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5화 (175/259)

“컥!! 이, 이런 배은망덕한 녀석! 어떤 마법사가 보더라도 탐낼만한 아티팩트를 줬더니 불량품이라니!”

릴리아나가 억울해서 답답해 죽을 거 같은 표정으로 검은 드레스 위, 그 부풀어있는 풍만한 가슴을 두드렸다.

보기 좋게 흔들리는 가슴.

그때.

거슬리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앨버트가 은근슬쩍 릴리아나의 흔들리는 가슴을 훔쳐보고 있었다.

‘저놈이....그렇게 안 봤는데….’

릴리아나 말대로라면 반지를 이용해 저택을 부수는 것은 무리였다. 겨우 저택 부수는 일에 소중한 마법 아이템을 날려 먹을 순 없었다.

어쩔 수 없다.

다른 마법을 쓸 수밖에.

인벤토리에서 익스플로전 지팡이를 꺼냈다.

“익스플로전도 안된다.”

릴리아나가 또 태클을 걸었다.

“뭐?”

“익스플로전 같은 마법은 마나의 유동이 크다. 적당한 위력이라면 상관이 없다만.....저 정도 크기의 저택을 부수려고 하는 거다. 결계를 쳤다고 하더라도 바깥으로 마력의 유동이 새어나가겠지. 그러면 마법사들의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을 거다.”

“까다롭군.”

“도시에 있는 마법사 녀석들이 주구장창 찾아오는 꼴을 보고 싶으면 써도 된다만.”

.......마음에 안 들지만, 몸으로 때워야 했다.

오랜만에 내 애용 대검을 꺼냈다.

대검이 오랜만에 꺼내 섭섭하다는 듯 “웅웅”거리....지는 않았고….

엑스칼리버라는 거창한 이름만 붙었지.

그냥 적당한 가격만 주면 살 수 있는 튼튼한 양산품 대검이었다.

그런 고급스러운 반응이 있을 리가 없다.

‘이곳에서 괜찮은 마법 대검 하나 건질 수 있으면 좋겠는데....나중에 릴리아나한테 물어봐야겠군.’

저택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에 따라 대검이 마력에 감싸이며 더욱 커다란 검의 형상을 만들어냈다.

“오, 오러 블레이드!!”

내 손에 의해 생성된 마력검에 앨버트가 경악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것과는 조금 다른 성질이긴 하지만 그냥 그렇다고 하자.

마력으로 부풀어 오른 대검을 끊임없이 늘렸다. 기이할 정도로 쭉쭉 늘어났다.

그 거대한 검을 저택의 밑동을 향해 횡으로 휘둘렀다.

-스걱!

-쿠르릉.

거대한 오러 블레이드가 지나간 자리의 저택이 무너졌다.

그 후에도 나는 가볍게 발걸음을 옮기며 빗자루 쓸듯이 휘둘러 저택을 무너뜨렸다.

“아, 너무 큰 덩어리는 좀 더 잘게 부수거라.”

까다로운 철거 현장감독.

릴리아나의 지시가 이어졌다.

내 마력으로 만든 거검에 저택이 다 무너지는 데는 1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앨버트 녀석은 내 신위가 어지간히 충격이 컸던 건지 홀린 듯이 멍하니 내 모습을 쳐다보고 있었다.

남자 녀석의 관심은 필요 없는데 말이지.

“이래도 잔해는 남는데 어떻게 하려고?”

“나머지는 내가 처리하마.”

릴리아나가 그 검은 양산을 접고 바닥을 콕 찍으며 주문을 외웠다.

《디그.》

-쿠르릉.

무너진 저택의 지반이 살짝 내려앉으며 구릉이 생겼다. 그 구릉으로 저택의 잔해가 반쯤 가라앉았다.

그 모습을 본 그녀가 허공에 손을 휘저었다.

보이지 않는 거대한 손이 움직인다.그 거대한 손은 남아있는 저택 잔해를 마치 흙장난하는 것처럼 구릉에 쓸어 담고 주변의 흙도 뿌리면서 지형을 평평하게 만들었다.

