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화 〉조우(1) (2/301)



〈 2화 〉조우(1)

사각사각.

연필이 공책을 채우는 소리.

딱딱.

분필이 칠판을 채우는 소리.

띵-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반장은 2분후에 칠판 좀 지워주고."

오늘도 이렇게 38살 국어담당 강사의 하루가 끝이 난다.

너무나도 따분하고 지루한 일상.내가 바라던 삶이란 이런 걸까?

김준수 별명 칼퇴근 강사. 기계 김준수.

특징 없는 억양과 농담 없는 수업으로 지루하지만 알찬 내용으로  시간에 맞춰서 끝낸다고 불리는 별명.

솔직히 역겹다고 생각한다.

니들이 뭔데 나를 놀리는 거냐? 부모님 등골이나 빨아먹으면서 학원이란 축복받은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는 너희들이.

부질없는 분노, 갈 곳 없는 증오라는 것은 알고 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가.

어머니의 등쌀에 못내 했던 결혼이 잘못된 걸 수도 있다.

벌써 아내와 섹스리스가 된지 2년이 넘었으니까. 아이도 없는데.

어쩌면 당신이 죽는 한이 있더라도 대학원에 보내줄 테니 교수가되라던 어머니의 말씀을 무시하고 학원강사를 시작한것이 잘못일 수도 있다.

어쩌면 공부에 방해된다고 TV를 치우고는 공부하라고 닦달하던  인간에게 반발하는 마음으로 소설책을 보기 시작했던 게 문제였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냥 나라는 인간 자체가 문제일 수도 있지.

"선생님, 비문학 관련해서 질문이 있는데요."

"그래, 어떤 부분이니?"

"여기 철학에 대해서 다룬 파트인데ㅡ"

학생의 질문에 대답한다. 이미 학생들이 주로 풀어볼 만한 문제집은 전부 풀어봤다. 어떤 문제가 나와도 당황하지 않는다.

"이런 철학을 다루는 비문학은 비교 대상이 나올 거야. 어떤 철학자가 어떠한 철학에 관해서 설명하는 개념을 다룰 때는 그 개념에 밑줄을 긋거나 천천히 내용을 인지하고 반대되는 내용으로 이 지문 전체가 다루는 큰 틀을 이해하면ㅡ"

학생은 몇 번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해했다고 생각했는지 감사하다면서 고개를 숙이고 떠나갔다.

이렇게 누군가를 가르치는 동안에는 알 수 없는 희열과 남들보다  낫다는 우월감을 느낀다.

기계적으로 무언가를 설명하는 자기 일에 환멸을 느끼면서도 자신보다 부족한 지식을 갖춘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가르치고 감사의 인사를 받으면서 느껴지는 우월감에 빠져드는 나는 그야말로 그림으로 그린 듯한 꼰대겠지.

"아, 준수 강사님. 오늘도 수고하셨습니다."

"네, 수고하셨습니다."

오늘도 이렇게 하루가 끝나간다.

이딴 삶은 당장 때려치우고 싶다.

***

타닥타닥.

38세 김준수는 학원이 끝나면 한 명의 작가가 된다.

으음 뭔가 멋있고 괜찮은 문장을 떠올린 거 같다. 여기에 실적도 따라온다면 좋겠지.

요즘은 웹 소설이 대세다. 초콜릿이 떠오르는 플랫폼, 달이 떠오르는 플랫폼, 야한 소설만 올라오는 플랫폼, 요즘 규제가 심하고 볼 작품이 없다고 욕먹는 플랫폼 등등.

플랫폼이 늘어남에 따라 작가들도 많이 늘어나고 있다.

잘나가는 기성 작가와 주목도 받지 못하고 폐사당하는 하꼬 작가.

매우 안타까운 일이지만 나는 하꼬 작가다.

엄준식 : 이 작가는 작품의 기본이 안 됐다. 어떻게 작가 필명이 헤밍웨이?

1q2w3e! : 웹 소설인데 1인칭을 쓰면 감정묘사로 지면을 낭비해서 이야기 진행이 안 됨. 3인칭을 쓰면 주인공이 왜 x 지랄 중인지 공감을 못 하겠음

내 소설이 쓰레기라고? 개새끼들.

내가 읽은 책이 몇 권인지는 아는가?

내가 쓰는 소설들이 소설의 기본 형식에 맞게 쓰고 있다는 건 알고 있나?

이야기의 서사 따윈 무시하는 오로지 사이다만 처먹는 새끼들이.

치익- 후ㅡ.

