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하지만 절대 마법사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목책 문을 지키고 있던 도니와 빌리라는 남자들은 돈을 몇 푼 쥐여주자, 질문에 술술 대답을 해줬다.
'나름 위장이라고 한 건가? 위장이라기에는 너무 어설픈데...후작이 잡은 엘프까지 합하면 넷이어야 하는데... 엘프 둘은 어디 갔지? 어쨌든 이쪽이 정답이었군. 역시 목적지
는 슬러버인가….”
그들의 이동속도는 상당히 빨랐다.
날짜를 계산해 보면 이런 일이 특화된 자신보다 빨랐다.
'역시 엘프라 그런가?"
마리는 강행군도 했고 날도 저물었으니, 마을여관에서 하루 묵고 가기로 했다.
모두가 깊은 잠이 들었을 시간.
-끼익.
누군가 마리의 객실에 침입했다.
마리는 빠르게 침입자를 제압했다.
그리고 의자에 그를 묶었다.
"어디서 왔지?"
“무, 무슨 소리냐․ 빨리 풀어라!!”
“소리쳐도 소용없다. 이미 결계를 쳐놨으니.”
“내, 내가 누군 줄 알고.”
“나도 그걸 알고 싶다.”
그리고 마리는 침입자의 손가락 한 마디를 잘랐다.
"크아악!!"
“말해라."
“제, 제발....트, 트래버입니다.”
“트래버?”
“저, 저는 촌장의 아들입니다!"
"촌장의 아들이라고?”
“네, 네.”
진짜일까?
확인해야 하나?
굳이 할 필요 없었다.
사실을 확인한다고 해서 얻을 게 없었다.
-싹둑.
"크-아아!! 왜!"
“진실을 말해라.”
“저, 전 진실을 말했습니다."
"어디에서 왔지?"
“씨발! 난, 여기 출신이라고!"
-싹둑!
“진실."
트래버는 욱해봤지만, 감정 없는 마리의 눈동자에 공포를 느꼈다.
“제, 제발.…."
-싹뚝!
트래버는 계속 손가락이 한마디씩 잘려 나갔고 결국 머릿속에 있는 비밀들을 다 토해내야 했다.
강간하려다 죽인 여자를 마녀의 탓으로 돌린 이야기라던가.
붙잡혀 광산에서 일하고.
마녀가 사냥당해 마을 사람들에게 구출.
질리지도 않고 또 강간하려 객실에 침입했다는 이야기.
혼자 여행하는 평범해 보이는 여자.
외부인이니 더 거리낄 게 없었다는 거다.
촌장의 아들이라는 말은 진실일 가능성이 크군 영양가는 없었어."
마리는 의자에 묶여 피투성이가 되어 고개를 떨구고 있는 트래버를 무심한 눈동자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잔혹한 고문에 그의 숨은 이미 멈춰있었다.
창밖을 보니 아직 바깥은 어두웠다.
“날이 밝으려면 아직 시간이 있군.”
마리는 피투성이가 되어 의자에 앉아있는 시체를 내버려 두고 침대에 들어가 누웠다.
피비린내가 나는 방에서도 마리는 이내 숙면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날이 밝을 때쯤, 그녀는 은밀히 마을을 떠났다.
마리의 객실에 들어온 여관주인 처참한 시체를 발견하고 기절할 듯 놀랐다.
마을에서 그 처참한 시체가 트래버의 시체라는 걸 안건 한참 뒤의 일이었다.
<160화>라벤타
마법을 쏠 수 있게 되니 몸이 근질근질했다.
주변을 둘러봤다.
경장을 입은 날씬한 엘프 둘.
등에 업혀있는 릴리아나.
그리고 내 오른손에 들고 있는 고급스러운 지팡이가 보였다.
'역시 이게 문젠가?'
지팡이를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얼마 안 가 그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수풀에 숨어있는 도적놈들의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귀족인가?)
