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패배하는 히로인이 없는 이야기!-19화 (19/37)

〈 19화 〉 레이즈 (2)

* * *

뭘까, 도대체 뭔일이 있었기에 최소한 내 앞에서는 얌전한 척하는 하인젤과, 밝은 척하는 레이즈가 자신들에 원래 모습을 저렇게 보여주게 된 걸까.

'어이, 아저씨가 데려갔다 왔잖아요. 이게 무슨일인지 설명해봐요.'

아까 살려달라는 문자 이후로 아무말도 없기에 핸드폰을 톡톡 쳐가면서 신을 불러보지만 정말 죽어버린 건지 아무 대답이 없었다. 그래도 하트앱 같은 건 정상적으로 켜지니 살아는 있는 것 같은데...

뭐일까?

왜 그런건지 궁금했기에 그녀들... 본모습의 레이즈는 뭔가 무서워서 말을 못 걸겠고, 하인젤에게 물어보려고 하니

"흠, 흠흠. 주인님, 옷이 엉망이시군요. 연습도 충분히 했으니 이제 옷을 갈아입고 수업을 받는게..."

대놓고 주제를 돌리려 한다. 다시 한번 질문하려 했으나 다시 마음을 진정시킨건지, 내가 그쪽 근처의 질문만 해도 내 일정을 읊으며 절대 그 이야기는 하지 않겠다는 듯 대답을 회피한다.

'그럼 어쩔수 없이 레이즈에게...'

"알렉님, 설마 궁금한게 있어? 에이, 우린 알렉님 믿고, 또 양보도 해줬는데 알렉님은 사소한거에 궁금해 하는거야? 오~ 이게 그 집착인 건가? 기쁘긴한데 조금..."

이쪽도 평정심을 되찾은 건지 되려 내게 달라붙고는 우다다다 말을 쏟아놓으며 내가 입을 열 틈을 주지 않았다.

...그냥 나중에 신이 정신 차리면 물어봐야지.

그리곤 말 그대로 연행되듯 그녀들이 내 양팔을 하나씩 붙잡고 나를 방으로 끌고 가듯 걸어갔다.

끌려가듯 걸어가는 게 남자로서 왠지 자존심이 상한다 해야 되나? 뭔가 오묘한 기분이었다.

분명 내 양팔을 잡고 있는 손들에는 힘이 실려있지 않아 쉽게 뿌리칠수 있는 상태였지만, 어쩐지 내 본능이 뿌려치는 순간 지옥을 보게 될거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래서 결국 그냥 양팔을 붙잡힌 채로 끌려갔다.

다만 이놈들이 우리 관계를 대놓고 알리겠다는 건지, 평소 가던길이 아닌 골드르크 백작가를 거의 순회하듯 빙빙 돌며 집안 사람들에게 내가 그녀들과 팔짱끼고 있는 모습을 전부 보여주고 다녔다는 거다.

그런데 사용인들의 반응이 꽤 독특했는데, 막 허어어억 거리며 숨을 들이켰다는 게 아닌 아~ 올게 왔구만 같은 반응이었다는 게 의외였다.

내가 그렇게 티를 내고 다녔나? 솔직히 어릴적에는 천진난만한게 좋을 것 같다며 막 들이댔지, 나중에 가선(그러니까 내 몸이 자동재생 상태가 되고나선) 오히려 약간 거리를 둔 것 같았는데 남들이 보기엔 아니었나보다.

결국 그렇게 온 집안에 광고를 하고 난 뒤에야 내 방에 도착하게 되었는데...

"오, 언제쯤 도련님께서 솔직해질까 내기했는데 제가 지겠군요."

이미 소문이 퍼질대로 퍼진건지 교사도 이미 알고 있었다. 아 참, 저번의 그 여교사가 관둔 이후로 레이즈와 하인젤의 강력한 요구로 인해 내 가정교사는 나이 지긋하신 아저씨께서 맡았다.(왜 내 가정교사를 그녀들이 정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백작은 그녀들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수업은 수업. 하루라도 배움을 빼먹을 수는 없지요."

그럼에도 교사는 단호히 수업을 진행하려 했지만...

"아, 주인님 이부분 틀리셨습니다."

"에에? 아니야, 이건 시리온 왕이 아니라 사르몬 황제가 정한 정책이라고."

옆에서 자꾸 달라붙어대며 잊을 때 즈음 자신의 존재를 어필하며 훈수를 두는 그녀들 때문에 자꾸 내용이 끊어지자 교사도 화났는지 뭐라 말하려 하지만...

"...?"

"...?"

레이즈와 하인젤의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는 눈빛에 바로 입을 다문다.

"허허허... 그... 크흠, 아닙니다 마저 이어서..."

과연 그는 그녀의 두 눈빛에서 무엇을 읽은 것일까. 궁금했지만, 왠지 내가 직접 몸으로 겪으며 알고 싶진 않았기에 그저 조용히 수업을 들었다.

우우웅

[어후... 뭔 말을 못해... 보자마자 아니, 신이라고 말하자 마자 칼질을 하냐 쟤네는.]

그렇게 수업을 듣던중, 갑자기 주머니에서 울리는 소리에 내 몸이 움찔거리자 내 두 팔을 감싸고 있던 두 메이드가 나를 왜 그러냐는 듯한 눈으로 바라보다가 이내 한명은 호기심으로, 한명은... 나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런 눈길로 쳐다본다.

