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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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원은 캄캄한 어둠속에 있었다. 스산한 바람 한 줄기가 자신의 다리 사이로 스쳐지나갈 때 자기도 모르게 흠칫 놀라며 그냥 뒤로 돌아 무작정 뛰었다. 한참을 정신없이 뛰던 혜원은 저 멀리 앞에서 미세한 빛이 보이는 것을 보고 더욱 속도를 빨리 했다. 하지만 그 빛은 좀처럼 커지질 않았다. 달려도 달려도 그대로 였다. 아니 어쩌면 점점 자신의 움직임이 느려지는 것인도 몰랐다. 그녀가 더이상 달릴 수 없을 정도로 지쳐있을 때 뒤에서 동물의 울부짓음 같은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발을 헛딛어 앞으로 넘어지고 말았다. 그녀는 한동안 일어설 수가 없었다. 겨우 실낫같은 정신을 잡고 눈을 떴을 때 자신의 주변에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순간 그녀의 눈이 크게 떠지며 입이 버러지고 어쩌면 오줌을 지렸는지도 모른다. 아무리 소리를 지르려고 해도 입만 뻐금거렸지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아니 주변에 모든 소음이 사라졌다. 그녀는 자신의 손을 들어 힘껏 내려쳤다.

"악~"

눈이 떠졌다. 역시 암흑이었다. 그녀는 한동안 자신의 상태가 어떤 상태인지 알기 위해 숨죽여 주변의 모든 것을 느끼려는 듯 신경을 곤두세웠다.

"아! 깨셨군요"

그녀의 머리맡에서 부드러운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 잠깐만요.. 어둡죠.. 제가 불을 켤깨요.."

딸깍

방안이 갑자기 환해져 그녀는 눈을 가늘게 뜰 수 밖에 없었고 모든 사물이 흐릿하게 보였다. 자신을 향해서 천천히 다가오는 물체가 있었다. 그 물체는 자신의 바로 앞까지 왔다.

"꿈을 꾸셨나봐요? 악몽이었나 보죠?"

"...."

그녀는 선뜻 대답할 수가 없었다. 차츰 눈이 정상으로 돌아오자 자신의 앞에 있는 물체가 남자이고 매우 잘생겼다고 순간적으로 생각이 들었다.

"여긴 제 집이예요.. 병원으로 갈까하다가 사고가 알려지는게 싫으실까 해서.. 괜찮으세요?"

생글 생글 웃으면 말하는 사내의 느낌이 좋았다. 그녀는 힘들게 입을 열었다.

"어떻게 된 일이죠?"

"주차장에서 우연히 아가씨가 불량배들에게 폭행을 당하는 걸 봤어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그의 말에 그녀는 아까의 일이 생각난듯 몸서리를 치며 눈을 질끈 감았다.

"이젠 괜찮아요.. 제가 그 놈들을 좀 혼내 줬죠..?"

그는 여전히 웃는 얼굴로 차분하게 말했다. 혜원은 편안함을 느꼈다. 말없이 그를 쳐다보고 있자니 그의 얼굴이 점점 붉어진다.

"흠 흠.. 아.. 따뜻한 차라도 마실래요.. 한결 나아질꺼예요.."

그는 당황한 듯 성급히 일어나다 전등 갓에 머리를 부딧쳐 몸이 순간적으로 기웃둥 거렸다. 그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뒤걸음질 치다 또 벽에 부딪쳤다. 그런 모습을 본 혜원은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크크크"

"하하... 무슨 차 타실래.. 아니.. 어떤 차 좋아하세요?"

"하하하하"

그녀는 결국 참지 못하고 웃어버렸다. 참 좋은 사람인가 보다. 혜원의 머리속에 그렇게 세겨졌다.

"커피.. 블랙으로여.. 큽"

또 웃어버렸다.

그가 성급히 방을 나가는 모습이 꼭 개그 프로그램의 한장면 같았다.

민혁이 주방에서 커피를 준비하고 있을 때

"꺅~~~"

그녀의 비명소리가 또 들렸다. 하지만 민혁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녀를 집에 대려왔을 때 이미 온 몸은 그녀가 흘린 피로 물들어 있었고 자신도 땀과 피로 얼룩져 있었다. 그녀를 침대에 눕히고 아무래도 피로 얼룩진 옷을 그냥 입혀놓고 있으면 깨어나서 정신적인 충격이 심할까해서 그녀의 옷을 뎔若? 그리고 따뜻한 물수건으로 피딱지가 엉겨있는 온 몸을 닦아내고 칼에 찔린 부위는 세심히 소독하고 꿰매주었다. 그의 직업이 의심되는 순간이다.

민혁은 커피를 들고 조심 조심 방으로 다가갔다.

"저 들어가도 될까요..? 커피가 다돼서요.."

"....."

대답이 없다. 뭐가 잘못됐나?

"저.."

그가 막 말을 시작하려고 할 때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이 있었죠? 저한테 어떻게 하신거예요?"

"아무일도 없었어요.. 피를 너무 흘려서... 그냥 닦아내기만 했어요.. 절대... 절대.. 다른 생각 다른 행동을 안했어요.. 저... 커피..."

"......"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아마도 그녀가 뭔가를 확인하는 것 같았다.

"들어오세요.."

이내 그녀의 모기 목소리만한 소리가 들렸다.

그는 일부러 안보는 시늉을 하며 커피를 침대 맡에 놓고 뒤도 안보고 방을 나갔다.

"머리 맡에 입을 옷좀 챙겨놨어요.. 혼자 살다보니 여자 옷이 없네요.."

