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45화 (244/259)

<별 관리자 후보 자격을 획득했습니다.>

새로운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별 관리자? 무슨 소린지 모르겠군.'

시스템은 딸랑 메시지 하나 던져주고 별 반응은 없다.

그래도 전에 모호했던 것들이 확연히 인식되기 시작했다.

이걸로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시스템은 누군가 내게 부여해준 것이 아니다.

내가 주인이고 오롯이 나만의 각성 능력이었다.

이런 게임 형태의 시스템은 내 의식이 상당히 반영된 결과였다.

시스템은 보조수단이다.

내 능력을 객관적인 지표로 보여준다.

'각성하기 전에 게임을 너무 했나?'

그래도 좋은 쪽으로 작용한 것 같아 다행이다.

평범한 각성은 아니다.

원인은 아마도….

검은 마석.

그런데 차원 상점은 아니다.

외부에서 내 시스템에 슬쩍 발을 걸쳐 놓은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퀘스트.

"흠....보고 있지? 이야기 좀 나누고 싶군."

벌거벗은 아름다운 여자가 내 앞에 스르르 나타났다.

하얀 긴 머리와 옅은 물빛 눈동자.

새하얀 피부의 맨들맨들 사타구니에는 균열이 그대로 보였다.

그녀는 그저 무심한 눈동자를 하고 있었다.

인간이 아니다.

그냥 알 수 있었다.

형상만 여자일 뿐 실체도 아니다.

그저 내 인식에 맞춰서 이런 형태로 나타난 거다.

"....." 

그래도 눈요기는 됐다.

첫인상이 좋았다.

그녀가 이것을 노렸다면 계획은 성공이었다.

"넌 뭐지?"

《이 별의 의식에서 태어난 존재.》

내가 그렇게 이해가 됐을 뿐이다.

언어도 아닌 무언가가 내 머릿속에 전해져 왔다.

“퀘스트를 준 것이 네가 맞나?”

별의 미녀가 고개를 끄덕인다.

"어째서 이런 사태가 됐는지 알고 있나?"

그녀가 내 머릿속에 정보를 전달해 준다.

왕따였던 젊은 백인 청년은 나와 같이 검은 마석을 주워 각성했다.

갑자기 근육질로 변하는 몸.

강력한 재생능력과 강력한 힘 같은 기본적인 능력은 나와 비슷했다 

시스템은 없는 거 같았다.

하지만 벽을 붙어 다니기도하는.....내가 처음 각성했을 땐 못했던 능력을 보여줬다.

거미줄은 나오지 않았다.

내가 처음 각성했을 때보다 육체 능력 자체는 높았다. 그러나 성장도 하지 못한 어설픈 능력이었다.

초능력을 각성해 신이 난 녀석은 자기를 괴롭히던 양아치들을 혼내줬다.

거기까지 하면 좋았을 거다.

녀석은 히어로가 되고 싶었다.

히어로는 되고 싶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특히 각성자가 없는 세상에서는 위험한 생각이었다.

조용히 힘을 더 키우든가 해야 했다.

사실 몬스터도 없는 세상이었으니 강해질 수단도 별로 없었다.

있다면 경험치를 위해 동물이라도 죽이거나 살인인데.......히어로를 꿈꿀 정도였으니 모진 놈이 아니었다.

허접한 능력으로 설치고 다녔으니 당연히 미국 정부에 잡혔다.

그리고 실험을 당했다.

강력한 재생능력도 있으니 그들의 실험은 거침이 없었다.

어중간한 힘으로 나대면 결국 저렇게 된다.

그의 재생능력은 강력할지 몰라도 정신은 아니었다.

계속되는 실험으로 녀석의 정신은 붕괴했다.

그러나 정부의 실험은 멈추지 않았다.

그의 붕괴한 정신은 분노와 절망, 공포 온갖 마이너스한 감정으로 가득 찼다.

그래서였을까.

녀석은 폭주했다.

어비스로의 통로를 열었다.

순식간에 심연의 마나가 쏟아져 들어왔다.

자그마한 구멍이었지만 어비스의 기운은 순식간에 청년을 잠식했다.

