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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밝고 침식체 놈들을 찾아볼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뜬금없이 천부문주 할아버지가 찾아왔다.
접견실은 1층에 따로 만들어뒀다.
대충 치워놓은 휑한 공간에 테이블과 의자가 전부였다.
굳이 외부인을 거주 공간에 들일 생각이 없어 만들어 둔 거였다.
나와 설화가 천부문주 할배를 맞이했다.
“흑랑이네.”
“흑랑?”
문주 노인네는 뜬금없이 찾아와 뜬금없은 말을 꺼냈다.
“후...어디서부터 얘기해야 할지......우리천부문은 계룡산에 자리를 잡고 있었네.”
문주 할배의 말은 상당히 길어질 거 같았다.
지루할 거 같았지만,
한편으로는 필요한 정보이지 않을까 싶어 참고 듣기로 했다.
문주 할배의 말을 대충 요약하자면 계룡산에 살고 있었는데 좀비 사태가 터지고.
그래도 문제없이 잘살고 있었는데.
흑랑이라는 놈의 습격을 받았다.
무인들이라서 나름대로 잘 싸우고 물리 쳤지만.
흑랑 놈의 무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규모가 커졌다.
피 터지게 싸우다 흑랑 놈의 반려라고 할 수가 있는 암컷을 죽이고 설화의 아빠도 죽었다.
하지만 흑랑 놈은 여전히 살아있었고,
결국은 버티다 못해 여기까지 왔다는 이야기다.
문주 할배의 말로는 흑랑 놈이 천부문이 자기 마누라를 죽인 걸 못 잊고 원한을 갚으러 찾아온 거 같다는 이야기다.
흑랑이라는 건 듣기로는 시커먼 늑대라는 거 같았는데 내가 보기엔 그냥 시커먼 개가 변형되어서 그렇게 커진 거 같았다.
‘예전에 애견 인구 1천만 이상이라는 소리를 들은 것도 같은데.’
괴물 개들이 많은 걸 보면,
이쪽 세계라고 크게 다를 거 같지 않았다.
“우리 일에 끌어들여 미안하게 됐네. 이 건은 우리가 처리하겠네. 그래도 처자들에게는 조심하도록 말해주게.”
처리할 만한 자신감이 있는 건가?
자기가 싼 똥은 자기가 치우겠다는 나름대로 개념 있는 소리였다.
나야 스킬포인트도 있으니 본의 아니게 도와주게 될 테지만, 그렇다고 함께 행동할 생각은 없었다.
그걸 이 자리에서 생색낼 생각도 없었고.
“그럼 우리를 습격한 놈은 뭐지?”
그놈은 아마도 흑랑이라는 놈이 아닐 거다.
한수지에게 듣기로는 누렁이라고 했으니.
“그건....우리도 처음 보는 놈일세. 아마도 새로운 짝을 들인 게 아닐까 싶네….”
“그런데 그 흑랑이라는 놈인지 어떻게 아는 거지?”
“놈을 직접 보지는 못했네. 하지만 이곳뿐만이 아니라 우리 천부문 사람들도 밖에서 놈들의 습격을 받았네. 전에 계룡산에 있을 때와 놈들의 습성이 상당히 흡사하네.”
들어보면 놈이 부하 괴물 개들을 부린다는 거 같았다.
흑랑이라는 놈을 직접 본 것도 아니지만 왜인지 할배는 그놈 소행이라고 확신하는 거 같았다.
나야 문주 할배의 말을 마냥 믿지만은 않았다.
괴물 개 놈들이 어느 정도 몰려다니는 건 그놈만의 특징이 아니라 원래 그런 놈들이다.
나도 이곳으로 오면서 종종 잡았으니 알고 있다.
하지만 흑랑이라는 놈의 소행이든 아니든 그건 별 상관이 없는 이야기였다.
놈들을 잡고 스킬포인트를 벌면 그만이었으니.
-덜컹!
“아저씨! 괴물들이!!”
채원이 갑자기 접견실로 뛰어 들어와 내게 감지기를 보여줬다.
“응?”
나는 감지에 신경을 쓰지 않는 이상 몬스터 감지기보다는 감지 범위가 떨어졌다.
