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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아가 나가기 위해 차려입은 모습을 보고 수지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지아는 몸에 쫙 달라붙은 검은색 폴라 원피스에 뒤에는 액세서리 같은 가방을 메고 있었다.
세상 물정 모른다고 생각은 했지만, 상상 이상이었다.
그리고 같이 가려는 남자들에게 날카로운 시선을 쏘아냈다.
“야. 저걸 보고도 아무 말을 안 해?”
“뭐. 뭐 어떠냐. 저 정도는 괜찮잖아.”
“그래. 우리가 지아 몫까지 들고 올게.”
지아와 함께 외출하는 두 놈은 신이나 있었다.
이미 지아를 위해 정찰은 마치고 나름 안전한 곳으로 갈 곳은 정해놨다.
그렇다고 해도 평소에는 그렇게 식량을 구하러 나가는 걸 꺼리더니 지아와 함께라고 저리 신나 하는 모습에 기가 찼다.
“이런..씹….”
수지는 지아에게 큰 악감정은 없었다.
지아를 감싸고도는 남자들에게 더 화가 났다.
지아는 새장 속에 먹이만 받아먹는 새였다.
그런 그녀가 조금은 이전과는 다른 세상이라는 걸 깨닫기를 바랐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지아만 싸고도는 남자들의 모습에 질투가 전혀 없다고 할 순 없었다.
수지는 나름 일반인 사이에서는 괜찮은 얼굴이었다.
하지만 지아의 외모가 너무 뛰어났다.
그리고 거처에서 관리만 해서 그런지 깨끗한 얼굴에서 윤기가 났다.
모델을 했었다더니 역시나 일반인과는 뭔가 달랐다.
수지도 지아만 없었어도 여기 있는 남자 중 하나와 먼가 썸을 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발정이 난 개새끼들처럼 전부 지아를 노리고 있었다.
‘세상이 이런데 저러고들 싶을까?’
하긴 세상이 이러니까 지아 같은 여자가 저런 놈들 상대라도 해주는 거겠지.
지금까지 지아를 덮치지 않은 게 신기했다.
아니 다들 서로 눈에 불을 켜고 눈치를 보고 있는 거일 거다.
‘시발. 나는 잡은 물고기라는 건가? 발정 난 개새끼들. 세상에 네놈들밖에 안 남았어도 니들은 다 아웃이다.’
수지는 이를 갈았다.
“그래…. 맘대로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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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병철도 생존자 집단에 있었다.
초능력을 각성하고 대우도 상당히 좋았다.
하지만 성격에는 맞지 않았다.
이런 힘을 가지고도 이렇게 존망한 세상에서조차 규칙을 지켜야 한다는 게.
참지 못하고 평소에 마음에 두던 여자를 강간하고 죽였다.
그리고 오래 알고 지내던 친구 두 놈과 그 생존자 집단에서 도망쳤다.
생존자 집단에서 나오자 감옥에서 나온 것과 같은 해방감을 느꼈다.
강간이고 살인이고 마음껏 할 수가 있었다.
병철은 초능력자다.
변형체가 아니면 좀비들은 그다지 위협이 되지 않았다.
그렇게 병철은 생존자들의 약탈자가 됐다.
생존자 집단에서 떨어진 세종시 외곽에 적당한 2층짜리 건물을 정리하고 거처로 삼아 활동했다.
오늘도 대전 쪽으로 보급품을 구하러 나갔다.
거처에서 미연이 엉덩이나 두드리며 쉬고 싶었지만 그래도 먹을 건 구해야 했다.
세종시 쪽은 급하지 않으면 웬만하면 가지 않았다.
생존자 집단은 자신과 같은 초능력자들이 주축이었다.
일대일은 자신이 있었지만, 그놈들은 집단이다.
그래서 웬만하면 마주치기 싫어, 주로 대전 쪽으로 가서 보급품을 챙겼다.
외곽 쪽은 많이 털어먹어 그런지 조금은 안으로 들어가야 했다.
대형마트는 조금 위험했고 편의점이나 작은 마트를 터는 게 안정적이었다.
아직은 좀 멀쩡해 보이는 마트를 발견했다.
그곳에는 선객이 있었다.
남자 둘에 여자 하나인 생존자 그룹이었다.
-탕. 탕.
“꺄악!!!”
오랜 불알친구인 장우가 권총으로 두 사내놈의 머리를 인정사정없이 날렸다.
“미친놈.”
병철의 말에 리볼버 권총의 입구에 장우가 장난스레 입으로 바람을 분다.
“후~”
남자라면 묻고 따지지도 않고 총질부터 하는 정신병자 같은 놈이었다.
그래도 나름대로 사격 실력은 꽤 있었다.
“제. 제발 살려주세요.”
하나 남은 여자가 무릎을 꿇고 빌었다.
“휘유~ 시발. 미쳤네.”
그 여자를 보고 장우가 휘파람을 불었다.
병철도 여자를 보고는 자신도 모르게 입이 벌어졌다.
‘미쳤다!’
여자는 목을 감싸는 깔끔한 검은색 폴라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이딴 세상에서 어떻게 관리했는지 청순 섹시가 뭔지 보여주는 윤기 나는 긴 생머리에 깨끗한 얼굴.
그리고 몸에 쫙 달라붙은 원피스가 그녀의 잘 빠진 몸매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거점에 있는 여자들이 죄다 오징어로 느껴질 정도였다.
아랫도리가 아플 정도로 피가 쏠렸다.
-꿀꺽.
병철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키며 말했다.
“어허. 내가 뭐 잡아먹기라도 해? 이 오빠가 네가 두 놈 사이에서 위험한 거 같아서 구해준 거야.”
