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회차 히로인이 조교를 기억함-57화 (57/354)

〈 57화 〉 베아트리스가의 장녀는 후장노예 (1)

* * *

이제는 눈을 감고서 찾아올 만큼 익숙해진 구 교사 3층의 구석에 있는 강의실.

“...후우.”

내 등에는 기절한 비앙카 베아트리스가 안겨 있었다.

사람 하나 업고 3층 계단을 오르는 게 큰일처럼 보였지만, 워낙 비앙카가 깃털처럼 가벼워서 별로 힘들지도 않았다.

“수고하셨어요. 주인님.”

3층에 도착하자 마중 나온 루시아가 허리를 숙였다.

루시아는 흰 고양이 가면을 쓰고 있었는데 지난번에 비비안을 조교 했을 때 쓴 가면보다 좀 더 고급 인식방해 마법이 걸려있는 물건이었다.

“준비는?”

“완벽하게 끝냈어요. 주인님께서 가장 강조하신 창문은 넓은 판자를 다섯 번 이상 덧대어 불빛 하나 새어 들어오지 않게 했고, 방안은 음... 직접 보시는 게 빠르실 거예요.”

루시아가 강의실 문을 열자 완전히 달라진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전에도 그리 깔끔하단 생각이 드는 강의실은 아니었지만, 지금은 가만히 있어도 음침한 기운이 흘러나오는 게, 마치 공포영화 속 살인마들의 고문실 같은 느낌을 주었다.

“잘했다.”

“감사합니다. 주인님.”

나는 강의실 한복판에 놓여있는 의자 위에 비앙카를 앉히고 온몸을 구속하는 족쇄를 채웠다.

그리고 가위를 꺼내 비앙카의 옷을 자르려고 하자 루시아가 말했다.

“...주인님, 그 뒤는 제가 할게요.”

사각거리는 가위질 소리가 끝나고 알몸이 된 비앙카.

잠시 비앙카의 몸을 바라보던 나는 그녀의 오른쪽 겨드랑이에 밑에 비밀병기를 붙여놓았다.

‘음...’

땀을 잔뜩 흘려서 그런지 비앙카의 겨드랑에선 약간 시큼한 냄새가 났다.

‘...일단 이걸로 준비는 끝.’

이제부터는 연기의 시간이다.

***

똑, 똑, 똑.

어디선가 떨어지는 물방울에 소리에 비앙카 베아트리스가 눈을 떴다.

‘여긴..?’

천장에서는 물이 떨어지고 빛 한 점 들지 않는 어두컴컴한 장소였다.

...몰락하고 있다고는 하나 비앙카 역시 귀족이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이처럼 음침하고 낡은 장소에는 머무른 적은 없었다.

‘내가 왜 여기에...?’

이곳이 어디인지 왜 자신이 여기 있는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비앙카가 떠올 릴 수 있는 마지막 기억은 분명 유진과 싸움 도중 엄청난 충격을 느꼈다는 것이다.

‘...큿.’

그때를 떠올리자 비앙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유진에게 패배한 것은 알겠다.

하지만 어떻게 졌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일단 욱신거리는 턱을 만지려고 하자.

—덜컹!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덜컹! —덜컹!

몇 번 더 손목을 당겨 보지만 여전히 움직이지 않는다.

“이게…. 뭐야..?”

그때야 온전히 정신을 차린 비앙카는 자신이 알몸 상태로 의자에 구속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누구야! 누가 이런 짓을 한 거야!”

비앙카가 수치심과 분노로 소리치자 이젠 익숙한 얼굴의 남자가 나타났다.

“깨어났네요.”

“...유진 칼리오페...!”

“네, 선배님. 생각보다 더 아담한 가슴을 가지고 계시네요.”

사내에게 자기 알몸을 보였다는 생각에 순간적으로 수치심이 몰려왔지만, 방긋 웃고 있는 유진의 얼굴을 보자 확신이 들었다.

이건 저 자식이 벌인 일이었다.

“...미친 새끼! 이거 당장 풀지 못해!!”

“그건 어렵겠는데요? 애초에 풀 것이었다면 이렇게 묶어 놓지도 않았겠죠?”

계속해서 즐겁게 웃고 있는 유진의 얼굴을 보자 비앙카의 마음속에서 아가리를 찢어버리고 욕구가 솟아난다.

“...마지막 기회야... 당장 풀어.”

“....음...잠시만요...으음...하아...제가 선배님의 제안을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거절해야겠네요.”

“그래? 그럼 죽어!”

그 순간 비앙카는 '신체 강화'를 사용해 의자 채로 부숴 버리고 유진의 아가리를 후려갈길 생각이었지만….

