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부_05 (5/41)

그 후로 몆시간이나 지났을 까, 국무향의 전신은 스스로 흘려낸 땀과 침, 콧물, 오줌과 똥, 그리고 번서의 오줌과 정액으로 더럽혀져 보기에도 끔찍한 형상이 되어 있었다. 번서 앞에 널브려져 있는 그녀의 신체는, 간헐적으로 사지를 움찔거리는 것을 제외하면 완벽하게 움직임이 멎어 있었다.

번서는 국무향를 [완전하게] 범했다. 처음에는 구속한 채 매달아 두고 범했지만, 곧 바닥으로 내렸다. 등 뒤로 돌려 묶었던 팔목의 결박도 오래가지는 못했다. 자유로워진 그녀의 전신은 번서의 묵은 정욕을 푸는 도구가 되었다. 그녀의 입과 보지와 항문은 그의 정액과 오줌을 받는 변기가 되었고, 심지어는 요도에까지 갈대로 만든 꼬챙이를 끼워 넣어 돌리며 능욕을 가했다. 그녀의 물결치듯 풍성한 검은 머리카락도 한번 사정이 끝날 때 마다 그의 자지를 닦는 수건이 되었다. 

연이어 벌어진 격렬하고 상궤를 뛰어넘은 과격한 능욕의 연속에, 국무향은 처음에는 절망했고, 마침내는 정신이 나가버릴 지경에 처했다. 그나마 정신이 온전할 무렵에는 죽고만 싶었지만, 그런 수치심까지 사라질 정도로 험한 꼴을 거듭 당하면서 자살을 생각할 기력조차 빼앗겼다. 마침내 번서가 그녀의 몸에서 떨어져 나갔을 무렵엔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의지도 남아있지 않아서, 물 한잔을 마시고 한숨 돌린 그가 다가오는 소리를 들으면서 그녀가 취한 유일한 행동은 눈을 감은 것 뿐이었다.

뷰르륵...

번서의 손에 상반신이 일으켜지자, 국무향의 항문에서 우스꽝스러운 소리와 함께 그가 부어넣은 정액이 흘러 나왔다. 보지에서는 파과의 피와 정액이 뒤섞인 분홍빛을 띈 오물이 흘러내려 말라붙어 있는 애액들 위로 흘렀다. 그 꼴을 보면 놀리는 것이 당연할지도 모르지만, 그도 어지간히 기운을 쓰고 흡족할 만큼 범했기 때문에 더이상 말로 괴롭히지는 않았다. 오물 투성이가 된 그녀의 몸을 찢어낸 헝겊들로 만든 수건으로 닦아낸 후에 수혈을 짚어 줫을 뿐이다.

한번 움찔 한 것을 끝으로, 국무향은 잠들었다.

이후로 육개월간, 국무향은 번서의 포로로 지냈다. 그녀는 번서의 실험용 동물이자, 그의 성욕을 처리하는 변소이며, 유희를 제공하는 장난감이 되었다.

" 아으... 음... "

동굴 입구로부터 들어오는 햇살을 받은 여자의 나체가 황금색으로 은은하게 빛났다. 무릎을 꿇은 채, 동굴 바위에 걸터앉아 있는 번서의 자지를 입으로 핥아올리고 나서 입술을 가져다 대고 빨아들이는 국무향의 적당히 달아오른 얼굴에는 거부감은 커녕 쾌락의 빛이 역력했다. 손을 등 뒤로 돌려 묶어둔 비단 끈을 제외하고는 그녀에게는 어떤 금제도 베풀어 지지 않았고, 그나마도 형식적인 것이었다. 이미 뇌를 금침으로 제어할 필요조차 없을 정도로 노예화가 진행된 결과였다.

이 육개월간 번서는 그녀를 [자기 취향의 여자]로 만들기 위해 여러가지 조치를 베풀었는데, 그중 대표적인 몆가지만 꼽아도 보통의 여자들은 졸도할 정도로 잔혹한 것들이었다.

