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회차 히로인이 조교를 기억함-65화 (65/354)

〈 65화 〉 우유로부터 시작되는 나비효과 (2)

* * *

“호에에엥...잡아 먹힐 거예요.”

나는 이상한 효과음을 내며 우는 꼬맹이를 쳐다보며 말했다.

“안 잡아먹어.”

일반적인 의미에서도 그리고 성적인 의미에서도 잡아먹을 생각은 없다.

내 수비범위가 보통 사람들보다 조금 넓은 편이라고는 하나 이 꼬맹이는 그 수준을 한참 넘어 있었다.

기본적으로 나는 여자는 여자다운 몸매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럼 비앙카는 뭐냐고 물을 수도 있다.

비앙카는...

그냥 비앙카였다.

“...거, 거짓말..아빠가 다른 사람들은 다 저를 잡아먹으려 한다고 했다고요!”

“....”

도대체 어떤 가정교육을 받았길래 저런 소리가 자연스럽게 나온단 말인가.

“호에에에엥!”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기묘한 울음소리를 계속해서 듣고 있자 정신이 혼미해진다.

“울지마, 도망치지 않으면 내려줄게.”

“..호에엥...안 도망칠게요! 내려주세요.”

내가 제시한 조건에 꼬맹이가 코를 훌쩍이며 동의하자 꼬맹이를 땅에 내려주었다.

그리고...

호다닥─

1초 만에 도망쳤다.

빛보다 빠른 배신이라는 게 바로 이런 것일까.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달려가는 꼬맹이를 보자 뒤통수가 얼얼했다.

“....”

물론 다시 잡았다.

이 꼬맹이의 짧은 다리로 열심히 달려봤자 염동력의 사정거리에서 벗어날 수 있을 리 없으니까.

“호에에에엥! 또 잡혔어요! 이번에는 진짜 잡아먹힐 거예요!”

“안 잡아먹는다니까! 시끄러우니까 그만 좀 울어라.”

“호에엥! 거짓말! 아빠가 사람들은 다 거짓말쟁이라고 했어요!”

아까는 다 잡아먹는다고 하더니 이번에는 거짓말쟁이란다.

벌써부터 인간 불신이 가득한 걸 보니 참으로 장래가 걱정되었다.

내가 짧은 한숨을 내쉬고 꼬맹이에게 물었다.

“너 나 몰라?”

“...몰라요.”

즉답이었다.

그래도 그동안 여러 가지 선물을 가져다주면서 친구는 아니더라도 아는 사이는 됐을 거로 생각했는데 오판이었나 보다.

“네가 말하는 안다는 기준이 뭔데.”

“...이름을 알아야 아는 사이예요.”

“유진 칼리오페. 내 이름이야.”

나는 이름을 말한 뒤 꼬맹이를 다시 땅에 내려놓았다.

“내 이름을 말했으니까. 이번에는 네 차례야. 어차피 잡힐 테니까. 도망칠 생각은 하지 말...”

호다닥─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다시 튀어 나가는 꼬맹이.

“하아...”

학습 능력이 없는 건지 아니면 나를 놀리는 건지 모르겠다.

나는 도망치는 꼬맹이의 다리를 염동력으로 잡아서 나무에 대롱대롱 걸어 놨다.

“호에에엥! 내려 줘요!”

“이름을 말하면 내려주마.”

“호에에에엥!”

대답하는 대신 더욱 크게 우는 꼬맹이.

나는 짧은 한숨을 한 번 내쉬고는 꼬맹이를 염동력을 붙잡아 탈탈 털었다.

“흐엑! 데엑! 끄엑! 데뎃!”

잠시 후, 눈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꼬맹이를 내려놓고 다시 이름을 물었다.

“이름이 뭐니?”

“으엑... 토할 거 같아요... 속이.. 안 좋아요..”

“...대답이 없네. 한 번 더 해야겠다.”

“히익..! 이, 이졸데요!”

그때야 크게 소리치는 이졸데의 목소리를 들고는 내가 씨익 웃었다.