덜컹—

의자는 조금 흔들렸을 뿐 도저히 구속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어째서?”

이해할 수 없었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너무나 당연하게 사용하던 '신체 강화'가 왜 갑자기 왜 갑자기 발동하지 않는가.

“하하핫!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웃겨 죽이시려고 하나.”

"왜..능력이...? 너....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비앙카가 절규하듯 소리치자 유진은 손으로 머리를 쓸어올리며 작은 자수정을 보여주었다.

“선배님, 이거 보이시나요?”

“닥치고 내 말에 대답해!”

“그러니까 들어보세요. 여기 있는 이 자수정은 선배님의 몸속에 들어 있던 '고유 능력'을 결정화시킨 겁니다. 무슨 뜻인지 이해하셨어요? 이제 선배님은 고유 능력자가 아니라는 소리입니다.”

한 박자 늦게 내 말을 이해한 비앙카의 표정이 잔뜩 일그러진다.

“....그, 그게 가능할 리가 없어...”

“믿든 말든 자유예요. 하지만 제가 선배님의 몸 안에서 이걸 추출한 건 사실입니다. 못 믿겠다면 오른쪽 겨드랑이를 확인해보세요. 아직 지혈하는 중이니까요.”

겨드랑이를 확인한 비앙카 동공이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린다.

...그곳에는 정말 붉게 물든 천이 붙어있었다.

“말..도 안 돼..정말...그런 게 가능하다고..?”

사실 비앙카의 말 대로였다.

‘개뻥이지.’

다른 사람에게서 고유 능력을 추출하는 게 가능할 리가 없지 않은가.

그게 됐으면 지금쯤 희귀한 고유 능력을 갖춘 사람은 모조리 사냥당했을 것이다.

하지만...

납치, 감금이라는 비현실적이고 상황과 더불어 당장 능력을 사용할 수 없다는 공포가 비앙카의 정상적인 사고를 앗아갔다.

“음... 지금 능력을 사용하지 못 하는 걸 보면 그냥 거짓말이 아닌 건 알겠죠?”

“...뭐, 뭔가 다른 속임수를 쓰고 있는 거면...”

“그래요? 그럼 이건 부숴 버려도 상관없겠군요?”

내가 망치를 들고 그대로 보석을 내리치려고 하자 비앙카가 기겁하며 소리쳤다.

“잠깐..!”

“왜 그러시나요?”

“...일단은 믿을 테니까... 부수지 마.”

“흐음... 말투가 영 아닌데요.”

휘익—

내가 다시 한번 망치를 들어 올리고 내려치려 하자 비앙카가 눈을 질끈 감으며 소리쳤다.

“...부수지 말아주세요!”

“...”

“제발...부탁드립니다...”

비앙카의 저 뒤틀린 자존감은 전부 ‘고유 능력’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런 비앙카에게 '고유 능력'을 잃는다는 건 자기 근본을 잃는다는 것과 같다.

도저히 냉정한 판단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뭐, 그렇게까지 부탁하니. 이건 내버려 둘게요."

내가 보라색 자수정을 책상 위에 잘 보이도록 올려놓았다.

그러자 비앙카가 조금 안심한 듯 숨을 길게 내쉬고는 다시 원래의 말투로 돌아왔다.

“...잘 생각해, 유진 칼리오페. 내가 실종된 걸 알면 아카데미에서 가만히 있을 거 같아? 이래 봬도 나는 2학년에서 7위야. 그렇게 쉽게 잊힐 위치에 잊지 않는다고.”

“아...그러네요.”

비앙카의 말을 들은 내가 입술을 깨물었다.

“...올해에 이미 사망이라는 큰 사건이 있던 만큼 어떻게든 찾아내겠죠...”

“그래.... 그러니까... 지금 풀어주면 없었던 일로 할게. 위대한 현자 루멘하르크의 이름에 맹세해.”

비앙카의 맹세를 들은 내가 피식 웃었다.

풀어주는 순간 먼저 나를 제압해서 그대로 아카데미 측에 넘길 생각이면서.

입에 침도 안 바르고 거짓말을 한다.

“...선배님, 참 성급하시네요. 말을 끝까지 들어야죠. 그러니까 찾아내겠죠.... 보통이라면 말입니다.”

거기까지 말하며 내가 옆으로 반 발자국 물러나자 뒤에 숨어 있던 비비안이 나와 입을 열었다.

“...어,언니..소, 소용...없어요...”

비비안이 떨면서 비앙카에게 말했다.

하지만 떨면서도 얼굴 한켠에 보이는 미소는 비비안이 가지고 있는 모순적인 감정을 보여주는 듯했다.

“비비안 네가 왜 거기서...?”

