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아저씨의 로그인 생활-131화 (131/259)

장당 대충 천만 원꼴….

게임과는 다르긴 하지만 비싸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공짜 인력인데 1000만 원이면 싸게 먹히는 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니 싼 거 같기도 하고….’

일단 마석을 상점 포인트로 환전해 10장을 샀다.

원래 이런 건 10연차가 정석이다.

<영웅 소환권 10장을 사용하시겠습니까?>

“Go.”

내 주변을 둘러싼 열 개의 화려한 빛 덩어리가 번쩍인다.

그리고.

-푸쉬쉬….

가차 없이 그 빛은 쪼그라들며 사라졌다.

<소환에 실패했습니다.>

“...........”

게임이 아니라고는 하지만......뭐 하나라도 나와야지.....너무한 거 아닌가?

허공에 1억을 날렸다.

왠지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

‘그만할까?’

하지만 아무것도 못 건지고 포기하기에는........아쉬웠다.

그리고 그 아쉬움에 80연차, 즉 8억이 공중분해 됐다.

“도합 구, 구억......확률공개!!”

<........>

시스템 메시지에는 역시나 반응이 없었다.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주인님 그만하시는 게….]

수니가 그런 내가 안쓰러워 보였는지 말린다.

오기가 생겼다.

“이렇게 된 이상 하나는 나올 때까지 뽑는다.”

[........]

번쩍번쩍.

-푸쉬쉬….

그리고 다시 1억이 공중분해가 됐다.

“미친....이게 말이 되나.....이정도로 나오지 않는 게....이 새끼들은 천장도 없는 건가!!“

100연차....아니 공짜티켓까지 101번 동안 나는 영웅 단 하나도 건지지 못했다.

“후욱! 후욱!”

영웅소환권이라는 거 자체가 내 마석을 뜯어먹기 위해 시스템에 스며든 바이러스나 그런 게 아닐까….

100연차...10억을 허공에 태웠더니 이쯤 되면 나도 뭔가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다.

“하, 한 번만....더….”

그래 10연차 한 번만 더 해보고 안 되면 포기......한다.

이를 악물고 소환권 10장을 다시 구매했다.

“나와라. 경고했다. 안 나오면 다시는 영웅소환권 사용 안 한다.”

<........>

번쩍 뻔쩍!

-푸쉬쉬...푸쉬쉬….

하나둘 화려하게 빛나던 덩어리가 꺼져간다.

“이, 씹…!!”

쌍욕이 튀어나오려던 순간 빛 하나가 꺼지지 않고 계속 반짝였다.

그러더니 그 빛이 환하게 터져 나왔다.

“드, 드디어….”

눈앞에 환영 같은 게 떠올랐다.

“참나, 이 상황에 강아지라니 무슨 생각인지.”

남자는 절망적인 세상에서 강아지를 애지중지하는 소녀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차피 제 식량 나눠주고 있으니 신경 끄시죠.”

“크흠.”

소녀는 능력자였다.

그래서 남자도 더 말은 하지 못했다.

시간이 흘러 생존자들의 캠프에도 결국 몬스터들이 들이닥쳤다.

“메리야 여기에 조용히 있어. 언니 잠깐 나갔다 올게.”

-앙. 앙.

소녀는 강아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몬스터와 싸우기 위해 전투에 나섰다.

하지만 미처 처리하지 못한 몬스터가 새어들어 비전투원들이 숨어있는 곳으로 접근했다.

개를 닮은 4족 보행의 거대한 괴물.

모두 몸을 숨기고 숨을 죽였다.

-킁. 킁.

몬스터는 냄새를 맡으며 그들이 숨어있는 곳으로 천천히 접근했다.

한 마리였지만 이곳이 있는 것은 아무 힘도 없는 아이와 여자, 노약자뿐이었다.

능력자들에게 연락은 했지만 이대로라면 그들이 도착하기 전, 괴물에 의해 대량 학살이 일어날 거다.

그때였다.

-앙! 앙!

작은 강아지의 짖음이 몬스터의 주의를 끌었다.

그리고 그 강아지는 그 몬스터를 유인해 어디론가 사라졌다.

“저, 저거..... 베티의 강아지….”

일반인들이 숨어있는 구역으로 괴물이 침입했다는 소리를 듣고 소녀가 급하게 달려왔다.

그녀의 손에는 몬스터의 피가 묻은 단단한 창이 들려있었다.

괴물은 보이지 않았다.

“몬스터는요?”

“가, 강아지가 몬스터를 유인해 저, 저쪽으로….”