오늘도 담배 연기와 갈 곳 없는 분노만이 방안을 아른거린다.

소설의 기본도 모르는 새끼들이... 그럼 어쩌란 말인가?

추세인 아카데미 물을 쓰라고? 웃기고 있다. 그 나이대 코흘리개들이 학원에서 무엇을 하는데? 공부밖에 안 하잖아? 매일같이 만나는 게 학생들이다. 내가 니들보단 학생들에 대해서 잘 알거라고 생각한다.

방구석에서 웹소설이나 보면서 낄낄거리고 너희 망상처럼 심심하면 가슴 만지고 여학생이 갈아입는 모습을 남학생이 훔쳐보지도 않는다.

난 도저히 상상이  간다.

학교에서 권력을 휘두르는 학생회장, 경찰같이 구는 선도회장, 주인공이란 놈은 회귀해서 정신연령은 성인이란 새끼가 왜 윤리적 갈등도 없이 여학생들이랑 랑데부를 찍고 있나?

아무리 힘이 세다고 해서 질도 안 좋은 일반 철검으로 장인의 철판 갑옷을 일격에 박살 낸다고? 그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는 건가? 검이 부러지겠지!

개망나니 미친놈이던 놈이 하루아침에 착한 놈이 돼버렸는데  다들 대단하다고만 하지 한 명도 의심을 안 하냐?

...나도 알고는 있다.

이게 요즘 추세란 것을. 모두가 이상하게 여기지 않고 하나의 장르가 되어 독자가 재밌게 읽는 상업적으로 성공한 작품들이란 것을.

모두가 재밌게 보는데 한 명만 욕을 한다? 그건 그 한 명이 이상한 놈이란 거다.

나 같은 하꼬 작가가 증오를 품어 억지로 깎아내리는 것뿐이다.

나는 그들처럼 이야기를 지어낼 수 없으니까.

한 명이라도 독자가 기다리는 작가가 쓰는 소설은 그 순간부터 배설물이 아니다. 하나의 작품이다.

그리고 누구도 봐주지 않는 소설을 쓰는 나는 똥 만드는 기계에 불과하단 것도.

***

벽에 걸린 시계를 바라본다.

현재 시각은밤 9시 정각.

나는 이 시간이 가장 기대된다.

내가 요즘 가장 재밌게 보는 소설이 갱신되는 시간.

나는월억킥 작가의 소설.

 작가가 쓰는 소설은 트렌드에서 살짝 벗어난 듯 하면서도 트렌드를 지키는 묘한 느낌의 소설을 쓴다.

하지만쓰는 족족 성공하는 잘나가는 기성 작가다.

요즘 이 작가가 쓰는 소설은 '작가를 소설로 초대했습니다.'라는 작품이다.

작가가 쓴 소설에서 세계를 구하기 위해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던 주인공이 죽음의 순간 회귀하면서 자신이 소설  존재라는 것을 깨닫고 특별한 힘을 얻어 원래 세계의 작가를 소설 속으로 끌어들인다.

작가는 이게 요즘 유행인 빙의물인가! 하며 죽고 싶지 않다며 스토리를 직접 썼던 작가만이  수 있는 치트를 사용하여 기연과 보물을 얻으려고 하지만 그럴 때마다 삼류 엑스트라로 빙의한 주인공이 방해하며 작가를 가깝다면 가까운 곳에서 멀다면 먼 곳에서 괴롭히는 이야기다.

충분한 실패와 좌절, 고통을 맛본 작가가 자신들의 미래를 고쳐 쓰는 것을 기대하면서 말이다.

이 소설은 굉장히 쓰기 곤란한 작품이다.

일단 이야기의 주체는 회귀한 주인공이지만  주인공의 시점이 복수대상자이자 관찰대상인 작가에게 향해있다.

주인공이 주체가 되는 시점을 좋아하는 독자들이 싫어할 법도 하건만 또 잘 살펴보면 시점은 주인공의 행동에 초점이 잡혀있다는 묘한 균형감.

현재의 이야기는 원작의 주인공이 다녔던 길을 작가가 다니면서 이 작품에 유일한 히로인인 여성을 동료로 들이려고 하는 장면이다.

이제는 엑스트라가 된 주인공이 작가와 전생에 연인이던 그녀를 만나게 나둬야 고민을 하다가 결국은 자신이 먼저 그녀와 만나서 그녀를 동료로 영입하는 장면이다.

툴툴거리는 작가 새끼한테 세상을 구원해야 한다는 숭고한 사명이 있으니 계집질은 어울리지 않다며 자신의 행동이 합리적이라며 변명이 섞인 독백을 하는 주인공.