우선은 유방의 비대화가 있다. 원래 국무향은 약간 마른 체격을 가지고 있었고, 유방은 좋게 말해줘도 어린애 수준을 갓 벗어났을 정도였다. 그것이 번서의 침과 약물에 의해 몆배로 부풀어 올라 이제는 어지간한 여자들은 명함도 못 내밀 정도로 풍만한 크기가 되었다. 게다가 임신하지도 않았음에도 유두에서는 유즙이 조금씩 분비되기 시작했다. 그 희멀건 유즙은 세상의 섭리가 여자로 하여금 아이를 낳고 키우기 위해 생산하게 만든 하얗고 진하고 영양이 풍부한 젖과는 완전히 달랐지만, 그녀의 [가축]으로의 변화를 가장 단적으로 보여 주는 증거가 되었다.

또한 옅은 붉은 색에 수줍은 형태였던 그녀의 보지 역시 잘 익은 앵두색에 화려한 형태로 바뀌어 남자를 유혹하는 듯한 모양새가 되었다. 규칙적인 단련을 강제당한 항문 역시 색이 좀 더 진해졌고, 번서의 자지를 수월하게 받아들이는 능력으로는 보지 못지 않은 기관이 되었다. 물론 배설기관으로 쾌감을 느끼는 방법 역시 가르쳐져서, 이제 국무향은 요도나 항문 만으로도 훌륭하게 절정에 이를 수 있게 된 지 오래였다.

피부의 색도 달라졌다. 원래는 약간 창백한 느낌의 백자 같던 그녀의 하얀 피부는 시간이 지나며 차츰 번들거리는 느낌의 둔한 젖색으로 바뀌었다. 마치 정액으로 물들여진 느낌이랄까. 체형도 바뀌어서, 늑골이 비칠 정도로 지나치게 말랐다 싶던 허리와 엉덩이, 그리고 다리에도 알맞게 지방이 붙어 보기좋은 곡선을 이루게 되었다. 전체적으로는 남자를 받아들이기 좋은 몸으로 변화했다고 말하면 실상에 가장 가까운 표현일 것이다. 

이런 형태의 변화는 얼굴 역시 마찬가지여서, 한때 극한까지 초췌해졌던 얼굴도 새롭게 살이 붙고 화색이 돌게 되었다. 그 미모의 [수준]에는 변함이 없었지만, 표정을 비롯한 인상의 변화가 너무 현격해져서 가까운 육친이 보아도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리고 정신의 변화는 앞서 열거한 육체적인 변화들을 가볍게 능가할 수준이었다.

국무향의 정신은 깨끗하게 [지워]졌다. 원래의 인격, 기억, 감정, 이성 등... 이런 정신 붕괴의 결과로 지능의 퇴화도 현져해서, 그녀는 지금 자신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말하는 법 조차 잊은 상태였다. 오직 번서의 의지에 의해 생활 일체가 통제되는 상태가 된 그녀는 식사와 배설, 잠, 그리고 가끔 그에게 범해지는 것 이외의 것은 생각하지 못했다. 굳이 비교하자면 그에 대한 그녀의 의존은 마치 주인에 대한 애완 동물의 그것과 같았던 것이다. 또한 현격하게 떨어진 현실 인지 능력 때문에 지금의 그녀에게 있어서 그와 함게 머무르는 이 동굴 안이 세계의 전부로, 동굴 밖으로 나가기를 무서워 할 정도였다.

원래 번서도 이렇게까지 할 마음은 없었지만, 죽이기 전에 갈데까지 가보자 싶어서 국무향의 몸과 정신에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창의적인 잔학을 퍼부어 댔던 결과다. 하지만 그가 이렇게 만들어버린 덕분에 그녀는 목숨을 건진 셈이 되었다. 원래도 죽이기에는 아까울 정도의 미인인 국무향이 양순한 애완동물처럼 굴게 되자 더이상 잔인하게 굴 필요도 없어졌고, 죽일 생각도 거두게 되었기 때문이다.

" 으음!... "

" 아웅움... 꿀꺽... "

입 안으로 기세 좋게 방출한 정액을 맛있다는 듯이 삼키는 국무향를 내려다보며 번서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리고 그녀가 입으로 자신의 자지를 [청소]하는 동안 곰곰히 생각했다. 그녀에 대해 그가 해볼 만한 실험은 이제 대충 다 해 본 상태였다. 그리고 그 결과로 지금 그녀는 그의 애완동물이 되었다.

