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2화 〉 나비는 두 번 날개짓 한다 (2)
* * *
콰아앙─!
도착하자마자 싸움이 벌어질 것을 대비해 적당히 체력을 보존하며 달려가고 있자 정문 쪽에서 폭발음이 울려 퍼졌다.
사실 폭발음을 들을 때마다 불안감보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이번 침입자들의 대부분은 육체파이기 때문에 저런 폭발음이 발생한다는 것은 루시아 쪽이 멀쩡하다는 증거였으니 말이다.
물론 아스란 제국의 기사들이나 아인족처럼 신체 능력만으로도 마법보다 강한 위력을 보여주는 예외는 존재하지만...
아직 그들에게 신경 쓸 단계는 아니었다.
사실 약간의 과장을 더 해서 말하면 내가 ‘기어오는 공포’의 탄생을 막은 순간 공략은 끝난 것과 다름없다.
두 단계로 나눠진 2장의 메인 이벤트 중에서 한 단계를 완전히 건너뛰었는데 클리어 못 하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이니까.
거기에 본래라면 나와 루시아 둘이서 막아 내야 하는 정문에는 지금 특별 전력까지 추가 되었다.
루시아가 어떻게 그들을 꾀었는지는 몰라도 일단 그 둘이 나오기만 한다면 승리는 확정이었다.
‘...만에 하나 나오지 않더라도 상관없지.’
확정된 전력만 해도 루시아와 반쯤 각성한 비비안이 있다.
이 둘만해도 내가 메인 이벤트를 클리어했을 때보다 스펙이 훨씬 높다.
즉, 이론상 패배할 수 없다는 것이다.
플래그를 꽃는 것 같은 말이지만, 이번만큼은 정말 패배 할 수가 없었다.
콰아앙—!
또다시 들리는 폭발음에 내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달려갔다.
***
‘이게 무슨...’
카르네아에 잠입한 히카트는 눈을 의심하고 있었다.
차라리 카르네아의 교수들이 단체로 마중을 나왔더라도 이렇게까지 놀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눈앞에 펼쳐지는 이 광경만큼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으윽..! 케이트..!”
“...거기..좋아...! 하아..읏!..더 세게 해 줘..!”
제국의 미래라 불리는 이 카르네아 아카데미에서 야외 성교가 벌어지고 있었다.
심지어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닌지 허리를 숙인 여자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나무를 붙잡고 있었다.
“...뭔가 이상합니다.”
옆에서 부하가 은밀하게 속삭였지만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다.
당연히 저게 정상일 리 없지 않은가.
‘냉정해져라.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다른 생각은 할 필요 없이 그저 네임리스의 명령만 수행하면 된다.
마음을 다잡은 히카트가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작전을 이어간다.”
“저들은 어떻게 할까요?”
“처리해야지.”
부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소리 없이 검을 뽑아 커플을 향해 조심스럽게 다가 갔다.
“하읏...하아...나..이제....케이트..슬슬..”
“응...그렉..나도..갈거 같아! 같이...!”
커플이 절정을 외침과 동시에 검이 휘둘러진다.
그리고...
퍼억!
어둠 속에서 날아온 마법이 부하의 가슴을 꿰뚫었다.
“꺄아아악!”
조금 전까지 신음을 지르던 여학생은 이젠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고 조금 늦게 반응한 남학생 역시 검을 뽑아 들었다.
하지만 히카트는 그들에게 시선을 주지 못했다.
비명을 지르는 여학생 따위보다는 어둠 속에 숨어 있는 존재가 몇 배는 위험하다고 느껴졌으니까.
“누구냐!”
히카트가 소리치자 어둠 속에 있던 누군가가 달빛 아래로 걸어 나왔다
순은을 녹여서 만든 듯한 은발, 사파이어를 떼어다 박아 넣은 듯한 푸른 눈동자, 요정이 빗어낸 듯한 육체까지.
실제로 보는 것은 처음이었지만 히카트는 그녀가 누구인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루시아 우르엘라.”
“흐음, 당신이 제 이름을 부르는 걸 허락한 기억은 없는데요?”
“..왜 네가 아카데미에 남아 있는 거지?”
우르엘라 같은 고귀한 가문의 일원이 방학 중에 남아 있을 것이라는 건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루시아는 히카트에 말에 대답하는 대신 커플에게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선배님들.”
“흐윽..루..루시아님..!”
