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부_06 (6/41)

곽부의 [내연남]의 이름은 사마궁(司馬穹). 황국의 대왕을 모시는 비서격인 대사마 중의 한명이자 유명한 문장가인 사마천(司馬遷)의 아들로, 문장가인 부친과는 달리 무예에 재능이 있어 그 부친이 일찍부터 관인들과 친밀한 백무련에 속한 무림인을 초빙해 가르쳤고, 결국 그런 인연으로 백무련에 가입하게 된 모양이었다.

번서는 작고한 부친인 번양으로부터 사마천의 사람됨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적이 있었다.

[능리(能吏)... 주인이 누가 되든 상관하지 않고 자신에게 맏겨진 일만 수행하는 사람이다. 품행도 바르고 겸손하며 나무랄 데 없는 사람이긴 하나, 헤아리는 마음이 부족해.]

실제로, 왕명을 출납하는 대사마로써, 번서의 부친인 번양이 사약을 받을 것을 알면서도 어떤 직언도 하지 않고 왕명을 전달했다. 그 사실을 새삼스럽게 떠올린 그는 싱긋이 웃으며 묶여 있던 사마궁의 뒤로 돌아갔다.

" 이...이봐, 나는... "

" 알아, 너는 그저 저 요망한 것이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는거. 게다가 나와 스승님을 직접 찌른 것도 아니니, 따지고보면 그리 큰 원한을 맺었다고는 보기 힘들지. "

" 그래, 모든건 저 요망한 곽가 계집 때문이야! 제발 살려주게나, 돈이라면 얼마든지 낼 수 있어!... 내 부친께서... "

" 읍!... 으응읍!... "

곽부가 눈물을 흘리며 도리질치는 동안, 사마궁은 필사적으로 목숨을 구걸했다. 번서는 그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의 어께에 손을 얹고 고개를 숙였다.

" 그렇다면... 더이상 자네의 일에는 상관하지 않겟네. "

" 그래! 고맙네, 진심으로 고맙네 소협!...  "

이제 살아날 수 있다는 희망으로 가득 찬 사마궁. 몸을 일으킨 번서는 싱긋이 웃으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 그런데 난 상관하지 않아도, 니 검에 죽은 유가촌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걸?... "

번서가 사마궁의 의자를 옆으로 회전시켜 문 쪽을 향하게 만듦과 동시에, 창으로 들어오던 달빛이 사라졌다. 달이 구름에 가린 것이다. 주변이 새카만 어둠에 휩싸이면서 바닥부터 수상한 안개가 스물스물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꽁꽁 묶이고 혈도까지 짚어진 곽부를 의자에서 들어올려 옆구리에 낀 번서는, 아직도 그가 남긴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고 있는 사마궁의 어께를 한번 툭 쳤다.

" 즐거운 밤 보내라구. 자네가 했던 약속처럼, 난 자네의 일에는 더이상 상관하지 않겠네. "

어으으으으...

우으으으...

으어어...

번서가 몸을 날려 사라진 직후부터 어디선가 몹시 기갈에 허덕이는 듯한 괴로운 신음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거의 귀에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았던 그 신음소리는 번서의 모습과 기척이 멀리 사라져가는 동안 점점 가까워졌다. 그에게 죽을 위험은 사라졌기에 한숨 돌렸지만, 혼자 남겨진 사마궁은 그 신음소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라 다시 불안해졌다.

그리고 삐걱거리던 토지신 사당의 문 한짝이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삐걱거리며 밖으로 열렸을 때, 사마궁은 [그들]을 보았다.

으어어어어...

어으으으으...

그것은 한 떼의 시체였다. 노인, 여자, 아이들... 연령도 차림새도 다양했지만, 한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그들은 모두 일년전에 [알 수 없는 흉수]에 의해 잔혹하게 살해당했던 유가촌 사람이었다.

썩어가는 육신과, 같이 썩어가는 넝마를 걸친 시체. 그냥 썩어가는 시체라면 보기 흉할 뿐 위협적이지 않았지만, 유가촌 사람들의 시체는 움직이고 있었다. 썩어서 구더기가 드나드는 퀭한 눈구멍이 이쪽을 향한 채, 거의 뼈만 남고 썩어버린 손이 허공을 더듬듯이 앞으로 내밀어져 있었다.

