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화 〉 이 멋진 마을에서 첫경험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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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en
창문에 걸려 있는 작은 팻말.
문을 열고 상점 안에 들어가니 내부는 밖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넓었다.
“산키샌 마을에 이런 곳이 있었네여?”
루시아가 신기해하며 주위를 둘러본다.
그러고 보니 루시아를 데려온 적은 없었다.
처음 발견한 이후에는 마을 내에서 빠른 이동으로 올 수 있는 장소니까 시간도 아낄 겸 거의 그렇게 다녔으니까.
잠시 가게를 둘러보고 있자 벽 뒤에서 느릿한 목소리가 들린다.
“처음 보는 얼굴이네.”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 루시아의 눈빛이 변하며 내 앞을 지키듯이 막아섰다.
“괜찮다. 물러나 있어.”
“...네.”
명령에 물러나기는 하지만 루시아는 끝까지 목소리가 들린 방향을 노려본다.
스르륵
닫혀 있던 벽이 양쪽으로 갈라지며 화려하기 짝이 없는 소파에 몸을 기댄 여인이 보였다.
“어서 오세요. 마녀의 만화점에.”
속이 비쳐 보이는 붉은색의 네글리제를 입은 채, 장담배를 입에 물고 있는 눈물점이 인상적인 미인이다.
“후우…. 잘생긴 도련님과 아리따운 아가씨라. 마음에 들긴 하지만 여기에 오기에는 아직 어리지 않을까.”
「쾌락상 트리스티아」
아카조교사에서 몇 안 되는 공략 불가 대상이다.
“후흣, 도련님. 무섭게 쳐다보네. 여기가 무슨 가게인 줄 알고 찾아온 걸까?”
“쾌락 상점이지.”
내 대답에 트리스티아의 여우를 떠올리게 하는 눈이 잠깐 커지더니 이내 가라앉는다.
“흐음, 누구한테 들었지? 사리타 부인? 로만 부인? 어느 쪽일까.”
“둘 다 아니야.”
“뭐, 중요하진 않아. 나는 정식으로 영업 허가를 받아서 하고 있으니까.”
툭툭
장죽으로 치는 곳에는 영업허가증이 당당히 걸려 있었다.
“영업허가증에는 잡화점으로 적혀 있는데.”
“여긴 잡화점이야. 인간의 쾌락을 늘려주는 잡화점.”
“제국에서도 그렇게 생각할까?”
“어머, 불법적인 건 아무것도 사용하지 않는데?”
아직은 쓰고 있지 않을 뿐이다.
상점에서 거래를 반복해 신뢰를 쌓으면 중독성 있는 미약도 만들어 주니까.
“그래서 그쪽 도련님은 제국에서 나온 감찰관이라도 되는 건가? 그러기에는 너무 어린데.”
“아니, 그냥 손님이야. 만들어 줬으면 하는 게 있다.”
“흐음, 어떤 걸?”
트리스티아가 다가오자 설계도를 건냈다.
설계도를 잠깐 훑어본 트리스티아가 실망했다는 듯 말했다.
“원격 조정형 진동석? 이건 내게 부탁하지 않아도 이미 시중에도 잔뜩….”
“끝까지 읽어라.”
“흐음…. 그래 봤자.”
지루하다는 듯 읽어가던 트리스티아의 붉은 눈동자가 사납게 변한다.
“...도련님. 이건 어떻게 알았지? 아직 연구 중인 물건이었는데?”
트리스티아는 내게 별다른 관심을 둬서 질문을 던진 건 아니다 그저 어린 나이에 이곳에 와서 캐물었을 뿐.
잠깐의 심심풀이.
딱 그 정도 흥미만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설계도를 읽는 순간 나에 대한 평가가 달라졌다.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오직 트리스티아만이 알고 있는 것을 내가 알고 있었으니까.
“그것 역시 중요하지 않지.”
“...하, 재미있네. 도련님. 이름은?”
“스벤.”
“가명은 집어치워. 본명을 말하지 않는 건 현명하지만 나는 이름도 모른 사람이랑 거래할 생각은 없거든.”
역시 트리스티아다.
표정 하나 안 바뀌고 가명인 걸 알아본다.
“유진이다.”
“유진…. 유진이라. 어디서 들어 본 거 같은데.”
트리스티아가 재를 털며 잠시 고민한다.