이 진동이 누군가와 대화를 한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그런 반응을 보인 것 같았다. 하인젤을 이현설과 한번 말해보고 싶어서 저런 궁금한 표정이고 레이즈는... 저게 무슨 표정이지? 뭔지 알 수 없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 현설이는 아니고 다른 사람이야."

"...설마 또 있는 건가요? 혹시 몇 명이나 있는 건지..."

현설이라고 착각한 하인젤에게 그게 아니라고 대답해주니 현설이 말고도 다른 여자가 있다고 착각한 건지 하인젤의 표정이 찡그려진다. 레이즈는 뭐... 여전히 알 수 없는, 혹시 그냥 아무생각이 없는 게 아닐까 싶은 눈빛을 유지하고 있었다.

"아아, 아니야 아직은 한명이야. 아직은..."

"아직이라고 하는 거 보니 더 늘릴 생각은 있는거네요?"

...사실 나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었기에 저 질문엔 딱히 대답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걸로도 충분한 대답이 된 건지 삐졌다는 듯 은근슬쩍 내게 엮었던 팔을 푼다. 그래봤자 자기손해 일텐데.

과연 이게 얼마나 갈지 궁금했지만, 그보다 후폭풍이 더 무서웠기에 그냥 빠르게 풀어주기로 했다.

콕콕

내가 그녀의 풀린 손을 다시 쿡쿡 찌르니 건들지 말라는 듯 손을 휘휘 저었지만 저게 가벼운 투정이란 건 안다.

다시 한번 콕콕 찌르니 이젠 다시 못 찌르게 손을 잡아버리려 해서 그 틈을 타 다시 손을 잡으니 쳐내지 않고 다시 아까처럼 팔을 휘감아왔다.

정말, 어차피 다시 이렇게 나올거면서 튕기기는. 솔직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면서 신에게 아까의 상황을 물어봤다.

'도대체 뭘 했길래 애들이 아까 그런 반응이에요? 혹시 현설이랑 잘 안풀렸어요?'

[아니... 애초에 걔네한테 말도 못 꺼냈어. 내가 신이라고 밝히자 마자 바로 칼뽑으면서 달려드는데 내가 어떻게 하냐? 나는 싸움 못하는 신이라고.]

엥?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인간이 신을 이기는 거지...? 살짝 이해가 안 가서 의아했지만,

[아니, 둘이 동시에 칼뽑고 달려드는데 어떻게 하냐고.]

이어진 부연설명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하긴, 재능만큼은 세계관 최강자인 하인젤과 그보다 더한 레이즈가 거의 전성기의 실력으로 달려들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 대화는 어떻게...'

[아니, 그러니까 니가 어떻게 쟤네 설득 좀 잘 해봐... 그 나는 그 미친 신이 아니고 너한테 도움 되는 신이다. 뭐 그런식으로. 이렇게 나오면 내가 니쪽 세상으로 보내주지도 못해.]

!!그건 좀 곤란한데! 이쪽도 뭐 살기 나쁜 환경은 아니었지만, 내가 원래 세상에 두고 온 현설이도 있었고, 또 이쪽 세상은 곧 전쟁을 겪게 되는 세상이었다. 싸움과 정치라고는 1도 모르는 내가 과연 얼마나 버틸수 있을지도 미지수인데 굳이 평화로운 현실 말고 굳이 여기서 살 이유는 없었다.

그리고 과연 죽일 수 있을지 의문이긴 하지만, 만약 이 세상을 만든 신이 죽어버리면 과연 이 세상이 그대로 유지 될지도 몰랐다. 뭐, 신개념 자살같은 거지. 이렇게 말하니 신이 나 죽으면 폭탄 터져서 니네 다죽어!! 라고 말하는 삼류 악당 같아지긴 하지만...

아무튼 얘네들한테 신이 나쁜놈이 아니라고 설득하는 거라... 내가 직접 겪어봐서 아는데, 이 둘의 아니, 적어도 하인젤의 신에 대한 증오는 진짜였다. 뭐, 이교도? 그런 비스무리한 미친놈한테 납치당해서 산제물 만든다고 고문받고, 또 그거 죽이겠다고 온 기사한테 한번 더 버림받았으니, 나 같아도 불신론자가 될 것 같았다.

뭐... 내가 사정사정하면서 한번만 참아보라고 하면 참고 볼 것 같긴한데... 그래도 일단 지금은 말고, 나중에 조금 더 호감도가 쌓이고 나서 시도해보는게 좋을 것 같았다.

"흠흠... 자, 오늘도 수고하셨습니다. 과제도 열심히 해주시고, 그럼 다음에 봅시다."

어느새 수업이 끝난건지, 교사가 방에서 서둘러 나간다. 원래 이렇게 빨리 끝내진 않았는데, 왜 오늘 따라 저렇게 급해 보이시는 거지?

혹시 얘네가 뭔 짓 했나 싶어서 양옆을 보니 두명 다 자기는 모르겠다는 듯 두 눈을 깜빡이며 나를 쳐다보기만 할뿐, 별다른 행동을 보여주진 않았다.

...심증은 있는데 말이지.

"자! 이제 수업 끝났으니까 빨리 목욕하러가자 빨리 빨리~"

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아무튼 그녀들은 이걸 기다린 건지 백작과의 저녁 식사전, 좋은 모습을 보여줘야 된다면서 나를 욕탕으로 끌고 가려한다.

항상 있던일이긴 하지만, 오늘 따라 그 정도가 조금 심했기에 왜 그럴까 하는 의심을 가지고 욕탕으로 향하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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