시귀(屍鬼).

원한을 가지고 죽은 자들의 생령이 육신을 떠나지 못하고 남아, 그 원한을 풀 때 까지 끊임없이 살아있는 자의 피와 살을 탐하는 존재가 된다. 그것이 시귀다. 이 시귀는 살아있는 자들을 닥치는대로 공격하며, 멈출 방법도 거의 없는 가공할 존재이지만, 원한의 대상을 죽이게 된다면 속박되어 있던 혼이 풀려나 저승으로 갈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지금 몰려오고 있는 시귀의 원한의 대상이 누구인지는, 몹시 분명하기 그지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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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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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궁이 지르는 끔찍한 비명은 거의 5리 밖에서도 들렸다. 그러나 그 끔찍한 비명도 번서의 귀에는 진사시에 합격했을 무렵 기방에 들러서 기생들에게 청해 들었던 거문고 연주 같이 기분 좋은 음악으로 들렸다. 그는 그때까지도 자신의 옆구리에 매달려 있는 곽부를 내려다보며 즐겁게 말을 걸었다.

" 사실 너도 남겨두면 이 음색이 좀 더 흥거웠겠지만, 나는 그런 식으로 [쉽게] 원한을 청산할 정도로 자비롭지가 않아서 말이지... "

산채로 시귀에게 뜯겨먹혀 죽는 것이 충분치 않다면, 대체 어떤 끔찍한 것이 기다리고 있단 말인가? 곽부는 공포와 절망으로 눈앞이 캄캄해졌다. 

두시간을 넘게 밤길을 달려와 도착한 곳은 자산성의 성문이었다. 번서는 꽁공 묶어둔 곽부의 몸뚱아리를 마치 행낭을 들쳐메듯이 자신의 어께에 비스듬히 걸친 다음 안개를 깔아 스스로를 숨기고 나서 나서 내공을 끌어올려 성벽에 붙었고, 절벽을 타는 것과 같은 요령으로 성벽을 타 넘었다. 무향이 가르쳐준 기초적인 경공밖에 몰랐기 때문에 그것으로는 성벽을 한번에 뛰어넘기가 불가능하고, 게다가 은밀하게 하기도 어려웠기 때문이다.

" 후후후... 만능은 아니지만, 이것으로 충분하지. "

병사들의 눈을 피해 자산성에 들어오는데 성공한 번서는 그대로 안개를 몰고 자산성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 무역시가 열리는 광장 한가운데로 갔다.

찌이익... 찌직!...

" 우웅우!... 으웅우!... "

혈도를 한방 쳐서 곽부의 신체를 제압한 후, 번서는 그녀를 광장 한가운데 있는 연단(포고자가 중요한 정책이나 칙령 등을 발표하거나, 중요한 범죄에 대한 처벌-교수형이나 책형 등-을 집행하거나 할 수 있도록 허리 높이로 세워진 마루)으로 끌고가 그대로 꿇어앉혔다. 그리고 그녀의 몸을 묶었던 밧줄들을 풀고 옷을 찢어내 발가벗겼다.

혈도가 제압되어 있었기에 곽부는 번서의 이런 처사를 고스란히 당해야 했다. 그녀는 이대로 해가 뜬다면 중인환시리에 나체를 노출하게 될것이다. 이것만으로도 사실 아녀자의 몸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끔찍한 수치이지만, 그는 절대 이 정도로 끝낼 생각이 없었다. 

먼저 석매리가 곽부를 처벌했을 때 썼던 방식 그대로, 그녀의 얼굴 전체에 흉(凶)자를 새기고, 그녀의 전신에 그녀가 유가촌의 살인자라는 내용의 고발문을 썼다. 또한 번서는 같은 내용의 보다 소상한 내용을 담은 서한을 두루말이를 보관하기 위해 만든 대나무 통에 담아 그녀의 입에 물렸다.

