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가 초능력을 가지고 있기도 했고.
지인들의 소식이 끊긴 것은 안타깝지만, 가족들은 전부 다 무사했으니….
우노 상가 안으로 들어가자 깔끔하게 늘어진 상점들이 보였다.
강유진은 일단 은행 쪽으로 향했다.
은행 문은 이미 닫혀 있었다.
예상은 했다.
이제 해가 지는 저녁 시간대다. 은행 직원들이 퇴근할 시간이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옆에 불이 환하게 들어와 있는 곳으로 들어가자 기계가 길게 늘어서 있는 실내가 드러났다.
늘어선 기계들은 현금인출기랑 비슷했다.
아니, 거의 똑같고 마석을 넣는 투입구가 추가되어 있을 뿐이었다.
『용무를 선택해 주십시오』
강유진은 익숙하게 화면에 쓰여있는 〚마석 매도〛를 터치했다. 그러자 마석이 들어갈 투입구가 열린다.
그녀는 가방에서 마석을 꺼내 투입구에 넣었다.
『마석의 가치를 측정합니다.』
작은 기계음과 함께 마석의 출력을 측정하는 소리가 들렸다.
『마석의 가치는 112코인입니다.』
다행히 마석의 품질이 좋았는지 100코인이 넘게 나왔다. 재수가 없으면 80코인대까지 떨어지는 거로 알고 있다.
『마석을 매도하시겠습니까?』
화면에 떠 있는 〚예〛 〚아니오〛 중에 〚예〛 를 터치했다.
-드르륵!
돈이 나오는 소리가 들리고 현금이 나오는 입구가 열린다.
그곳에는 112장의 지폐가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현금을 받으십시오. 감사합니다.』
강유진은 지폐를 집어 들었다.
'코인이라고 하면서 왜 지폐인 건지….'
만든 사람의 의도야 직접 물어보지 않는 이상 알 길은 없었다.
지폐에는 아름답고 강인해 보이는 여자의 얼굴이 새겨져 있다. 청주에서 비슷한 얼굴의 여자를 봤다는 소문이 사냥꾼들 사이에 돌기도 했다.
지폐를 보던 강유진은 잠시 생각하더니 우노 은행 체크 카드를 꺼내 다시 70코인의 지폐를 입금했다.
전부 입금하지 않는 이유는 상가에 있는 우노 상점들에서는 은행 카드를 사용할 수 있지만, 바깥 상인들에게까지 카드 결제를 하진 못한다.
그러니 어느 정도의 현금은 필요했다.
밖으로 나오니 동생이 옆의 상점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동생이 보는 쇼윈도에 멋들어진 전투 슈트가 장식되어있었다.
〚우노 장비 상점〛
동생이 쓰는 도끼도 저곳에서 샀다.
제일 싸구려로.
상점에서야 싸구려지 밖에서는 그 정도로 튼튼한 무기를 구하기 힘들었다.
'그러고 보니 핸드폰에서 나온 아이가 입었던 슈트도 저것과 비슷한 건가?'
강유진은 자신과 동생의 복장을 봤다.
둘 다 거미 괴물 껍데기로 만든 갑옷을 입고 있었다. 사냥꾼들이 입는 가장 보편적이고 싼 갑옷이다.
우노 장비 상점에서는 취급하지 않는 손재주 좋은 일반인들이 만든 물건이었다.
아직 저 슈트를 살 정도의 형편은 되지 않았다.
'이번에는 뭘 사지. 마법서? 아니야 지금 결제한 마법서도 완전히 익히지 못했어. 천천히 사도 늦지 않아. 마법 지팡이를 사고 싶은데 너무 가격이 부담스럽고….'
그런 고민을 하고 있으니 자신을 발견한 동생이 말했다.
"누나 내가 이걸 입으면 그녀와 잘 어울리는 한 쌍으로 보일 거 같지 않아?"
강유진은 아직도 헛소리하는 동생을 한심한 눈으로 쳐다봤다.
"흠흠. 그나저나 얼마 나왔어?"
자신의 눈초리가 곱지 않자 동생이 헛기침하며 말을 돌린다.
"112."
"괜찮네!"
"그럼 누나! 오늘 치맥 하자!!"
"치맥? 그게 얼만 줄 알아? 한 마리에 우리 가족 열흘은 먹을 수 있는 식량을 살 수 있는 돈이야!"
