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화 〉 비비안 조교 일지 (1)
* * *
“어때요 유진군? 편안해요?”
“...네.”
“후후... 다행이네요.”
이름도 모르는 양호 교사가 내 머리를 슥슥 쓰다듬고 있었다.
그것도 무릎베개를 한 상태로.
‘....왜 이렇게 된 거지?’
처음 전생했을 때부터 느끼던 거지만, 이 세계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이젠 좀 적응을 했는지 정말 두렵게도 이게 상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사실 그동안 뭐 하나 정상적인 것이 있던가.
결사코 배 쓰다듬기를 거부하던 나와 반드시 배를 쓰다듬겠다는 양호 마망.
긴 대치 끝에 극적으로 타협을 본 것이 바로 머리 쓰다듬기였다.
물론 싫다는 건 아니다.
일단 조교사라는 사기적인 특성이 있는 이상, 통제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라면 한 명이라도 많은 여자를 공략하는 것은 분명 이득이었다.
더욱이 상대가 양호 교사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훗날 양호실을 조교 장소로도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나쁘지 않은 조건이다.
“후후, 졸리면 자도 돼요.”
녹아내리는 버터처럼 부드럽게 속삭이는 말.
얼마나 편했는지 나도 모르게 어느새 눈을 감고 졸고 있었다.
‘이게 마망의 힘...?’
과거 ‘아카조교사’의 커뮤니티에서 양호 마망을 울부짖는 녀석들이 몇 명 있긴 했다.
일명 마망단이라 불리며 모든 글에 ‘정실은 양호 마망이다!’라며 댓글을 달아댔지만, 결국 메인 히로인 세력에게 밀려나 어그로 취급을 받은 녀석들이었다.
하지만 한 번 양호 마망의 손길을 느껴보자 그들의 심미안을 재평가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이럴 때가 아닌데….’
루시아에게 명령해놓긴 했지만, 지금처럼 상황이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
당연히 펜으로 창고 안에 상황을 확인하면서 조율하는 게 안정적이다.
슥 슥
이렇게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몸은 도저히 이 손길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진짜 딱 5분만 더 쉬다 일어나자.’
마망의 손길을 느끼며 지금까지의 상황을 되짚어 보자, 나쁘지 않았다.
양호 마망이 달려든 것을 제외하고는 전부 예정대로였으니까.
‘일단 버그 루트에 진입했고...’
비비안의 버그성 공략에는 꼭 필요한 조건이 세 개 존재했다.
첫 번째는 비비안의 호감도를 한계치까지 올려놓되 고백을 받지 말 것이다.
이건 쉬웠다.
‘사소한 친절’과 ‘중간고사’ 이벤트로 호감도는 이미 한계치를 찍어 놓았다.
이때 비비안에게 고백받는 것은 문제였지만, 그건 편지와 부상을 입은 것으로 죄책감을 늘려서 억제했다.
두 번째 조건은 비비안을 공공의 적으로 만들 것이다.
이것도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칼리오페 가문을 제외한다면 5반에서 가문의 힘이 가장 강한 유리아가 내게 호의를 가지고 있었으니까.
비록 그 호의는 칼리오페 가문의 이름에서 비록 된 것이지만 ‘침대 위의 왕자’를 사용해 호의를 호감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리고 나서는 유리아에게 다가올 여지를 줄 듯 주지 않았다.
‘그래서 유진아, 주말에 시간 있으면 나랑 둘이서….’
‘읏...’
‘왜 그래? 괜찮아? 아직도 다친 데가 아파?’
‘조금 쑤시기는 하는데 그래도 괜찮아. 내가 조금 다친 거로 비비안을 구했잖아.’
‘...또 비비안이네.’
그리고 중간에 비비안의 이름을 슬쩍슬쩍 꺼낸 이후로는 내가 손대지 않아도 알아서 진행되었다.
...유리아의 세력이 비비안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물을 뿌리는 것까지 말이다.
마지막 조건은 조금 까다로웠다.
위 두 조건을 달성한 뒤에 학교 내에서 비비안이 홀로 있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이건 약간 운이 필요했다.
먼저 비비안의 대전 상대로 유리아의 파벌이 뽑히게 되면 비비안은 반격을 포기한다.
