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 알버튼? 에일린도 왔군.”
“애, 앨버트입니다. 운호 님.”
“농담이었다.”
진짜 몰라서 한 말이었지만, 센스 있게 얼버무렸다.
“아....예….”
“들어가서 기다리지. 여기서 뭐 하는 거지?”
“그, 그게….”
어색해하는 그들의 표정을 보니 알 거 같았다.
그래도 마법사 행세하는 에일린은 그나마 조금 나았지만, 앨버트는 누가 봐도 추레한 용병으로밖에 보이지 않았으니.
호텔 가드가 들여보내 줄 거 같지 않았다.
‘대책 없이 그냥 기다린 건가?’
그 이유야 어찌 됐든 특별하게 궁금하진 않았으니, 그들에게 자세한 사정을 캐묻지 않기로 했다.
“너희들이 날 찾아왔다는 건. 에일린이 내 제자가 되기로 한 건가?”
“예! 운호 님! 에일린을 잘 지도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앨버트가 고개를 숙이며 부탁했다.
“걱정하지 마라. 나는 지금 제자가 없다. 에일린이 유일한 제자가 되겠지. 집중적으로 교육할 생각이다.”
“그, 그렇습니까. 감사합니다. 운호 님.”
하긴 나 같은 대마법사의 제자를 제안받았는데 걷어차는 건 당첨된 로또를 찢어버리는 일이다.
“저, 저기….”
에일린이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응? 뭐지?”
“운호 님의 제자가 되더라도 앨버트와는 떨어지고 싶진 않아요.”
“흐음….”
내 제자가 되면서 외간 남자와 가까이 지내려고 하다니....나중에 교육이 필요할 거 같았다.
“에일린. 그런 어리광을 부릴 때가 아니야. 지금은 마법사인 너한테 중요한 시기야.”
“그, 그건….”
앨버트가 옳은 소리를 했지만, 에일린은 울상을 지었다.
물론, 그녀가 왜 그러는지 앨버트 빼고 다 알고 있을 거다.
당장 떨어뜨려 놓고 싶지만….
“걱정하지 마라. 나도 한동안 슬러버에서 지낼 생각이니, 아주 헤어지는 것은 아니다. 종종 만날 수 있을 거다.”
지금은 일단 제자가 될 에일린을 안심시켜 줄 때였다.
“할 이야기도 있으니 일단 앉아서 이야기하지.”
“아, 앉아서 말입니까?”
앨버트가 앉을 데가 어디 있냐는 듯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가까운 곳에 좋은 곳이 있었다.
나는 그들을 마차로 안내했다.
마차 안에 들어선 둘이 눈을 크게 뜨고 놀란다.
외관보다 더욱 커 보이는 안락한 마차 안의 모습을 보고 놀라지 않을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우, 운호 님.....이, 이건….”
“마법이지.”
“대, 대단하군요.”
앨버트가 신기한 듯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말했다.
“별거 아니다.”
내가 한 건 아니지만….
굳이 진실을 밝힐 이유를 못 느꼈다.
“그래, 어디서 지내지?”
“따뜻한 수프라는 여관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너 말고 에일린.”
애는 괜찮은 거 같은데 눈치가 좀......없었다.
“아....예....에일린도 같은 여관에 묵고 있습니다.”
앨버트 녀석은 뻘쭘한 듯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다른 하는 일 있나?”
“예?”
“미궁 들어가는 거 말고 다른 할 일이 있는지 묻고 있다.”
“어, 없습니다.”
백수라는 이야기다.
미궁에서 파티원 중 하나는 죽고 하나는 전투 불능이 됐으니 예상했던 바였다.
“맡기고 싶은 일이 있는데 괜찮나? 보수는 괜찮게 쳐주지.”
“보수라고요? 아닙니다! 어떻게 은인이신 운호 님께 돈을 받겠습니까. 말씀만 해주십시오. 뭐든 해드리겠습니다.”
뭐냐, 이 호구는….
무보수로 일하겠다는 앨버트를 보는 에일린의 얼굴에 답답한 표정이 드러나 있을 정도였다.
에일린의 표정을 보니 평소에도 호구 짓을 하고 다닐 가능성이 컸다.
얼마나 호구력이 대단한 건지….
“어허. 날 뭐로 보고. 난 공짜로 사람을 부려 먹는 인간이 아니다.”
에일린....내 제자가 될 아이가 보고 있기에 이미지를 챙길 필요가 있었다.
내가 앨버트에게 일을 맡기려는 건 별것 없었다.
부동산 중개인은 내가 그 저택의 구매 하려고 했을 때의 온갖 단점을 다 말해줬다.
양심적이라기보다 혹시 나중에라도 꼬투리를 잡히지 않기 위해 필사적이었다고 할까.
그 단점 중 하나가 이미 유령 저택이라고 소문이 파다하게 나서 보수나 청소작업을 하려고 해도 사람을 구하기 힘들 거라고 했다.
그런데도 기어코 구매한다고 하는 나를 걱정스럽게 바라보긴 했지만.
이젠 유령이 나오지 않는다고 말을 해봐야 지금 당장 사람들이 믿을 리는 없고….
그래서 생각한 것이 앨버트였다.
녀석에게 맡기려는 건 저택의 청소와 보수였다.
보수는 전문적인 영역이라 될지 안 될지 모르겠지만, 그것까지는 힘들더라도 청소는 시켜볼 셈이었다.
앨버트가 어디까지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저택이 만족할 만한 상태가 되지 않으면 굳이 들어가서 살 생각이 없었다.그동안은 그냥 슬러버 호텔에서 지낼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에일린은 교육을 위해 가까이 지냈으면 좋겠군. 호텔로 숙소를 옮기는 게 어떤가.”
