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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아는 온실 속 화초처럼 자랐다.
소위 말한다는 금수저였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다.
라면도 하나 자기 손으로 끓여본 적이 없었다.
171cm의 키에 얼굴도 예뻤다.
당연히 수많은 캐스팅 제의를 받았고 모델이 됐다.
그 미모와 몸매 덕에 급부상하는 핫한 신예 모델이 되었다.
촬영차 대전에 왔다가 갑자기 좀비 사태가 터졌다.
하지만 그 미모는 생존자 집단에서도 빛을 발했다.
속해 있던 생존자 집단이 변형체에 박살이 나 뿔뿔이 흩어지는 그 상황에서도 남자들은 필사적으로 지아를 지켜냈다.
그리고 뿔뿔이 흩어진 집단은 남자 넷에 여자 둘인 6명의 생존자 그룹으로 변했다.
“오. 오빠 이건?”
지아는 남자가 내미는 화장품을 보고 물었다.
“보급 갔다가 괜찮아 보여서 가져왔어.”
남자는 지아에게 멋진 미소를 짓는다고 지었지만 지아에게는 그다지 감흥이 없어 보였다.
“지아야 이거.”
얼마 안 가 다른 남자가 다른 물건을 가져왔다.
“물티슈네요?”
“물티슈 필요할 거 같아서 구해왔다.”
“고. 고마워요.”
수지에게 들킨다면 먹을 거 하나라도 더 가져오지 않고 이딴 걸 들고 왔다고 욕할지도 몰랐다.
남자들은 밖에 나갔다 오면 종종 선물이라고 이런저런 물건들을 가져다주었다.
지아는 부담은 됐지만 그래도 성의를 생각해서라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런 일은 좀비 사태가 생기기 전부터 지아에게 상당히 익숙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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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발. 쟤 언제까지 저렇게 오냐오냐할 건데?”
수지 언니는 화가 난 거 같았다.
“지아는 너랑 다르잖아.”
“뭐? 이 새끼야. 그게 무슨 소리야!”
수지 언니의 얼굴이 험악해졌다.
“아. 아니. 아직 어리기도 하고….”
“아니. 시발! 몇 살 차이 나 난다고!”
지아는 수지 언니랑 오빠들이 싸우는 소리를 들었다.
오빠들이 하도 극구 말려서 거처에만 있었지만 수지의 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죄송해요. 저도 진작 뭔가를 해야 했는데….”
“지아야 넌 잘못이 없어.”
“그래. 맞아.”
오빠들이 위로의 말을 건넸다.
하지만 그럴수록 수지 언니의 얼굴은 일그러졌다.
“이번엔 저도 나가서 식량을 구해올게요!”
“지. 지아야 바깥은 위험해.”
“그. 그래, 혹시 다치기라도 하면.”
“얼씨구. 지랄한다.”
수지 언니는 한심하다는 듯 오빠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지아는 이대로는 자신 때문에 그룹이 분열되는 건 안 된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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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 멧돼지에게 멀어질수록 하급 침식체의 숫자는 더 늘어갔다.
이게 안 좋은 징조인지 좋은 징조인지 판단할 수가 없었다.
나야 사냥감이 많으니 나쁘진 않았다.
아니면 이게 정상이 아닐까?
내가 출발했던 곳이 이상할 정도로 없었던 건가?
거대 멧돼지가 좀비를 마치 돼지사료 먹듯이 씹어먹던 모습이 떠올랐다.
아니면 그 거대한 멧돼지 때문일 수도 있었다.
그리고 처음 서울을 목표로 북쪽으로 이동하는 것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내가 서울을 가려고 하는 거?
그건 문명사회의 편리함을 알아서였다.
좋은 환경에서 조금 더 편한 사냥과 레벨업을 하기 위해서였다.
겸사겸사 꼬맹이 문제도 해결할 수 있고.
하지만 그 거대 멧돼지를 보고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어쩌면 서울도 그리 좋은 상황이 아닐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세계의 한국도 저런 게 있었으면 지금 같지는 않았을 거 같았다.
북한 꼴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굳이 힘들여서 거기까지 갈 필요가 있나?
힘들게 돌아다니기보다는 그냥 적당한 거점을 만들고 사냥터를 만드는 게 나을 거 같았다.
그래도 일단 대전을 벗어나야 한다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멧돼지의 활동 범위가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상대할 수 없는 괴물이라는 건 확실했다.
날이 저물자 적당히 깨끗한 건물을 찾아 레벨업과 스킬을 올릴 준비를 했다.
꼬맹이는 밥을 먹이고 텐트에 미리 재워두고 건물 옥상으로 향했다.
꼬맹이와 함께 이동하며 하급 침식체를 더 처리해 스킬포인트 보상은 이미 받았다.
<하급 침식체 처리 5/10>
그리고 이퀘스트를 반복으로 할 수가 있다는 거도 알았다.
나로서는 희소식이었다.
‘레벨업까지는?’
[D급 마석 1개에서 2개 정도를 흡수하면 레벨업이 가능하리라 예상됩니다.]
D급 마석은 F급의 10배 정도의 가격이다.
그동안 하급 침식체를 잡아 열심히 마석을 캤다.
