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타임트레인-406화 (406/519)

406화

바다는 바람을 타거나 갈매기가 소식이 전해지는지 모르나 대마불이 함대를 이끌고 유구(琉球)왕국의 나하 항구에 접근하자 갑자기 대북이 울리고 소란스러워졌다.

둥둥둥! 둥둥둥!

전에 올 때는 이런 행동을 안 하더니 분명 해안에서 군사들이 움직였다. 망원경으로 해안에서 바쁘게 움직이는 군사들의 모습을 살피던 대마불은 함장에게 명령했다.

“전 함대 전투준비!”

“넷!”

전투 대형으로 포진하자 해안에서 작은 배에 하얀 깃발을 달고 함선으로 접근했다. 대마불은 그 배에 접근해 만나고 온 부하에 물었다.

“뭔가?”

“유구왕국에서 좋게 협상하자는 겁니다.”

“어떤 협상을 해?”

“대진국을 상국으로 모시고 앞으로 매년 조공하겠답니다.”

왜구들의 배가 모조리 파괴된 소식을 들은 것 같았다. 싸우게 되면 피해가 생기니 대마불은 즉시 지시했다.

“알았어, 함장이 가서 협상해봐. 어떤 조건을 내거는지.”

“넷!”

결국 대마불은 유구의 나하 항구를 그냥 사용하고 일정량의 식량을 제공받는 정도로 협상했다. 물론 유구국에서는 추가해서 매년 대진국에 물소 뿔이나 상아 등을 보내기로 약속했다.

유구국은 살아남기 위해 대진국을 종주국으로 모시고 외교권이 박탈된 제후국으로 남길 원했다. 그런 문제는 자신이 결정할 수 없으니 함장에게 지시했다.

“3척만 가지고 빨리 보타도로 가서 태왕폐하께 보고해.”

“넷!”

한편 주산도에서 지내는 최인범은 이곳을 찾아 온 헌강왕을 만났다. 헌강왕은 5만명의 군사를 이끌고 항주를 거쳐 영파에 도착했다.

장인과 사위 사이지만 만난 이유는 5만명이 무장할 무기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다른 무기가 문제가 아니라 화약무기인 화포와 화차 그리고 화약들이 필요했다.

주산도의 남쪽에 건설된 담로청에서 만난 헌강왕은 정중한 태도로 태왕에게 요청했다.

“태왕께서 원하는 대로 송아지를 2만 마리를 모아서 가져왔소. 필요하다고 한 소주미인들도 6천명을 데리고 왔소. 그러니 우리에게 화포와 화차 그리고 신기전을 만들 화약을 주시오.”

“좋습니다. 그렇게 하죠. 하지만 현재 영파에 주둔하는 병사들의 수는 2천명이 넘으면 안 됩니다. 왜구 때문에 주둔 한다고 하나 우리가 지키는 이곳으로 왜구가 나타날 수 없으니 모두 철수해 주시오.”

담로와 가까운 곳에 많은 군대가 주둔하면 신경이 써지니 철수를 요구했다. 그러자 아직은 대적하고 싶지 않은 헌강왕도 쉽게 약속했다.

“알겠소. 그렇게 하겠소. 대신 영파나 항주 입구에 있는 무인도에서 함포사격을 앞으로는 하지 않겠다고 약속해 주시오.”

“그렇게 하죠.”

전에 사신이 왔을 때는 분명히 무기만 넘겨주면 명나라에서 분리해 독립을 선언한다고 했었다. 하지만 그런 사건은 벌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헌강왕은 의외로 자신이 넘겨준 무기로 군사를 모집해 영파로 찾아온 것이다.

많은 무기와 화약을 넘겨주자 헌강왕이 그 사이에 마음이 변한 것이 확실했다. 그리고 협상을 핑계로 자신이 직접 주산 도의 방어 정도를 살피러 온 것이다.

‘남쪽만 차지하는 군왕으로 만족할 생각이 없는 것 같아.’

무기를 넘겨주면 나중에 그것이 부메랑이 되어 주산담로에 큰 위협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현재 넘겨주는 무기 중에서 주산도까지 사거리가 되는 화포가 없었다. 신기전을 날리는 화차의 위력 역시 마찬가지다. 육지와 가깝기는 하지만 주산담로에 속한 가까운 섬은 육지와 2킬로미터가 떨어져 있었다.

특히 주산도와 거리는 10킬로미터 떨어져 있으니 많은 선박을 동원하기 전에는 침공 자체가 어려운 곳이다. 더구나 주산도는 이미 해안도로를 내면서 완전히 불침전함과 같이 변했다. 수많은 해안 포진지를 건설해 놓았으니 앞으로 당분간은 그런 염려를 안 해도 된다.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던 최인범은 과감하게 제시했다.

