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렘 in 여관-196화 (196/352)

〈 196화 〉 194. 위탁 운영 8

* * *

창가에서 흘러드는 달빛이 애니를 비추자.

달빛에 비친 애니의 눈물이 깨진 유리 조각처럼 반짝이며, 애니의 가슴 위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그녀의 가슴 위로 떨어져 내린 눈물방울은 진짜 유리 조각이라도 되는지. 그녀는 그것을 맞을 때마다 더욱 슬프게 울어댔고, 그녀의 가슴이 슬픔과 상처로 물들고 있었다.

그리고 애니의 가슴 위로 떨어진 눈물방울은 그녀의 슬픔을 전달하는 어떤 마법 같은 능력이라도 있는지. 방울방울마다 내 가슴에도 아릿한 통증을 전달하고 있었다.

조용한 방. 애니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울음소리만이 조용한 바람처럼 창밖으로 흘러나갔다.

나는 이실리엘, 리젤다, 발레리를 겪으면서도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녀들은 순수하게 좋아하는 마음이 든 것뿐인데. 상황이나 어떤 이유 때문이 아닐까 의심한 것은 나.

처음부터 애니도 줄곧 같은 마음이었는데, 여관 때문인가? 아니면 가족? 색안경 끼고 애니를, 애니의 마음을 의심한 것은 나 자신이었다.

‘왜 나는 애니의 마음을 의심했던 거지? 그냥 순수하게 내가 좋은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어떤 이유를 붙였던 거지?’

왜 애니의 마음을 너저분한 이유를 붙여 폄하 했던가?

그래, 가장 큰 문제는 상황도 애니도 그 무엇도 아닌, 의심 많고 우유부단한 나 자신이었다.

고도화된 사회의 톱니바퀴로 살아가는데 익숙해졌던 나 자신.

튀거나 도드라져 보이는 게 아닌, 자연스럽게, 평범하게, 라는 말에 너무나도 익숙해진 나 자신.

착한 아들, 착한 학생, 착한 시민으로 살아온 나 자신.

누구에게도 상처 주지 않으려면서 상처받기도 싫은 나 자신.

그렇게 상처받지 않으려고 의심부터 하고 보는 나 자신 때문이었다.

전생에 나도 좋아하는 사람은 있었다.

하지만 고백은 한 번도 하지 못했다. 거절에 대한 두려움과 익숙해진 관계, 익숙해진 환경, 익숙해진 삶이 깨질까 두려워서.

그리고 지금도.

나는 새로 얻은 삶에서도 익숙한 전생의 삶의 방식을 버리지 못한 것이었다.

새 삶은 새 기회.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 수 있는 기회인데. 나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던 것이다. 축복 같은 기회를 잡았음에도 과거에 안주하며 또다시….

나 자신에게 화가 났다.

상처를 주지도 받지도 않는 삶이란 없는 것인데. 삶을 살아가다 보면 직접 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누구에겐가 상처를 주기도 받기도 하면서, 그렇게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되고 그런 것이 삶이고 인생인데…

나는 가장 간단한 논리를 잊은 것이었다.

침대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내가 몸을 일으키는 모습을 보이자. 애니의 눈은 놀람과 두려움으로 크게 부릅떠져 나를 쫒고 있었다.

내 행동 하나하나가 그녀에게는 어떤 선고로 다가오는 듯했다.

두려움과 절망으로 빛으로 물드는 그녀에게 다가가 천천히 눈물을 닦아주며 말했다.

“미안해 애니야.”

“흐아아아아아…”

내 말에 폭발하듯 터져 나오는 애니의 울음. 사과부터 하는 내 말이, 거절을 택한 내 마음의 결심으로 들렸던 것 같았다.

애니는 오열했다. 절망감에 휩싸여 처절하게 울부짖었다.

나는 울부짖는 애니를 품 안으로 조심히 집어넣으며, 그녀의 귓가에 조용히 속삭였다.

“아내들에게는 내가 이야기해 볼게… 미안해. 아프게 하고 기다리게 해서.”