" 아그그그... "

마지막으로 철침 세대가 곽부의 머리 혈도에 깊숙히 꽂혔다. 첫번째 철침은 그녀의 성감을 증폭시키고 욕정을 자극하는 것이었고, 두번째 철침은 그녀의 하반신을 움직이지 않도록 제어하는 것이고, 세번째 철침은 그녀에게 강력한 암시를 거는 것이었다. 마지막 철침을 찔러넣고 나서 눈이 몽롱하게 풀린 그녀를 내려다보며, 번서는 자신이 생각해 두고 있던 지시를 내렸다.

이튿날.

무역시는 장이 일찍 서는 편이 아니다. 아침에는 주로 성벽밖에 있는 상인들이 성문을 통과하는 수속을 밟느라 사는 쪽도 파는 쪽도 인원이 적다. 하지만 그날 무역시, 그 중에서도 중앙 광장은 사람들로 붐볐다.

" 흐우우우!... 흐우우우우우!!... "

얼굴을 비록한 전신에 붉은 색의 글을 문신으로 새기고 입에 대나무통을 문 발가벗은 여자가, 광장의 연단에 꿇어앉은 채 자위행위 삼매경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 대체 이게 무슨 궤변이람... "

" 미친 여자인가... "

웅성웅성...

몰려든 성민들에게 둘러 싸인 노출녀는 당연하지만 곽부였다.

마치 기름을 바른 것 마냥 전신을 땀으로 흠쩍 적신 채, 곽부의 자위는 이미 수시간을 계속해 오고 있었다. 그 방법도 과격하기 그지없어서, 구체적으로 표현하자면 손가락으로 민감한 부분을 비비는 정도가 아니라 보지 안쪽으로 집어넣은 손이 손목까지 파고들어 있었고, 보지로부터 마치 오줌을 싸듯이 줄줄 새어나오는 애액과 간간히 싸내는 오줌, 그리고 피까지 섞여 있는 오액이 허벅지를 타고 흘러내려 그녀가 꿇어앉아 있는 주변을 온통 흠뻑 적시고 있었다. 대나무를 입에 물고 있었기 때문에 분명하지는 않았지만, 보지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녀의 입술 사이로 새어나오는 우물거리는 신음성에는 분명한 쾌락의 곡조가 섞여 있었고, 눈물에 젖고 흐리멍텅하게 흐려진 눈동자에 떠오른 빛 역시 분명한 쾌감의 색을 띄고 있었다.

" 흐우우우우!!... "

다시 절정과 함께 허리를 털며 성대한 애액을 뿌려 내는 곽부. 그녀는 이미 인간이라고 부르기 어려운 상태였다. 하지만, 이 변고를 신고받은 관아의 관인들이 도착해 그녀의 신병을 확보하려고 모여든 인파를 헤치고 나타났을 무렵, 마침내 그녀의 악운도 다해 가고 있었다.

" 이봐, 대체 뭐하는 짓?... 헉!... "

관인 중 하나가 곽부를 일으키기 위해 어께에 손을 대었을 때, 갑작스럽고 격렬하게 전신을 벌벌 경련하기 시작하면서, 그녀는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졌다.

" 이... 이봐, 죽었다. "

" 헉!..."

" 히이익!... "

엎어진 곽부는 몆번 더 경련한 후 그대로 잠잠해졌다. 땀과 애액이 말라붙은 전신에서 풍기는 굉장한 이취, 발갛게 부어오른 채 까뒤집힌 눈, 줄줄 흘러내리기 시작하는 코피와 대나무를 물고 있는 입가로 조금씩 새어 나오는 하얗게 마른 거품, 그리고 죽은 후까지 손목을 온통 처박은 다리 사이에서 끊임없이 배어 나오고 있는, 끈적한 음액의 흐름... 그녀의 죽음은 갑작스럽고, 음란하며, 끔직했다.

물론 어께를 건드려서 죽은 것은 아니다. 보지와 코로 피도 흘렸지만, 그 죽음의 원인은 출혈 보다는 탈수증 때문이었다. 달이 질 무렵부터 새벽을 거쳐 완전히 해가 뜰 때 까지, 시간을 따지면 거의 반나절에 걸쳐 아무것도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격렬한 자위행위에 몰입했던 것이다. 탈수증이 생기지 않는다면 그것이 이상할 정도일 것이다.