(마차는 어디 가고 저러고 다니는 거지?)
(기사는 안 보이는데.)
(여자만 셋이다.)
(여자 둘이 호위 같기는 한데.....특상등품이군.)
(저 덩치 큰 놈은?)
(검도 안보이고 달랑 검은 로브 한 장 걸치고.... 귀족을 업고 다니는 걸 보면.....노예 아냐?)
역시 옷빨 장비빨은 중요했다.
기사에서 노예까지 순식간에 신분이 하락했다.
계산이 선건지 도적놈들이 앞뒤로 튀어나와 우리를 둘러쌌다. 놈들의 지저분한 얼굴은 흉악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항복한다면 목숨은 살려주마."
내 여자들을 보는 도적놈들의 눈은 탐욕이 그득했다.
항복 안 해도 살려주긴 할 거다.
여자들은.
그리고 그녀들이 평범한 여자였으면 지옥 같은 꼴을 경험하게 되겠지.
"어떻게 할 거야?"
아일라가 혐오가 섞인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어떻게 하긴 ・・・.”
(....…그냥 물러간다면 없었던 일로 해준다.)
나는 놈들이 들릴까 말까 한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경고했다.
“뭐라고 중얼거리는 거야. 이 머슴 놈이!? 죽고 싶어?"
도적 한 놈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겁을 줬다.
“경고했는데도 듣지 않다니 안타깝군.”
“뭐?"
인벤토리에서 마법 지팡이를 꺼냈다.
"어?"
허공에서 지팡이를 꺼내는 나를 보고 당황하는 도적들.
지팡이 끝에 검은 마력이 뭉치기 시작했다.
“씨, 씨발...."
도적놈들의 그제야 좆됐다는걸 깨달은 듯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익스플로전."
빠르게 날아간 마력 구체가 앞의 산적들에게 날아가더니 터졌다.
-콰앙!
그 폭발과 함께 전면의 산적들이 한 움큼 사라졌다.
그나마 살아있는 놈들은 바닥을 구르며 신음을 내고 있었다.
“씨, 씨발! 고위 마법사야!! 도망쳐!"
뒤쪽에 있던 놈들이 빠르게 도망치기 시작했다.
흩어져 도망치는 놈들을 향해서도 연이어 익스플로전을 날려줬다.
-쾅! 쾅! 쾅!
내 익스플로전 마법에 주변이 초토화가 됐다.
"......."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 있어?"
마구잡이로 날리는 내 마법에 황당한 표정으로 아일라가 물었다.
“도적은 사회악이다. 처리하지 않았으면 무고한 사람들이 고통을 받았을 거다. 정의의 철퇴를 내릴 필요가 있어."
“홍․ 마법을 처음 배운 애송이 마법사가 어떻게든 마법을 사용하고 싶어서 안달이 난 표정이군.”
내 익스플로전 마법의 시끄러운 소리에 어느새 잠에서 깬 릴리아나가 말했다.
내게 업혀있던 릴리아나의 엉덩이를 힘껏 움켜쥐었다.
"하응. 운호 네 녀석 또 장난질을.”
그렇게 이동하면서 도적뿐이 아니라, 몬스터도 종종 마주쳤다.
오크나 고블런 정도였다.
놈들도 역시나 내 익스플로전 한방에 혼비백산해 뿔뿔이 흩어졌다.
대형 몬스터를 만나지 못한 게 아쉬웠다.
“가도는 주기적으로 영주가 관리하고 강한 몬스터가 나타난다는 보고가 들어간다면 토벌을 할 거다.”
아쉬워하는 내게 릴리아나가 설명해줬다.
지팡이의 앱솔루트 실드야 겨우 하루에 한 번 쓸 수 있고, 쓸 일이 있을까 싶은 마법이었지만.
익스플로전은 마력량만 바쳐주면 쓸 수 있으니 진짜 마법다운 마법이라는 생각이 들어 만족스러웠다.