한때 위세 좋던 백무련의 주구였던 여자가 완전히 자신의 통제 하에 있다는 사실은 번서에게 있어 몹시 기분 좋은 일이었다. 그리고 백무련 대사막 향단의 단주인 국무령(國珷玲)은 국무향의 친언니다. 그녀를 죽이지 않고 자신의 자지를 핥고 불알을 빨게 만든다면, 백무련의 대사막 향단을 붕괴시키는 것도 여반장일 것은 물론이고 자매가 함께 도망자일 뿐인 그의 노리개가 되는 셈이니 이 아니 통쾌하지 않겠는가.

" 그럼 이제 슬슬 시작해 볼까... "

" 아...? "

약간 아쉬워하는 국무향을 내버려 둔 채 번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국무향을 완전히 노예화시킨 시점에서 번서가 손에 쥐고 있는 것을은 다음과 같았다.

석매리와 삼화옹으로부터 물려받은 의술은, 살아있는 실험재료인 국무향까지 구한 덕분에 거의 천하 제일의 수준에 이르러 있었다. 침이나 약을 통해 사고를 멈추거나 전신을 마비시키는 것 정도는 우스운 일이었고, 시간와 상황의 제약은 있었지만 침 한방으로 방금 죽은자 까지 살려낼 수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갖가지 효과를 가진 독물의 독에도 능통해져서 그가 중독시키면 병인지 중독증인지 구별해내기 불가능에 가까웠다.

또한 번서는 아직 몰랐지만, 그는 무림인들이 그 이름을 높여 부르는 [천하사절] 중의 한명이던 환신 갈천휘의 환술 중 상당수를 구사할 수 있었다. 그 중에서도 그가 가장 즐겨 쓰며 잘 쓰게 된 것은 안개를 불러일으키는 술법이었는데, 이 안개는 보통보다 훨씬 더 [조밀해]서 안개에 갇힌 자들의 시야를 방해할 뿐 아니라 횅동까지 제약할 정도의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번서는 그 안개 속에서 시야가 제한되지도 않고, 행동도 자유롭다. 그리고 환상을 만든다던가 부적으로 허수아비를 만드는 기술 등도 제법 대단한 경지에 이르러, 그는 마음만 먹으면 환상으로 군대를 만들 수도 있었다.

그와 함게 번서는 갈천휘가 자신의 몸을 단련하도록 배려해 남겨두고 간 환혼주 역시 거의 대성했다. 그 수련의 시간이 짧기에 내공의 경지는 아직 일천하지만, 그 얕은 내공이라도 환혼주의 구결을 운용해 역용술을 펼치기에는 충분했다. 그리고 이 수련의 와중에 그는 자신의 의술을 이 환혼주에 응용해 한가지의 새로운 의술과 한가지의 새로운 내공심법을 창안했는데, 한가지의 새로운 의술이란 국무향의 체형을 바꾸고 가슴을 변화시킨 바로 그것으로 따로 이름을 붙이진 않았고, 하나의 내공 심법이란 여자에 한해서 범하고 있을 때 그 내공의 근원을 몹시 유동적으로 변화시켜 흡수하기 쉽도록 바꾸는 방법으로, 이름 붙이길 채화술(採花術)이라 했다. 그는 이미 이 채화술로로 국무향의 내공 일부를 갈취해 자신의 것에 보태기도 했다.

또한 국무향이 쓰던 검법은 백화취설(百花取雪)이라는 이름의 8식으로 이뤄진 검법으로 백무련 뿐 아니라 다른 무림인들에게도 널리 보급되어 있는 비교적 평이한 것이었지만, 번서는 그것 역시 호신용으로 구사할 수 있는 경지까지는 연습했다.

하지만 번서가 해결하지 못한 일도 있었다. 바로 태양에 대해 민감해진 그의 피부의 문제다. 삼화옹의 의술을 연구하는 동안에도 번서는 끊임없이 이 문제의 해결에 매진했지만, 그가 할 수 있었던 것은 증상을 완화시키는 정도 뿐이었다. 이제 그는 낮 동안이라도 그늘에 있다면 붕대로 전신을 감싸지 않아도 괜찮았지만, 여전히 피부에 직사광선을 쬔다면 옷이나 붕대 위라도 고통을 느끼고, 오래 머무른다면 화상을 입었다. 조금이라도 이런 상태를 완화하기 위해서는 전신을 감싸며 빛이 투과하지 않는 특별한 구조의 옷을 필요로 했고 그런 옷은 주문을 해야만 얻을 수 있었다. 세상 밖으로 나가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인 셈이다.