“...분명 칼리오페 가문의 삼남이 그런 이름이었던 것 같은데.”
“내 신분이 중요한가?”
“아니, 그저 이름을 알아 두고 싶었을 뿐이야.”
“그럼 본론으로 돌아가지. 다음 주까지 만들 수 있나?”
아직 상품이 개발되기 전이라는 건 어느 정도 예상했다.
상품을 처음 구매했을 때는 마침 신제품이 완성됐다고 한번 구매해 보시는 게 어떠냐는 대사가 같이 나왔으니까.
그때가 1학년이 끝난 직후였으니 지금이라면 완성되지 않았겠지.
“만드는 게 어려운 물건은 아니니 열심히 하면 할 수는 있겠지. 하지만 의욕이 좀 사라졌네. 내가 만들고 싶어서 만드는 것이면 몰라도 누군가를 위해서 만드는 건 취향이 아니야….”
“당연히 돈은 내겠다. 얼마나 필요하지?”
이게 있고 없고 비비안의 공략 난이도가 한참 차이 난다. 한동안은 밥을 굶더라도 꼭 사야 한다.
“하, 돈은 필요한 만큼 벌었어. 남편의 물건으로 만족 못한 몸을 주체 못 하는 귀부인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니?”
─후우.
트리스티아가 내뱉은 담배 연기가 코끝을 스친다. 아찔할 정도로 독한 향기다.
“...그럼, 뭐가 필요하지?”
긴장감에 주먹에 약간 힘이 들어간다.
지금까지는 내가 알고 있던 ‘트리스티아’였다면 지금부터는 내가 모르는 ‘트리스티아’다.
내가 알던 트리스티아는 오직 돈으로 거래를 했으니까.
초승달처럼 가늘게 눈을 뜬 트리스티아가 새하얀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킨다.
“몸으로 때워야지.”
“...내 몸으로 지불 하라는 건가?”
“아니. 도련님도 나름 잘생기기는 했지만 끌리진 않아.”
트리스티아가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비키라는 신호를 한다.
인상을 찌푸리고 한 발자국 옆으로 물러나자, 트리스티아의 손가락은 뒤에 있는 루시아를 가리키고 있었다.
“저 아가씨로 받을게.”
“이 아이의 몸으로 지불하라고?”
“그래, 나는 여자가 좋거든.”
공략 불가라 뜨는 이유가 있었다.
단순히 조교 물품을 파는 곳이라 조교 당해서 물품을 너무 쉽게 바치면 난이도가 내려가니까 그런 줄 알았는데.
...그냥 레즈였다.
이게 납득 간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오히려 어이가 없다고 해야 할지.
하지만 내가 해야 하는 답변은 정해져 있다.
“거절하지.”
지금 루시아는 내게 이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제1조건 이다.
절대로.
그 누구에게도.
루시아를 빼앗길 순 없다.
내가 트리스티아를 노려보며 루시아의 어깨를 끌어당긴다.
“...이건 내 것이다. 나는 내 것을 누구에게 뺏길 생각은 전혀 없어.”
“주인님...”
눈을 가늘게 뜨고 웃던 트리스티아가 어깨를 으쓱였다.
“흐음…. 아쉽네 그런 거래도 없었던 거로 하자. 잘 가. 도련님.”
또각, 또각, 또각.
발소리를 내며 곧장 돌아가는 트리스티아.
‘...어, 이게 아닌데?’
한 번 거절하면 다른 조건을 내걸 줄 알았는데 그냥 돌아가 버린다.
잡아야 하지만 그렇다고 지금 와서 루시아를 주겠다고 할 수도 없다.
스르륵.
천천히 벽이 닫힌다. 초조함이 점점 늘어가고 어떻게 붙잡을지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그렇게 벽이 완전히 닫히기 직전 갑자기 다시 벽이 열렸다.
“...냉정하네, 도련님. 보통 이렇게 행동하면 알아서 굽히던데.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자존심 상하네.”
다시 내 앞에 선 트리스티아가 말했다.
“그럼, 거래 조건을 다시 바꾸자. 하룻밤을 같이 보내는 건 어때?”
“...말했을 텐데. 나는 내 것을 뺏길 생각이 없다고. 그건 하룻밤이라도 마찬가지다.”
“으음. 나랑 자는 건 그쪽이 아니라 도련님이야.”