“대충 지반 잘 다져진 거 같구나.”

순식간에 커다란 저택이 사라지고 평평한 평지만 남은 그곳에 릴리아나가 모형 저택을 던졌다.

우리 앞에 멋들어진 저택이 나타났다.

깨끗한 물을 뿜어내는 분수까지 달린 정원이 포함된 저택.

처음 릴리아나의 저택을 방문했을 때의 그 풍경이 눈앞에 그대로 구현됐다.

그녀의 그 화려한 마법에 앨버트와 에일린이 입을 떡 벌리고 정신을 놓고 보고 있었다.

마리도 표정 변화는 미미하긴 했지만,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우, 운호 님. 소, 소드 마스터이셨습니까?”

뒤늦게 정신을 차린 앨버트가 내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나름 칼 밥을 먹는 녀석이니 그쪽에 관심이 가는 모양이었다.

“소드 마스터? 크게 다르진 않지. 난 대마법사이면서 마검사라고도 할 수 있다.”

릴리아나와 아일라가 탐탁지 않은 눈빛으로 날 보는 게 괘씸하긴 했지만, 참기로 했다.

“앨버트.”

“예? 예! 운호 님, 말씀하십시오.”

군기가 바짝 든 앨버트가 대답했다.

“원래는 저택을 청소시킬 생각이었지만, 보시다시피 네 할 일은 없을 거 같다. 그래도 오늘 일당은 쳐주지.”

참된 고용주였다.

하지만 앨버트의 반응은 내 예상과 벗어났다.

-털썩!

갑자기 내게 무릎을 꿇었다.

뭐야...갑자기 뭘 잘못 먹었나...애가 왜 이래.

“운호 님!”

한 것도 없는데 일당은 준다는 게 그렇게 감동이었나?

“저를 제자로 받아주십시오!”

“......”

......설마 내 오러 블레이드를 보고 그러는 건가?

앨버트에게는 미안했지만.

아니, 미안하지 않았지만.

대답은 당연히 거절. No였다.

“싫다.”

“큭!”

내 매몰찬 거절에 앨버트의 얼굴이 실망으로 물들었다. 내가 냄새나는 남자 제자 따위를 받을 리 없지 않은가.

그때였다.

“스승님!! 앨버트를 제자로 받아주세요!”

에일린이 앨버트 옆에 무릎을 꿇고 내게 고개를 조아렸다.

스승님이라.....괜찮은 울림이었다.

나를 스승이라 부르는 에일린의 외침은 나를 잠깐 흔들리게 했다.

“으음….:”

“운호 님!”

“스승님!”

(쟤네 뭐 하는 거야?)

(신경 쓰지 말아라. 우리는 들어가서 차나 한잔하자.)

릴리아나가 엘프 친구들을 이끌고 저택으로 사라졌다.

“후...그렇다면....생각은 해보지.”

생각한다고 해서 내 마음이 바뀌진 않을 거 같았다. 그런데도 애매한 대답을 한 이유는 에일린 때문이었다.

내 제자로서 외간 남자의 편을 드는 건 괘씸하긴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녀와는 아직 제대로 된 유대관계가 형성되지 못했다.

“운호 님! 감사합니다.”

“스승님! 감사합니다.”

승낙한 것도 아닌데 둘의 얼굴이 기뻐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좋아하지 마라. 너를 제자로 들인다고 한 게 아니다. 생각해 본다고 했다.”

“아, 예!”

앨버트가 마치 스승을 대하는 자세로 내게 고개를 깊이 숙였다.

이러니까 단호하게 거절해야 하는데….

에일린의 호감도가 발목을 잡았다.

앨버트 저 녀석….

그렇게 안 봤는데 영악하게 내 제자를 이용하다니….

*

*

*

릴리아나의 저택은 만족스러웠다.

그녀와 처음 만났을 때야 잠깐 차 대접을 받은 것이 다 이기에, 자세히 둘러보진 못했는데 슬러버 호텔 못지않은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오랜 시간 심혈을 기울여 만든 저택이니 당연하다.”