“전에 넘겨준 화포나 화차도 있으니 약 3만명 정도가 무장할 무기는 보내 드리지요.”

“고맙소.”

나라와 나라 사이에 벌어지는 거래라 외상도 없고 모두 현물로 교환하는 것이다. 무기거래 협상이 순조롭게 진행되자 최인점은 다시 제안했다.

“앞으로 여자는 더 필요합니다.”

“얼마나 더 필요하시오?”

“6천명 정도가 더 필요합니다.”

“좋소. 추가로 6천명을 더 보내기로 하죠.”

최인범이 헌강왕에게 여자를 요구한 이유는 제주도에서 의외로 많은 여자들이 떠났기 때문이다. 현난풍이 의외로 하라는 왜구를 소탕하기 보다는 제주도출신인 해녀들을 대규모로 남쪽으로 데리고 갔다.

그렇다고 해서 갑자기 제주도에 인구가 줄었다고 하는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래도 여자들이 줄자 최인범이 구상하는 계획에 차질이 생긴 것이다.

그래서 남경 지역의 여자들을 대규모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소주미인이라고 칭하는 남쪽 출신 여자들이 의외로 제주도의 생활을 빨리 적응하고 있었다. 그래서 여자들만 이주민으로 받아 들여 제주도에 정착시키기로 했다. 다들 젊으니 그런 여자들을 미끼로 조선에서 제주도로 남자들을 이주하도록 해볼 생각이다.

‘단순하게 계산해도 정규 사단 규모인 남자 1만명은 쉽게 이주시킬 수 있어.’

우선 조선 조정에서 제주도를 대진국으로 행정 분야와 사법권까지 넘긴다고 약속했으니 온전한 대진국의 행정 구역인 도(道)와 직할시로 만들 생각이다.

‘조선이야 윤 대비가 섭정으로 물 말아 먹던 말든 놔두고 필요한 외곽만 확실하게 장악해 두면 돼.’

조선을 무리하게 침공해 무력으로 점령할 필요는 없었다. 그러다가 공연히 귀한 생명만 사라지니 그저 필요한 지역으로 이주시키면 된다. 하층민이나 또는 지식층이라도 조금은 사고방식이 다른 사람들만 영입해 자신이 하고자하는 일만 계속해서 추진하기로 했다.

아무리 공식적인 만남이지만 그래서 장인과 사위라는 위치가 있으니 헌강왕은 슬며시 딸에 대해 물었다.

“아직 딸에게 좋은 소식이 없어 걱정이오. 그러니 정향의 동생을 보내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하시오.”

“동생이라면? 딸을 또 시집보낸다는 겁니까?”

“그렇소. 큰 딸이 아이를 낳지 못하면 작은 딸을 추가로 보내는 것이 보통이니 한번 생각해 보시오. 만약 그게 부담이 된다면 이번에 보내는 소주 미인들 중에서 여러 명의 후궁을 들이는 것은 어떻소?”

최인범은 직답은 피하고 그저 흘리듯이 답해주었다.

“자식이야 하늘에서 삼신할미가 점지하시니 크게 걱정은 안합니다. 헌강왕께서 걱정하시니 참고해서 소주미인 중에서 후궁을 들이는 일도 고려해 보죠.”

“그렇게 생각한다면 특별히 선발해 보내겠소.”

“감사합니다. 그렇게까지 신경을 써주시니.”

자꾸 소주미인이란 용어가 거론되자 최인범은 문뜩 전생에서 소주 광고에 출현하던 유명한 연예인들의 얼굴이 저절로 떠올랐다. 그런 정도 미녀들이라면 탐하고 싶다는 욕심이 문뜩 생겼다. 아무래도 너무 오래 여자와 접하지 않아 욕정이 치민 것 같았다.

그래서 피식 웃으며 말했다.

“제가 미적 감각이 조금 특이해서 그런데 그것을 참고하시면 좋겠네요.”

“아, 그렇군요. 그런 특이한 여자를 좋아한다니 반드시 그런 여자로 보내도록 하죠.”

명나라는 오동통하며 살집이 많고 전족해서 발이 아주 작은 여자를 미녀로 칭하는 풍습이 있다. 그러나 최인범은 미적기준은 현대적으로 판단해 키가 크고 다리도 늘씬한 여자를 선호한다.

‘나라에 미인들이 많아지면 좋지.’

