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화 〉1일차 (1/94)



〈 1화 〉1일차

"으음"

조심스레 눈을 떴다가 너무 밝아서 다시 감았다.


머리가 띵하고 울린다. 분명 마지막 기억은 심부름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었는데.


얼굴을 비비려 하자 팔이 어딘가에 묶여 꼼짝을 않한다. 당황스러워서 눈을 억지로 팍 뜨자 하얗고 잠시 뒤 적응하며 보이기 시작했다. 눈이 아파서 그런 줄 알았는데 넓고 하얀 공간이었다. 그 공간에 나를 포함해 다섯명이 묶여있다. 둥글게 마주보며 앉아있다.

딱딱한 철제 의자에 다들 팔다리가 묶여서 이리저리 탈출을 시도해 보고 있는데 가능해 보이진 않았다. 밧줄이 아니라 수갑처럼 동그랗게 생긴 철 잠금장치라  번 당겨보고 나도 포기했다. 다른 사람들을 보다보니 옷이 다 똑같았다. 러닝셔츠에 딱 맞는 스포츠 반바지였다. 상황이 이런데도 복장이  똑같고 이런 상태니까 왠지 우스웠다.


자세히 보니 네명 다 목에 뭔가를 차고 있었다. 분명 나도 차고 있겠지. 느낌이 안드는걸 보니 그린 것일 수도 있다. 목을 이리 저리 기울어보자 살짝 느껴졌다. 역시 그린건 아니구나. 용도가 뭐일까 생각해보자 두려웠다. 납치  상황에선 보통 폭탄을 목에 차던데.

나 만큼 그들도 당황스러운지 아무 말 않고 있었다. 영화나 만화를 보면 누군가는 이런 상황에 소리를 지르며 난리를 칠거라 생각했지만 역시 실제는 다른건지 성격이 그런건지 다들 눈치만 보며 있었다. 한참을 조용히 서로를 탐색하고 있자 갑자기 알람음이 들렸다.

[띠리링]


나를 포함해 여럿이 깜짝 놀라 주변을 살펴봤다.


[안녕하세요 시청자 여러분. 반갑습니다. 여러분들의 MC  입니다.]

밝고 쾌활한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곧이어 누가들어도 라이브가 아닌게 느껴지는 박수소리와 환호갈채가 쏟아졌다.

"누구야! 날 왜 묶어놓은거야!"


앞에 근육질인 잘생긴 청년이 말했다. 왜 아무도 저런 질문 안하나 궁금했는데 저 남성이 해줘서 내심 다행이었다.

[엄청난 투자와 기획이 합쳐진 ts아이돌 프로젝트에 참가하신걸 축하드립니다. 물론 다섯  다 자의는 없었겠지만 들어온 이상 1등 하셔야겠죠?]

"개소리 집어치우고 빨리 풀어줘!"


저 청년은 분명 입모양을 보니  하기 직전까지 간  같다. 뭔가 프로젝트니 뭐니 하니까 방송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 거라면 눈치는 있는 편이다.

[제 말을 앞으로 짜르거나  듣게 된다면 다들 목에  팔찌가 벌을 줄 것입니다. 벌을 받는 것 뿐만 아니라 벌점도 받게 되니까 조심하시길 바랄게요.]


역시 뭔가 있을 줄 알았다. 씩씩대던 남성도 눈치를 보며 사그라들었다.


[앞으로 이곳에선 원래 이름은 버릴 것입니다. 다들 아이돌들은 예명이 있다는거 알고 있죠? 본인 스스로도 포함입니다. 이것도 어기지 않게 조심해주세요.]

 상황에 계속 저 컨셉을 미는걸 보면 참 집요해 보였다.

[이제부터 다섯  각각 소개를 해드리겠습니다. 순서는 나이순입니다. 첫번째 참가자! 마리!]

그러자 나의 맞은편에 있던 더벅머리에 마른 한 남성의 오른쪽 팔걸이가 뒤에있던 등받이에 붙었다. 그는 손을 든 모양처럼 변해서 당황한 듯 했지만 앞머리에 눈이 가려져서 삽살개 같았다. 솔직히 말해서 평범한 것 보단 조금 못생겼다.


"내가..마리야?"


[마리는 막 성인이 된 학생입니다. 20세고요. 온갖 라이트 노벨과 애니메이션으로 다져진 속칭 오타쿠! 읽은 것들 중에 ts관련 글이 많기를 바라고요. 참 부모님 속썩이는 학생이었네요. 친한 친구도 손에 꼽을 정도로 없네요. 안타까워요.]


예상보다  놀리는 말투다. 어리버리하게 얼 타고 있던 그는 팔이 다시 내려가자 휴 하고 한숨을 내뱉었다. 턱수염도 안깎아서 지저분해 보였다.


[두 번째 참가자는 제니퍼!]

그러자 마리의 오른쪽에 앉아있던 남자의 손이 올라갔다. 그는 내리려고 끙끙대다가 포기했다. 역시나 말랐고 얼굴은 평범했으며 나름 멀끔하게 정리된 머리였다. 미용실을 가긴 했지만 스타일을 노린건 아닌 듯한 모양이다. 이 남자 역시 긴장한게 얼굴에 보였다.

[제니퍼는 22세 프로게이머 지망생입니다. fps게임, rts게임, aos게임 빠지는게 없지만 특출나게 잘하는 것도 없어서 애매한 특성입니다. 그로 인해 인터넷 방송으로 빠질까 고민을 하는 중이죠. 친구는 많지만 엄청 친한 친구는 없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제니퍼는 놀란 듯 눈이 커졌다. 인터넷 방송을 한다는 말에 놀란건지 친구가 없다는 것에 놀란건지 알 수 없었다. 하여튼 자신만의 비밀을 들켰다는 것은 짐작했다.