“그럼 이졸데. 너도 내 이름 알고 나도 네 이름을 아니까 우리는 모르는 사이 아니지?”

“...에...? 그런가...?”

이졸데가 멍청한 표정으로 정말 그런가 하며? 고민하는 사이 나는 가방에서 가져온 비장의 무기를 꺼냈다.

[딸기잼이 가득 들어간 도넛]

무려 ‘아카조교사’ 공식 설정으로 가장 맛있는 간식 중 하나인 도넛이다.

그만큼 구하기도 어렵고 하루에 10개밖에 판매하지 않는 한정판이지만 세상에는 돈이면 안 되는 일이 없었다.

나는 도넛을 반으로 잘라 이졸데에게 주었다.

“먹어.”

“...모..모르는 사람이 주는 거 먹으면 안 된다고 했는데.”

“너랑 나랑 이제 아는 사람이잖아.”

손가락에 힘을 주자 반으로 갈라진 도넛 사이로 찐득하면서도 달콤한 딸기잼이 주륵 흘러나왔다.

“그...그래도.”

계속해서 이졸데가 망설이고 있자 나는 이졸데의 입안에 도넛을 한 조각 집어넣었다.

“....!”

앞서 마셨던 마쉬멜로 초콜릿 우유가 세상에 이런 맛이 있었다면! 이라는 표정이었다면 이 도넛을 먹은 이졸데는 우주에서 이런 맛이 있을 줄이야! 하는 표정을 지었다.

한 번 맛을 보자 이성이 날아갔는지 건네준 도넛을 재빨리 낚아채더니 허겁지겁 먹어 치웠다.

그래도 부족해 보이길래 내가 들고 있는 도넛도 주니 그것도 작은 입 안으로 사라진다.

“...감사합니다. 정말 맛있었어요.”

순식간에 도넛 하나를 처리한 이졸데가 꾸벅 허리를 굽히며 감사 인사를 전한다.

급하게 먹느라 얼굴에는 쨈이 가득 묻어 있었지만 귀엽기도 하고 도망치려 했던 게 괘씸하기도 해서 말해주지는 않았다.

“그럼, 여기 앉아봐.”

“...네.”

내가 모닥불을 가리키며 말하자 쪼르르 달려와 앉는다.

....조금 전까지는 도망치려고 하더니 역시 도넛이었다.

‘..성능 확실하네.’

이졸데가 앉아서 더 줄 게 없냐는 듯 바라보고 있자 나는 결계가 쳐져 있는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 안에 너희 집 있지?”

“..?!어...어떻게 알았어요!”

“난 원래 다 알아. 봐봐, 너희 아빠 이름이 트리스탄이지?”

“...저, 정말이다?!”

의심 많은 사람이 한 번 의심이 풀리면 더 사기에 쉽게 넘어간다더니 딱 그 꼴이었다.

갑자기 신뢰감이 상승한 이졸데가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나는 그런 이졸데에게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이졸데야. 나랑 비밀 친구 할래?”

“...비밀 친구요?”

“그래, 비밀 친구. 아무도 모르게 저 안에 들어가서 같이 놀자.”

“...엣...아빠가... 저 안으로는 아무도 들어오게 하면 안 된다고 했는데.,”

“사탕하나 줄게.”

“그... 그래도..”

이졸데가 망설이자 나는 가방에서 사탕을 한 움큼 집어서 보여주었다.

“이거 전부 다 줄게.”

“이쪽이예요!”

어린아이를 사탕으로 꾀어내는 쓰레기...

그게 나였다.

***

─스스슥

사탕을 쪽쪽 빨고 있는 이졸데의 손을 붙잡고 결계가 있는 장소를 지나가자 마치 온몸에 거미줄이 달라 붙는 듯한 불쾌한 감각이 느껴졌다.

그 감각이 견디기 힘들어질 때쯤, 지금까지 아무리 찾아도 나타나지 않았던 새로운 장소가 나타났다.

넓은 공터에는 오두막이 두 개 있었다.