보통이라면 고구마라고 병신같다며 욕이 실려야 하는 장면임에도 그녀와의 추억을 가끔 풀어내던  잠깐씩 나왔던 묘사 장면이 굉장한 설득력을 얻었는지 아무도 주인공의 행동에 불만을 표하지 않는다.

오히려 NTR이면 하차합니다. 작가님 상하차 하실 뻔했네요. 라는 댓글이 첫 번째 댓글로 올라오자마자 무수한 추천과 악수 요청이 쏟아지고 있었다.

나는 오늘도 작가의 글에 댓글을 단다.

오늘도 재밌습니다.

***

딱딱.

칠판에 판서한다.

결국 어젯밤엔 담배와 함께 건강을 태웠을 뿐 아무런 소득도 없었다.

"언어 아니, 국어는 감각이 필요하다는 말도 많이들 하지만 학습량에 따라서 충분히 점수를올릴 수 있는 과목입니다. 예를 들어서 황순원 작가의 소나기를 보자면 마지막에 보라색 꽃이ㅡ"

강의를 하면서도 머릿속으로는 결국 출장 간다고 나가고는 어젯밤에 돌아오지 않았던 그년을 떠올린다.

하지만  입은 기계와 같이 늘 하던 말을 기계같이 내뱉고 있을 뿐.

"그렇기에 수능에 나오는 작품들이  작가의 본래 의도랑 같지는 않다는 겁니다."

그딴 년에 대한 생각보단 이제 어떻게 해야하는 가가중요하지.

그년에 대한 외도의 증거는 착실히 모여간다.

더는 얼굴을 붉히며 싸우고 싶지 않다.

그년과 대화를 하는 것 자체가 고통이니까.

불륜 증거물로유리한 상황을 만들고 위자료를 받을 뿐이다.

띵-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반장은 2분 후에 칠판 좀 지워주고."

드르륵 턱.

문을 닫고 나갔다.

그러다가 교탁에 두고  짐이 있다는 것을 떠올려서 되돌아갔다.

킥킥킥.

"봐라. 내가 말했지? 완전 기계라니까 기계?"

강의실에 들어가려는 순간 여고생들이 뭔가 떠드는 소리가 들려온다 뭐지?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반장은2분 후에 칠판 좀 지워주고~ 어때 똑같지?"

"개 똑같네.ㅋㅋㅋ"

씨발련들.

***

"어 준수 강사님. 웬일로 오늘은 칼퇴근을 안 하셨데?"

"사람이 빵만 먹고 살 수 있겠습니까?"

"하하하! 수업도 그렇게 농담이라도  하시면서 그러고 그래요."

그러고 그래요는 도대체 뭔 소리야?

"그렇네요."

담배를 한 모금 깊게 들이마시고 내쉬면서 왼손에 들고 있던 커피를 한 모금 마신다.

300원짜리 자판기 커피와 낙타 한 모금.

씁쓸한 인생이 살짝 달콤해지는 순간이다.

"준수 강사님 어떻습니까? 우리딸 사진인데요."

또 시작이다. 36살 강인한 강사.

세계사와 세계 지리를 가르치는 강사. 35살에 애를 낳아 이제 돌이 지난 딸 사진을 오늘도 자랑해온다.

아무것도 없이 시작했으면서 덜컥 애부터 가진 그를 나는 병신같다고 생각했다.

작금의 출산율이 어떤가? 두 명이 결혼했는데 한 명도 낳지 않는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애를 가진다고?  애가 커서 노인네를  명이나 부양해야 하는지 알고 낳은 걸까?

그런데 3년을 보아온 그가 조금씩 바뀌는 모습을 보는 건  색다른 경험이었다.

전기면도기로 대충 자른 듯 턱 주변에 잘리지 않아 길게 자라있던 몇몇 수염에 대충  지저분하다 싶으면 자르던 반곱슬머리, 다리고 입지 않아 늘 주름투성이던 셔츠가 그를 표현하는 가장 단순한 묘사다.

그런 그가 어느 날부턴 면도칼로 면도를 하곤 머리는 항상 깔끔하게 하고 다니고 셔츠는 항상 다려져 있었다.

애인이라도 생겼나 소문이 돌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결혼식에 학원 강사들을 초대했고 어느새 저런 병신같아 보이지만 행복해보이는 아빠의 얼굴을 하고 있다.

신기하다.

