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회차 히로인이 조교를 기억함-43화 (43/354)

〈 43화 〉 메스가키를 조련하는 법 (2)

* * *

‘비앙카 베아트리스'에 관한 이야기를 좀 더 해보자.

아카조교사의 세계관에서는 2학년의 쌍년.

커뮤니티에서는 메스가키, 혹은 쿠소가키 불렸던 녀석이다.

[그런데 ‘메스가키’ 혼내주는 공략은 언제 올라옴. 존나 싸가지 없어서 내가 깨기는 싫은데.]

이런 글이 수시로 올라올 정도로 커뮤니티에서 제법 인기가 있었고, 그로 인해 많은 사람이 착각하고 있었다.

비앙카 베아트리스가 ‘메인 히로인’이라고 말이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빼어난 외모 그리고 특정 사람들의 취향을 저격하는 성격과 신체조건.

스토리랑 전혀 관련 없는 양호 마망을 정실로 미는 마망단도 존재하는 마당에 대놓고 메인 히로인처럼 보이는 비앙카를 빠는 것은 이상한 게 아니다.

하지만 노멀 엔딩 1회, 베드 엔딩은 수백 회가 넘어가는 내가 보기에는 비앙카 베아트리스는 메인히로인이 아니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결정적인 것은 비앙카가 최종 보스와의 결전에서 쓸모가 없다는 점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메인히로인의 조건 중 하나는 최종 결전에서 얼마나 도움이 되는가였으니까.

최종 결전에서 활약 할 수 있는 히로인을 뽑자면 비비안과 루시아를 포함해 고작 4명이었다.

그리고 그 4명 중에 비앙카 베아트리스는 포함되지 않았다.

───

[이름 : 비비안 베아트리스]

[직업 : 마법사]

[칭호 : 없음]

[조교도 : 80%]

[현재 상태 : ??? ]

───

[능력치]

근력 9 민첩 9 체력 8

지력 44(제한됨 ­10) 마력 49(제한됨 ­10) 행운 8

[마법]

하급 물 원소 마법

하급 불 원소 마법

하급 바람 원소 마법

하급 대지 원소 마법

중급 물 원소 마법

중급 불 원소 마법 (제한 됨)

중급 바람 원소 마법

중급 대지 원소 마법 (제한 됨)

[특성]

마법의 축복 (Rank A+) (제한 됨)

피해망상 (Rank F­)

신앙 (Rank C)

...

───

비비안의 상태창을 봐라, 1학년 꼴찌 주제 마력과 지혜 능력치가 어마무시하다.

하지만 이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역시 A+급 특성 ‘마법의 축복’이었다.

마법의 축복

이것은 ‘침대 위의 왕자’의 마법 버전이라 생각하면 편하다.

'침대 위의 왕자'가 성과 관련된 모든 행위에서 보정을 받는 것처럼 ‘마법의 축복’은 마법에 대한 모든 행위에 보정이 들어간다.

여기서 모든 행위라는 건 단순히 마법을 사용하는 것이 아닌 계산, 판단, 창조, 분석 등을 포함했다.

말만 들어도 사기 같지만, 이 정도는 되어야 최종 보스와의 결전에서 활약 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럼 비앙카는 어떠한가?

지금 당장 쓰기에는 능력치와 고유능력이 나쁘지 않지만, 후반 잠재력이 너무 떨어졌다.

결국, 비앙카의 역할은 비비안의 각성과 조교도 100% 달성을 위한 열쇠에 불과하다는 뜻이었다.

‘...그래도 반드시 공략은 해야지.'

하지만 최종 결전에서 쓸모없다고 무시하고 넘어갈 순 없다.

말했다시피 비앙카는 비비안 각성의 열쇠다.

비비안을 위해서라도 되도록 이른 시일 내에 비앙카를 공략해야만 했다.

'하아...'

...사실 정석 루트로 공략을 했다면 꼭 비앙카를 공략하지 않더라도 기말고사 때 있을 학년 대전 전에 비비안은 각성한다.

그러나 지금 비비안은 꼼수로 공략된 상태라 '흑화 각성'이든 '구원 각성'이든 둘 다 애매한 상황.

그렇기에 더욱 비앙카 공략에 대한 필요성이 높아졌다.

‘...무조건 2학기가 시작되기 전까지는 비비안을 각성시켜야 한다.’

1학기가 프롤로그였다면 2학기는 본편이다.

2학기에는 지금까지 터졌던 사건은 비교도 할 수 없이 큰 사건이 넘쳐나고 내부와 외부의 수많은 적이 나타나 카르네아를 부수려고 할 것이다.

이걸 막기 위해서는 반드시 각성한 비비안이 필요했다.

‘...일단, 이 정도면 됐나.’