"뭐 어때! 우리는 각성자 사냥꾼이라고. 궁상맞게 그런 거로 벌벌 떨면 되겠어? 오늘 수익도 괜찮았잖아~ 누나~"
"이게 돌았나. 어디서 토악질 나오게 애교질이야!"
한동안 투덕거린 남매는 동생의 성화에 못 이겨 결국 우노 식품에서 치맥을 사 집으로 들어갈 수 밖에 없었다.
*
*
*
<중급 침식체를 처치했습니다.>
<스킬 포인트를 1 획득했습니다.>
개꿀….
이라고밖에 할 말이 없었다.
가만히 있어도 스킬포인트가 들어온다.
말 그대로 내가 꿈꾸던 완벽한 자동사냥이었다.
역시 남자는 여자를 잘 만나야 한다.
나는 제대로 된 기둥 서방질을 하고 있었다.
그동안 거주지역 생존자들의 생활은 놀랍도록 변모했다.
솔직히 나보다는 수니 덕분이다.
수니는 일반인들을 고용해 아파트 상가건물을 정리하고 상점들을 만들었다.
그렇게 아파트 상가에 이상한 상점들이 하나둘 들어섰다.
운호라는 내 이름을 대충 뭉갠 앞에 우노라는 명칭이 붙은 상점들이다.
내가 지은 것은 아니다.
나도 나중에 알았다.
수니가 마음대로 하게 내버려 뒀더니 그렇게 되어있었을 뿐이었다.
상점 직원으로는 내가 구해준 여자들과 일반인들을 고용했다.
그리고 수니는 은행을 만들고 그곳에서 발행하는 화폐를 이용해 우노 상점들에서 필요한 물건을 살 수 있게 했다.
보통 하급 마석이 출력에 따라 원래 세계에서 천만 원에서 왔다 갔다 한다. 그런 가치가 있는 마석을 그대로 화폐로 사용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수니는 그것을 쪼갤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만든 것이 코인이다.
차원 상점의 코인을 참고한 것이 아닐까?
코인은 하급 마석 이하의 화폐다.
대충 100코인에 하급 마석 한 개.
한 장의 지폐가 1코인이다.
종류는 일단 하나였다.
지금은 하나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나중에 필요하면 더 만들어 내면 된다.
지폐는 원래 세계에서 만들었고, 이그니스의 얼굴을 박아넣었다.
이건 내가 지시한 거다.
나를 위해 헌신하는 이그니스를 위한 내 마음이랄까.
1코인에 10만 원.
당연히 생존자들은 1코인이 10만 원 정도의 가치를 가지는지 모른다.
우노 상점에서 파는 물건들은 원래 세계에 비하면 상당한 폭리라고 볼 수 있다.
차원 상점을 언제나 욕하던 내가 똑같은 짓을 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내로남불.
괜찮다.
어차피 생존자들은 그 사실을 알 리가 없으니 나처럼 불만이 생길 일도 없다.
그렇게 수니가 화폐를 뿌리자 자연스럽게 사람들은 경제활동을 하기 시작하고, 각성자들은 우노 상점에서 파는 질 좋은 물건들을 사기 위해 열심히 사냥에 나섰다.
이거야말로 상부상조라고 할 수가 있지 않을까.
수니는 좀비 세계의 사업에 재미가 들린 듯 이것저것 사업의 영역을 확대해 나갔다.
거창한 것은 아니다.
기본적으로는 원래 세계의 물건을 가져다 이 좀비 세계에서 파는 행위였다.
그녀의 그런 행동이 나를 뭔가 힘들게 한다면야 모르겠지만.
내가 두 세계를 왔다 갔다 하기만 하면, 나머지 일은 수니가 알아서 하니 크게 신경을 쓸 일은 없었다.
게다가 수니의 사업 덕에 사냥꾼들이 상당량의 마석을 쏠쏠하게 가져다주고 있었다.
원래 세계보다 압도적으로 싸게 마석을 매입하는 셈이었다.
나에게 이득도 되고, 의욕적인 수니도 즐거워 보이니 그녀를 말릴 이유가 없었다.
그래도 수니의 사업이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크게 확장함에 따라, 그녀를 뒷바라지하기 위해 인벤토리 스킬을 올릴 수밖에 없었다.
〔 인벤토리 Lv 7 〕
육체 강화 스킬과 같은 레벨이다.
과감한 투자라고 할 수 있었다.