품 안에서 절규를 내뱉던 애니의 목소리가 나의 조용히 속삭인 말이 뮤트 버튼이라도 되는 듯 갑자기 사라지고, 애니가 번쩍 고개를 들어 내 눈을 바라봤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끄하아아아…”

그리고 또다시 울음을 터트렸다.

한참 시간이 지난 후. 나는 침대 등받이에 기대앉아 애니를 뒤에서 안고 있는 상태가 되어있었다. 그리고 조용히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있었다.

그녀의 손을 잡아보았다. 애니의 손은 부엌일 때문인지 무척이나 거칠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으며 생각했다.

‘그, 근데 아내들한테는 뭐, 뭐라고 하지?’

내일의 나는 답을 알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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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 되자 지쳤는지, 깊이 잠든 애니를 두고 나는 주방으로 나왔다. 어제 밤을 꼬박 새워버려 피곤함이 느껴졌지만, 오늘 장사도 준비해야 하니 말이다.

애니는 일어날 때까지 그대로 두기로 했다.

부엌을 한 바퀴 둘러보고 피로를 덜기 위해 우물로 가 세수하고 있으니, 미우 씨와 다른 수인이 인사를 해왔다.

“러셀 씨 한숨도 못 주무셔서 어쩌죠?”

소수인 미우 씨는 나를 보면서 음흉한 미소를 흘리고 있었다. 하긴 방이 아무리 방음이 잘되어도 수인들의 청각이면, 충분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있었을 것이다.

문을 꼭 닫고 먼저 방으로 들어간 거 보면 애니와 무슨 거래가 있었을 수도 있고.

“뭐, 어, 어쩔 수 없죠. 하하….”

다 같이 세수하고 오늘 부엌에서 사용할 물을 우물에서 물을 긷고 있는데, 릴리아나 누님이 마을 아낙 둘을 데리고 우물로 오셨다.

“러셀, 어제 사람 필요하다고 했지?”

아마 어제 주방 보조로 부탁했던 둘을 데리고 온 모양이었다.

“아, 두 분이신가요?”

나는 누님에게 일할 사람들로 새댁들을 부탁했다. 이곳에서는 일반적으로 일을 구하는 새댁이라는 것이 포지션이 묘하다.

모험가나 용병들이야 마음에 맞는 사람과 결혼하지만,일반적인 농가나 도시민들은 결혼이 거래나 매매 같은 느낌이 강한데.

지참금이 있기 때문이다.

지참금이 있는 문화권에서는 신부를 남편이 부양한다는 생각이 강하고, 지참금이 부족하면 결혼하고도 구박받거나 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나가서 새신부가 돈이라도 벌어온다면 가족들의 시선이 달라지는 것. 그러니 일을 찾는 여자들중 결혼한지 얼마안된 새댁들은 대부분 돈이라도 벌어 부족한 지참금을 대신하려는 경우가 많다.

당연히 가난한 집들이 대부분 이기도 하고 말이다.

그렇기에 나도 이왕이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아서 릴리아나 누님께 새댁을 부탁한 것이었다.

“고마워요. 누님. 이따 아침 먹으러 오세요.”

“오! 알았어!”

신이 난 누님이 길드 안으로 사라지고 나는 신입 직원들에게 업무 교육을 시작했다.

“일단 두 분이 하실 일은 아침에 오시면, 우물에서 물을 길어 부엌에 있는 물통에 채우시는 일이고요. 장사가 시작되면 설거지해주시면 됩니다. 일하는 데 문제 있는 분 없으시죠?”

“예!”

“일당은 하루 동화 두 개씩 열흘에 한 번씩 드릴 거에요. 그러니까 열심히 해주세요.”

“그, 그렇게나 많이!”

두 여자분이 서로를 바라보며 기뻐하고 있었다.

보통 마을에서 잡일을 하면 하루에 동화 한 개에서 한 개 반을 준다. 그만큼 잡일의 가치가 낮은 편. 하루 벌어서 하루 먹기도 힘든 것이다.