“아? 네? 네. 감사합니다. 오. 오빠.”
병철의 황당한 말에도 여자는 창백한 얼굴로 오들오들 떨면서 꾸벅 감사 인사를 했다.
“그래. 그래. 감사해해야지.”
미인의 오빠라는 소리에 병철은 기분이 좋아졌다.
이런 상황에서 미친년처럼 구는 것들도 있었는데 병철은 그녀가 길들일 필요 없이 순종적으로 보이는 게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병철은 예상치 못한 초대박에 기분이 좋았다.
“아! 조. 좀비!!!”
여자는 몰려드는 좀비를 보고는 놀라 소리쳤다.
장우의 총소리에 좀비들이 몰린 모양이었다.
“잘 보라고.”
병철은 여자에게 뽐내듯 말을 하며 좀비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그 손에서 불꽃이 피어올라 좀비에게 날아갔다.
-펑! 화르륵!
-크에엑!!
순식간에 좀비들이 불타오르며 재가되었다.
“어?!”
여자가 그 상식적이지 않은 현상에 놀라 눈을 똥그랗게 떴다.
“후후. 초능력이다.”
병철은 그답지 않게 친절하게 대답해줬다.
“초. 초능력이요?!”
예쁜 여자가 놀라는 그 모습은 병철을 우쭐하게 했다.
“그래. 이 오빠가 초능력자야.”
그녀의 눈빛이 흔들렸다.
“후후….”
그 모습에 우쭐해진 병철은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오. 오빠. 다. 다 보고 있는데….”
교태 어린 그 모습에 병철은 여자한테 남자가 녹는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알 거 같았다.
당장 이 자리에서 그녀를 깔아뭉개고 허리를 흔들고 싶었지만 여기선 불가능했다.
“빨리 복귀한다.”
병철은 마음이 급해졌다.
“벌써?”
몇군데 더 돌 예정이었는데 병철이 빠른 복귀를 말하자 장우가 의문 어린 표정을 지었다.
“뒤진 놈들이 챙긴 거까지 하면 그럭저럭 괜찮을 거다.”
“시발. 발정 났군.”
뒤에 있던 원상이 툴툴댔다.
병철은 혹시라도 여자가 도망가려고 할까 봐 눈에 불을 켜며 경계했지만, 그녀는 별다른 반항을 하지 않고 밴에 올라탔다.
“이쁜이 이름이 뭐지?”
병철은 옆에 앉힌 여자의 엉덩이를 슬슬 쓰다듬으며 물었다.
“이. 이지아예요….”
지아가 경직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지아? 이쁜 이름이군.”
그 모습을 보고 병철은 그녀가 자신이 보여준 초능력에 반했다고 생각했다.
이 세계는 이제 약육강식, 즉 힘이 전부인 세계다.
이 여자도 자신에게 붙는 게 생존에 유리하다는 걸 안 거다.
“병철아…. 나도….”
장우가 병철에게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병철은 장우를 이해는 했다.
누구라도 탐낼만한 여자였다.
“너 전부터 미연이 갖고 싶어 했잖아. 미연이 줄게.”
“이 씹….”
“씹?”
병철이 인상을 썼다.
“아. 아니. 고맙다고….”
병철의 인상에 장우는 핼쑥해진 얼굴로 얼버무렸다.
병철은 초능력자다.
오랜 친구이긴 했지만 장우는 초능력자인 병철의 말을 거스를 수 없었다.
욕이 나올 정도로 미녀이긴 했다.
병철이 평소 그토록 물고 빨던 미연이가 오징어로 보일 정도였으니 말이다.
평소라면 한바탕했겠지만, 지금은 그런 걸 신경 쓰지 않을 정도로 기분이 상당히 좋았다.
“응? 생존자? 여잔데? 어? 그, 그리고 여자아이도 있어!!!”
운전하던 원상이 흥분해서 침을 튀기며 소리쳤다.
병철이 앞을 보니 좀비에게 쫓기는 생존자가 보였다.
‘오늘 뭔 날인가?’
생존자를 두 번이나 연속으로 보다니 흔치 않은 일이었다.
“그래? 여자라고? 그럼 참을 수 없지.”
시무룩해 있던 장우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그럼 백마 탄 왕자가 돼볼까?”
병철이 그런 장우를 손으로 막았다.
“응? 왜.”
“네 면상을 봐라 백마 탄 왕자는 무슨….”
병철의 시선이 지아를 향했다.
“네? 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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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원은 동생과 함께 좀비에게 쫓기고 있었다.
“헉. 헉.”
‘이, 이대로는….’
동생은 한계인 거 같았다.
-부웅.
그때 자동차 소리가 들렸다.
짙게 선팅된 밴 한 대가 달려오고 있었다.
평소라면 경계했겠지만, 워낙 급한 상황이다 보니 반가움과 경계심이 섞인 복잡한 감정이 떠올랐다.
대형 밴은 이내 앞에서더니 옆문이 열렸다.
그리고 깜짝 놀란 만큼 예쁜 여자가 튀어나오며 말했다.
“어. 어서 들어와요.”
“아. 예. 감사합니다.”
그 예쁘장한 외모에 순간 경계가 풀렸다.
그리고 많이 지쳐있었고 급하기도 했다.
채원은 미쳐 여자의 경직된 어색한 표정을 읽지 못했다.
동생을 먼저 태우고 밴에 올라탔다.
그리고 3명의 남자를 봤다.
그들은 기분 나쁘게 웃고 있었다.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창백하게 질린 동생 채영이의 머리에는 권총이 겨눠져 있었다.
“채영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