그렇게 되면 팔 할의 확률로 로레오스는 비비안에게 창고청소를 시킨다.
이 두 개의 조건이 동시에 이루어질 확률을 계산해보자면 대략 11.03%의 확률.
그다지 높다고는 할 수 없는 확률이지만 어쨌든 성공하기는 했다.
뭐 설령 실패했다고 해도 편지를 이용해 비비안을 구 교사로 보내 자위시키면 되는 일이지만….
슥 슥
‘....!’
멀어져가는 의식에 놀라서 눈을 뜨자, 왠지 얼굴이 가까워진 듯한 양호 교사가 보였다.
어딘가 성녀를 닮은 그녀의 눈초리에는 왠지 모르게 끌리는 것이 있었다.
“어머, 잠든 줄 알았더니 일어났어요?”
물론 쾌활하고 낯가림이 없는 성녀와는 다르게 부드럽기 짝이 없는 얼굴이었지만, 이것 나름대로 매력이 있었다.
“피곤하면 자도 괜찮아요. 일어날 때까지 쓰다듬어 줄 테니까요.”
코끝을 스치는 달콤한 우유 냄새와 약간의 분내.
양호 마망의 몸에서는 아카데미의 여학생들과는 명백히 다른 향기를 풍겼다.
‘정신 차려!’
짜악 !
마망의 위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 뺨을 때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 갑작스러운 행동에 양호 마망이 깜짝 놀랐지만, 그녀에게 입을 열 틈조차 주지 않고 말을 이었다.
“오늘 감사했습니다. 하지만 일이 있어서 그만 가봐야겠습니다.”
“아....”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아쉬운 듯 양호 마망이 손을 뻗었지만, 머리를 쓰다듬으며 어느 정도 만족했는데 더는 붙잡지 않았다.
“...그럼 다음에 또 와요. 꼭이에요!”
뒤에서 소리치는 마망의 목소리를 애써 무시하며 더욱 빨리 도망쳤다.
그렇게 마망이 보이지 않을 장소까지 도착해서야 간신히 한숨을 내쉬었다.
‘...저건 반드시 루시아에게 조사를 시켜야 한다.’
정말 수상하기 짝이 없다.
메인 히로인도 아닌데 이 정도의 매력을 가졌다면 분명 뭔가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내가 그냥 마망에 홀렸다는 건데 그건 말도 안 되지 않는가.
“하아...”
마음 깊은 곳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분명 예정대로 잘 진행되고 있는데 뭐 하나 편한 것이 없었다.
***
“...지금 이 상황을 제가 어떻게 생각해야 하나요?”
루시아의 베일듯한 목소리와 차가운 눈빛을 말 그대로 알몸으로 받은 비비안이 사시나무 떨듯이 몸을 떨었다.
“그렇게 가만히 있지 말고 대답해보세요.”
1학년 수석과 꼴등.
우르엘라 가문의 차기 가주와 베아트리스가의 차녀.
어느 하나 비교조차 할 수 없는, 비비안에게 있어 루시아는 정말 말 그대로 하늘에 떠 있는 달과 같은 존재다.
“제, 제발...”
비비안이 본능적으로 무릎을 꿇고 루시아를 향해 고개를 조아렸다.
설령 비비안이 자위를 하지 않았다 할지라도 루시아가 자위했다고 말하면 그렇게 확정될 것이다.
루시아에게는 그럴 힘이 있었으니까.
하물며 진짜 자위를 하는 것을 들켰다.
거기에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제..발...말하지 말아주세요...”
두려웠다.
아카데미에서 퇴학당하는 것도 유진이 이것을 알게 되는 것도 너무나 두려웠다.
그러니 비비안이 할 수 있는 건 그저 비는 것이었다.
“흐음...”
팔짱을 끼고 잠시 비비안을 내려보던 루시아가 창고 물품 위에 기대어 앉아 다리를 꼬았다.
“제가 왜 그래야 하죠?”
“뭐, 뭐든지.. 할 테니까..제발...”
비비안은 땅에 처박을 듯이 머리를 좀 더 조아렸다.
“뭐든지 한다고요? 재미있는 말이네요. 당신이 저에게 뭘 해줄 수 있나요?”
