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아저씨의 로그인 생활-86화 (86/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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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천부문의 간부라고 볼 수 있는 이들이 모였다.

나와 설화도 참석했다.

나까지 부를 줄은 몰랐는데 왜인지 모르겠지만 설화가 당연한 대우라고 했다.

내가 천부문으로 왔다는 건 무력을 보태주겠다는 무언의 약속이다.

천부문도 그것을 알고 있을 거다.

‘그래서 나름 대우를 해주는 건가?’

전력하나가 아쉬울 때니 그럴 수도 있었다.

솔직히 별로 오고 싶진 않았지만, 설화를 봐서 참여했다.

대부분 나이가 좀 있어 보였는데 전부 각성자는 아니었다.

처음 보는 C등급 무인이 보였다.

설화보다는 조금 약해 보이는 40대 정도 과묵하고 진중한 느낌의 중년 사내였다.

(대사형입니다.)

설화가 내 의문을 느낀 건지 귓속말을 해줬다.

서로 의견은 나누고 있지만, 현 상황을 타개할 방법은 없어 보였다.

말 그대로 절대적인 열세다.

그래도 공통적으로 나오는 건 일단 방비를 튼튼히 하자는 이야기다.

당연한 결론이었고 할 게 그거밖에 없기도 했다.

그것조차도 그 흑랑이라는 놈이 마음먹기 달렸다는 게 천부문의 암울한 현실이었다.

하지만 그걸 입 밖으로 꺼내는 사람은 없었다.

천부문의 전력을 조금이라도 상승시킬 필요가 있었다.

“이게 뭔가?”

“몬스터 감지기.”

원래는 설화를 통해 전해주려 했지만 온 김에 주기로 했다.

“서, 설마 괴물을 감지하는 장치라는 건가?”

“뭐...그렇지. 경계하는 데 쓸만할 거다. 일이 끝나면 반납하는 거 잊지 말고.”

아이들은 전투 슈트가 있으니 쉽게 빌려준 것도 있었다.

각성자 하나가 아까운 시기다.

정찰을 보내기 전에 줬으면 좀 더 좋았겠지만.

나야 천부문에서 정찰을 보내는지도 몰랐으니 좀 늦은 감이 없진 않지만 어쩔 수 없었다.

“도, 도대체 이런 물건이 어떻게….”

그것에 대해서는 설명하기도 애매했고 대답하기도 귀찮았다.

문주 할배는 그런 내 표정을 읽은 건지 그것에 대해서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에게 드론도 몇 개 꺼내서 줬다.

이미 두 명이 죽은 상황이니 왜 일찍 주지 않았느냐고 개념 없는 원망을 할 수도 있었지만, 그에 대해 뭐라고 하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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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부문은 아파트 안에서 온갖 잡동사니를 끌어모아 부랴부랴 바리케이드를 쌓기 시작했다.

그것 때문인지 바깥이 소란스러웠다.

“낭군님 감사합니다.”

거처로 돌아오자마자 소파에 늘어지는 나를 보고 설화가 감사 인사를 했다.

내가 천부문에 몬스터 감지기를 빌려준 걸 이야기하는 거 같았다.

설화가 뭘 착각하는지는 알겠지만, 천부문을 위한 일은 아니었다.

아이들을 위한 일이기도 했고,

나를 위한 일이기도 했다.

내가 과감하게 나가지 못하는 건 설화도 있고 천부문 놈들을 못 믿어서가 컸다.

설화는 아마도 최전방에서 싸울 거였다.

애초에 천부문 소속이었고 가족도 있으니 그걸 말리기도 애매했다.

천부문이 어느 정도 버텨줘야 나도 사냥하기가 편했다.

물론 아이들이 없었으면 이 정도 까지, 신경을 쓰진 않았겠지만 그러면서도 이 정도로 사람을 신경 쓰는 내 모습이 신기하기도 했다.

예전 같으면 상상도 못 할 일이다.

애초에 여자를 밝히는 게 각성의 최대 단점이고 발목을 잡는 원인이었지만….

그것이 싫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어떻게 될 거 같아?”

“결국 나가서 싸울 수밖에 없을 겁니다.”

설화의 생각엔 나도 동의 했다.