" 훗... 끝났나. "

광장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객잔의 창가에 앉아서 관인들에게 둘러싸인 곽부가 눈을 까뒤집고 쓰러지기까지의 과정을 확인한 번서의 입가에는 미소가 걸렸다. 광장의 소란에 비명이 섞이는 동안, 그는 창문을 닫고 의자에 앉아 주문한 탁주를 들이켰다. 찬 우물 속에 보관해둔 탁주는 달착지근하면서 시원하기 그지없었다.

" 충분치는 않아. 충분하지는 않지만 할 수 없지... "

아무리 악인이라고는 하지만, 이처럼 사상 초유의 지독한 방법을 통해 한 여자의 생을 끝장내 놓았음에도, 번서의 가슴속에 타오르는 복수의 불길은 꺼지지 않고 있었다. 아니 꺼지기는 커녕 점점 더 활활 타오르는 중이었다.

관아와 백무련에서는 이 사건을 조용히 끝내기를 원했지만, 이미 목격자가 수백명에 이르렀던 데다 곽부의 전신에 또렷하게 새겨진 붉은 글씨를 읽은 주민들의 입을 통해 저간의 사정이 사방으로 퍼진 다음이었다. 그리고 같은 날 정오에는 성 밖의 토지신 사당에서도 사마궁이 무언가에 뜯어먹혀 죽은 끔찍한 모습으로 발견되어 이 소문에 확신을 심어 주었다. 이 괴이한 사건은 백무련의 련도들에게 억울한 죽음을 당한 유가촌 사람들의 원귀가 저지른 짓이라는 소문이 사방으로 퍼져나갔고, 때문에 인근에서 백무련은 크게 신망을 잃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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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부의 신원이 확인되어 대사막 향단이 발칵 뒤집힌 바로 그날 저녁, 수상하기 그지없는 안개와 함게 나타난 번서를 국무령은 적의가 느껴지는 시선으로 맞았다.

" 끔찍한 짓을 했더군... "

" 그들은 그런 대접을 받아도 싸지. "

국무령은 뭐라 더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죽은 곽부나 사마궁의 일보다 더 급하고 중요한 용무가 아직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 ...나는 약속을 지켰다. "

" 그래, 훌륭하다. 백무련에 속한 자 치고는... 이제 내가 약속을 지킬 차례군. "

번서는 주변에 숨어 있는 무사들의 존재를 이미 알고 있었지만, 모른척 했다. 국무령이 어떻게 나올지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인간성에 대해 실망한 일이 많아서, 오히려 기대를 하고싶어진 것인지도 모른다.

" 따라와라. "

번서가 경공을 펼쳐 날아가자, 국무향은 다급하게 뒤를 쫒아왔다. 그는 그대로 그녀를 자신이 국무향을 가둬 둔 바위산의 기슭까지 안내한 후, 미리 준비해 둔 백골의 무더기를 보였다. 그것은 원래 비적떼에게 당한 상인 일행이었지만, 번서가 약간의 세공을 가해 둔 상태였다.

" 아... 아아아... "

백골 무더기를 확인한 국무령은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허탈한 한숨을 흘렸다.

" 이중 누구인지는 나도 모른다. 검은 흩어진 백골 무더기 사이에 떨어져 있었고 이 백골은 이것을 손에 쥐고 있었다. "

다시 번서가 보여준 것은 오락당이 신표로 사용하는 구멍을 뚫어 비단 실을 꿰어 둔 붉은 구슬이었다. 구슬을 꿴 실의 크기와 매듭의 수가 오락당에서의 신분의 고하를 나타내는 것인데, 당주의 구슬은 다섯개의 매듭을 가지고 있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리고 번서가 국무령에게 보여 준 구슬에 달린 수실은 세개였다.

" 이것은 오락당의... 창천교 이놈들, 용서하지 않겠다!... "

국무령의 눈에 불꽃이 튀었다.

창천교는 백무련과 적대중이었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것은 심각할 정도의 분쟁-특히나 집단적인 행동-을 야기하지는 않았다.

