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아저씨의 로그인 생활-42화 (42/259)

.

.

.

“드. 등급이 올랐다고요?!”

진아의 보고에 한나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 네 판단이 맞았던 거 같아.”

“아. 아니 아무리 그래도 한 달도 안 돼서…. 상식을 벗어났네요. 확실한 건가요?”

“나도 믿진 않았는데…. 마력 발현하는걸 봤으니 믿지 않을 수도 없지.”

진아가 저렇게 말을 하니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강화계 각성자가 마력 발현을 한다는 건 C등급에 올라섰다는 증거였다.

한나의 예상을 아득히 벗어난 성장 속도였다. 그리고 자신의 예상이 확신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슈트 4벌하고 감지기를 구해 달라고도 했고요.”

그런 상황에서 그의 부탁을 들으니 한나는 거절할 마음이 들지 않았다.

“따로 팀을 꾸리려는 건 아니라고는 하는데….”

하지만 진아는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 듯했다.

회사와 상관없이 자기 마음대로 헌터팀을 꾸려도 그에게는 리스크가 없었다.

계약이 문제였다.

그건 걱정해봐야 의미가 없다는 소리였다.

“괜찮을 거예요. 따로 팀을 꾸리거나 뭔가를 할 생각이었으면 언니에게 그런 부탁하지도 않았을 거고요.”

진아의 표정은 한나의 말에도 여전히 풀리지 않았다.

“계약서라도 써준다고 했다면서요.”

한나는 운호 나름의 믿어달라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말은 그렇지.”

진아의 걱정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한나는 그를 붙잡기로 마음먹은 이상 확실히 그의 마음을 사고 싶었다.

터무니없는 요구만 아니라면 웬만하면 다 들어줄 생각이었다.

“흠…. 그럼 장비를 무료로 지원해주고 계약서를 쓰죠.”

“무료? 풀 옵션 슈트 4벌에 감지기면 너무….”

돈으로만 따져도 상당한 가격이었다.

“그가 우리 회사 이외의 팀으로 활동한다면 회수한다는 조건으로요.”

“그래도….”

사실 그냥 주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한나도 알고 있었다.

그는 그동안 일방적인 이득만을 받아왔다.

그가 다른 마음을 먹었다면 이 호의도 크게 의미가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이 회사의 호의를 뿌리치고 따로 무언가를 할 정도로 열정적인 사람으로도 보이지 않았다.

한나는 회사가 그에 대한 호의가 계속되는 한 굳이 회사를 등질 이유도 없을 거로 생각했다.

“등급상승 축하 보너스라고 생각하죠. 그에게는 회사의 확실한 좋은 이미지를 얻는 게 더 중요해요.”

없으면 불편함을 느낄 정도의 회사의 편리함을 주입해서 회사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한다.

그게 한나의 계획이었다.

그리고 다른 회사나 길드라면 할 수 없는 불가능한 계획이기도 했다.

“그래. 그건 그렇게 처리할게.”

.

.

.

옆에서 지쳐 자는 재은이를 바라봤다.

손에 닿는 그 부드러운 하얀 피부의 감촉이 질리지 않는 중독성이 있었다.

그녀는 각성을 했다.

각성을 한 지는 좀 됐다.

마력의 흐름을 봐서는 강화계 각성자였다.

그리고 무려 D등급 인거 같았다.

그 정도로 몇칠을 밤낮없이 살을 맞대다 보니 각성을 할 수밖에 없었다.

지아의 경우도 있고 어느 정도 예상하기는 했다.

어느 정도 사람마다 각성하는 시기와 재능의 차이가 있는 듯했지만 내가 아니었어도 재은이는 각성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나도 재은이를 보고 나와 관계하는 여자가 각성한다는 확신을 어느 정도 가질 수가 있었다.

재은도 자신이 각성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 않을까?

하지만 그런 내색을 하지는 않았다.

당장 마력 검사를 받고 헌터 생활만 해도 그녀는 꽤 풍족한 생활이 가능했다.

‘떠날지도 모르겠군….’