하지만 회의에서는 아무도 그걸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지금은 무인들의 가족과 일반인들도 있고 해서 웅크리고 있지만, 이대로 가면 결국 식량은 다 떨어진다.

지금 천부문주는 똥줄이 타고 있을 거다.

상황이 극한에 이르면….

결국 선택해야 할 시간이 올 거다.

천부문은 결국 말라 죽느니 나가서 싸울 공산이 컸다.

고개를 돌려보니 아직 활성화가 되지 않은 세이브 포인트가 보였다.

‘내일…. 내일모레가 적당하겠군.’

흑랑이라는 놈이 최대한 늦게 쳐들어오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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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저물고 칠흑 같은 어둠이 내려앉자 놈들은 나타났다.

흑랑 놈은 상당히 먼 거리에서 이곳을 노려보고 있었다.

고민했다.

육체 강화를 올릴 수 있는 스킬 포인트까지 3포인트가 남았다.

그것만 올리면 조금 더 쉽게 갈 수 있을 거다.

흑랑이라는 놈은 원래 세계에서 잡았던 B급 티라노 괴물처럼 우직하게 싸울 거 같지도 않았다.

일 대 일이라면 모르겠지만 잡몹들 잔뜩 끼고 싸워서는 위험할 게 뻔했다.

이놈의 세계는 몬스터가 쓸데없이 머리가 좋았다.

고양이 괴물 놈들을 통해 이미 짜증 나게 경험을 해봤다.

놈이 고양이 괴물 놈들보다 덜할 거 같지도 않았다.

C등급은 4마리.

서로 간격을 두고 꽤 떨어져 있었다.

3마리를 죽이기 전에 흑랑 놈이 들이닥칠 가능성이 컸다.

그리고 전면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컸다.

이쪽은 아직 준비가 안 됐다.

그러면 나는 흑랑과 싸울 동안 이곳을 신경 쓰지 못한다.

천부문의 피해가 커지는 거야 별로 신경을 안 쓰지만.

설화가 위험할 수 있었다.

다행히 놈들은 신경이 잔뜩 곤두서 있는 천부문과의 거리를 벌리고 덤벼들지도 않고 맴돌 뿐이었다.

그리고 수시로 물러났다가 다시 다가와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신경을 긁었다.

그것만으로도 천부문은 상당히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별 피해 없이 밤이 지나갔다.

하지만 사람들의 신경은 상당히 예민해져 있었다.

한숨도 못 잤으니 당연했다.

‘허........감지기가 별 의미가 없을 지경이군.’

하다 하다 개새끼들과 신경전을 하게 될 줄은.

이대로 시간이 흐르길 바랐지만….

결국 흑랑 놈에게 천부 문도 한 명이 잡혀갔고 머리만 돌아왔다.

이걸로 확실해졌다.

놈은 천부문을 괴롭히며 놀고 있었다.

나는 그를 구할 수도 있었지만 구하지 않았다.

흑랑이라는 놈에게 최대한 경각심을 심어주고 싶지 않았다.

나는 지금 시기에 전면전이 벌어지는 걸 바라지 않았기 때문이다.

놈들과 비교하면 천부문은 너무 약했다.

사람 하나면 오히려 싸게 먹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밉지 않나?”

설화에게 물었다.

그녀는 알고 있었을 거다.

내가 그를 구할 수도 있었다는걸.

그런데도 설화는 내게 별말을 하지 않았다.

문주 할아버지도 마찬가지고.

“낭군님이 괴로워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건 약한 천부문의 잘못이지 낭군님의 잘못이 아닙니다.”

“.......?”

설화는 내가 괴로워한다고 생각하는 건가?

그녀의 호감도가 떨어지는 걸 꺼렸을 뿐이었다.

나를 믿는 설화의 저 올곧은 눈을 보니 조금 민망하긴 했다.

나는 사람이 죽는 걸 자주 봐왔다.

죽인 것도 많았고.

그녀에게는 미안하지만, 유대관계가 형성되지 않는 사람의 죽음에 대해 어떤 감정을 가질 만큼 나는 좋은 놈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설화가 좋게 생각해주는데 거기에 찬물을 뿌릴 생각은 없었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세이브 포인트가 활성화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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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상황을 오래 끌 생각이 없었다.