넝마가 된 녀석은 살덩이 촉수 괴물이 됐다.

역시 좆간들이 문제다.

세계가 어비스에 노출되자 별의 의식이 깨어났다.

그렇게 별의 미녀가 탄생했다.

그녀는 전력을 다해 본격적인 어비스 침식이 시작되기 전 그 통로를 막았다.

운이 좋았다.

애초에 마력이 거의 없는 차원벽이 단단한 별이었다.

일단 막긴 했지만 완전한 봉합은 불가능했다.

아직 균열은 남아있었다.

하지만 이게 한계였다.

균열에서는 어비스의 마력이 계속 흘러들어왔다. 

세상은 조금씩 변화를 시작했다.

그러나 인간들은 그 사실을 몰랐다.

미국 정부는 비밀 연구소에서 폭주한 살덩이 괴물을 폭격했다.

그리고 이 사실은 철저한 비밀에 부쳐졌다.

살덩이의 생명력은 끈질겨 그 폭격에서도 살아남았다.

미국 정부는 그 살아남은 살덩이를 질리지도 않고 다시 실험을 시작했다.

문제는 어비스의 마나는 생명체의 부정적 감정을 상당히 자극한다는 거다.

이쪽 세계의 인간은 마력에 대한 내성이 거의 없었다. 그 자극에 견디지 못한 인간들은 좀비가 됐다.

그건 살덩이를 비밀리에 연구하던 시애틀의 연구소도 마찬가지였다.

세상을 좀비가 뒤덮고.

그리고 그 영향을 뒤늦게 받은 각성자와 괴수가 나타났다.

한번 뚫린 차원의 균열은 아물지 않는다.

그 벽은 점점 얇아질 거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10년이 걸릴지 100년이 걸릴지 모르지만 언젠가는 뚫릴 거다.

침식체가 많으면 그 시기는 더 빨라진다.

그 전에 별의 관리자가 나타나야 한다.

시간을 벌어야 했다.

대책을 세워야 했다.

별의 미녀는 침식을 정화할 존재를 만들고 외계에 도움을 요청했다.

그리고 이곳에 온 것이 나다.

"나 외에도 이곳에 온 외계인이 있나?"

별의 기억을 본 내가 물었다.

《차원을 넘나들 수가 있는 존재는 거의 없다. 내 부름에 답해 이 세계에 온 외계 생명체는 너뿐이다.》

"관리자 후보라는 게 뭐지?"

《말 그대로 별의 관리자, 수호자의 후보. 별의 관리자가 될 최소한의 격에 올라섰다는 이야기다.》

"나도 관리자 후보가 됐다는데?"

《넌 이곳의 생명체가 아니다. 외계의 생명체다. 이 별의 관리자 후보는 될 수 없다.》

그 말은 원래 세계로 돌아가면 될 수 있다는 말과 같다. 

《네가 죽인 살덩이는 유력한 관리자 후보가 될 존재였다.》

".....그게 관리자 후보?"

그 살덩이 촉수 괴물과 동급이라니 기분이 나빠졌다.

그놈이 별의 관리자가 되었다면?

"살덩어리 별이 됐을지도 모르는데?"

《그건 상관없다. 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보기 안 좋을지 몰라도 살덩이든 뭐든 별은 별이다. 하지만 이젠 의미 없다.》

놈은 내가 죽였다.

"내가 죽여서 화가 나나?"

화가 나서 퀘스트를 취소라도 하면 곤란했다.

《그런 감정은 없다.》

"다른 관리자 후보도 있나?"

《있다.》

설마 그 대형 장수말벌 여왕?

이 세계가 벌집이 되는 건가?

그건 곤란한데….

"어비스는 대체 뭐지?"

《어비스는 시험이다. 별의 진화와 멸망을 동시에 가져온다. 하지만 이 별은 아직 어비스의 시험을 감당할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노출됐다.》

무슨 소린지 모르겠군.

"차원 상점을 아나?"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차원 상점 이놈은 여전히 미스터리다.

다른 세계로 가서 알아보면 좀 더 자세한 정보를 알 수 있지 않을까?

목표했던 육체 강화도 9레벨까지 올렸겠다.

