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혁은 친구들과 헤어지고 자신의 차를 세워둔 주차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저.. 잠시 검문 있겠습니다. 신분증 좀 제시해주십시오."
민혁은 오늘 낮에 있었던 일을 생각하며 걷다가 문득 들려오는 사무적인 말에 고개를 들었다.
"아. 네.. 여기"
민혁은 지갑에서 신분증을 꺼내 경찰관에게 내밀었다.
치익...
"신원조회... 721115-1544219 김민혁"
치익...
치익...
'이상없습니다.'
"협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네.. 수고하세요."
민혁은 신분증을 넣고 천천히 경찰관 옆을 스쳐 지나갔다. 아마도 오늘 낮에 있었던 국회의원 사망 사건 때문에 검문을 하는 것 같았다.
'흠. 항상 늦어...'
민혁은 경찰의 뒷북치기에 일소하며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6층 짜리 주차 타워에는 많은 차들이 주차되있었고 거의 모두 중형급 이상의 고급차들이었다. 주차장 주변에 몇해전 뉴타운이 형성되 많은 고급 아파트가 들어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저런 생각에 민혁은 어두운 주차장 내부를 걷고 있었다.
"악~"
갑자기 들려오는 여자의 비명소리... 민혁은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두운 주차장 내부라 흐릿한 실루엣 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몇몇의 사람들이 있었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르겠지만 두세명의 그림가가 보였다.
그때 민혁의 검은색 동공이 갑자기 파란색 동공으로 변하며 인기척이 있는 쪽을 뚤어지게 응시했다. 민혁의 눈에는 검은 그림자의 형상이 정확하게 인식되어갔다.
'흠.. 불량배들인가? 도와줘야 겠군'
민혁은 발길을 돌려 그림자가 있는 쪽으로 향했다.
"어이.. 이봐.. 그냥 가지..."
갑작스런 민혁의 등장에 세명의 사내는 흠칫 놀라며 일시에 민혁 쪽을 응시했다. 한눈에 보아도 불량배들로 보였다.
"이새끼 뭐야.. 죽을라구 환장을 했나..?"
가운데 사내가 얼굴을 찡그리며 험상굳게 말했다.
"아이구.. 형씨.. 신경쓰지말고 그냥 가던길 가쇼.. 응 괜히 다치지 말고..."
왼쪽 사내가 민혁 쪽으로 다가오며 친한척 말했다. 민혁은 사내의 뒷쪽으로 바닥에 주저앉아 가슴과 치마가 걷어 올려진 여자를 보았다.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미동도 하지 않고 바닥만 바라보고 있었다. 감히 고개를 들 용기가 없는 모양이다.
"어이.. 다쳐요.. 그냥 가라구.."
다가오던 사내는 민혁의 어깨를 건드릴 양 손을 뻗어왔고 민혁의 순간적인 동작을 보지 못했다.
"헉..."
사내의 입에서 바람빠지는 소리가 나는 것은 민혁의 움직임과 동시에 일어났고 사내는 그대로 무릅을 B고 앞으로 고꾸라졌다.
"뭐야 이새끼.. 야.. 일어나.."
오른쪽의 사내가 쓰러진 사내 쪽으로 살펴보려 허리를 굽혔다. 순간 민혁이 구치며 허리를 굽힌 사내의 등을 밟고 다시 튕겨 오르며 가운데 사내의 턱을 정확하게 오른쪽 구두의 앞날로 가격했다.
"컥..."
거구의 사내가 그대로 뒤로 뻗어버렸다. 실로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이어서 허리를 굽혔던 사내는 무슨일이 일어났는지 모를는 듯 멍하니 민혁의 얼굴만 바라볼 뿐이었다.
"저.. 아가씨 괜찮으세요? 일어날 수 있어요?"
민혁은 자신을 멍하게 쳐다보는 사내의 눈길을 무시한체 주저않아 있는 아가씨에게 다가갔다. 여자는 민혁의 목소리에 그제서야 고개를 들어 민혁을 쳐다보고 한줄기의 눈물을 흘렸다.
"이제 괜찮으니까 일어나 보세요.. 제가 거들어 드릴까요?"
그녀는 매너있게 자신의 상태를 물어오는 남자를 바라보다 문득 정신을 차려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네.. 일어날 힘이 없어요.."
민혁은 그녀에게 다가가 그녀를 안아세웠다. 그러나 이미 다리에 힘이 풀린 여자는 서있을 힘조차도 없는듯 보였다. 민혁은 그녀를 옆으로 안아올렸다. 아마도 일반적인 상태였다면 여자가 반항을 했겠지만 그녀에게는 그럴 힘조차도 없었다. 그녀를 안아올린 민혁이 그녀를 다시 바라봤을 땐 이미 그녀는 정신을 잃고 축늘어져 버렸다.
