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7화
설화와 같이 몽골로 간다고 결정하자 포로를 인솔해 봉황성으로 가야 하는 기마병의 수를 더 늘리기로 했다. 최인범은 척계광을 불러 은밀하게 지시했다.
“이성량의 부하들은 따로 그가 인솔하도록 해.”
이런 명령을 받은 척계광은 놀란 표정으로 답했다.
“폐하, 소신이 그동안 살펴본 바로는 이성량은 기회만 있으면 반드시 명나라로 도망칠 놈입니다. 그는 폐하와 같은 조선 출신이지만 이미 명나라 사람보다 더 명나라 사람으로 변했사옵니다. 그는 명나라에서 조상 때부터 받아먹었던 은자의 유혹을 떨치기 어려워 보입니다.”
척계광이 평하는 명사람 보다 더 명나라 사람이라는 말은 의미가 있었다. 비록 무기는 지니지 못하지만 자유스러운 몸으로 변한 이성량은 그런 작은 권리를 이용해 포로들에게서 뇌물을 받아먹고 있었다.
“어떤 행동이 눈에 거슬리나?”
“그는 포로에게서 뇌물을 챙기는 놈입니다. 그런 놈은 오히려 살리기 보다는 죽여야 합니다.”
“죽이면 써먹지 못하잖아?”
“폐하. 그런 놈을 어디에 써먹으시려고요? 소신 생각에는 도무지 써먹은 곳이 없는 놈입니다. 사실 덩치만 크고 허우대만 멀쩡하지 보기 보다는 무술 실력이나 담력도 형편없는 놈입니다.”
최인범은 해서여진족인 전쟁포로들에게 일정량의 개인 소지품을 지니고 떠날 수 있게 배려했다. 지금은 비록 전쟁포로지만 결국 자국민으로 동화시켜야 한다. 그 때문에 남아 있는 가족들이 전쟁포로들에게 넘겨주는 재물을 지닐 수 있게 배려했다.
그런 틈을 노리고 이성량은 포로들에게 잘 봐준다는 식으로 접근해 뇌물을 처먹고 있었다. 그는 전에 명나라에서 뇌물을 먹던 습성이 전혀 사라지지 않고 더 지독하게 포로들을 상대로 틈만 생기면 뇌물을 챙긴다는 의미다.
최인범은 척계광에게만 이성량을 살피라고 지시하지 않았다. 경호원들에게도 수시로 살피라고 했기 때문에 이성량의 행동은 너무 잘 안다.
‘결국 천성은 버리지 못하는 놈이야.’
이렇게 판단한 최인범은 이성량을 버리기로 마음먹었다. 죽이는 방법보다 적당히 버려서 그를 적절하게 이용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은 그가 부하들과 도망치길 원했다.
‘저런 놈이 심양으로 돌아가면 그곳이 더 약화될 수 있어.’
지도자가 부패하면 부하들도 부패할 수밖에 없는 것이 세상이치다. 그러니 건주본위가 있는 심양으로 이성량을 도망치게 한다면 심양의 군사력은 지금 보다 더 약화된다고 판단했다.
‘지금 산해관으로 기마병을 몰고 떠난 지휘첨사보다는 이성량이 심양을 장악하면 우리에게는 더 유리해.’
이렇게 판단하고 나서 최인범은 척계광에게 은밀하게 이성량을 놓아주는 방법을 지시했다.
“기회를 봐서 놓아주는 조건을 이성량에게 제시해 봐. 그러면 이성량은 분명히 철령에 있는 은자를 넘겨준다고 할 것이니까.”
“그렇군요.”
“은자는 물론 말을 모조리 준다면 풀어준다고 약속해서 그 놈을 일단 거지로 만들어 풀어줘.”
“알겠습니다.”
어리지만 지모가 발달한 이성량이 철령을 거쳐 심양으로 돌아가면 비어버린 건주본위의 지휘첨사 자리를 차지할 것이 분명했다.
“어떤 약속도 믿지 말고 은자와 말부터 받고 나서 풀어줘.”
“넷!”
비밀스럽게 특별한 명령을 받은 척계광은 4000명의 기마병과 같이 전쟁포로인 해서여진족 1만명과 이성량의 부하인 포로 2천명을 데리고 남쪽으로 떠났다.
최인범은 많은 포로가 떠나고 나자 몽골로 떠날 준비를 했다. 이제 1천명의 기마병과 300명의 경호원만 데리고 몽골로 떠나야 하니 준비할 것이 많았다.
