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화 〉1일차
눈을 뜨자 초록색 방에 들어와 있었다. 연녹색에 가까워서 흰색 방보다는 확실히 눈이 편했다. 침대는 다섯개가 있었고 다들 누워있었다. 내가 제일 먼저 일어난 모양이다. 침대도 다섯개 다 색이 달랐는데 내 침대는 아기자기한 디자인에 핑크색이라 기분이 너무 나빴다. 주변을 둘러보자 컴퓨터도 있고 티비도 있고 있을 건 다 있었다. 심지어 보드게임이나 게임기도 다 있었다. 할 지는 모르겠지만.
거기서 어떻게 기절해 여기로 온건지 중간 단계가 없었다. 마음대로 기절시키고 움직이는게 무섭긴 했지만 개조하는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나를 포함해 옆에 누워있는 사람들을 보자 옷이 갈아입혀져 있었다. 나는 모르겠지만. 나머지는 처음처럼 다 러닝셔츠에 검은색 스포츠 반바지였는데 엘리스만 밝은 붉은색 여성용 스포츠 반바지였다. 악의가 느껴져서 내가 기분 나빴다.
아까와 달리 팔이 자유로워지자 아까부터 궁금했던 목에 찬 것을 만져봤다. 거의 고무마냥 딱 붙어서 틈도 없다. 소리도 안나고 엄청 불편하지도 않았다. 벌리거나 잡아 당길수도 없었다. 아예 침대에서 일어나 주변을 살펴봤다. 살짝 5명이 있기에 좁은 숙소 같았다. 방 하나에 싱글 침대가 일자로 다섯개나 붙어 있으니 더 그런 느낌이다.
보통 이런 공간엔 2층 침대가 있지 않나? 싶다가도 촬영에 방해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에게 보여진다는 것을 의식하기 싫어도 의식이 됐다. 프라이버시가 전혀 없었다. 누구나 보고싶은 사람이 다르니까 뭐. 그럴 수 있다. 설마 날 보고 싶은 사람이 있겠나 싶기도 했다.
컴퓨터 전원을 키고 주변을 살펴봤다. 화장실이 투명하게 있었다. 정말 악취미였다. 남성용 소변기나 좌변기, 심지어 욕조 또한 다 투명했다. 스트레스가 치솟았다. 좋아하는 샤워도 한동안 삼가야겠다.
가장 먼저 조금만 개조된 마리가 먼저 눈을 떴다.
"어..."
고개를 들어 살피던 마리는 나와 눈이 마주쳤다.
"아.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어색하게 인사를 했다. 그 일을 같이 겪긴 했지만 대화 한 번 섞은 적 없던 이였다. 심지어 대인관계가 괜찮은 친구 같지는 않다.
"그. 학생 이시라고?"
"아! 네. 이제 막 성인이예요. 세리아님 이라고 부르면 될까요?"
"세리아? 아. 네. 내 이름 세리아였지 참. 네 그러세요."
순간 까먹었었다. 다른 사람들 이름은 기억해놓고 내 이름이 불린 일은 적었기에 더 그랬다.
"저는 마리였고. 익숙해져야겠죠? 이름 잘못 부르고 엘리스님이 벌점 받으셨으니까."
"네. 벗어나기 전까지는 익숙해져야죠."
그는 생각이 많아졌는지 턱을 매만지다가 매끈한 턱에 놀랐는지 눈이 커졌다. 그리고 내게 물었다.
"제가 정신이 혼미했어서 첫번째랑 두번째 개조를 잘 못들었는데 뭐였나요?"
"첫 번째는 제모, 두 번째는 피부였어요."
그는 문득 생각난 듯 바지 앞쪽을 잡아댕겨 보았다.
"역시 팬티도 없고 중요 부위에 난 털들도 다 사라졌네요. 이런 말도 안되는 소설같은 일이 벌어지다니. 심지어 이런 종류는 피폐물이 뻔해서 싫어하는데."
"피폐물..."
내 정신이 피폐해지긴 했다. 그는 소변이 마려운건지 화장실에 가려다 말고 망설였다. 당연히 유리로 된 창에 변기라면 나같아도 망설인다. 결국 배변의 욕구가 더 컸는지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기 시작했다. 그의 자지가 정면에서 보이자 불쾌해서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애초에 보는게 예의가 아니긴 했다.
다음엔 제니퍼가 아닌 아저씨가 일어났다. 파들파들 팔을 떨면서 몸을 일으키는데 안쓰러워 보였다. 처음과 달리 아저씨가 살이 쪽 빠지는 바람에 내가 여기서 제일 뚱뚱한 타입이 되었다. 분명 통통한건데.
"안녕하세요? 몸은 어떠신가요?"
"아. 네. 세리아님? 맞죠?"
다들 이름부터 확인하는걸 보니 엘리스의 역할이 컸다. 심지어 나는 몰라도 다들 개조를 겪었더니 더 예민해 보였다. 나는 물을 한 컵 가져다 주었다.
"감사합니다. 안그래도 목이 너무 말랐는데."