“상황이 급박하니 본론만 말할게요. 성스러운 카르네아 아카데미에서 그런 추잡한 짓을 한 것은 눈감아 줄 테니. 도망치는 녀석들을 잡아주세요.”
“...지..지금..그게 무슨..!”
“그럼, 부탁드립니다.”
일방적으로 대화를 끝낸 루시아가 다시 히카트를 바라보며 웃었다.
“...자. 그럼...”
「꿰뚫어라─대지─창」
그리고 갑작스럽게 쏘아내는 루시아의 마법.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어진 공격이라 히카트는 미리 반응하지 못했다.
‘...위험..!’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온 마법에 히카트가 낀 반지에 마력을 불어넣자 반지에 새겨진 문자가 빛이 나며 그의 육체를 순간적으로 강화했다.
콰아앙─!
마법을 정면으로 받아 낸 히카트는 이를 까득 갈았다.
‘...말도 안 돼!’
제국에 달이라 불리는 루시아 우르엘라에 관한 이야기는 관심을 가지지 않으려 해도 저절로 귀에 들어왔다.
그 중에는 분명 루시아가 가진 재능에 관한 이야기도 존재했다.
...그러나 히카트는 루시아가 재능을 가졌을 지언정 어디까지나 학생 수준이라 생각했다.
실전에서 맞붙으면 자신이 반드시 이길 것이라고도 말이다.
하지만 지금 루시아 보여주는 모습은 예상과 전혀 달랐다.
최소한 전장에서 십수 년은 구른 베테랑 급.
마법 실력도 그러했지만, 특히 사람을 죽일 때의 망설임이 느껴지지 않는 점이 그러했다.
“흩어져라!”
능력은 상대가 위지만 숫자는 이쪽이 많다.
사방에서 동시에 덮친다면 아직 해볼 만하다고 판단한 히카트가 부하들에게 일단 흩어져 포위할 것을 명령했지만...
“...헤..헤헤헤..!”
「불꽃─화살」
「불꽃─화살」
웃으며 불꽃의 화살을 날리는 보라색 머리의 미친년도 나타나 방해했다.
‘저건 또 뭐야!’
평범한 미친년이면 죽여버리면 끝이겠지만 순식간에 이중영창을 끝내는 걸 보니 이쪽도 실력이 범상치 않았다.
“...가..가만히 있으면 아프지 않게 죽여드릴 테니까.”
부하들도 그것을 느꼈는지 보라색 머리의 여자에게 함부로 다가가지 못했다.
“그럼! 저쪽이다! 포위망이 약한 곳을 뚫어라!”
히카트가 안경을 쓴 여자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딱 봐도 루시아와 보라색 머리의 여자는 준비를 단단히 한 상태다.
하지만 야외 성교를 즐기던 저 커플들은 아무런 준비가 되어있지 않아 보였다.
...그렇게 생각했었다.
“오...!오지마...!”
「꿰뚫어라 ─ 대지의 ─ 창」
여학생이 벌벌 떨며 쏘아낸 마법 역시 웬만한 마법사의 수준을 한참 웃돌았으며.
제이하르크류 4식 ─ 돌풍낙하
그리고 옆에 있는 남학생의 검술 역시 히카트에 비해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 수준이었다.
‘이게...무슨!’
아무리 카르네아라 해도 고작 학생 4명에게 당하다니 이게 말이나 되는 일인가.
당황한 히카트를 보며 루시아가 쿡쿡 웃었다.
“어머, 저래 보여도 저분들은 2학년의 수석과 차석이랍니다.”
수석과 차석.
짧은 단어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는 수많은 재능의 원석이 섞여 있는 이 카르네아 아카데미의 정점에 있는 존재란 뜻이었다.
히카트가 입술을 꽉 깨물었다.
벌써 인원의 절반 가까이나 죽어 나갔다.
“모두 퇴각해라!”
더 이상 남아있어 봤자 명령을 수행 하기에는 무리라고 판단한 히카트가 빠져나가기 위해 정문을 향해 몸을 던져보지만.
콰아아앙─ !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문이 있던 자리에 마법이 날아가 박히며 순식간에 돌덩이로 가로막혔다.
“도, 도망 못 쳐요...”
시간을 두고 기어 올라간다면 못 올라갈 높이는 아니었으나 루시아가 보고 있을 리 없었다.
“이런 젠..!”
자신이 독 안에 갇힌 쥐 신세라는 걸 깨달은 히카트가 욕설을 내뱉었고.
콰과과과강!
그의 머리 위로 마법이 쏟아져 내렸다.