릴리아나가 콧대를 높이고 자랑하는 게 마음에 안 들긴 했지만 반박할 수 없었다.

아일라와는 각방을 쓰기로 했다.

서로의 시간을 갖기로 했다.....는 아니고.

방이 많기도 했고….

어차피 옆방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는.

에일린의 교육을 위해서였다.

“스승님.”

에일린은 내 가르침을 받기 위해 공손히 내 앞에 서 있었다.

릴리아나에게 제자를 들여놓고 가르치는 게 없다고 웃음거리가 될 순 없다. 에일린도 내가 스승으로서 뭔가 보여주는 것이 없다면 의구심을 가질 터였다.

에일린은 3서클 마법사다.

물론 그것만으로 일반인보다는 우월한 존재로 인정받는다. 일반인과 다른 초월적인 힘을 쓴다는 것 자체로도 특별하다.

현대인 원래 세계에서도 그런데 이런 중세라면 말할 것도 없다.

게다가 마법사는 기사보다 더 유능하다는 인식도 있다. 마법사라면 밥 벌어 먹고사는 데는 지장이 없다.

하지만 마법사의 세계에는 등급이 있다.

마법사의 세계에서 3서클까지는 그저 그런 마법사에 불과하다.

4, 5 서클 중위 마법사는 되어야 인정받는다.

6, 7 서클은 고위 마법사.

8서클은 대마법사라고 부른다.

마법사를 부르는 호칭은 그냥 나눈 것이 아니다.그건 재능의 벽이라고도 할 수 있다.

3서클에서 4서클 중위 마법사로 넘어가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는 마법사는 셀 수 없이 많았다.

에일린, 그녀의 아버지도 3서클을 넘지 못했다고 한다.

인간은 더 높은 곳을 가려는 욕망이 있다.

앨버트의 강한 권유도 있었겠지만, 에일린이 내 제자가 되겠다고 한데는 그 욕구가 어느 정도 작용했을 거다.

그녀는 어린 나이에 3서클을 이뤘다.

그러나 릴리아나의 말을 들어보면 에일린은 그녀의 아버지처럼 4서클에 오르지 못할지도 모른다.

릴리아나는 8서클 마스터였다.

말 그대로 진짜 대마법사.

그녀의 말은 진실일 가능성이 컸다.

내가 제자를 들인 것을 비웃던 릴리아나.

나는 에일린을 성장시켜 릴리아나의 코를 납작하게 해줄 생각이었다.

“에일린, 너도 이제 내 제자가 됐으니 진정한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해야 할 일이 있다.”

“진정한 제자가 되기 위해 할 일이요?”

나와 섹스를 해야 경지가 높아진다고 하면….

역시 너무 변태 같나?

아직 그런 말을 해도 아무렇지 않을 정도로 아직 호감도가 축적되지 않았을 거다.

여기서는 한 발짝 물러서 다소 정상적으로 나가기로 했다.믿음을 줄 때였다.

그녀에게 파티 초대를 보냈다.

“스승님, 이것은?”

그녀가 허공에 떴을 메시지를 보며 물었다.

“이게 내 제자가 되면서 너에게 주는 첫 번째 선물과 같은 거다. 파티 마법이라는 거지.”

“파, 파티 마법. 처음 들어봐요.”

“그럴 거다. 내가 만든 거니까. 이건 누구에게도 말해서는 안 된다. 그게 설사 앨버트라도!”

“아, 알겠습니다. 스승님.”

에일린은 진지한 얼굴로 대답했다.

뭐...말해도 별일 없겠지만….

이것이 특별하다는 걸 인식시키는 게 중요했다.

*

*

*

간단한 마법교육? 을 마치자 저녁 식사 시간이 됐다.

에일린과 함께 식당으로 향했다.

일행들은 미리 와 앉아있었다.

“어떠냐. 제자 가르치는 건.”

턱을 괴고 물어보는 그녀의 얼굴에 떠올라 있는 괘씸한 비웃음.

“잘 되고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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