수니말로는 항공모함도 문제없이 집어넣을 수 있을 거라나.
이제 웬만해서는 인벤토리가 모자랄 일은 없을 거 같았다.
단지 수니의 사업 때문에 인벤토리 스킬을 강화한 것은 아니다.
인벤토리는 공격대원들에게도 부여해 줄 수 있다 보니 넉넉한 편이 좋을 거 같았다.
물론 결정적인 요인은 이그니스와 수니, 그녀들이다.
말 그대로 그냥 누워서 그녀들이 벌어다 주는 꿀 같은 스킬포인트에 취해 막지른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떡상한 주식에 신이 나서 집안의 가전제품을 바꾸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역시 쉽게 번 스킬포인트는 쉽게 쓰는 법이다.
인벤토리 스킬이 오르면서 특별한 추가 스킬은 생기지 않았지만, 영웅의 안식처의 대지라고 할 수 있는 하얀 별의 크기도 덩달아 커졌다.
영웅의 안식처가 인벤토리에서 파생된 스킬이라 그런 것이 아닐까 추측할 수 있었다.
올릴수록 기하급수적으로 요구사항이 늘어나는 스킬 강화 포인트에 올리기 쉽지는 않겠지만, 이대로 계속 인벤토리 스킬을 올린다면 진짜 거대한 별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낭군님. 거미 고기를 파는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설화는 종종 내게 거주지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들고 왔다.
"거미 고기?"
"네. 거미 괴물의 고기입니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결국 사람들은 몬스터의 고기에까지 손을 대기 시작했다.
그렇게 놀라운 일은 아니다.
원래 세계에서도 몬스터 고기를 먹는 인간들은 있다.
이유는 조금 달랐다.
이곳 생존자들이야 호기심에 가깝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원래 세계에서는 각성을 위해서였다.
처음에는 그래도 마력을 품고 있으니 먹으면 몸에 좋을 거라는 막연한 믿음으로 먹었지만, 연구하면서 미미하게 몸의 마력 반응이 나타난다는 결과가 나왔었다.
물론 그것이 각성으로까지 이어진다고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은 감성의 동물이다.
일단 몸에 나쁘진 않다는 것이 입증됐다.
획기적으로 뭔가 몸이 좋아지는 것도 없었다.
하지만 마력 반응.
이 한 단어만으로 충분했다.
몬스터 고기는 날개 돋친 듯이 팔렸다.
물론, 이건 먹어도 괜찮은 몬스터 고기를 말하는 거다.
몬스터 고기 중에는 독성이 있는 것도 있었다.
그런 건 당연히 판매 금지였다.
몬스터 고기 중에 맛이 괜찮은 것.
그런 것은 비쌌다.
지금도 비싸다.
나도 각성하는 것에 미쳤을 때 잠깐 먹어본 적이 있다.
내가 먹은 것은 맛도 없고 누린내 나는 싸구려 몬스터 고기였다. 당시의 내 형편에 비싼 것은 먹어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리고 꾸역꾸역 먹다가 토하고 포기했다.
사람이 할 짓이 아니었다.
세상은 넓다고 개중 미각이 이상한지 잘 먹는 놈들도 없진 않았지만, 내 눈으로 몬스터 고기를 먹고 각성하는 인간은 못 봤다.
"맛은 괜찮나?"
"네, 듣기로는 나쁘지 않다고 합니다. 그래도 일단 판매 금지 처분을 내렸습니다."
지금은 괜찮을지 몰라도 독성이 있을지도 모르니 현명한 판단이었다.
"잘했어. 한덩이 가져와 봐."
"예, 알겠습니다. 낭군님."
당연히 내가 먹을 생각은 아니었다.
그 흉측한 거미 괴물 고기라니.
멀쩡한 음식 놔두고 먹을 이유가 없었다.
원래 세계로 가져가서 이상이 없는지 검사를 좀 해볼 생각이었다.
이상이 없으면 새로운 식량이 생겨나는 것이니 생존자들로서는 환영할 만한 일이다.
아낌없이 주는 거미가 될 수도 있다.
생존자들이 식량을 구하는 루트는 지금은 크게 3가지였다.
첫째는 아직 털리지 않은 마트 같은 곳을 뒤져 가져오는 거다.
두 번째는 옆에 있는 강에서 민물고기라도 잡아먹는 것.
그리고 마지막 선택지는 우노 식품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우노 식품의 물건들은 가격이 만만치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