채원이 들고 있던 몬스터 감지기가 뭔가를 감지한 모양이었다.
감지기의 화면을 들여다보니 주변으로 꽤 많은 몬스터가 감지되고 있었다.
“이건….”
고장 났나?
‘감지 범위를 최대한 넓혀봐.’
[최대출력으로 스캔하겠습니다.]
내 지시에 수니가 광범위한 강한 마력 감지를 뿌렸다.
강렬한 마력의 파동이 흩뿌려지자 노인네와 설화가 뭔가를 감지한 듯 흠칫했다.
“지, 지금 뭔가….”
나는 내 머릿속으로 들어오는 정보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뭐가 이렇게 많아?’
숫자도 숫자지만 감지되는 등급이 무시할 수가 없었다.
‘C등급 그리고...B등급?!’
-벌떡!
급하게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무, 무슨 일인가?!”
“나, 낭군님!?”
어리둥절해하는 그들을 두고 나는 급하게 옥상으로 향했다.
그리고 옥상에서 주위를 둘러봤다.
높지 않은 건물 위에.
개발되어있지 않은 빈 땅에.
도로에.
광범위하게 괴물 개들이 노골적으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포위된 건가?’
그리고 너무 커서 유난히 튀는 거대한 검은색 늑대처럼 보이는 괴물을 볼 수 있었다.
못해도 4층 건물 정도의 크기를 가지고 있는 괴물이었다.
그냥 봐도 저놈이 B등급 상급 침식체 같았다.
무려 스킬 포인트 다섯 개짜리.
그 주위에 C등급 괴물 개 4마리가 포진돼 있었다.
“흐, 흑랑!?”
내 뒤를 쫓아온 설화와 노인네가 멀리서도 워낙에 커서 잘 보이는 그놈을 보고 놀라 소리쳤다.
........저게 흑랑이라고?
“저걸......상대로 버텼다고?”
아니, 저놈한테서 도망쳤다고?
천부문의 전력을 잘못 파악했나?
아무리 생각해도 천부문은 저놈 하나만 덮쳐도 도저히 버틸 전력이 아니었다.
“저건....우, 우리가 상대할 땐 저렇게 크지 않았네….”
문주 할배가 떨리는 눈으로 흑랑이라는 놈을 바라보며 당황한 듯 말했다.
아까 자신들이 처리하겠다던 자신감 있는 모습은 씻은 듯이 사라지고 없었다.
문제는 저놈 하나만이 아니었다.
현재 감지되는 C등급만 4마리.
D등급은 34마리였다.
‘천부문 좆된 거 같은데….’
아니, 나도 곤란한 상황이다.
문제는 아이들이었다.
니미, 천부문 괜찮은 방파제인 줄 알았는데 똥이 묻은 방파제였다.
계룡산에서 똥 한번 푸짐하게 싸고 온 냄새 나는 집단이었다.
옆에 있다가 괜히 불똥이 튀었다.
애들을 대피시켜야 하는데 장소가 마땅치 않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지하 벙커라도 하나 만들어 둘 걸 그랬다.
놈의 시선은 우리가 어딨는지 안다는 듯이 정확히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노인네를 보고 있는 건가?’
크기는 둘째치고 생긴 것이 검은 늑대처럼 보이긴 했다.
문주 할배가 왜 흑랑, 흑랑 노래를 부르는지 알 거 같았다.
-아우~!
갑자기 놈이 하울링을 한다.
-아우~! 아우~!
놈이 하울링을 하자 똘마니 놈들이 지랄 합창한다.
‘너희들은 좆됐다는 뭐 선전포고 그런 건가?’
그 와중에도 나는 놈들이 덮쳐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아이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리를 핑핑 돌리고 있었다.
하지만 놈은 내 예상과는 다르게 한동안 이곳을 주시하다 똘마니들과 함께 그대로 사라졌다.
“......?”
저게 뭐 하는 짓인가 하고 고민하고 있으니 천부문주 할배가 말해줬다.