벌컥벌컥 원샷을 해버리자 한 컵 더 가져다 줬다. 그는 감사해 하며 반을 더 마셨다.
"제가 줄리였나요?"
"네. 몸은 괜찮으세요?"
"전혀요. 지금 몸에 힘이 안들어가고 휘청거리는걸 간신히 참고 있어요. 엘리스씨는 어떨지..."
배려심이 꽤 많은 타입이었다. 나이가 많아서 바로 반말 할 줄 알았는데 개념도 있고. 본인도 힘들면서 남을 걱정해 주다니. 개조 하나도 안당한 내가 오히려 눈치보였다. 화장실에서 돌아온 마리가 그에게 인사했다.
나는 둘이서 인사하게 두고 틀어둔 컴퓨터 쪽으로 갔다. 놀랍게도 인터넷이 됐다. 실시간 검색어에선 온통 ts 아이돌 프로젝트 이야기였다. 바로 우리였다. 나는 당연히 암암리에 악의적 의도를 가진 이들이 납치해서 하는 활동인 줄 알았는데 공개 프로그램이었다.
들어가서 기사들을 확인하니 역시나 논란 그 자체였다. 거의 대형 사고 수준이었다. 공개 프로그램이 아니라 강제 송출인 듯 하다. 경찰이 출동해서 우리의 위치를 찾고 있는 중이며 사람들이 얼굴도 모르는 MC 몬을 향해 욕을 내뱉고 있었다. 나는 살려달라고 댓글을 남기고 싶었지만 벌점이 들어올까봐 참았다. 이기적이지만 언제 구출될 지 모르기 때문에 사려야했다.
뒤에선 제니퍼가 일어났다. 매끈매끈해진 피부를 보니 상황에 안맞게 우스웠다. 여드름이 꽤 많이 있었는데 다 사라졌다. 나는 가끔 심각한 상황에서 다른 생각이 들었다. 고쳐야 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생각대로 되면 그게 생각인가. 나는 주제를 옮겼다.
"여기 인터넷이 되네요."
"네? 진짜요?"
방금 일어난 제니퍼가 가장 놀라며 대답했다. 그 탓에 마리와 줄리는 놀랄 타이밍을 놓쳤다. 나는 내가 본 것을 설명해줬다. 줄리는 혀를 쯧쯧 찼다.
"미쳤구만 미쳤어. 살면서 내가 이런 일을 겪을 줄은 몰랐는데. 어이가 없네."
"그러게요. 저도 이런 경우는 소설에서도 잘 못봤어요."
계속 소설 얘기를 하는 것을 보니 아까 설명 대로 이런걸 좋아하는게 느껴졌다. 다들 그래도 엘리스에 비해 냉정한 편이라 다행이었다.
제니퍼가 망설이다 화장실을 간 사이 엘리스가 일어났다.
"으....으음...?"
그가 고개를 돌려 우리를 보자 눈이 커졌다.
"마...맞아! 나. 나 어떻게 변했지?"
그는 황급히 벌떡 일어나 자신의 몸을 이리 저리 살폈다. 당연하게도 엄청나게 변해있었다. 근육질에 건장하던 그는 건강미 넘치는 여성의 라인과 비슷해 보였다. 뼈와 근육의 모양이 바뀌었다는게 확 느껴졌다. 누가봐도 여성용인 바지를 보자 화가 난 모양이었다.
그는 자기 팔부터 허리, 골반과 허벅지까지 열심히 몸을 더듬다가 우리가 보고 있는 것도 신경 안쓰고 입고 있던 바지를 확 내렸다. 줄리가 눈을 돌렸다.
"이... 이게 뭐야! 이런 씨..."
그는 욕을 하려다 간신히 참았다. 얼떨결에 우리와 눈이 마주쳤을 때 나와 마리가 같이 손사레를 치며 막은 덕분이었다. 그에겐 미안하지만 매끈한 가랑이 사이엔 그의 자지가 보이질 않았다. 그는 나라를 잃은 표정이었다.
자세히 보니 자지가 새끼 손톱만큼 작아져 있었다. 입을 못 다물고 넋을 놓은 그가 자신의 성기를 매만졌지만 발기되어도 새끼손가락 한마디 크기밖에 안됐다. 끝이 갈라져서 귀두인걸 알아볼 수 있긴 했지만 여성의 클리토리스가 크다면 저런 느낌이 아닐까 싶었다.
"크흣!"
심지어 예민한 모양이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허리를 빼며 신음을 흘리고 비틀거리다 엉덩방아를 찧었다. 변한 몸의 근육과 골격에 적응이 필요해 보였다. 얼굴만 안 보면 그냥 가슴 작은 여성이었다.
다리를 벌리고 넘어져서 더 잘보였다. 자세히 보면 그의 불알도 안보였다. 거의 자지와 항문 사이인 회음부에 붙었다 해도 과장이 아니었다. 오히려 알은 없고 살만 남아서 여성의 성기와 닮아보였다.