상황을 어느 정도 정리하고 나자 피로가 몰려왔다.

하지만 마음속 한구석에서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함이 있었다.

‘뭔가...까먹은 것...같은데..’

마치 뭔가 중요한 것을 잊은 것 같았지만..

‘...뭐 진짜 중요한 것이면 생각나겠지.’

몰려오는 졸음을 견디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

양호교사 아이리스는 지금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이...이게 뭐죠?’

분명 깔끔하게 정리해놓았던 양호실 이곳저곳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양초들이 놓여있었고, 그 한 가운데는 수상한 의식이라도 진행한 듯 의자가 놓여있었다.

‘무, 무슨 일이 일어난거에요...’

차라리 피와 살점이 낭자 하는 전쟁터라면 괜찮다.

그런 곳에서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는 법을 배웠으니까.

무시무시하게 생긴 마물이라도 상관없다.

그런 마물들에게서 사람을 구하는 게 사명이라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귀신만은 안됐다.

물리적 실체가 없고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귀신은 안됐다.

‘어, 어떻게 해요...’

온통 널려있는 양초들이 두렵게만 느껴진다.

행여나 손을 대면 저주받을까 치우지도 못하고 그저 눈물을 찔끔거리는 사이 양호실 문이 쾅 소리를 내며 열렸다.

“히이익!”

비명을 지르며 자리에 주저앉은 아이리스가 천천히 눈을 뜨자 그곳에는 의외의 얼굴이 보였다.

“유, 유진군..?”

***

멍청한 새끼.

중요한 것이라면 생각날 거라는 개소리나 지껄이더니 뒷정리를 까먹고 잠들었다.

눈을 뜨자마자 바로 양호실로 달려왔지만 이미 양호 마망이 도착한 상태였다.

“..아침부터 여기는 왜...?”

양호 마망이 물었다.

아직 나와 양초들의 관계를 의심하지는 않는 것 같았지만 곧 알아내는 건 명백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아침부터 이렇게 급하게 양호실에 올리가 없었으니까.

잠시 고민하던 나는 양호 마망이 내게 가진 호감을 믿고 승부수를 던졌다.

“...그게..주말 동안 못봤더니... 선생님이 보고 싶어서요.”

“넷?!”

“...죄송해요... 너무 갑작스러웠네요. 잊어주세요.”

“...아, 아니에요. 괜찮아요...”

양호 마망이 머리를 쓸어넘기며 살며시 웃었다.

'...후우.'

내가 생각해도 빈약한 변명이었는데 생각보다 호감도가 많이 쌓인 모양이다.

“...그렇게 말해주니 감사하네요. 그런데 이건 뭐죠?”

나는 시치미를 떼며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양초를 가리켰다.

그러자 양호 마망의 눈망울에 물기가 서렸다.

“...저, 저도 잘 모르겠어요. 아침에 와보니 이런 게 잔뜩 있어서... 아무래도 불길해서 일단 교장 선생님께 보고 하려고요..”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른다.

절대 안 됐다.

아카데미 내부에 침입 사실을 알려지면 보안이 까다로워질 것은 명백한 사실.

아직 밤의 아카데미에서 빨아먹을게 잔뜩 남아있는데 그럴 순 없다.

“...그러고 보니 이거 어디선가 본적이 있네요... 분명 숨겨진 지하실에 봉인된 악령을 부르는 방법이었던 거 같은데.”

“히익..! 유, 유진군 아카데미 지하에 그런 게 있나요?”

“어디까지나 소문지만요.”

거짓말은 아니었다.

지하실에 봉인된 악령에 관한 소문이 있는 건 사실이었으니까.

하지만 적어도 내가 아는 한 아카데미에 지하실에 악령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그, 그렇다면 더 보고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마, 만일 저주라도 내리면...”

걱정스럽게 주위를 둘러보는 양호 마망에게 내가 단호하게 말했다.

“아뇨, 괜히 소란 피워서 이런 소문을 더 돌게 하는 건 좋지 않을 것 같습니다. 양초를 피운 것 말고는 별다른 짓은 안 한 것 같고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 이건 제가 치워두겠습니다.”

“그, 그러다 저주라도 걸리면..”

“양초를 치운다고 저주에 걸린다는 소리는 못 들어서 괜찮을 겁니다.”

양초를 하나둘씩 정리하며 대답하자 양호 마망이 옷 끝을 살짝 붙잡았다.

“고, 고마워요... 제가 귀신이나 유령 같은 것에는 약해서...”

“아니에요. 그럼 선생님 얼굴도 봤으니 이만 가볼게요.”

양초를 전부 회수하고 돌아가려고 하자 양호 마망이 손을 붙잡았다.

“...잠시만요... 이왕 왔는데 차라도 한잔하고 갈래요?”