그런데 내가 동화 두 개를 준다니 기쁠 수밖에 없는 것.

참고로 수인씨들의 인건비는 동화 세 개, 애니는 동화 다섯 개를 책정했다.

내가 이렇게 인심을 후하게 쓰는 이유는 인건비 아껴서 벌어봐야 그거 사십 퍼센트는 당연히 길드에 뺏길 거. 직원들에게 후하게 베풀면 나한테 오는 돈도 좀 줄어들지만, 길드에 가는 돈도 같이 줄어드는 것이다.

그리고 잡일꾼 두 명은 모르겠지만 수인이나 애니는 우리 식구들. 챙겨주면 챙겨줄수록 나도 이득인 것.

나는 주방 보조들에게 일을 지시한 후 오늘 메뉴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오늘 메뉴는 고기로 국물을 우려내 콩과 귀리, 보리를 넣어 끓인 죽.

보통 농민들이나 평민들은 아침에 귀리나 보리만 넣고 끓인 죽을 많이 먹는 편이다. 여기에 소금을 처먹는데 이거 맛은 둘째치고 식감이 좀 그렇다.

귀리나 보리는 끓이면 끓일수록 국물이 미끈한 느낌이 나는 액체가 되기에 국물이 물에 갠 젤리를 먹는 느낌이랄까? 처음에는 나도 좀 곤욕스러웠는데 먹다 보니 먹게는 되더라고?

그래서 맛과 식감을 달리하기 위해서 채소와 다진 고기를 넣는다.

고기를 다지는 기계 따위는 없기에 손이 많이 가지만, 훈제나 햄으로 만든 고기는 굳어져 잘 잘리기에 그나마 할만한 수고이다.

큰 냄비에 물을 팔팔 끓이다가 다진 고기를 집어넣고 거품을 걷어내며 한참을 끓인다. 그렇게 고깃국물이 충분히 우러나면 여기에 물에 불린 콩과, 귀리, 보리를 넣고 푹 끓이면 오늘의 메뉴는 거의 다 완성.

마지막으로 소금으로 적당히 간을 하고 말린 허브를 적당히 갈아 넣자. 고소하고 맛있는 냄새가 솟아오른다.

일하러 온 주방 보조들이 물통을 들고 부엌을 오갈 때마다 군침을 삼키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아침 따위는 먹지도 못하고 왔을 테니….

“식사하고 손님 받읍시다. 다들 모이세요.”

내가 사람들을 불러 모으자 보조로 왔던 둘이 깜짝 놀라며 묻는다.

“저, 저희도요?”

“예, 오세요. 식사하고 합시다.”

식사까지 챙겨준다는 말에 둘의 표정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변했다. 보통은 아침을 먹고 일하러 와서 저녁을 먹기 전에 일이 끝난다. 점심은 먹지 않으니 음식을 제공한다는 사실이 놀라운 것.

그렇게 신입 둘과 접수대에서 불러온 릴리아나 누님까지 우리는 그렇게 식사를 했다.

그리고 식사가 끝나고 시작된 오늘의 장사는 어제보다 수월한 느낌이었다.

오늘도 어제와 같이 바빴으나 주방일에 미숙한 아내들보다 새댁들은 일을 훨씬 잘했기에, 식당이 어제보다 부드럽게 굴러간 것.

정오 장사가 비교적 한가해진 시간.

길드 뒷마당에서 마차를 끌어냈다. 이제는 돌아가야 할 시간인 것이다.

마구를 살피는 내 뒤로 쭈뼛거리는 애니가 서 있다. 두 눈은 붕어가 된 상태. 어젯밤 이후로 아무 말도 못 하고 조용해진 애니.

나는 한숨을 쉬고 뒤돌아 애니를 품에 안은 후 말했다.

“열흘 정도 걸릴 거야. 가게 잘 부탁해.”

“네…. 주, 주인님….”

나는 애니를 뒤로하고 웜 포트를 향해 마차를 몰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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