경숙이를 구하고 후안 놈을 조질 시간이다.

원래 세계에도 관리자가 있는 건가?

아니면 이런 별의 미녀가 있을까?

그것도 돌아가면 알게 될 일이다.

세이브 포인트는 이미 미리 설치해놨다.

판테라 처음 진입 장소의 세이브 포인트를 제거했다.

세이브 포인트를 하나 더 늘리려면 8포인트가 필요한데….

여분의 포인트가 없었다.

경숙이에게는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든다.

최대한 빠른 시간에 가려고 했지만.

그새 딴 여자에게 홀려서….

시간이 조금 더 걸렸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이렇게 쉽게 흔들린다.

<로그아웃하시겠습니까?>

나는 원래 세계로 돌아가는 통로에 몸을 집어넣었다.

*

*

*

순식간에 풍경은 바뀌었다.

나는 깔끔한 모던풍의 방에 서 있었다.

"어…? 어?"

김빠진 소리를 내며 당황한 여자아이의 얼굴이 보였다.

조금은 소심해 보이는 귀여운 미소녀의 큰 눈은 나를 보고 끔뻑거린다.

좀비 세계로 가기 전.

김경숙의 실종을 호소하던 유나였다.

그녀의 눈엔 내가 잠깐 사라졌다 다시 나타났을 테니 놀랄 만했다.

나 역시 이런 시간의 괴리는 은근히 적응되진 않는다.

"아, 아저씨...지금…."

유나는 조금 전 일어난 현상에 대해 궁금한 듯했지만, 지금은 그걸 느긋이 설명해 줄 시간이 없었다. 

경숙이를 찾을 때였다.

내가 왜 굳이 좀비 세계로 가서 육체 강화를 하려고 했을까.

그걸 위해서였다.

수니의 탐색으로도 발견할 수 없는 지금.

의존할 건 오로지 내 능력이었다.

전에는 의식을 확장할 수 있는 범위가 좁아 못 찾았다.

그래서 혹시 몰라 두 단계나 스킬 강화를 하고 돌아왔다.

가둬놨던 의식을 한껏 개방하고 한껏 퍼뜨렸다. 순식간에 의식은 사방으로 광범위하게 퍼져나간다.

내 의식은 한국, 중국, 일본을 지나 쭉쭉 확장된다.

지구의 거의 삼분의 일에 달하는 범위가 내 인지 범위 안에 들어왔다.

천리안 뭐 그런 거라고 봐야 하나.

천 리보단 훨씬 더 되지 않나?

이러지 저러니 해도 터무니없는 범위다.

이렇게 까지 했는데 못 찾는 건 말이 안 된다.

역시 의식의 과도한 팽창은 내게 초월적 인지능력을 부여해줌과 동시에 여지없이 현자 타임을 가져다줬다. 

그리고 한껏 곤두선 초월적 인지능력은 좀비 세계에서 본 별의 미녀와 비슷한 존재를 파악했다.

그 존재와도 대화를 나눠보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대화는 경숙이의 일을 처리한 후에 하기로 했다.

수니의 말로는 경숙이 있을 만한 곳은 배일 확률이 높았다. 그리고 배로 이동했다면 역시 태평양 쪽이 유력했다.

"....."

찾았다.

경숙이는 일본에서 조금 떨어진 태평양 바다 위에 있었다.

커다란 요트 안.

고급스러운 선실 안에 갇혀있는 경숙이의 모습이 보였다.

폭행이나 해코지당한 모습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에 서린 불안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녀가 갇혀있는 선실밖에는 두 명의 사내가 소파에 앉아 느긋하게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경숙을 감시하는 인간들로 보였다.

둘 다 각성자였다.

오러 단련법을 익힌.

그런데 납치를 하다니 괘씸한 놈들이다.

놈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궁금했다.

가속된 사고를 조금은 느슨하게 해 멈춘 듯한 시간을 흘려본다.

두 사내의 포르투갈어로 하는 대화가 들려왔다. 

알아듣는 것은 문제가 없었다.

이 세계에서 비전 도서관을 개방하고 주체할 수 없이 쌓이는 돈으로 웬만한 언어 팩은 다 사용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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