소년이 덩치만 커진 남자. 태어났으니 살아가던 것 같던 인간이 어느새 아빠의 얼굴을 하고 있다니.

무엇이 당신을 그렇게 만드는 걸까? 본인이 아파하며 낳은 아이도 아닌데 어떻게 아빠가 된거지?

저 행복해 보이며 딸 자랑을 하는 모습. 나도 그년이랑 애를 낳고 현실에 만족하며 살았으면 똑같은 표정을 하고 있을까?

"그런데 아내분이애 앞에서 담배 피운다고 뭐라고 안 합니까?"

"그러니까 전자담배를 피우는 거죠~ 아 그래도 요즘은 이것도 끊으라고 난리에요."

전자담배는 담배가 아니냐? 어처구니가없는 새끼.

"그래도 많이 줄였어요. 올해는 꼭 금연하려고요."

"지금 3월 말인데요?"

"그런 뜻입니다."

하하한 거리며 호탕하게 웃는 인한 강사.

그 웃음은 부모님 몰래 나쁜 짓을 하는듯한 악동의 미소와 닮았다.

***

쏴아아.

빗소리다.

오늘 강수확률이 30%도 안됐던 걸로 기억하는데 맞는  없다.

나는 자가용이 있으니 다행이다. 구멍이라도 열린듯 쏟아지는 빗줄기를 바라보다가 마지막으로 강의했던 강의실로 향했다.

지금쯤이면 강의실에는 아무도 없겠지. 봐, 아무도 없네.

나는 필요한 물건을 챙기고 강의실 문을 닫고 나왔다.

그대로 집으로 향하려고 발길을 옮기려던 중 휴대폰을 바라보다가 하늘로 시선을 옮긴채 한숨을 쉬는 여학생이 눈에 들어왔다.

우산이 없는 걸까?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다. 그렇게 지나치려는 순간이었다.

응?

그녀가 바라보고 있는 휴대폰의 화면이 묘하게 익숙했다.

여자가 D씨라니 처음 본다.

그렇게 묘한 호기심으로 쳐다보고 있으려니 으슬으슬 몸이 떨린다.

"에취!"

"꺅!"

나는 봄인데도 겨울과 그리 차이가 나지 않는 쌀쌀한 기온에 기침이 나왔고 눈앞에 있던 여학생은 그 소리에 깜짝 놀라서 휴대전화를 손에서 떨어뜨려 버렸다.

"아!"

몸이 순간적으로 반응한다. 떨어지던 휴대폰이 내가 들어올린 발의 발등에 부딪힌 다음 다음 바닥에 떨어졌다.

툭 탁.

나는 서둘러서 휴대폰을 주워 액정이 나가지 않았나 살펴본다.

내 발등에 부딪히고 떨어져서 액정이 나가진 않았을것 같은데.

여고생인데 사과농장 핸드폰이 아니고 은하행성폰인가.

아무튼 이건 중요한게 아니지. 휴대폰의 액정을 살펴본다. 별로 이상은 없는 것 같다.

혹시 몰라서 휴대폰의 이곳저곳을 살펴본 다음 다시 한 번 액정을 살펴본 순간 액정에 떠올라있는 글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월억킥 : 대충 이모티콘 짤

시간이 멈춘듯했다.

나는월억킥? 고닉이다. 본인이 글을 쓰고 댓글에 대댓글을 달았다는 표시.

이게 진짜인가? 나는 안다. 이 고닉은 진짜 그 작가란 것을.

그러고 보니 그랬었다.

하와와 본인쟝은 미필 여고생인 것이 와요.

본인은 여고생이라고 했었다.

리뷰도 많이 올라왔었다.

'로맨스 읽는 누렁인데 나는 월억킥작가 여자 아니면 보추 누렁이가 확실하다.'

'로맨스 작가들 특유의 섬세한 감정묘사 보면 굉장히 보추같음 이거 진짜 ㄹㅇ이다 ㅋㅋ'

'근데 또 신기하게 감정 과잉은 아니고 적당히 테이스트해서 개신기함'

'아 ㅋㅋ 솔직히 감정 과잉은 뒈짓헌터급만 아니면 됨 ㅋㅋㅋ'

그래. 그 리뷰들을 볼때마다 고개가 끄덕여졌지.

남자주인공의 시점으로 쓰였지만 굉장히 섬세한 감정묘사, 처음엔 연애 경험이 풍부한 작가라고 생각을 했는데 어쩌면 여성 작가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저..."

눈앞에서 들려온 소리에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휴대폰의 주인이자 나는 월억킥 작가인 여학생이 조금 불편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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