“예? 그, 그건….”
“아, 숙박비라면 걱정하지 마라. 스승으로서 그 정도는 책임을 져야지.”
“그, 그게 아니라….”
“에일린 어서 감사드려.”
앨버트가 마치 오빠와 같이 근엄하게 에일린에게 말했다.
“.......가, 감사합니다.”
에일린은 울상을 지으면서 내게 감사 인사를 했다.
“에일린은 짐을 챙겨서 앨버트하고 내일 같이 찾아오도록. 그때 앨버트 네게 할 일도 알려주도록 하지.”
“예, 운호 님! 감사합니다!”
씩씩하게 대답하는 앨버트.
뭐가 고마운 건지는 모르겠지만...예의바른 녀석이었다.
*
*
*
“집을 샀다고?”
호텔 식당에 모여 다 함께 저녁 식사하는 와중에 릴리아나가 내게 물었다.
아일라에게 들은 건가?
“뭐...그렇지.”
그때는 아일라에게 할 말이 없어 대충 얼버무리려 대답하긴 했는데, 저택은 도저히 지금 들어가서 살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앨버트를 시켜서 청소 좀 시킬 생각이기는 했지만, 저택이 크니 얼마나 오래 걸릴지 알 수가 없었다.
“그것참 손도 크구나. 오늘 혼자 나가더니 저택을 산 것이냐?”
“그래. 그런데 집이 엉망이라 당장 들어가서 살기는 힘들 거다. 유령의 저택이라고 소문이 났을 정도지.”
“유령의 저택? 그런 저택을 왜 산 거야?”
아일라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 집의 커다란 나무가 마음에 들더군.”
이유가 이상하긴 했지만, 진실이기도 했다.
“이상한 데서 감성적이구나.”
릴리아나는 내 구매이유에 대해 의문에 의구심이 든 눈빛을 보내긴 했지만, 그것에 대해 별말은 하지 않았다.
“유령의 저택이라고 소문이 날 정도로 너무 엉망이라 지금은 들어가서 살기 힘들다고 했지?”
“그래.”
“그건 내가 어떻게 해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모두 짐을 싸거라. 내일은 새집에서 자자꾸나.”
“어떻게?”
“후후. 그건 내일의 즐거움으로 남겨두자.”
릴리아나가 여유 있는 미소를 지으며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
*
*
다음날.
앨버트가 부지런하게 아침 일찍부터 찾아왔지만, 나가는 건 브런치를 느긋하게 먹고 오후가 다 돼서야 호텔을 나섰다.
“네 녀석은 병이 아닌가 심각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누구? 나?”
“그래. 네 녀석의 발정은 정상이 아니야.”
릴리아나는 나와 아일라의 아침 인사?로 인해 조금 일정이 늦어진 것이 마음에 안 드는 것 같았다.
물론 그녀의 투정 때문에 우리가 아침 인사를 거르는 일은 없을 거다.
우리가 쓸데없는 잡담을 하는 와중에도,
부지런한 마리가 마차를 몰아 어제 내가 구매한 저택에 도착했다.
“이곳이 그대가 산 저택인가?”
“이게.....뭐야. 엉망이잖아.....생각보다 심각한데?”
릴리아나와 아일라가 이따위 저택을 산 내게 어처구니없다는 시선을 보냈다.
“우, 운호 님....이, 이게….”
앨버트는 설마설마하는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그래, 너한테 시킬 일이 이 집의 청소다.”
그의 예상을 확신을 주는 그 말에 앨버트가 질린 얼굴을 했다.
“물론, 혼자 하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사람을 써도 괜찮다.”
구하긴 힘들 테지만….
“앨버트라고 했던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네가 청소할 일은 없을 테니.”
릴리아나가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리지?”
“우리는 저 저택을 철거할 거다.”
“철거라고....갑자기? 그런 마음이 들 정도로 엉망인 저택이라는 것은 인정하지만….”
“저택을 철거해 부지를 확보하고 그 위에 이것을 놓는다.”
릴리아나가 아공간에서 물건 하나를 꺼냈다.
익숙한 저택 모형이 이었다.
릴리아나의 마법을 보지 못한 에일린이나 앨버트, 마리는 어리둥절한 표정이었지만.
나와 엘프친구들은 알고 있었다.저것이 단순한 저택 모형이 아니라는 것을.
그녀가 살던 집을 마법으로 축소한 저택이다.
“어떤가. 저 허름한 저택보다 이 저택이 낫겠지?”
“확실히….”
릴리아나의 양산에 새겨진 문양이 은은한 빛을 발했다.
그리고 그녀가 양산을 흔들자 주변으로 마력이 퍼져 나갔다.
“이곳에서의 소란이 새어나가지 않게 결계를 쳤다. 이제 철거만 하면 된다.”
릴리아나는 그러면서 나를 쳐다봤다.
“나?”
“그래, 운호 그대를 말하는 거다. 그대 말고 누가 있겠느냐.”
........헌 집 부수고 새집 준다는데.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후....내 대마법을 시험해 볼 때인가?”
나는 가볍게 목을 풀면서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저택을 향해 왼손을 뻗었다.
나의 왼손 검지에는 신비한 문양이 새겨진 은색의 반지가 반짝였다.
“잠깐! 설마 염동력을 쓸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릴리아나가 인상을 찌푸리며 내게 물었다.
“그럴 생각이다만.”
“어리석은 녀석!”
그녀가 내게 호통을 쳤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혼났다.
“그 염동력 반지도 한계가 있다. 저 정도 크기의 저택을 부술 정도의 마력을 주입하면 견디지 못한다.”
“........불량품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