‘...오른쪽이 공방이네.’

두 오두막은 거의 다른 바 없는 생김새를 하고 있었지만, 공방을 알아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왼쪽에 있는 나무집은 이졸데를 배려하듯 굴뚝에서 따듯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고 반대로 오른쪽에 있는 오두막은 차갑기 짝이 없었다.

“여기에 누가 오는 건 처음이에요.”

이졸데가 약간 흥분하며 말했다.

당연히 그럴 것이다.

모든 사람이 자기를 잡아먹을 거라고 교육을 하는데 누굴 초대하겠는가.

“이쪽이에요.”

예상대로 왼쪽 집으로 향해 걸어가는 이졸데.

내가 그 뒤를 따라가고 있자 갑자기 이졸데가 픽 쓰러졌다.

“....?”

처음에는 그냥 넘어진 줄 알았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봐도 일어날 생각은 하지 않는다.

장난치는 건가 싶어서 가까이 다가가자 장난이 아니라는 건 바로 깨달았다.

이졸데의 얼굴에서 흐르는 식은땀만 봐도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었다.

이마에 손을 가져다 대자 펄펄 끓는 열기가 느껴졌다.

맥박과 호흡도 확인해보지만, 맥박은 희미하고 호흡은 거칠다.

‘...뭐야?’

아무리 생각해봐도 갑자기 쓰러진 이유를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아니, 그보다는 일단 이졸데를 어떻게 구할지 생각해야 했다.

“...하아...하아...”

그때였다.

등 뒤에서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트리스탄이었다.

잠시 상황을 살펴본 트리스탄의 표정이 심각하게 굳었다.

나는 트리스탄의 시점에서 이 상황을 되짚어 봤다.

─누군가에게 뚫린 결계 ─바닥에 쓰러진 딸 ─그 옆에 서 있는 수상한 남자

“....죽여버리겠다.”

트리스탄이 으르렁거렸다.

그 심정을 이해는 한다.

나였어도 이 상황이라면 일단 공격부터 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지금 나로서는 억울하기 짝이 없었다.

“자, 잠깐만..!”

“닥쳐라!”

「바람─칼날」「불꽃─화살」

트리스탄이 마법이 연속으로 쏘아진다.

그나마 딸이 맞을까 위력보다는 조준에 신경 쓴 하급 마법인 게 다행이었지만 카르네아의 교수의 실력이 어디 가는 건 아니다.

“..뭔가...오해..!”

콰아앙­!

내 옆을 스쳐 지나가는 마법들을 보니 아무래도 이야기는 들을 생각은 없는 모양이다.

날아오는 마법들을 피해 필사적으로 도망치지만,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해봐도 트리스탄의 마력이 떨어지기보다는 내 체력이 바닥나는 게 먼저일 것이다.

‘생각해! 생각해!’

폭주하는 트리스탄을 멈출 방법...

그딴 게 있을 리 없다.

저렇게 폭주하는 놈을 막으려면 최소한 대등한 힘은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이 시점에서 교수와 대등한 수준으로 싸울 수 있는 건 ‘황녀’를 제외하고는 없을 것이다.

그 순간 머릿속에서 한 가지 방법이 떠올랐다.

정말 쓰레기 같은 방법이었지만....

지금은 그 방법뿐이다.

끼이익­!

나는 멀리 도망치던 것을 멈추고 다시 원래의 장소로 돌아가기 위해 달렸다.

다시 가까워지는 내 모습에 잠시 당황한 트리스탄.

하지만 이내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깨달은 듯 마법은 난사하려고 하지만 그보다 내가 먼저 도착했다.

“멈춰!”

내가 이졸데의 목에 손가락을 대고 협박했다.

진짜 다치게 할 생각은 없지만, 트리스탄을 진정시키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까드득­

제법 거리가 있는데도 트리스탄이 이를 가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온몸에 돋아나는 소름을 떨치며 소리쳤다.

“이졸데가 다치는 꼴을 보고 싶지 않으면 일단 뒤로 물러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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