혜원의 그의 말에 고개를 들어 그가 챙겨놓은 옷가지를 보았다. 큰 반팔 티셔츠와 반바지... 반바지를 들어 올린 혜원은 또 웃어버렸다.

"풋..."

자기 몸이 두개는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컸다.

'이걸 어떻게 입어 크크크'

큰 반팔 티셔츠는 그런데로 입어보니 거의 원피스 같았다. 혜원은 커피를 들고 조심 조심 걸어 방을 나왔다. 상처부위는 그다지 아프진 않았지만 걸을 때마다 땡기는 느낌이 들었다. 그가 거실의 쇼파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책을 보고 있었다. 그녀가 그의 가까이까지 갔을 때 그가 깜짝 놀라며 뒤로 주춤거렸다. 그의 행동에 혜원도 놀라 들고 있던 커피잔을 놓쳐버렸고 그의 몸에 커피가 엎어졌다.

"아 뜨뜨... 거워..."

"어머 죄송해요.. 놀라시는 바람에 저까지 놀랬네요.. 죄송해요.."

"괜찮아요.."

그녀는 미안한 마음에 커피가 쏟힌 부분을 손으로 어루만졌다.

'헉'

탄탄한 근육이 만져졌다. 순간 전기가 온몸에 퍼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녀는 황급히 손을 뗄 수 밖에 없었다. 그는 괜찮다며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화장실에 들어간 그의 모습이 거울에 비쳐 그가 화장실에서 하는 행동을 모두 볼 수 있었다. 그가 티셔츠를 벗자 좀 전에 그녀의 손끝에 전해졌던 그의 탄탄한 근육이 눈에 들어왔다. 그 구릿빛 피부하며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정말 보기 좋은 근육이었다.

"아~"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나와 자신도 깜짝 놀랐다.

그가 다시 옷을 입고 나올 때까지 그녀는 쇼파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 자꾸 어른 거리는 그의 육체를 지우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댁이 어디세요..? 좀 괜찮아 지셨으면 늦었는데 집에 들어가셔야죠..?"

"네! 아.. 네..."

"잠시만요... 빨래를 하긴 했는데.. 치마는 칼 헙... 아니.. 좀 ?어졌어요.."

"네! 네... 그냥.. 이렇게 갈께요.. 괜찮아요.."

"그래도 부모님들이 그 모습을 보면... 이상하게..."

"아니요.. 아 네... 저.. 괜찮아요.. 언니랑 같이 살아요.. 근데 언니는 오늘 좀 늦는다고..."

"아.. 그러시군요.."

그가 말을 이었다.

"그럼.. 이거는 쇼핑백에 담아드릴께요.. 그리고 핸드백하고 주머니에서 나온 물건들은 저기 탁자 위에 있어요"

"네... 고맙습니다..."

"그럼.. 나가시죠..."

혜원은 그가 가리키는 탁자 쪽으로 다가갔다.

'헉'

그녀가 놀란 이유는 탁자위에 자신이 사용하는 소형 바이브레이터가 있었다. 사실 저 바이브레이터때문에 이 일이 발생했는지도 모른다. 주차장 화장실에서 저 바이브레이터를 가지고 보지를 달래던 자신의 모습이 그려졌다. 그러다 인기척에 서둘러 그냥 주머니에 넣고 화장실을 나온 것이다. 그런데 아마도 그 불량배들이 한참을 그녀가 자위하는 소리를 듣고 있었던것 이었고 그래서 불량배들에게 둘러 싸였던 것이다.

혜원은 창피해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집으로 가는 그의 차 안에서 어떻게 왔는지도 모른다. 그냥 창피해서 고개를 숙이고 그가 지리를 묻는 말에만 간단히 대답했던 것 같았다. 그녀의 아파트에 도착하고 그녀는 서둘러 차에서 내려 후다닥 들어가 버렸다.

민혁의 차 바닥에 보라색 물건이 살짝보였다.

삡삐비빅

현관의 디지털 도어락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혜원은 쇼파에서 웅크리고 앉아 있다가 문소리가 나자 일어나 현관으로 갔다.

"응.. 아직 안잔거야? 자고 일어난 거야?"

"왔어.. 안잤어?"

"왜.. 무슨 일 있었어? 어 못 보던 옷이네?"

혜원의 언니의 말에 깜짝 놀랐다. 그녀는 아직도 민혁의 집에서 입고온 반팔 티셔츠를 입고 있었던 것이다.

"아.. 그냥 편해보여서 샀어.. 일은 잘 됐어?"

갑자기 화재를 바꾸는 혜원이였다. 뭔가 이상했지만 혜령은 지금 그녀에게 부여된 업무가 너무 막중하여 급새 잊어버렸다.

"모르겠어.. 이런일은 처음이잖아.. 백주 대낮에 국회의원을 그것도 저격용 총으로 살해한다는게..."

점점 작아지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듯 읍조리며 혜령은 타이트한 정장 투피스를 벗었다. 혜원과 혜령은 자매지간으로 시골에 부모님을 떠나 둘이서 이렇게 생활하게 된 것도 벌써 12년째를 접어들고 있었다. 어린시절부터 갖이 생활해오던 터라 둘사이는 때로는 친구처럼 때로는 연인처럼 때로는 선후배처럼지냈다. 5년전 그일이 있은 후부터 둘사이의 관계는 연인쪽이 더 어울릴 것이다. 혜령은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알몸으로 거실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다가 욕실로 들어갔다. 욕실 문을 닫고 그대로 문에 기대어 깊은 숨을 들이쉬며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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