“...?”
지금 이 마녀가 뭐라고 말하는 건가.
앞뒤가 맞는 말이 하나도 없다.
“...남자에게는 관심이 없다고 하지 않았나?”
“응, 관심 없어.”
당연하다는 듯 말하는 트리스티아를 보자 점점 더 이해가 안 된다.
“하지만 도련님. 나는 아름다운 여자가 좋지만, 아름다운 여자가 괴로워하는 건 더 좋거든.”
트리스티아가 여우처럼 웃었다.
“그쪽에 있는 아가씨는 폭력으로는 굴하지 않을 거 같고... 애초에 난 육체적인 폭력은 그다지 선호하지 않아. 내가 즐기는 건 쾌락과 죄책감, 슬픔, 질투, 같은 부정적 감정이 모여 정신적으로 무너지는 모습을 즐길 뿐이야.”
말만 들어도 어질어질하다.
그러니까 이 여자는 레즈비언이자 사디스트라는 말인가?
....어떻게 이 세계에는 제정신인 여자가 하나도 없는 것 같다.
“그리고 저 아가씨에게는 도련님을 다른 여자에게 뺏기는 게 가장 충격이 클 것 같거든. 그렇지?”
다 안다는 듯 잘난 척하며 말하는 트리스티아의 말에 내가 피식 웃음을 흘릴뻔했다.
다른 건 몰라도 이건 틀렸다.
전에도 말했다시피 루시아는 내가 다른 여자들에게 무슨 짓을 해도 상관하지 않는다.
내가 그렇게 만들었으니까.
“...무슨 말씀이세요? 주인님이 원하신다면 언제든지 다른 여자를 품어도 상관없어여.”
봐라, 이렇게 말이다.
“아가씨가, 그렇게 생각하고 싶은 건 아니고?”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네여.”
“자기도 모르는 건가? 아니면 모르는 척을 하는 건가? 그렇게 쌓아 두고 있다가는 언젠가 터지고 말 거야.”
“저는 아무것도 쌓아둔 게 없는걸여?”
방긋방긋 웃는 루시아와 나긋하게 속삭이는 트리스티아.
“그렇다면, 네 주인이 내게 완전히 넘어오더라도 아무렇지 않겠구나.”
“네, 당연하죠. 저는 주인님의 것이니까여. 그런데 그럴 일은 절대로 없을 거예여.”
루시아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하자 트리스티아가 피식 웃었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지?”
“그쪽, 저보다 못생기셨거든요.”
방긋 웃으면서 칼로 쑤시는 말에 트리스티아가 충격 받은 표정을 지었다.
...트리스티아의 외모도 절대 못생겼다는 말을 들을 정도는 아니다.
외모로 따져도 제국에서 열손가락 안에는 충분히 들테니까.
하지만 상대가 루시아였다.
비록 염색과 화장으로 외모를 감추고 있다고 하나 '제국의 달'이라 불리는 세계관 최강자 수준의 외모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태어나서 못생겼다는 말은 네게 처음 들어 보는구나.”
“제 옆에 있으면 앞으로는 많이 들으실 것 같네요.”
“아주 건방져.”
“상관없어요. 저는 주인님 말고는 잘 보일 필요도 없거든요.”
계속해서 방긋방긋 웃는 루시아와 입가가 떨리는 트리스티아.
정면에서 저런 말을 들었는데 화내지 않고 표정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대단하다고 느껴진다.
“후훗…. 그래. 좋아. 그렇다면 그럼 도련님만 정하면 되겠네. 어떻게 할래? 두 번째 거절에도 붙잡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아. 이번에 거절하면 정말 끝이야.”
“...”
나로서는 이 제안을 거절할 이유가 없다.
조교 용품을 구하기 위해서 꽤 많은 돈을 쓸 생각이었는데 이렇게만 되면 공짜로 조교 용품을 손에 넣을 수 있는데다, 침대 위의 왕자도 실험할 기회다.
“알았다. 내 몸으로 지불하지.”
“좋은 선택이야.”
트리스티아가 손가락을 까닥이자, 창문에 걸려 있던 팻말이 빙글 뒤집힌다.
▶Closed
“자, 그럼 둘 다 이쪽으로 오렴.”
벽이 열린 곳으로 들어간 트리스티아가 내게 손짓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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