*
*
*
마리는 라벤타를 향해 빠르게 이동하던 중 그들이 묶었을 거로 추정되는 야영지를 발견했다.
‘넷? 그와 엘프 둘....분명이 셋이 아니었나?"
야영의 흔적은 네 명이 있었다는 걸 말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마리는 얼마 안 가 초토화된 현장을 발견했다.
폭발에 휩쓸린 듯한 시체.
부실한 장비.
몬스터에게 뜯겨 먹힌 흔적.
'마법 흔적이군. 익스플로전인가? 상대는 도적들인 거 같고…. 그 이후에 시체들을 고블린이 뜯어 먹었군. 시체 일부는 고블린이 가져간 거 같고….”
익스플로전.
전쟁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마법.
5서클 마법사부터 쓸 수 있는 중위 마법이다.
마법사는 이걸 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몸값이 달라진다.
‘한발로도 충분했을 텐데….”
그리고 도적들 상대로 과한 마법이기도 했다.
'마법사가 있다는 소리는 못 들었는데. 초월자가 마검사 일수도 있다는 게 사실인가?"
마법사는 이성과 효율을 추구한다.
그런데 도적 상대로 터무니없는 고위 마법을 난사했다.
얼마나 많이 쏴댔는지 나무가 우거져 있을 거라고 예상되는 도로 주변이 익스플로전 마법으로 초토화가 돼 커다란 공터가 생겨있었다.
마리는 종잡을 수 없는 그의 행적에 갸웃하면서도 그 뒤를 쫓았다.
‘라벤타에서 그를 볼 수 있을지도 있겠군.'
*
*
*
릴리아나는 아주 편하게 내 뒤에서 자고 있었다.
등이 축축했다.
아주 꿀잠을 자는 모양이었다.
그런 릴리아나를 보는 아일라의 눈초리가 곱지 못했다.
“운호, 마차든 말이든 저기에서 구하자."
아일라가 가리킨 곳 시야에 도시가 하나 보였다.
솔직히 나는 지금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마음껏 릴리아나의 엉덩이도 주무르고.
하지만 아일라의 태도를 보면 어떻게 해서라도 탈것을 구할 생각이었다.
도시는 지도에 나와 있는 대로라면, 라벤타라는 곳이었다.
슬러버와 근처에 있다는 이유로 이득을 보는 도시이기도 했다.
슬러버 미궁은 그 주변 도시까지 영향을 미쳤다.
슬러버 주변의 도시는 미긍으로 가려는 탐험가들로 북적였다.
이 도시도 그중 하나였다.
생각보다 일정이 지체됐다.
내가 마법 쓰는 것에 재미가 들려 이곳저곳 들쑤시고 다녔기 때문이었다.
고블린 부락을 하나 초토화한 일이라던가.
“오랜만이구나. 도시에 들어가는 건. 슬러버 미궁이라니 내가 모르는 사이에 신기한 곳이 생겼어. 여행의 즐거움이 하나 더 늘었다고 해야 하나?"
어느새 릴리아나가 깨어 있었다.
“다 왔는데 이제 좀 내리지?"
아일라가 릴리아나를 홀겨보며 말했다.
“오흠. 운호 내려주거라. 더 업혀있다간 저 엘프의 단검이 내 등에 꽂힐 거 같다. 밤에 그렇게 매일같이 그대에게 안기면서도 부족한지 질투가 많구나.”
“뭐, 뭐라고?!"
오는 동안 둘은 틈나면 투덕거렸기에 이젠 그러려니 할 뿐이다.
성문에 서 있던 병사는 우리의 행색을 보고 움찔하긴 했지만 쉽게 통과시켜줬다.
‘수배는 되지 않은 모양이군.'
에르푸 쪽에서 있었던 사건이 아직 이곳까지는 퍼지지 않은 거 같았다.
인터넷이나 텔레비전 같은 게 없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는 일이다.
우리가 그곳에서 빠르게 떠나온 것도 있다.