시계를 확인해보니 확실히 강의가 시작하기에는 아직 시간이 남아있다.

“...그러죠.”

책상에 앉아 잠시 기다리자 양호 마망이 향기로운 냄새를 풍기는 홍차를 가지고 왔다.

차를 한 모금 마신 내가 약간의 아쉬움을 담아 물었다.

“...혹시 우유는 없나요?”

“...우, 우유?”

“아, 없으면 괜찮습니다.”

그때 먹었던 밀크티가 기억에 남기는 했지만 없는 것을 달라고 할 만큼 염치가 없지는 않다.

“아, 아뇨 확인해볼께요... 자,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그러자 양호 마망이 커튼이 쳐진 침대 쪽으로 들어가더니 한참 뒤 잔뜩 붉어진 얼굴로 돌아왔다.

“...여, 여기 한 병이 남아있었네요.”

마구 떨리는 양호 마망의 손.

혹시 아까운 걸까 싶어 내가 물었다.

“귀하신거면 굳이 안 주셔도...”

“아뇨.”

내가 거절하자 양호 마망이 단호한 말투로 대답했다.

“...열심히 짜..찾아낸 우유에요. 꼭 마셔주세요.”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거절하기 어렵다.

꼴깍­

“크으...”

여전히 한 모금 마시는 순간 감탄사가 절로 흘러나올 정도로 환상적인 맛이었다.

“...저...유진군.”

내가 순식간에 밀크티를 비우자 양호 마망이 옆으로 다가오더니 내 손에 손을 얹으며 상냥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이제 배는 더 안 아픈가요?”

나도 눈치가 있다.

...지금 양호 마망은 나를 유혹하고 있었다.

“아직 조금 아픈 것 같습니다.”

이미 양호 마망을 공략하기로 한 상황에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거... 큰일이네요. 여기에 누워봐요. 선생님이 좀 쓰다듬어줄게요.”

양호 마망이 침대 위에 앉자 나는 그녀의 허벅지에 자연스럽게 머리를 기댔다.

짧은 치마를 입고 있어 부드러운 허벅지의 감촉이 그대로 느껴졌다.

“그럼... 만져줄게요.”

“...!”

갑작스러운 감각에 눈이 크게 떠진다.

이전까지 양호 마망은 옷 위로 배를 만져줬지만 오늘은 옷 아래에 손을 넣었다.

내가 조금 당황하며 양호 마망을 바라보자 조금 전까지 귀신을 무서워하던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부드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후후, 괜찮아요... 체온이 직접 닿는게 더 좋으니까.”

슥슥­ 슥슥­

단둘이 있는 양호실에서 손으로 배를 만지는 소리만 들린다.

‘....이거.’

양호 마망이 배를 쓰다듬을 때마다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손이 내려가고 있었다.

슥슥­

“....”

“....”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우리 둘 다 이대로 내려가면 손이 어디에 도착하는지 알고 있다.

툭­

결국, 바지에 걸린 손끝.

지금이라도 물러나면 실수인 척 다시 돌아갈 수 있다.

하지만..

양호 마망이 결심한 듯 내게 얼굴을 가까이 대며 속삭였다.

“...유진군 아래쪽은 괜찮을까요?”

양호 마망의 숨결에서 풍기는 은은한 우유 향기.

그 향기에 홀린 듯 내가 대답했다.

“조금...아픈 거 같아요.”

“그럼...선생님이 좀 더 확인해볼게요....”

양호 마망의 손이 서서히 바지 안으로 파고들었고...

“계세요?”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남학생의 목소리가 들렸다.

“흫에엣!”

이상한 소리를 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양호 마망.

그리고 내가 있는 침대에 커튼을 치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응,응 있단다. 드, 들어오렴.”

“...음? 선생님 얼굴이 좀 빨간데 괜찮으세요?”

“괘, 괜찮아. 그보다 무, 무, 무슨 일이니?”

“뭘 잘못 먹었는지 배가 좀 아파서...”

“아, 자, 잠시만...”

커튼 틈으로 살짝 훔쳐보니 양호 마망이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속도로 재료를 조합해서 약을 만들었다.

“하아..하아... 먹으면 배 아픈 게 가라앉을 거야. 받아가렴.”

“...네. 감사합니다.”

순식간에 남학생을 내보낸 양호 마망이 다시 침대로 돌아왔다.

"...음..유진군."

하지만 한 번 분위가 깨져서 그런지 어색한 기류가 맴돌았고 무언가를 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했다.

“....”

“....”

잠깐의 침묵 끝에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제 가야겠네요. 슬슬 강의가 시작해서.”

“..그, 그래. 가야지... 그런데...유진아...”

“...네.”

“...내일 또 보러 와 줄 거지?”

녹아내릴 듯 한 아이리스의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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