아니 십중팔구 떠나지 않을까 싶었다.

이건 그냥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당연한 일이다.

각성자가 굳이 가정부를 계속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다고 내가 각성시켜 줬다고 생색낼 생각도 없었다.

생색을 낼 수도 없었고.

‘나랑 섹스해서 각성한 거야. 라고 해야 하나?’

그건 좀 웃길 거 같았다.

‘뭐....그만큼 나도 충분히 즐겼으니.’

편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리고 이틀 후 재은은 내게 짧은 메모를 남기고 사라졌다.

『아저씨…. 나 어디 좀 갔다 올게….』

“갔다 온다라….”

돌아온다는 소린가?

다시 돌아온다고는 쓰여 있긴 하지만......조금은 회의적이었다.

수니를 시켜 찾을 수도 있겠지만 하지 않기로 했다.

자기 인생 찾으러 간 사람을 굳이 어떻게 할 생각은 없었다.

그녀가 헌터 생활을 한다면 언젠가 마주치는 일도 있지 않을까.

그래도 재은의 그 매끈한 여체에 대한 아쉬운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몸 정이라도 든 건가?’

그럴 수도 있었다.

“쩝….”

기분 좋은 휴가가 끝난 기분이었다.

슬슬 움직여야 할 때인가.

재은이와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즐기느라 잊고 있던 좀비 세계.

침식체 놈들을 족치러 가야 할 때가 된 거 같기도 했다.

재은이 덕분에 예상보다 일정이 늦어진 감이 있었다.

‘아. 그래도…. 유나는 보고 가야 하지 않을까?’

.

.

.

재은이에게 빠져 지내며 미뤄뒀던 좀비 세계로 슬슬 갈 준비를 시작했다.

먼저 히어로 몰에 있는 내가 무기를 산 맨즈사 매장을 방문했다.

“이거 반품 가능합니까?”

점장 아저씨에게 중급 침식체에게 망가진 대형 방패를 보여줬다.

“예?? 이, 이건.”

“부서졌습니다.”

“그게 도. 도대체 어떻게 하면….”

황당한 표정으로 점장 아저씨가 물었다.

“쓰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이. 일단 본사에 말해보겠습니다.”

어차피 전투하다 박살이 난 물건이다.

사실 할 일은 한샘이니 반품을 해줘도 되고 해주지 않아도 상관은 없었다.

이건 그래도 혹시 모르니 그냥 말이나 한번 해보는 거였다.

애초에 이곳을 방문한 목적은 따로 있었다.

“그것보다….”

“네. 말씀하시지요.”

“그 방패보다 훨씬 두껍고 튼튼한 놈으로 만들 수 있습니까?”

수니용 방패를 좀 더 크고 튼튼한 거로 만들기 위해 커스텀 제작을 요청했다.

“예?? 아이기스보다 더 크고 두껍게요? 그. 그것도 본사에 말해봐야.”

커스텀 제작이 없는 건지 이런 주문을 하는 사람이 없는 건지.....

점장 아저씨는 확실히 대답하는 게 없었다.

그래도 일단 부탁은 해놓고 매장을 나왔다.

‘제작이 안 된다면 다른 방법을 찾아보던가 해야지.’

그리고 히어로 몰을 돌면서 쓸만한 마력 무기도 둘러봤지만 내 마력이 특이해서 그런지 그다지 효과가 있는 무기가 없었다.

따로 커스텀 주문할까도 생각해봤다.

커스텀 제작을 한다면 내 마력의 성질을 파악해야 하고 결국 특이한 마력이라는 걸 공개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제작이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지.’

상당한 연구와 시간이 필요할 거 같았고 쓸데없이 피곤한 일만 생길 수도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원래 쓰던 무기를 써야 할 듯했다.

‘지아와 채원이 쓸 무기도 좀 사 가야겠군.’

그 외에도 수니의 지시에 따라 좀비 세계의 인프라를 복구시킬 마력 발전기 같은 필요한 장비들을 샀다.