“놈은 영악하네…. 자신의 무리가 피해를 받는 걸 싫어하지. 계룡산에서도 직접적으로 공격해온 적은 없다네. 따로 떨어진 문도들을 공격했지”
계룡산에서야 전력이 비등했던 모양이니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건 아닌 거 같았다.
놈은 내 존재를 모른다.
저 검은 강아지 놈은 혼자 뛰어들어도 나를 제외하면 막을 존재가 없었다.
저 정도 지능이면 자신의 전력이 압도적인 것도 알 거다
그런데도 저렇게 물러나 시간을 질질 끈다?
간단하게 끝내고 싶지 않다는 거다.
원한이 있으니 최대한 괴롭히고 싶어 하는 게 아닐까.
양아치 새끼였다.
‘쫓아갈까.’
잠깐 그런 생각을 했지만 포기했다.
그래도 B등급 몬스터다.
대량의 스킬포인트를 얻을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긴 했지만.
똘마니들도 많았고,
단시간에 승부를 낼 수는 없어 보였다.
원래 세계 몬스터와는 다르게 영악한 놈 같으니 빠르게 잡지 못하면 피곤해질 수가 있었다.
쉽게 잡힐 놈으로도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할 거지?”
문주 할배에게 물었다.
원수라고 불리던 존재가 터무니없는 존재가 되었으니 고민이 많아 보이는 게 뾰족한 답이 없어 보였다.
이제는 도망치고 싶어도 도망도 못 치는 상황이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냥 떠날 수도 없다.
애들을 데리고 이동하다 등급도 만만치 않은 저런 놈들에게 습격당하면 아이들을 지킬 수가 없다.
아이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었다.
‘진퇴양난이군.’
뾰족한 수가 없어 결국 나는 아이들과 함께 천부문 쪽으로 이 사태가 수습될 때까지 거처를 옮기기로 했다.
불편하겠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내가 흑랑이라는 놈을 상대할 경우,
아이들은 거의 무방비 상태다.
설화, 지아, 수지.
이 세 명으로는 내가 봤을 때 C급 몬스터 하나정도가 한계였다.
놈들의 숫자가 너무 많았다.
천부문 인간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일종의 보호막인 셈이었다.
내가 천부문에 들어서자 설화가 나름 노력해서 그런지 그렇게 적대적인 시선은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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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구가 좀 많다 보니 평수가 넓은 4층의 집을 골라 아이들과 정리하고 잘 곳을 마련했다.
그리고 학교 옥상정원에 있는 세이브 포인트를 철거하고 여기 거실 쪽에 설치했다.
“아재 너무 놀면 양심에 안 찔려? 채영이랑 하나도 열심히 청소하는데.”
어설프지만 열심히 걸레질하는 꼬맹이들이 보였다.
솔직히 양심에 안 찔린다.
저거 한다고 팔이 부러지는 것도 아니고.
내가 시킨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 말을 내뱉지는 않았다.
“어허. 노는 게 아니야. 앞으로 있을 전투를 위해 마력을 다스리고 있는 거다.”
“그, 그래?”
그냥저냥 가져다 붙인 변명이었지만 수지는 떨떠름하게 납득한 거 같았다.
“꺄악~!!”
그때 천부문이 거처로 삶고 있는 아파트 단지에 날카로운 비명이 울려 퍼졌다.
빠르게 테라스에서 뛰어내려 나가보니 어떤 아줌마가 바닥에 굴러다니는 뭔가를 보고 주저앉아 있었다.
보니까 어디서 날라왔는지 고통에 일그러진 사람 머리통 두 개가 굴러다니고 있었다.
몸통은 놈들이 처먹은 거 같았다.
표정을 보면 살아있는 채로 뜯어먹은 게 분명했다.
하는 짓이 짐승 같지 않았다.
“정찰을 보낸 아이들이네….”
천부문주 할배가 침통한 얼굴로 말했다.
천부문의 무인 같았다.
급한 마음에 발 빠르게 움직인 거 같았지만.
안 그래도 전력이 부족한데 각성자 둘을 잃은 건 컸다.
감지에 걸리지 않는 걸 보면 흑랑 패거리 놈들은 천부문을 꽤 넓은 지역에 걸쳐 봉쇄한 거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