“....”
비비안은 대답하지 못했다.
아무것도 없었다.
비비안이 할 수 있는 건 루시아도 할 수 있다.
너무 당연한 일이었다.
그나마 생각나는 건 돈이었지만, 루시아 용돈으로 사용할 수 있는 금액이 베아트리스 가문의 총 수익과 비슷할 것이다.
비비안이 아무리 돈을 짜내도 루시아가 보기에는 우습기 짝이 없는 금액이다.
“...아무것도 없나 보네요?”
심장을 파고드는 듯한 루시아의 말.
“그럼 이 일은 아카데미에 직접 보고 하겠어요. 그리고 베아트리스 가문에도 정식으로 항의 서한을 보낼 거고요. 이런 추잡한 일을 저질렀으니 그만한 각오는 했겠죠.”
비비안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
아버지의, 어머니의, 그리고 무엇보다 언니에게 받을 시선이 두려웠다.
참으려 해봤지만, 결국 비비안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히끅...히끅...”
“흐음, 왜 울죠? 내가 나쁜 짓을 한 거 같네요. 나쁜 짓을 한 건 그쪽 아닌가요?”
루시아님의 말대로였다.
나쁜 건 나였다.
잘못된 것도 나다.
아카데미 안에서 자위를 한 것도.
그 대상을 유진으로 삼은 것도.
모두 내 잘못이다.
“대답이 없네요? 제가 잘못 한 건가요?”
“히끅, 아, 아니에요. 루시아님은 잘못하지 않았어요. 전부 제가 잘못했어요. 제가 나빠요...”
“그렇죠. 전부 당신이 잘못한 것이에요.”
“...네. 제가 잘못했어요. 죄송해요... 죄송해요..”
“그러면 제가 당신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루, 루시아님이... 바라시는대로 해주세요.”
비비안이 훌쩍거리며 대답했다.
아카데미에, 아니 유진의 곁에 남고 싶었지만 그럴 자격조차 없었다.
비비안의 대답을 들은 루시아 잠시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흐음... 그렇다면 한 번 기회를 드릴게요.”
“히끅.. 저, 정말인가요?”
“네, 안 그래도 애완동물을 기르고 싶었거든요”
“....?”
루시아의 뜬금없어 보이는 말에 비비안은 그 말을 이해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정말 눈치도 없네요.”
루시아의 싸늘해진 시선을 받고 나서야 비비안은 그녀가 무엇을 바라는지 알 수 있었다.
“아... 하겠습니..”
─짜악
비비안이 창고 바닥을 나뒹굴었다.
뺨이 뜨거웠다.
두려움에 이빨을 딱딱 떨렸다.
마법뿐만이 아니라 신체 능력도 루시아의 쪽이 압도적으로 위였다.
한순간에 몸이 서열을 기억하게 되었다.
“개가 인간의 말을 하면 안 되죠. 그렇죠?”
싱긋 웃으며 말하는 루시아.
“...멍..”
치욕스러웠다.
아무리 망해가는 귀족 가문이라고 하지만 비비안도 귀족이었다.
이런 짓을 해서는 안 된다는 사고관과 예법이 몸에 새겨져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비비안을 치욕스럽게 만드는 것은 이러한 상황에서도 젖어오는 음부였다.
“...흐음... 이런 상황에도 또 젖었네요?”
“...흐읏....멍..”
루시아의 손가락이 음부에 닿자 참을 수 없는 신음이 흘러나왔다.
“...음란한 암캐 년.”
질 안에서 손가락을 움직이며 루시아는 비비안의 귓가에 경멸에 찬 말을 속삭였다.
반론조차 할 수 없었다.
스스로 보기에도 자신의 몸은 음란하기 짝이 없었으니까.
“....멍.”
비비안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자 루시아가 만족한 듯 뒤로 물러났다.
“그럼 오늘은 이 정도만 할게요. 다음부터는 제가 부르면 언제 어디서라도 달려와요.”
“....멍.”
“그래요. 잘 하네요. 그렇게 하면 돼요. 그럼 앞으로 잘 부탁해요... 비비안.”
루시아의 푸른 눈동자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비비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