그게 자신의 강아지라는 걸 깨달은 소녀는 창백하게 질려 그쪽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괴물의 앞에 피를 흘리며 쓰러져있는 작은 강아지를 본 소녀는 절규했다.

“메, 메리야!!!”

분노한 소녀의 창에 몬스터는 머리가 꿰뚫려 죽였다.

하지만 쓰러져 있는 강아지의 상처는 치명적이었다

“메리야.....흐윽.”

-끼잉….

강아지는 그렇게 몬스터를 유인해 생존자들의 목숨을 구하고 소녀의 품에서 생을 다했다.

“..............”

<메리의 희생에 많은 이들이 감명받았습니다.>

영웅? 의 일대기가 파노라마처럼 흘러 지나간다….

빛이 사라지고 새하얀 털을 가진 작은 강아지가 귀엽게 혀를 내밀고 서 있었다.

-헥. 헥.

“이....개새......강아지가......11...어....억....”

*

*

*

-헥. 헥.

여자들이 보면 환장할 거 같은 작고 귀여운 새하얀 강아지였다.

그냥 보기에는 평범하고 하얀 시고르자브종 새끼인 거 같았다.

“좌로 굴러.”

-데굴.

강아지가 내 말을 듣고 왼쪽으로 구른다.

보통의 인간이라면 심쿵할 만한 장면이었지만, 나는 지금 기분이 상당히 좋지 않았다.

영웅 가챠에 여태까지 모은 D급 마석의 대부분을 탕진했다.

그 결과 나온 것이, 이 자그마한 강아지 한 마리.

“우로 굴러.”

-데굴.

“앞으로 굴러.”

-데굴….

말을 알아듣는 건가?

조금 더 실험해 보기로 했다.

“두 번 짖어봐.”

-앙. 앙.

“4번.”

-앙. 앙. 앙. 앙.

“한번.”

-앙.

훈련으로 가능한지 모르겠지만 처음 만난 사람의 말을 이렇게 잘 알아들을 수 있을까.

훈련이 아닌 것 같았다.

비싼 값을 하는지 진짜 말을 알아듣는 거 같았다.

‘너튜브 각인데?’

말을 알아듣는 귀여운 강아지다.

너튜브를 한다면 11억쯤이야......는 개뿔.

내가 너튜브 할 시간이 어딨나.

환영으로 봤을 때도 이 강아지에게 그다지 특별한 힘은 없었다.

말을 알아듣는 거 같다는 게 특별하다면 특별할 수 있겠지만….

결론은.....나한테 쓸모가 없었다.

허탈한 마음으로 영웅의 안식처에서 나왔다.

나오는 건 어렵지 않았다.

쿨타임도 없었고 바로 통로를 열고 나올 수 있었다.

“시간은 얼마나 흘렀지?”

[동일하게 흐르는 것 같습니다.]

영웅의 안식처에 있는 동안 시간이 멈추거나 그런 건 없었다.

안식처에 있는 동안에도 시간은 그대로 흘러가는 거 같았다.

정확한 건 실험을 해봐야 알겠지만 원래 세계에서도 비슷하지 않을까.

-헥. 헥.

내 다리에 몸을 비비며 꼬리를 흔드는 강아지가 보였다.

“.........”

녀석을 볼 때마다 큰 사기를 당한 느낌이 들어 기분이 좋지 않았다.

111번의 가챠결과 나온 게 강아지 한 마리다.

영웅 소환권의 확률은 알 수 없다.

소환 성공확률이 1퍼센트 아니면 그보다 적을 수도 있었다.

내가 운이 지지리 없어서 나오지 않은 건 차라리 낫다.

오히려 무서운 건 내가 운이 좋았을 수도 있다는 거다.

11억?

지금에 와서 별거 아닌 돈이다.

하지만 손해 봤다는 이 더러운 기분이 싫었다.

수없는 꽝 끝에 나온 게.....강아지라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드르륵.

지아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어? 이 귀엽고 작은 강아지는 뭐예요? 이리와 멍멍아~”

-앙. 앙.

“어휴 귀여워~”

하얀 강아지가 쪼르르 달려가 지아의 품에 안겨 애교를 부린다.

지아는 강아지의 치명적인 귀여움에 완전 넋이 나가 있었다.

저 개새....아니 강아지가 11억 짜리라는 건 알까….

귀여운 강아지에게 정신이 팔린 지아를 두고, 나는 도박에 재산을 탕진한 인간처럼 허탈한 발걸음으로 터덜터덜 원래 세계로 복귀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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