로해주자 엠마가 고개를 푹 떨궜다.

“...도련님, 미워요.”

“그럼, 그만할까?”

“...계속해줘요.”

***

“솔직히 놀랐다.”

에다드 칼리오페가 지하로 가는 계단을 내려가며 자연스럽게 입을 열었다.

“내가 몇 년 동안 고민하던 걸 고작 몇 주 만에 해결하다니 도대체 무슨 방법을 쓴 것이냐?”

에다드의 물음에 심장이 뜨끔거렸다.

아무리 그래도 아버지의 앞에서 의붓어머니와 의붓누나를 조교 했다고는 말하기 어렵지 않은가.

“...그저 진솔한 대화가 통했을 뿐입니다.”

“대화가 통할 상대였다면 진작 내가 끝냈을 것이다.”

“...”

뭐라 변명할까 고민해봤지만, 딱히 에다드에게 먹힐 만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

“....”

침묵에 숨이 막혀올 무렵 에다드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비에게도 밝히고 싶지 않다는 건가... 그래, 네게 감춰둔 수가 있다는 거겠지.”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되었다 그보다 내가 너를 부른 이유는 상을 내리기 위함이다.”

“...상말입니까?”

“어디까지 시치미를 뗄 생각이냐? 여기에 오는 순간 너도 눈치채고 있었을 텐데.”

물론 눈치채고 있었다.

이 계단에 끝에 있는 건 ‘칼리오페의 지하창고’ 뿐이니까.

“다 왔구나.”

에다드가 촛대를 들어 올리자 칼리오페의 상징처럼 방패처럼 보이는 거대한 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뒤로 물러나 있거라.”

내가 몇 발자국 뒤로 가자 에다드는 단검으로 손가락 끝을 베어 늑대 머리 모양 손잡이에 떨어트렸다.

쿠쿠쿠쿠쿠쿵—!

그 순간 문에 새겨진 문양이 빚을 내며 큰 진동과 함께 열리기 시작한다.

에다드가 턱짓을 하며 말했다.

“...안에 들어가 원하는 것을 하나 골라라.”

“정말 아무거나 가져도 되겠습니까?”

“그래, 처음에 말하지 않았느냐 상과 벌을 중시한다고. 형제 상잔의 비극을 막았는데 이 정도상은 당연하다.”

“그럼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창고를 잠깐 둘러보았을 뿐이지만 가지고 싶은 게 참 많다.

‘발두르의 창에 용아검... 수탉의 지팡이까지 있네.’

칼리오페라는 이름에 걸맞게 창고에 있는 물건 중 뭐 하나 보물이 아닌 것이 없었다.

‘그래도 역시...’

잠시 보물들을 지켜보던 나는 주저 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가장 깊숙한 곳에 안치되어있는 작은 물방울 모양 수정을 잡았다.

“저는 이걸로 하겠습니다.”

“...그게 무엇인지 아느냐?”

에다드의 질문에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서리 정수」

빙결 계열의 친화력과 능력치를 상승시키며, 추위에 대한 내성 부여하는 물건.

그러니까 한서불침(??不?) 중에 한불침(?不?) 정도는 되게 만들어주는 물건이다.

“다른 좋은 물건도 많은데 꼭 그걸 가져야 하겠느냐?”

“저는 이게 좋습니다.”

“...하아, 이건 또 어떻게 알았는지... 그래, ‘서리 정수’는 어떻게 사용할 생각이냐? 설마 팔 생각은 아니겠지?”

“당연히 먹을 생각입니다.”

“...먹는다고?”

처음으로 에다드의 표정이 굳었다.

“안된다. 네가 먹는 건 허락할 수 없다.”

“어차피 그것 말고는 사용법도 없지 않습니까.”

“무기나 방어구를 만들 수도 있다.”

“그렇게 사용하기에는 정수가 너무 아깝습니다. 효과는 떨어지겠지만, 마법으로 흉내 낼 수 있지 않습니까. 먹는 게 제일입니다.”

“그걸 평범한 영약처럼 생각하지 마라. 자칫하면 죽을 수도 있다.”

“때로는 위험을 감수할 필요도 있습니다.”

에다드가 절대 허락할 수 없다는 듯 나를 노려보았지만 나도 물러서지 않고 그를 바라보았다.

‘아카조교사’에서 ‘서리 정수’를 섭취 시 부작용이 나올 확률은 10%.

하지만 능력치가 낮을수록 부작용이 나올 확률이 올라가니 지금의 나라면 한 15% 정도는 될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부작용은 죽음이니 대략 15% 확률로 사망이라는 거다.

절대 낮다고 할 수 없는 확률이지만 나는 자신이 있었다.

“미래는 보더라도 타들어 가는 아비의 심정은 전혀 보지 못하는구나….”

한숨을 길게 내쉰 에다드가 말을 이었다.

“...알겠다. 네 마음대로 하거라.”

“감사합니다.”

“대신 지금 먹거라. 눈앞에서 부작용이 생기면 내가 뭐라도 할 수 있겠지.”

“알겠습니다.”

어차피 어디에서 먹든 상관없는 일이라 나는 곧바로 ‘서리 정수’를 삼켰다.

“...!”

식도를 따라 빙하가 통째로 들어온 느낌이다.

차갑다 못해 뜨겁다고 여겨질 정도의 감각.

정수가 가슴에 내려앉는 순간 온몸의 혈관으로 얼어붙는 듯한 냉기가 퍼진다.

‘부작용..!’

쩌저적─!

흰 숨결이 흘러나오고 입술에 서리가 내려앉는다.

그 모습을 본 에다드가 눈썹을 치켜뜨며 소리쳤다.

“이런 멍청한 녀석! 그래서 내가 말하지 않았느냐! 조금만 기다려라!”

“...자...잠시...만..기다려..”

에다드가 내 몸에 손대고 냉기를 빼앗으려 했지만 나는 뻣뻣하게 굳은 입으로 만류했다.

지금 냉기를 몰아내면 나와 에다드 모두의 생명이 위험하다.

‘...빨리 일어나라.’

얼어붙은 폐 때문에 숨을 쉴 때마다 찢어지는 고통이 찾아왔지만 나는 확신했다.

조금만 있으면 나타날 것이라는 걸.

추위로 정신이 혼미해지고 무렵....

◆◇◆◇빰빠라밤!◆◇◆◇

「세계수의 씨앗이 잠에서 깨어납니다!」

‘세계수의 씨앗’이 ‘서리 정수’로부터 영양분을 흡수합니다! ─세계수의 씨앗이 세계수의 묘목으로 진화했습니다.─세계수의 축복의 등급이 상승합니다!─회복능력이 제법 상승됩니다.─모든 능력치가 조금 상승합니다.

기다리던 메시지가 내려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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