슬러버는 라벤타처럼 쉽게 사람을 들이지 않는다고 한다.
라벤타에서 출입증을 구해서 들어가는 게 좋다고 에르푸에서 조사했을 들은 이야기였다.
물론, 우리에게는 해당이 안 됐다.
정확하게는 기사나 마법사라면 프리패스였다.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출입중이었다.
도시는 에르푸보다 조금 더 큰 거 같은 느낌도 들었다.
도시 안을 걷자 릴리아나는 꽤 주목받았다.
귀족처럼 보이는 복장을 하고 굉장히 예뻤으니 아무래도 시선을 끌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옆에 있는 나도 한몫했고.
가장 크고 좋아 보이는 여관을 찾았다.
6층짜리 건물이었다.
여관이라기보다 호텔에 가까워 보이기도 했다.
앞에는 가드가 지키고 있었다.
릴리아나의 우아한 행색과 내가 들고 있는 누가 봐도 고급스러운 지팡이를 보고 저지는 하지 않았다.
템빨이 이렇게 중요하다.
아이템 하나에 신분이 이렇게 오락가락한다.
안으로 들어서자 현대의 호텔과 다르지만 깔끔하고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홀이 드러났다.
“라벤타 호텔에 어서 오십시오."
건물만큼 깔끔한 복장의 지배인이 고개를 숙이며 우릴 맞이했다.
'진짜 호텔이었군. 마음에 드는군.'
우리는 1박에 1골드씩 하는 객실을 잡았다.
호텔 건물의 잘 꾸며진 식당에 모여 다음 일정을 논의 했다.
음식은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향신료가 듬뿍 들어가서 그런지 비싼 만큼 맛이 괜찮았다.
룸서비스도 가능하다고 한다.
'좀 싸서 인벤토리에 넣어야겠군.'
먹보들이 많으니 음식을 쟁여 놓을 필요가 있었다.
음식은 질리지 않게 다양한 게 좋다.
이곳의 음식 맛을 보니 도시를 좀 뒤져 보면 괜찮은 음식이 있을 거 같았다.
“먼저 마차를 구해야 해!"
내 옆에 있던 아일라가 말했다.
아일라는 릴리아나가 여기까지 내게 업혀 온 게 어지간히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었다.
내게는 귀여운 질투로 보일 뿐이었다.
“나는 이대로 운호의 등도 괜찮다만….”
릴리아나가 우아하게 스테이크를 썰면서 말했다.
“너 정말 뻔뻔하네. 지금까지 운호에게 업혀 온 게 미안하지도 않아?"
"미안하다니? 운호도 충분히 즐긴 거 같다만?"
"뭐?"
아일라 몰래 릴리아나의 엉덩이를 쉴 새 없이 주무르긴 했다.
릴리아나를 업고 다니는 것도 나쁘진 않지만, 그녀의 입에서 쓸데없는 소리가 나오기 전에 입을 열었다.
"크흠. 오늘은 쉬고 내일 마차를 구한다. 그리고 맛집 투어를 다닌다."
꽤 큰 도시다.
돌아다니려면 마차가 있는 게 편할 거 같았다.
"맛집 투어?"
내 생소한 말에 그녀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161화 > 마부
*
*
*
고급스러운 객실에서 여행의 피로를 풀고 예정대로 마차를 구하기로 했다.
마차를 구하는 데는 릴리아나와의 동행을 생각했다.
자기 입으로도 데려가 달라고 하기도 했고….
그녀는 한참 동안 집순이였지만.
그렇다고 해도 솔직히 우리 셋 중에서는 그나마 세상 물정을 가장 잘 알지 않을까 싶었다.
그렇게 릴리아나가 나와 함께 마차를 구하러 간다니 아일라가 따라나섰다.
그러자 루나도 혼자 있기 심심하다고 동행을 하게 돼 결국 다 같이 마차를 구매하기 위해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