이 상황이 지속되면 천부문은 끝없는 절망으로 떨어진다.

천부문이 약해지면 아이들도 위험해지고 나도 편하게 놈을 사냥할 수 없었다.

“이건….”

설화를 통해 천부문의 간부들을 모아 원래 세계에서 가져온 전투 슈트를 건네줬다.

천부문의 무인들을 슈트로 무장시킬 생각이었다.

기본 방어력만을 제공하는 슈트였다.

물론 내 여자인 설화는 그들과 같은 걸 줄 순 없었다.

그녀에게는 비싼 최고 사양의 슈트를 줬다.

“전투 슈트라는 괴물의 공격을 막아 주는 기물입니다. 천부문의 무인들에게 착용하라고 낭군님이 가져오셨습니다.”

설화가 나 대신 설명을 해줬다.

“이, 이런 기물이….”

수염이 덥수룩한 아저씨가 눈을 반짝이며 그걸 정신없이 만져보고 있었다.

‘각성자는 아닌 거 같은데….’

슈트는 C등급 이상의 몬스터에게는 효율이 떨어지지만, D등급의 공격까지는 꽤 잘 막아 주니 쓸만했다.

이들은 나름 숙련된 무인들이니 치명상을 방어할 수 있다는 게 상당한 도움이 될 거다.

무력 자체는 어떻게 내가 할 방법이 없으니 방어력을 높여준다.

‘이런 상황에서도 한복을 고집하는 꼴통들은 아니겠지.’

물론 그냥 주는 건 아니고 빌려주는 거다.

가성비 좋은 걸로 고르긴 했지만 그래도 슈트다.

돈 좀 깨졌다.

이런 걸 이제야 내놓는 내가 이해가 안 될 수도 있겠지만 그런 걸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설화야 전에 옥상에서 본 것도 있고,

내가 어딘가 갔다 왔다는걸 대충 예상하는 거 같았다.

일반인에게 총을 줄까도 생각했지만, 아군이나 안 맞추면 다행이다.

애초에 D급 몬스터는 총알로 큰 타격을 줄 수 없다.

그래서 그 생각은 폐기했다.

전투 슈트 보급이 끝나면 놈을 끌어낼 생각이었다.

“그냥 주는 건 아니다.”

그 말에 내게 시선이 쏠리며 천부문 사람들의 얼굴에 의문이 떠올랐다.

“내일 날이 밝으면 놈을 사냥했으면 한다.”

천부문을 이용해서 놈을 잡을 계획이었다.

나야 밤이든 낮이든 상관없었지만, 이 사냥은 천부문이 잘 버텨줘야 하는 게 핵심이었다.

그러니 밝을 때를 골랐다.

다행히도 해가 일찍 뜨는 시기다.

내가 그놈을 상대하고 처리할 동안 천부문이 버틴다.

천부문 때문에 개떡 같은 상황이 되긴 했어도….

천부문 덕분에 아이들의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됐다.

“내, 내일?!”

“너, 너무 급한 건 아닌가?”

갑작스럽게 흑랑 놈을 사냥한다고 하니 모두 화들짝 놀라 소리쳤다.

“급하긴 오히려 늦었지. 더 버텨봐야 상황만 더 안 좋아질 거라는 걸 다들 알고 있잖아?”

“........”

이들도 알고 있을 거다.

시간을 끌어봐야 답도 안 나온다는 걸.

내가 설화에게 눈짓하자 그녀가 말을 이었다.

“흑랑은 낭군님이 상대하시기로 했습니다. 나머지 괴물들은 저희가 상대해야 합니다.”

그녀에게는 내 계획을 미리 말해뒀다.

내가 말하는 것보다 설화가 말하는데 천부문에는 거부감이 덜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괜찮겠는가….”

천부문주 할배는 그 와중에도 내가 걱정인 모양이다.

겉치레인지 진심인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스킬포인트 때문에 양보할 생각도 없었고, 애초에 내가 아니면 흑랑이라는 놈을 상대할 인간은 없었다.

“안 괜찮아도 나 아니면 감당할 사람도 없잖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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