우선 황국의 관부가 가만히 있지 않았다. 관부의 입장에서 보면 백무련은 협조적인 무림인 단체이고 창천교는 반정부적인 사이비 종교집단이라 누구의 편을 들어야 할지 분명하기는 하나, 백무련도 어디까지나 사조직이다. 이런 민간의 사조직이 준 군사 조직처럼 집단행동을 하는 것 역시 위험하기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관부에서는 백무련의 단체행동도 엄금하고 있었다.

그리고 백무련과 창천교의 내부 문제도 있었다. 크게 보아 백무련, 창천교로 나누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대표]단체일 뿐이다. 각 방파들의 성향이나 이해관계에 따라서는 그 중간다리를 걸치고 있는 경우도 있어서 무조건 흑백으로 나누기도 어렵거니와, 련주나 교주의 명령 한마디에 휘하 방파들을 일사불란하게 동원한다거나 할 수 있는 체제도 아니었다. 일반 문도의 경우 차라리 그가 속한 방파의 장문인의 영향력이 련이나 교 내의 상관의 명령보다 훨씬 영향력이 큰 것이다(물론 문파의 장문인이 교 내의 상관이기도 한 경우가 많다).

또한 이것 역시 상당한 걸림돌이지만, 백무련과 창천교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압도할만한 능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전면적인 [전쟁]을 벌이는데 불리한 조건이었다. 백무련이 관부와 강한 유착관계를 이루고 있다면, 창천교는 민초들, 그리고 그들이 유민화되어 생기는 초적들과 상당한 유대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그 숫자, 무공, 그리고 영향력 등 구체적인 상황은 일장일단이 있지만 어느 하나도 한 단체가 다른 단체를 압도하는 상황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백무련과 창천교의 분쟁은 개인적인 싸움이나, 기껏해야 방파간의 소규모의 분쟁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국무령은 상당한 조직력과 무인으로써의 명성으로 대사막 향단을 일사불란하게 지휘하고 있었다. 대사막 향단에 포함된 문파는 크고작은 것을 합쳐 모두 여섯군데, 문도가 백명이 넘는 금창문(金槍門)에서부터 장문인과 제자들를 합해 모두 합해 여섯명 뿐인 청문(淸門)까지, 그녀의 소집령에 모인 백무련의 련도들은 모두 이백여명에 이르렀다.

백무령은 그들을 이끌고 대사막의 험지에 숨겨져 있던 오락당의 본거지를 급습했다.

" 크아악!... 이 비겁한 백무련 놈들... "

" 더러운 사교의 개들!... 네놈들을 지상에서 멸절시켜 세상의 정의가 있음을 보이겠다! "

" 케에엑!... 이 마녀... "

오락당은 문도들의 숫자가 백명이 넘는, 대사막 인근의 창천교 문파 중에서는 가장 세력이 큰 축에 속하는 문파다. 바위 절벽에 숨겨진 동굴을 본거지로 삼아 방어도 견실한 축에 속했지만, 근자에 내부 분규가 일어나 원래 당주이던 당여월(唐呂月)이 축출되어 혼란스러운 상황이었고, 두배 가까운 숫자를 지휘하고 있는데다 복수심에 불타고 있는 고수인 국무령이 앞장서서 이끌고 있는 백무련 무인들의 기세를 당해낼수는 없었다. 그자리에서 오십여명이 목숨을 잃었고, 나머지는 사막으로 쫒겨 달아났다.

싸움에 이긴 국무령이 항복한 자들까지 모조리 참살하고 본거지에 불을 질러 모조리 태워버린 후 귀환했기 때문에, 사막으로 도망친 자들도 죽은거나 다름없는 비참한 지경이 되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훤한 일이었다.

" 꼴 좋게 되었군... 흐흐흐흐... "

멀리서 싸움의 전말을 지켜보며 숨어 있던 번서에게 있어, 죽은 오락당원들의 시체가 불타는 매케한 내음은 그지없이 기분좋은 향기 같았다. 구암도에서 자신을 포함한 수많은 죄수들을 살인 구덩이에 집어던져 놓고 웃으며 술을 마시고 돈을 걸던 자들이다. 살아있는 것보다 죽어서 거름이 되는 편이 세상에 더 이로운 편이란, 이런 경우를 말하는 것이리라. 그리고 마침내 그렇게 되었으니, 이로써 그는 또 하나의 묵은 체증을 해소하게 된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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