볼일을 보면서 시간을 보내자 유나와 만날 시간이 다가왔다.

.

.

.

“유나야 어제 엘라 님 활약 봤어?”

150cm도 안 되는 작은 체구.

긴 오렌지색 머리카락을 트윈 테일을 한 예쁘장한 미소녀가 말했다.

유나의 베스트 프랜드 앨리스였다.

아버지 사업으로 한국에 와서 유학 생활을 하고 있었다.

“응? 아. 아니?”

유나의 말에 앨리스는 신이나 자신의 스마트폰을 보여줬다.

“진짜? 어떻게 그걸 못 볼 수 있어? 내가 보여줄게. 이것 봐.”

스마트폰 화면에 백금발의 아름다운 여성이 화려하게 악당들을 얼려서 잡는 모습이 나오고 있었다.

미국의 정점에 선 히어로인 그녀는 빙계 각성자였다.

백금발의 아름다운 외모와 도도함.

압도적인 능력.

그녀의 몸매를 드러내는 옅은 푸른빛의 아름답고 화려한 히어로 슈트.

앨리스는 열광적인 히어로 덕후였다.

각성자 아카데미의 히어로 서포트 과로 들어온 것도 그런 이유였다.

앨리스는 수다를 좋아했고 특히 히어로라면 자제가 되지 않았다.

그 적응 안 되는 높은 텐션의 수다를 받아주는 유일한 친구가 유나이기도 했다.

“그래. 멋지다.”

“그렇지? 응? 응? 하…. 나도 저런 멋진 히어로의 서포터가 될 수 있을까?”

-띠링.

유나의 핸드폰이 울렸다.

“응? 전화?”

“응. 잠깐 앨리야. 전화 좀 받을게.”

조금은 당황한 듯한 유나의 행동에 엘리스의 촉이 발동했다.

전화를 받은 유나의 얼굴은 조금 상기돼 있었다.

-슬금슬금.

앨리스는 꼬물거리며 조심스레 전화 통화를 하는 유나에게 접근했다.

‘잘 안 들리는데…. 남자.........!!!’

그리고 어렴풋이 들리는 듣기 좋은 저음의 굵은 남자 목소리에 경악했다.

“네..네. 수업 끝나고....네...그때쯤….”

-꿀꺽.

“애. 앨리야…. 나 이따 볼일 있어서....너 혼자 돌아가야 할 거 같아…. 미안.”

“으..응?? 어. 그. 그래 괜찮아. 볼일 있다면 어쩔 수 없지.”

유나의 상기된 얼굴에 앨리스는 본능적으로 느꼈다.

‘연애?!’

그 누구의 고백도 받아들이지 않았던 유나가!

앨리스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이건 절친을 위해서다.

유나는 순진하고 남의 부탁도 거절을 못 할 정도로 착하다.

앨리스 자신이 옆에 붙어 어느 정도 그것을 커버해주고 있었다.

절대 호기심이 아니라 자신이 어떤 남자인지 확인해볼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수업이 끝난 후 앨리스는 유나의 뒤를 몰래 쫓았다.

이건 친구를 위해서였다

절대 호기심이 아니었다.

순수한 유나가 나쁜 남자에게 걸려 험한 꼴을 당할 수도 있었다.

앨리스는 끊임없이 자기 자신의 행동에 대한 이유를 만들어가며 조심스레 유나의 뒤를 쫓았다.

유나는 길가에서 무언가를 기다리는듯했다.

그 앞으로 픽업트럭 한 대가 와서 서더니 거대한 남자가 내렸다.

‘헉! 크다….’

유, 유나가 저런 스타일의 남자가 취향이었나?

외모만 보고 판단할 수는 없지만….

키도 크고 아니...... 너무 크고 균형 잡힌 탄탄한 몸이 사내답게 보이긴 했다.

‘.....괘, 괜찮은 남자맞나?’

사내는 그에게 인사하는 유나의 머리를 커다란 손으로 쓰다듬고는 그녀를 차에 태우고 떠났다.

‘헉! 아, 안돼! 놓치면!’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