“..어, 언니...제, 제가 베아트리스 가문에서 급한 사고로 인해 어, 언니를 불렀다고 학사에 보고했어요.”

“...비비안...그게 무슨 소리야...?”

“이, 이제 한동안은 아카데미에서는 언니의 행방을 찾지 않을 거예요. 헤..헤헤...”

“...비..비안!!”

비앙카가 소리를 지르자 비비안은 히익 소리를 내며 머리를 잡고 웅크렸다.

“선배님 그렇게 큰 소리를 내 봤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보다 제가 지금부터...”

“....유진!! 너 때문에! 비비안이! 죽인다!! 반드시 죽여 버릴 거야!”

비앙카가 이성을 잃고 날뛰자 내가 어깨를 한 번 으쓱거렸다.

그리고...

—짜아아악

끝이 여러 갈래로 갈라진 짧은 가죽 채찍을 휘둘렀다.

“까아아아아악!”

적당히 힘을 풀고 때렸지만 '육체 강화'가 아니면 어린아이의 신체와 별다른 바 없는 비앙카에는 견디기 힘들 아픔일 것이다.

“좀 진정이 되셨어요?”

“너...지금...”

쫘아악­!

비앙카가 다시 소리를 지르려하자, 이번에는 가볍게 손목 스냅만 이용해서 얼굴에 채찍을 휘두른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도 비앙카의 부드러운 입술에선 붉은 피가 흘러나왔다.

“...이익..!”

눈에 핏발을 세운 비앙카가 또다시 내게 무슨 말을 하려고 했지만, 채찍을 손에 들자 입을 다물었다.

“음, 좋아요. 이제 좀 진정하신 거 같네요. 그럼 계속할게요. 저도 귀찮게 평생 감금시켜 둘 생각은 없습니다. 그러니까 딱 20일. 어떻습니까. 20일간 선배님이 조교를 견뎌 내면 자유의 몸으로 돌려드리겠습니다.”

“...미친 새끼... 그런 조건을 받아들일 것 같아?”

“네, 그것 말고는 선택지가 없으니까요.”

내가 빙긋 웃으며 비비안의 다리사이에 손을 집어넣고 손가락을 움직였다.

“흐읏..윽...흐읏..”

그렇게 잠시 비비안을 가지고 놀던 내가 애액으로 젖은 손가락을 비비안의 입가에 물리며 말했다.

“그래서 어떻게 하시겠어요?”

“....미친 새끼...”

“뭐라 불러도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대답은 하셔야죠.”

"...."

비앙카가 잠시 입을 다물고 고민하지만 결국 선택지는 내가 준 것을 받아들이는 것밖에 없다.

“...한 가지 조건이 있어.”

“말해보시죠.”

“다른 곳은 몰라도....처녀는 건들지 마.”

진지한 얼굴로 저런 말을 하는 비앙카를 보자 웃음이 터져 나올 뻔했다.

“지금 조건을 내걸 처지가 아닐 텐데요? 막말로 제가 선배님을 여기서 죽여서 묻어버려도 아무도 모를 겁니다.”

“...그러면 죽여 보던가. 경고하는데, 처녀를 뺏는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반항할 거야.”

단호한 결의가 서린 비앙카의 눈.

나는 애써 웃음을 참으며 아쉽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어쩔 수 없네요. 알겠습니다. '처녀'는 건들지 않을게요. 비비안 너도 그걸로 괜찮지?”

“...네에...유진님...”

비비안이 고개를 숙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박수를 한 번 쳤다.

“...그럼. 관계도 정립되었으니 바로 시작할까요?... 비비안, 슬라임부터 시작이다.”

“네에...”

비비안이 붉은색 슬라임을 비앙카의 다리 사이에 풀어놓았다.

꿈틀 꿈틀

“으윽...”

슬라임이 파고들자 비앙카가 고통에 찬 신음을 흘렸다.

지금 비앙카의 후장으로 들어가는 슬라임은 가장 급이 낮은 붉은 슬라임이다.

푸른 슬라임이 비싼 이유는 사람의 몸 안에 있어도 거의 이물감이 느껴지지 않는 점 때문이다.

...반대로 가장 저렴한 붉은 슬라임은 효과는 거의 비슷하지만 난폭한 움직임 고통을 느끼게 했다.

“...헤..헤헤...어..언니도..제가..아팠던 것만큼.... 아, 아파야 해요..!”

“....읍...으...비비..안...!..윽...그으만....읏...아으악! 아아윽아아!!”

비앙카의 절규를 들으며 비비안은 공포, 죄책감, 실망, 그러면서도 즐거움, 우월감 등 온갖 감정이 뒤섞인 눈을 반짝거렸다.

* * *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