방금 말한 그대로 후궁을 많이 들일 생각이야 전혀 없었다. 그저 미녀들이 많아지면 나중에 후손들도 인물이 좋을 수밖에 없으니 해보는 생각이다.

‘나중에 제주도 출신들은 미녀들이 많아질 수도 있겠네.’

잠시 이런 사담을 나누다가 다시 협상은 진행되었다.

“앞으로 수산물도 통제하지 않고 충분히 보내도록 하죠.”

“고맙소. 거래 대금은?”

“전처럼 석탄이나 또는 금속 괴를 넘겨주시면 됩니다. 주산에는 금속이 생산되지 않으니 그것을 보내 주시고 목재도 보내면 됩니다.”

“알겠소. 그렇게 하리다.”

헌강왕은 많은 무기를 사가고 서로 잘 지내자고 하면서도 서로 불가침하자는 평화협상은 제안하지 않았다.

헌강왕은 북경의 조정을 의식해서가 아니다. 나중에 언제고 강력한 힘이 생기면 다시 주산군도를 침공하기 위해 안하는 행동이 분명했다.

‘나야 손해날 것이 없어. 주산 담로에 사람이 많아져 나중에 주산군도가 너무 좁으면 상해 정도를 차지할 수 있으니 그런 조약을 할 필요까지는 해둘 필요가 없어.’

상해는 아직 작은 현에 불과한 지역으로 갈대밭과 늪이 많고 잦은 홍수로 별 볼 일 없는 토지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미 홍수를 대비할 풍차 기술도 점점 빠르게 개발되는 대진국은 노려 볼만한 곳이다.

장강 하구에 위치한 상해현(上海縣)은 앞으로도 계속 토사가 많이 떠내려 오게 된다. 그러니 상해는 점점 농사짓기 좋은 벌판도 조성되고 내륙에서 바다로 나가는 길목이 되니 발전 가능성은 높았다.

‘상해에도 별도로 담로를 새로 만들어 놓은 것이 좋겠어.’

어떤 토지고 이미 그곳에 오래 살고 있는 주민들이 많은 곳을 차지하기는 어렵다. 강제로 무력을 동원해 차지해도 언젠가는 심한 반발에 부닥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지금은 불모지에 불과하고 인구도 적고 버려진 상해 땅만 미리 선점할 생각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륙은 반드시 여러 조각의 왕국으로 나누어져 있어야 된다. 사실 대륙은 언어도 너무 달라 남쪽과 북쪽이 서로 통역을 동원해야 할 정도다.

작은 땅덩이인 조선도 제주도 사람과 함경도 사람은 말이 통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그러니 큰 영토를 가진 명나라의 경우는 그 정도가 더욱 심할 수밖에 없었다.

무기거래 협상이 끝나자 최인범은 빠르게 무기들을 인계했다. 헌강왕에게 넘겨지는 무기는 제주도의 조선 수군이나 병영 그리고 멀리 대마도에 있던 무기들이다.

제주도를 넘겨받으며 대마도도 같이 넘겨받았다. 그래서 그곳에 있던 구형무기는 모두 제주도를 통해 이곳으로 이전되고 다시 헌강왕에게 판매된 것이다.

무기들은 인수 받자 화포로 무장한 부대들은 영파를 떠나 남쪽으로 부대별로 빠르게 이동했다. 대진국이 바다에서 왜구를 막아준다고 하지만 한계가 있었다. 헌강왕이 군사를 양성해 드디어 태주와 복주를 비롯해 복건성 지역의 대도시를 방어할 군사들을 보내는 것이다.

척계광이 무기를 인계해 주고 돌아와 보고했다.

“폐하, 큰 성이 있는 해안 도시에는 앞으로 5천명의 군사들이 상주한다고 떠나고 있사옵니다.”

“확실한가?”

“그렇습니다. 복건성까지는 확실하게 장악할 요량으로 보입니다.”

“알았어. 어차피 무기와 화약을 넘기기로 했으니 빨리 넘기고 우리도 떠날 준비를 해.”

“넷!”

언제까지 이곳에 머물면서 지낼 수는 없었다. 이곳을 정리하고 제주도로 가서 하카다 담로로 가서 챙길 일들이 많았다. 이런 조치 때문에 은근히 걱정거리가 생겼다.

“앞으로 남명에서 왜구를 잘 막게 되면 현난풍이나 대마불이 먹고 살 거리가 대폭 줄어들게 생겼어.”

“폐하, 그들도 생각이 있으면 다른 살길이야 찾게 되겠죠.”

“하긴 두 사람은 나름 생각이 있으니 뭔가 좋은 방법을 찾아 낼 거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