이런 상태로 번서는 그동안 지내던 바위산의 동굴을 나와 다시 세상으로 나서게 되었다. 

먼저 목표로 삼은 백무련 대사막 향단은 자산성 내에 위치하고 있었다. 얌전한 애완동물이 된 국무향을 가사상태로 만들어 그녀용으로 만들어 둔 특별한 관에 넣고 봉한 후, 본격적으로 자산성 일대에 며칠 동안 밤 여행을 한 끝에 성의 외곽에 도착했다. 마침 먼동이 터 오고 있었기 때문에, 번서는 성 밖에 세워진 객잔에 들어가 방을 빌렸다. 방을 안내받아 객잔의 계단을 오르는 동안 그는 기둥에 붙여진 현상수배 방을 보게 되었다.

" 밤귀신? "

" 아, 요즘 유명합지요. 남잔지 여잔지도 모르고 심지어는 사람인지 귀신인지도 알 수가 없는데, 성중에 있는 마영달 장군의 집무실에까지 쳐들어가서 장군의 눈앞에서 병사 몆을 죽이고 다치게 했다지 뭡니까. 그 덕분에 경계가 더 삼엄해지고 병사들도 포악하게 굴어서 장사하기 힘듦니다요. "

좀 더 사연을 들어보자 백무련 대사막 향단의 무인들은 물론이오, 마영달의 부장인 모용휘(模用麾)가 그 문제로 벌써 한달이 넘게 무림인들을 수소문하는 중이라고 했다. 그 목에 걸린 현상금만 금편 이십개, 경도 시내의 저택을 구입할 수 있을 정도의 거금이라 재주 깨나 쓴다 하는 무림인들은 모두 이 밤귀신 사냥에 혈안이 되어 있는 모양이었다.

흐음... 금편 이십개라.

앞으로의 일을 생각해서라도 번서에게는 돈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돈의 출처가 적의 주머니라면 더할나위 없을 것이다.

번서는 마영달에 대해서는 별로 적대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는데, 그가 탐관오리였기 때문이었다. 탐관오리는 국가를 병들게 한다. 번서가 황국을 멸망시키기 위해서는 그 국가가 튼튼할 필요가 없었다. 아니 오히려 약체화되어 있는 편이 훨씬 더 좋았다. 헌데 이 [밤귀신]인가 하는 무엇은 그 마영달을 노리는 모양이었으니, 그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이쪽이 보다 더 적에 가까웠다.

가능하다면, 잡아볼까...

이미 갖가지 진법과 안개의 술법을 완전히 숙달한 번서인 만큼, 함정을 파고 기다리는 것이라면 어지간한 무림인들보다 훨씬 나을 것이다. 게다가 현상금도 거금이다. 흥미가 도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그는 곧 마음을 돌렸다. 섣불리 자신을 관인들에게 노출시키는 것도 좋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아직도 유형지에서 탈출한 죄수였기에 신분이 드러나면 체포당할 것이다. 게다가 아무래도 번서는 본격적인 활동에 앞서 자신의 몸을 지킬 호위가 필요했다. 그런 판단 끝에 그는 원래 계획했던 대로 국무령의 문제부터 처리하기로 했다.

국무령을 꾀어내기 위한 미끼는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국무향의 검은 비단 그물 주머니에 옥을 넣은 독특한 수실 장식이 달려 있었고 검 자체로도 뛰어나게 잘 제련된 보검이었다. 자매의 무림 출도를 기념하여 부친이 경도의 유명한 대장장이에게 주문한 명품으로, 국무령의 것과는 수실 장식의 색만 달랐다(국무령의 것은 하얀색, 국무향의 것은 붉은색). 백무련의 제사령(制使領; 백무련 내단 소속으로 향주를 감찰하는 직위)이던 그 부친은 몆해 전에 창천교 교도들과 싸움 중에 사망했지만, 자매는 부친의 후광으로 순조롭게 출세가도를 밟고 있었다.