"이봐요.. 아가씨.. 정신차려요.."
민혁은 혹시 여자가 다른 다친곳이 없나 위아래로 살펴보았다. 왼쪽 민혁의 배부분에 축축한 느낌이 들어 보니 그녀의 왼쪽 허벅지 부분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이런..."
민혁은 급히 자신의 차가 있는 쪽으로 달려가며 힐끗 뒤를 돌아 보았다. 서있던 사내는 아직도 그자리에서 멍하니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검은 양복을 입은 사내들...
일단의 무리가 어두운 조명 아래 모두 한 곳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곳에는 역시 검은 양복을 입은 30대 초반의 사내가 뒤쪽의 화면을 바라보며 무언가를 설명하고 있었다.
"이번 사건은 국내에서 발생할 수 없는 특이한 사건입니다. 현 실정법상 총기류의 소지가 불법인 우리나라에서 저격용 라이플을 사용한 저격 사건입니다. 이재호의원의 사체 부검 결과, 약 15도의 각도로 전면 양미간의 중앙을 가격하여 후두부를 관통하였고 그로인해 이재호의원은 그자리에서 즉사, 후방 30M의 아스팔트 바닥에 박히 탄두를 분석한 결과 338구경 라푸아 매그넘 탄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 탄은 매우 특수한 탄으로 전문 저격용 라이플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것으로 대표적인 모델로는 블레이저 MOD 93 LRS2 모델인 저격 라이플입니다. 이 저격 라이플은...."
"아... 됐어.. 자세한 내용은 자료를 확인하고 도대체 누가 이런일을 버렸냐는 거야? 발사 지점을 찾았나..?"
브리핑하던 사내는 중앙에 앉아있는 덩치가 큰 사내가 말을 끊자 침통한 표정으로 그의 질문에 바로 대답할 수가 없었다. 이유야 대답할 말이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아.... 그게.. 그러니까.. 지금 경찰 1개 대대가 여의도 전역을 수색하고 있지만 아직 이렇다할 단서를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뭐야.. 이 사건이 어떤 사건인지나 알고 그렇게 대응하는 거야.."
가운데 덩치큰 사내가 서류뭉치를 집어던지며 역성을 내었다.
"이 새끼들 내일까지 사건 해결 못하면 전부 목가지야.. 알았어.. 이 새끼들이 내말 안들려?"
그를 중심으로 앉아있던 사내들은 무슨 죄인 인양 고개를 떨구고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이건... 국가 반역행위야... 응.. 너 이 새끼들 이의원이 어떤사람이지 알고 있어.. 각하의 오른팔이야 오른팔..."
덩치큰 사내는 격양된 목소리로 연신 쌍소리를 내뱉으며 앉아있는 사내들의 면면을 노려보았다.
"내일까지 단..."
"원장님!"
그의 옆에 20대 초반의 여자가 전화기를 들고 서있었다.
"원장님! 각하의 전화입니다."
"으음.."
사내는 괴로운 듯 신음소리와 함께 전화기를 건내받았다.
'김원장.. 어떻게 된일이요?'
"각하! 최선을 다해 사건 해결을 조속히 완료하겠습니다. 각하!"
덩치큰 사내는 전화를 받는 내내 허리를 숙이며 쩔쩔 매고 있었다. 이때 조용히 회의실에 들어온 인영이 있었다.
"네.. 각하"
덩치는 전화를 끊고 앉아있는 사내들을 노려보며 씩씩 대고 있었다.
"이번 사건은..."
어디선가 까랑까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방금 들어온 인영인듯 하다. 목소리로 봤을땐 30대 초반의 여자 목소리였다.
"뭐야..?"
여자는 일어나 중앙 연단 쪽으로 걸어가며 말을 이었다.
"대외테러분과 박혜령 소령입니다. 이번 사건은 국내의 불순세력의 테러로 보기에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따라서 대외 정보망을 가동하여 알아본 결과 북한의 소행으로 의심됩니다."
"뭐야? 그게 말이돼? 너.. 네말에 책임 져야돼... 응?"
원장은 다소 진정된 어조로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최근, 그러니까 이번 정부가 추진해온 대북정책이 이전 정부와는 다르게 강경 정책으로 일관되었습니다. 그리고 최근 북한 군의 움직임과 잦은 소규모 충돌이 발생하였고 올림픽 이후 중국의 북한 원조가 지속적으로 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번 사건은 북한의 대남 공작의 가능성이 아주 높습니다."
"흠... 계속 해봐!"
"제가 준비한 자료를 보시겠습니다."
박혜령 소령은 신속하게 자신의 자료를 화면에 띄웠다. 화면에는 최근 2년간 북한의 움직임과 관련된 각정 정보가 나타나있었다. 박혜령 소령은 화면을 보며 설명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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