제니퍼의 팔이 내려가고 다음 옆에있던 남성의 팔이 올라갔다.

"아씨! 뭐야!"


[세 번째는 엘리스!]

"내가 무슨 엘리스야! 원래 내 이름은 엘리스라고!"

그가 소리를 치자 다들 영문을 모르는 표정으로 그를 다 바라봤다. 정작 말한 그도 얼빠진 모양이었다.


"내가 언제 엘리스라고 그랬어. 내 원래 이름은 엘리스라고 분명히 말했는데. 엘리스라고?"

[안타깝게도 엘리스는 벌점 1점 추가입니다. 엘리스 1등에 거신 몇 분들이 벌써 한숨쉬는 소리가 들리는  같네요. 하하! 아무리 초기투자가 좋아도 설명을 듣고 하셨어야죠. 어디까지나 선택은 본인의 의지입니다.]

뭔가 여기있는 사람들로 투자도 하는 모양이다. 투자 보다는 도박 느낌이 강했지만 기분 탓이길 바란다. 엘리스는 잘생긴 얼굴을 구겼다. 노랗게 염색해서 포마드 스타일을 한 그는 확실히 여기서 뿐만이 아니라 밖에서도 먹힐만큼 잘생기긴 했다.

[엘리스는 25세로 놀고 먹지만 돈 걱정 없는 망나니 재벌 3세입니다. 이 여자 저 여자 너무 건드리고 다녀서 부모님의 속을 썩이는 중이죠. 허세나 자존심이 강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은 경험도 많습니다. 여기서 유일하게 체육계입니다.]

"설명 개떡같이도 하네. 내가 무슨 부모님 속을..."

벌점을 받고 나니까 무서워졌는지 엘리스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밖에서 보는 사람들이 있다는 의심이 생기자 다들 행동이 조심스럽게 변해보였다. 나도 괜히  움츠러들었다. 엘리스가 심호흡을 하자 러닝셔츠 너머 복근이 더 선명해졌다. 살짝 부러웠다.  통통한 편이라.


그의 팔이 내려가고 이번엔 내 팔이 쑥 올라갔다. 생각보다 강력한 힘이 잡아 당기자 나도모르게 깜짝 놀랐다. 자력의 이동으로 움직이는 모양이다.

[네 번째 참가자. 세리아!]

나는 세리아로 정해졌나 보다.

[그는 27세 남성으로 군대와 대학을 마친 뒤 취업 준비를 하는 평범한 남성입니다. 적당한 대학에 나와 연애도 하고, 군대도 별  없이 다녀온 평범  자체입니다. 취미로는 노래 부르기와 피아노가 있으니 아이돌로써 굉장한 재능이네요! 가족관계도 좋고 친구관계도 좋습니다.]

평범하다면서 계속 멕이는 발언을 하는데 앞사람들에 비하면 선녀였다. 심지어 이제는 아이돌이 되기에 알맞는 인재란다. 중학생  까지 피아노를 치다가 진로를 바꾸고 대학에 가긴 했다. 노래는 잘하는 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발언해 주는 걸 보면 여기 있는 사람들이 어지간히 노래를 못부르나보다.

내 팔이 내려간 뒤 다음 옆에있던 아저씨의 팔이 올라갔다.


[다섯 번째 참가자! 줄리!]

다른 사람들 이름도 얼굴이랑 너무 매치가 안돼서 웃겼는데 이 아저씨가 가장 안어울렸다. 옆에있던 학생 마리는 웃음을 못참고 풋 하며 터졌다.

[33세로 가장 고령입니다. 직장인이고 얼마  결혼을 약속한 여자에게 까였네요. 나름 요즘 떠오르는 기업에 다니고 있습니다. 최근 스트레스가 너무 많아 새치가 많아지고 머리가 살짝씩 빠지는게 고민입니다.]

줄리는 수치심에 눈을 파르르 떨었다. 누구는 너무 여자를 후리고, 누구는 20세인데 그는 탈모있는 아저씨라고 놀리는 뉘양스였기 때문이다. 심지어 사실이라 화내면 지는 느낌이다. 아저씨도  빼면 괜찮을 스타일인데 여기서 가장 뚱뚱했다. 러닝셔츠가 배때문에 터지게 생겼다.


다시 그의 팔도 내려가자 우리는 서로 눈치를 봤다.


[이것으로 다섯 참가자 모두 소개해 드렸네요. 어떠신가요? 맘에 드는 참가자가 있나요? 이제부터  프로젝트의 방향성을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다들 짜증내면서도 혹시나 하고 귀를 쫑긋하며 듣는게 우스웠다.


[이 프로젝트의 최소 기간은 한달을 잡고 있으며 1등하는 사람에게는 데뷔 선택권을 드립니다. 나머지 네명은 5년 활동 강제 참가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5년? 일단은 한달인건가?"


"미친거 아냐?"


"..."

중얼거리는 아저씨 옆에서 엘리스는 거칠게 소리쳤다. 나머지는 이게 무슨 날벼락같은 소리인지 어리둥절 하며 서로를 봤다.  또한 마찬가지였다. 장난성 이벤트 방송 아니었냐고.

[매일 게임을 통해 점수를 주며 그  메인게임의 등수에 따라 ts개조가 적용됩니다. 다들 필사적으로 게임해야겠죠?]


점점 이 목소리가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상도 안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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