국무향이 번서에게 붙잡혀 실험재료가 되어 있던 무렵부터 최근까지도 국무령은 그녀의 흔적을 찾아 제자와 단원들을 동원해 대사막 전체를 들었다 놓다시피 했지만, 등잔 밑이 어둡다고 처음 번서가 모습을 보인 석산에는 그리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도 그럴것이 그 석산은 자산성에서 가까운 장소인데다 갈천휘가 한바탕 대소동을 부리고 도망친 곳이라 인근에 계속 머무르고 있으리라는 생각은 아무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물론 덕분에 번서는 국무향을 자기 마음대로 주무를 시간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국무향을 마음대로 주무르는 동안 얻은 정보들은 번서의 머릿속에 잘 정리되어 있었다. 대사막 향단의 위계 체제와 인원 구성, 현재의 임무들, 향단 내부의 건물과 경비의 배치 등... 그 정보와 안개를 일으키는 환술 덕에 한밤중에 국무령의 침실까지 숨어들기는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 웬놈이냐?... "

국무령은 동생과는 비교도 안되는 고수였다. 번서가 최대한 기척을 죽였는데도 미리 알아채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바로 그 실력 때문에 자신감도 대단해서, 한밤중의 침입자에게 먼저 용건을 물을 정도였다. 덕분에 번서는 싸울 일 없이 국무령과의 볼일을 볼 수 있었다.

" !!... "

국무령이 보건데 번서는 괴인이 분명했다. 대사막의 기후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차림인 전신을 뒤덮는 두텁고 낡은 회색의 장포에, 어께까지 드리우는 백발을 아무렇게나 산발한 상태인데다 얼굴은 칙칙한 색의 두꺼운 붕대로 감싸여 있었고, 장포 자락 아래로 드러난 손도 같은 색의 붕대로 꼼꼼하게 싸매어져 있었기에 밖으로 보이는 것이라고는 붕대 사이로 드러난 귀광을 발하는 듯 이글거리는 눈동자 밖에 없었다. 이런 모양새를 괴인이라 표현하지 않으면 달리 어떤 적절한 표현이 있겠는가?

그리고 그 괴인의 붕대차림의 손에 들린 하나의 검을 국무령이 알아보는데도 얼마 걸리지 않았다.

" 그것은 무향의 검! 그것을 어디에서 구했느냐? 무향이 어찌 되었는지 아느냐? "

금새 살기등등해진 국무령의 기세에 지지 않기 위해 속으로 내공을 끌어올리면서, 번서는 미리 생각해 두었던 대로 말하기 시작했다.

" 이것을... 돌려 주지. 어디서 구했는지도... 알려 줄 수 있다. 하지만 먼저 두가지 조건이 있다. "

" 두가지 조건? "

번서가 내세운 조건은 향단 소속의 집행자인 곽부와 사통한 남자를 찾아내 넘기라는 것이었다. 구체적으로는 시간과 장소를 정해 그들을 보내라는 것. 말도 안되는 조건이라고 국무령은 딱 잡아 뗐지만, 칼자루를 쥔 것은 번서 쪽이었다. 유일한 육친인 동생과 생판 남인 곽부나 그녀의 내연남을 비교해 본다면, 당연히 육친인 동생 쪽이 우위인 것이다.

국무령의 죄책감을 덜기 위해 그 탕부 일행에 대해 직접 손을 쓸 필요는 없다는 점을 강조한 결과, 그녀는 결국 번서가 내민 조건에 동의하게 되었다.

" 그럼 약속을 지키기를 기대하는 듯에서 검을 먼저 넘겨 주지. "

번서가 던진 검을 받아 든 국무령은 칼집에서 검을 뽑아 그것을 확인했다. 동생인 국무향의 검이 확실한 것을 확인한 후, 그녀는 다시 다른 단서라도 잡을까 하여 고개를 들었지만, 그는 번써 자리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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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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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무령을 보고 객잔으로 돌아온 번서는 한껏 들뜬 기분이었다. 그녀는 동생의 소식을 알기 위해서라도 그가 내건 조건을 지킬 수 밖에 없을 것이고, 이제 자신의 생명의 은인이자 의술의 스승인 석매리의 원수를 갚을 수 있을 것이다. 무공으로 겨룬다면 당연히 불리하겠지만, 준비된 환술은 무공의 고하에 관계없이 강력하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는 그는 자신이 있었다.