그는 괜히 우리를 쳐다보며 바지를 올렸다. 우리는 모두 아무 말 할 수 없었다. 6단계에 가면 사실상 성기 상실이나 다름 없었다. 애초에 그가 잘생긴 편이었어서 꽤 미남 스타일인 남자같은 여자처럼 보였다.
쫙 달라붙는 옷이어서 마리가 발기한게 보였다. 엘리스는 정말 화난 모양이었다.
"날 보고 발기한건 아니겠지? 어엉!"
"아. 아니. 제가. 그. 그럴려고 그런 것은 아닌데요."
동정인 그에게 너무 큰 자극이었던 것 같다. 더벅머리를 세차게 저으며 손을 내밀자 엘리스는 분을 삼켰다. 화장실에 갔던 제니퍼가 돌아왔다.
"깨어나셨...네요?"
"..."
엘리스는 말없이 다시 침대에 누우며 얼굴을 감쌌다. 우는 줄 알았는데 그냥 속상하고 어이없는 모양이다. 겉모습과 다르게 질질 짰으면 기분이 더 이상했을 것 같다. 나이 순서라 가운데 누워서 관심이 더 집중된 느낌이었지만 다들 딴청 피워 줬다.
제니퍼는 흘낏 우리를 쳐다보고는 컴퓨터에 앉았다. 그리고는 인터넷을 좀 뒤지더니 게임을 했다. 참 속 도 좋은 놈이었다.
마리도 주변을 살펴보다 게임기를 보고 오 하는 감탄사를 작게 질렀다. 얘도 참 낙관적인 모양이다. 비관적일 줄 알았는데 씹덕이라고 다 그렇지는 않은가 보다. 아저씨도 침대에 다시 누워 생각에 빠졌다. 나도 샤워를 하고 싶은 마음을 참고 누웠다. 절대 저 화장실에서 벌거벗고 샤워하긴 싫었다.
둘 다 게임을 하자 나는 아저씨에게 말을 걸었다. 아저씨라고 불러야 하나 줄리라고 불러야 하나 한참을 고민하다가 말했다.
"저기. 줄리씨?"
"..."
벌써 잠든건 아닌 것 같고 자기 이름을 까먹은 듯 하다. 나도 말 걸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졌다.
이 곳엔 창문도 없고 시계도 없어서 컴퓨터를 하는 제니퍼에게 물어봤다. 그러자 밤 10시라고 말해줬다. 아직 이르긴 했지만 잘만한 시간이었다. 옆에 줄리가 코고는게 들렸다. 놀랍게도 자는게 맞았다.
나도 다음날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자기로 했다. 눈치 보다가 화장실에서 일을 보고 돌아왔다. 남들 다 보이는데서 싸는 기분이라 생각보다 더 더러웠다. 불을 꺼주는 시스템이 없는지 수면 안대를 구비해 줬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새벽에 인기척이 있어서 눈을 떴다. 사실 얼마 안 지났는지 아침인지 감도 안오긴 했다. 그냥 자다 깼으니 새벽 같았다. 그래도 얼마 안자지 않았으려나 싶다. 아무리 자려고 해도 처음 낯선 곳에서 자기가 편하진 않았다. 심지어 어둡게 해주지도 않아서 더 민감했다. 안대를 살짝 내려 보자 인기척의 주인공은 엘리스였다. 그는 살금살금 걸어서 화장실로 갔다.
나머지도 다 자는 모양이었다. 화장실에 들어간 그는 앉을지 설지 고민했다. 그래도 자존심이 남았는지 서서 소변을 누는데 다리를 벌리고 엉거주춤하게 서는걸 보니 앉는게 더 나아보였다. 자존심인지 애써 조준하고 싸는걸 보니 내가 더 애잔했다.
"크읏..."
결국 우는 것 같다. 그런데 목소리가 밖에 이리 잘 들릴 일인가? 내 얼굴이 더 빨개진다. 어쩐지 남들 소변 눌 때 살짝 눈치 챘지만 다들 조용하니까 더 확실해졌다. 소리 증폭도 되는 모양이다.
엘리스는 위아래 옷도 벗어서 옆에다 걸었다. 이거 다 촬영 녹화중인데 까먹은건지 못들어서 모르는건지 궁금했다. 생각해보니 이 얘기 해줄 때 그는 맛탱이가 가 있는 상황이긴 했다. 말해줄 걸 그랬다.
그는 우리가 다 자는 중이라고 생각하는 것인지 샤워도 시작했다. 우는걸 가리고 싶어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모르는 척 다시 안대를 매만졌다. 그가 펑펑 울지 않는게 용했다. 거의 그런거나 다름 없었지만. 그렇다고 위로해주거나 한 마디 하고 싶지는 않았다. 내 자지도 저렇게 변할 것을 생각하면 두려운 마음이 더 컸다.
내일 인터넷을 보기도 두려웠다. 내가 화장실에서 일 본게 찍혔단 것도 짜증나지만 엘리스가 안좋은 마음을 먹을까봐 불안한게 더 컸다. 그래서 비밀로 해야 하는가? 어차피 들킬 일이니 말해주는게 낫다.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2일차 게임도 무섭고 개조는 더 무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