D급 마석 한두 개의 지출이야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나마 하급 침식체를 처리하면서 경험치를 채워서 이 정도였다.
나머지 경험치도 사냥만으로 올릴 수도 있겠지만.
올릴 스킬이 많으니 감칠맛이 나 레벨업에 마석이나 코어를 쏟아붓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스킬 레벨이 오를수록 강해지는 게 확확 드러나니 이걸 어떻게 참을 수가 있을까.
이걸 참을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거다.
[마석을 흡수하시겠습니까?]
“하자.”
수니의 예상대로 D급 마석 2개를 흡수하자 레벨이 올랐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운호 레벨4>
[강화조건 충족으로 육체 강화와 인벤토리의 스킬 강화가 개방됐습니다.]
<육체강화 Lv 3: 육체가 강화됩니다.>
<인벤토리 Lv 3: 저장공간이 현재의 두 배로 확장됩니다.>
시스템 메시지를 보자 이제 어느 정도 예상이 갔다.
모든 스킬의 강화 기댓값은 현재의 최소 2배 정도로 보면 될 거 같았다.
육체 강화도 별 설명은 없지만 다르지 않을 거다.
올리면 올릴수록 기하급수적으로 강해진다는 이야기였다.
물론 스킬포인트 요구치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이것이 한계가 있을지 없을지 나도 모른다.
역시나 강화는 육체 강화였다.
로그인이나 전투 슈트를 한꺼번에 올리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만 역시 육체 강화였다.
로그인이라는 스킬이 지금까지는 내게 큰 매리트를 주지는 않았다.
중급이나 상급 침식체를 만났을 때 가장 필요한 건 전투 능력이었고 그렇다면 역시 육체 강화였다.
레벨업과 퀘스트 보상으로 스킬포인트를 2개 가지고 있었다.
<스킬포인트 2를 사용해 육체 강화를 사용하시겠습니까?>
“강화해.”
<육체 강화 스킬의 레벨이 상승하여 3레벨이 되었습니다.>
순간 몸에서 폭발이 일어나는듯한 착각이 들었다.
눈앞이 새하얗게 변하며 가벼운 현기증이 났다.
이미 전에도 격은 익숙한 현상이었다.
-우두둑.
머리가 맑아지고 펑 뚫리는 기분이 들었다.
“후우….”
마치 답답한 껍질을 한 꺼풀 벗은 느낌이었다.
<운호 레벨4>
<스킬>
<육체강화 Lv 3>
<로그인 Lv 1>
<인벤토리 Lv 2>
<전투슈트 Lv 1>
<스킬포인트 0>
전기가 없어 주위가 새까맣게 어두웠지만, 시야에 영향을 주지는 않았다.
그동안 느끼지 못한 생소한 감각이 느껴졌다.
정신을 집중하자 심장에서 뿜어져 나온 마력이 혈관을 타고 전신을 거쳐 다시 심장으로 순환하고 있는 게 느껴졌다.
온몸을 타고 흐르는 마력을 느끼며 새롭게 느껴지는 새로운 감각에 정신이 팔렸다.
이게 마력인가?
‘신기하군.’
옷이 좀 조이는 걸 보니 덩치가 더 커진 모양이었다.
나름대로 예상은 하고 있었다.
그전의 사례를 생각해보면 이제 2미터는 되지 않을까?
“수니야. 사이즈 큰 옷으로”
[네. 알겠습니다. 주인님.]
입고 있던 옷이 사라지고 새로운 운동복이 입혀졌다.
혹시나 몰라 준비한 게 다행이었다.
당연히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힘이 넘쳐 흘렸다.
D등급은 넘어섰다.
마력검을 사용할 수 있으려나?
대검을 꺼내 마력을 주입해 본다.
‘아. 안 되는데?’
나도 모르게 인상이 써졌다.
될 거 같은데 안 되는 느낌이었다.
‘알 수 없군. 노하우가 있나? 아니면 아직 뭔가 부족해서 안 되는 건가?’
무기 문제는 아닐 거다.
C등급 이상의 무기들은 마력의 소모를 줄이고 마력이 더욱 잘 발현되는 기능을 넣은 무기들이지 안 되는 마력 발현을 되게 하는 무기가 아니다.
거대 망치 묠니르를 소환해 들었다.
예전 같은 부담 없이 한 손으로도 가볍게 들렸다.
하지만 역시 마력 발현은 되지 않았다.
왜 안 되는 거지?
과외라도 받아봐야 하나?
전투를 통해 상승한 육체 능력도 확인할 필요가 있어 보였다.
그냥 육체 쪽으로 능력이 몰빵이 된 건가?
육체 자체는 훨씬 더 강해지고 커졌다.
가볍게 주먹을 내지르자 공기가 떨리며 충격파가 터져 나왔다.
-펑!
“흠….”
누가 이걸 보고 D등급이라고 할까.
C등급의 상징은 마력 발현이 아니었나?
육체 강화 레벨을 하나 더 올리면 발현이 될까?
다음 강화는 스킬 포인트가 4포인트일 거다.
확인해 보지 않았으니 확실하진 않았지만, 예상은 할 수가 있었다.
‘에이씨. 마력 발현이 안 되면 그와 비슷한 충격을 주면 되지 않을까?’
이 육체 능력이라면 가능할 것도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