또한 국무령. 그녀도 번서의 마음에 흡족했다. 장발에 눈 꼬리가 쳐져 서글한 인상을 주는 국무향과 달리 단발에 눈꼬리가 올라간 모양새가 약간은 차가운 인상을 주지만, 왼쪽 눈 아래의 점이 특징인 그 미모는 동생보다 훨씬 두드러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무공의 경지도 대사박 향단의 단주라는 직위에 걸맞게 뛰어날 것이 분명했다. 노예로 만들어 곁에 두고 부리면 훌륭한 방패가 될것이다.

어떻게 한 것인지는 모르나, 확실히 국무령은 약속을 지켰다. 유가촌의 폐허와 가까운 버려진 토지신 사당에 곽부와 그녀의 내연남이 찾아온 것은 번서가 조건으로 내건 바로 그 때였다.

" 어쩐지 으스스하군요, 사형. 우리 손으로 몰살시킨 유가촌이 가까와서 그런가... "

" 단주께서 창천교에 심어둔 간자와 접선하라는 밀명을 내리셨으니, 조금만 참자구 사매. 그나저나 이자가 늦는가 보군... "

이 잡것들이 서로 사형제간이었군...

대들보 위에서 환술로 몸을 숨긴 채 은신한 번서의 귀에 들러온 목소리는, 꿈에서도 잊지 못할 바로 그 목소리였다. 자신과 석매리의 원수. 이제 그 원수를 갚을 능력을 갖추고 때가 되었다는 생각에, 번서는 실로 감격하고 있었다.

팅!...

번서는 손 안에 들어있던 동전을 퉁겨 진을 발동시켰다.순식간에 사방이 어둠이 깔리고, 짙은 안개가 두 악당들을 감쌌다.

" 어... 이게 어찌된 일이지?... 사형, 어디가셨어요? "

" 이것은 진법이다. 우리는 함정에 빠졌다, 사매! "

사형이라는 자는 무림에서 상당히 잔뼈가 굵은듯, 번서가 쓴 환술이 진법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을 재빨리 알아채고 곽부에게 경고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무공이 아니라 환술로 천하사절이라는 이름을 얻은 환신 갈천휘의 진법이다. 번서의 손에서 그것은 더없이 흉악한 함정이 되어 있었다. 그가 친 진법은 환상을 보여줄 뿐 아니라, 진법으로 인해 피어오르는 안개에는 그 자신이 의술에도 조예가 깊다는 점을 이용해 사막의 독충들의 독을 조합해 만든 독특한 흡입독까지 가미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인간의 피부는 숨을 쉬기 위해 모공이 열려 있으니, 굳이 코로 들이마실 필요도 없다. 진법의 생문을 찾으려던 [사형]의 노력되 헛되이, 그와 곽부는 얼마 지나지 않아 환상에 휘말리고 독에 중독되어 그 자리에 쓰러졌다.

" 으으으... "

" 으윽...이게 대체?... "

두명이 쓰러지는 꼴을 차분히 지켜본 번서는 깊은 숨을 한번 들이쉰 후 다시 허공에 인을 그리는 것으로 진법을 잠시 걷었다.

" 쉽군...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

번서가 대들보에서 뛰어내렸을 때, 그의 원수이던 곽부 일행은 정신은 말짱했지만 손가락 하나 까딱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들은 그를 금새 알아보지는 못했지만, 마침내 붕대로 둘둘 감은 번서의 얼굴과 손을 보며 기억을 되살렸다.

" 너... 너는... 죽었을 텐데?... "

" 거의 그럴뻔 했지. "

번서는 비단을 꼬아 만든 밧줄을 사용해 두명을 꽁꽁 묶어서 미리 준비해 둔 의자에 붙들어 앉혔다. 그 구도는 번서가 그의 스승이던 석매리와 함께 죽임을 당했던 그것과 일치했다.

" 그래, 이 칼이군. "

곽부의 허리춤에서 그녀의 검을 검집째로 빼앗아 든 번서는 그것을 뽑아 보았다. 창호지가 떨어져 나가 나무살만 남은 낡은 창문을 통해 들어온 달빛이 그 차가운 검날에 반사되어 섬뜩하기 그지없는 파란 예기를 뿜었다. 국무향의 검보다는 못했지만, 제법 이름 있는 대장장이가 제련한 티가 나는 고급품이었다. 번서는  자신의 가슴을 뚫고 나왔던 그 끝의 모양을 기억했다. 그리고 석매리의 최후를 떠올리며 아주 잠깐동안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을 맛보았다.

" 그래, 이 칼이야... "

번서는 다시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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