***
내가 도착하니 상황은 이미 정리 단계에 들어가고 있었다.
침입자들의 대부분은 죽거나 중상을 입었고 그나마 멀쩡해 보이는 몇몇은 포박 해놓은 상태였다.
루시아에게 다가가 수고했다고 한마디라도 건네려 했지만 2학년 차석 그렉과 대화 중이기에 잠시 기다렸다.
“루시아님...”
“어머, 루시아로 불러도 괜찮습니다. 어쨌든 선배니까요.”
“...그럼, 루시아... 오늘 있던 일은.”
“당연히 비밀로 해드려야죠. 대신 선배님들도...”
루시아는 말을 하는 대신 검지를 세워 입가에 가져다 댔다.
“...무덤까지 가져가겠다.”
“잘됐네요. 저는 전공을 선배님들은 비밀을 지켜지고. 서로에게 좋은 일이네요.”
그러자 2학년 수석인 케이트가 안경을 슬쩍 밀어 올리며 물었다.
“...그, 그런데 어떻게 알아낸 거야? 우리가 여기 있는 걸... 아니 적들이 미리 쳐들어올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 대처하는 것 같은데.”
“후후훗, 듣고 싶으세요?”
“아, 아니야! 내, 내가 헛소리를 했네! 그럼 우린 이만 갈게!”
루시아가 눈을 초승달처럼 뜨고 웃으며 말하자 케이트가 그렉을 데리고 도망쳤다.
대화가 끝나자 나는 루시아에게 말을 걸었다.
“루시아.”
“아! 주인님! 오셨네요. 어디 다친 곳은 없으세요?”
“괜찮다. 그보다 히카트는 어디 있지?”
“...죄송해요. 놓치고 말았어요. 공격을 날리기는 했는데 역시나 이번에도 반지가 문제네요.”
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히카트보다 반지가 더 본체라 생각이 들 정도로 반지의 위력은 대단 했으니까.
내가 '아카조교사'에서 측정한 바로는 반지의 방어를 뚫기 위해서는 최소 상급 이상의 마법을 때려 박아야 했다.
지금이야 루시아가 1회차의 기억을 가지고 있기에 이정도 스펙까지 끌어올린거지 정석대로라면 절대 잡지 못하게 설계된 보스라고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이벤트의 클리어 조건이 침입자의 ‘토벌’이 아니라 ‘퇴치’고...'
도망쳤을 히카트를 떠올리며 정문을 바라보자 그곳에는 입구 대신 돌벽만이 보였다.
“...저건 뭐지?”
“제..제가 했어요! 유진님!”
손을 번쩍 든 비비안이 칭찬을 바라는 표정으로 내게 다가왔다.
그 모습을 보며 내가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그렇지..’
아까 내가 꼽은 플래그가 문제였을까.
어쩐지 일이 너무 잘 풀린다 했다.
“뭐, 뭔가 잘못했나요?”
내가 칭찬은 커녕 오히려 한숨을 내쉬자 비비안이 몸을 벌벌 떨었다.
물론 비비안 나름대로 히카트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한 것은 알고 있지만 아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이러면 루트가 꼬이는데...’
정문이 무너져 막히는 건, 1%가 될까 말까 하는 확률로 벌어지는 일이라 굳이 말하지 않았건만....
결국, 이런 일이 생기고 말았다.
쯧, 내가 혀를 차자 비비안이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내게 사죄한다.
“죄송해요.죄송해요.죄송해요.죄송해요. 멍청한 비비안이라 죄송해요. 죄송해요.”
“...괜찮으니까 일어서라.”
정문을 막게 되면은 히카트는 도주를 택하는 대신 기숙사로 처들어가 인질을 잡게 된다.
그래도 한 가지 다행인 점은 히카트가 제시한 조건대로 그를 얌전히 풀어주면 아무도 다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이미 패배가 확정된 상태에서 학생들에게 손을 댄다면 히카트 자신도 살아가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으니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불안 하지?’
어차피 승리는 확정됐건만 어째서인지 빨리 히카트를 잡지 않으면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질 것이란 예감이 들었다.
“일단 나는 히카트를 쫒겠다. 루시아는 비비안과 함께 남아 있는...”
루시아에게 뒤처리를 지시하고 있자 번개가 치듯 불안감의 정체를 깨달았다.
‘흥, 됐어! 유진이 카르네아에 남겠다면 나도 남아 있을래!’
....기숙사에는 핵폭탄이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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