설화가 제시한 몽골이란 서쪽에 위치한 대흥안령산맥(大興安嶺山脈) 근처에서 활동하는 부족을 말한다. 거대한 원 제국을 이루던 몽골은 북쪽으로 쫓겨난 이후 여러 부족으로 나뉘어 있었다.
북원이라고 칭하는 알탄 칸이 중심에서 위치에 있다. 멀리 서쪽의 신장 지역에는 소피아의 아비가 이끄는 타타르 부족이 있었다. 그 외에도 많은 부족들이 있지만 현재 큰 세력을 이루는 부족은 둘이었다.
장춘에서 서쪽으로 가면 거대한 대흥안령산맥(大興安嶺山脈)이 있다. 높은 고지대인 산맥을 넘어가면 끝없이 이어지는 초원지대인 지두우 지역이 나온다. 지두우 지역에 사는 몽골족은 알탄 칸의 영향력 아래에 있었다.
그곳에 사는 몽골 부족은 그동안 해서여진과 건주본위와 교류하며 많은 말들을 지속적으로 판매해 왔다. 그 때문에 그들을 한번 만나자는 것이다.
“설화, 그들이 원하는 것은 뭐요?”
“태왕폐하, 철제 무기입니다. 그리고 감자와 철제농기구를 원하옵니다.”
“유목인인 그들이 감자를 원하다니 이상하군.”
“폐하, 몽골부족들도 일부는 한곳에 정착해 사는 사람들도 있사옵니다. 그들도 유목생활을 하면서 어느 한 곳에는 식량을 지속적으로 생산할 곳을 마련해 두려는 생각이 있는 것 같사옵니다.”
매우 건조한 지역이고 작물재배로 적합하지 않은 초원으로 이어진 몽골이다. 하지만 그래도 강가나 호수들이 있는 곳에는 작물을 심기에 좋은 토지들이 있었다. 해서여진을 통해 새로운 작물인 감자를 접한 그들은 그 감자를 대량으로 사다가 심어볼 요량 같았다.
“좋소! 그럼 떠나는 길에 그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가져다줍시다.”
그들과 접촉하지만 고려해야 될 부분이 있어 설화는 혹시 모르나 생각해 강조했다.
“폐하, 지금 만나려는 부족들은 알탄 칸과 연결되어 있사옵니다.”
설화의 말에 최인범은 오히려 더 그들과 협상할 생각을 굳혔다.
“그들이 알탄 칸과 긴밀하게 연결된 부족이라면 공짜로라도 그들이 필요하다는 무기를 넘겨줘야 하니 무기를 모조리 모으시오.”
이미 몽골 부족에게 어느 정도 힘을 실어주어 북경을 압박할 생각이다. 최인범은 이번에 전투를 벌이면서 획득한 명나라 제품인 화포나 포탄 그리고 화차들을 넘겨주기로 했다. 알탄 칸은 쉽게 북경과 결탁하지 못할 여러 가지 사정이 있는 부족이다.
“설화, 이번에 획득한 명나라에서 생산된 화포나 화차들은 모조리 몽골부족에게 넘기도록 합시다.”
“폐하, 화포까지 몽골로 넘긴다면 너무 위험하지 않을까요?”
“물론 나중에 몽골 부족이 우리와 대적하게 될지는 모르지만 그건 나중에 일이요. 우선 우리에게 꼭 필요한 말을 대량으로 구입하려면 그 방법이 제일 좋아요. 그러니 화포와 화차 그리고 그들이 원하는 감자와 농기구를 모두 넘겨주기로 합시다.”
“알았어요. 그럼 무기들과 농기구를 모으죠.”
이곳에서 필요한 농기구나 무기들은 봉황성이나 또는 통화지역에서 운반해 오면 된다.
철광산을 많이 개발한 통화에서는 대량으로 철제품을 생산해 만주 전역으로 보급하고 있었다. 조선에서 이주한 광산 기술자나 장인들이 대규모로 대장간을 운영해 끝없이 철제품을 양산하고 있었다.
“이곳에 비축되어 있는 육군의 비상식량인 감자도 모조리 가지고 갑시다. 그리고 여기에 필요한 감자는 다른 곳에서 운반하면 될 거요.”
“알았어요.”
유목생활을 하는 몽골인들의 영토에는 풍부한 지하자원이 있다. 하지만 그 지하자원을 개발해 광산을 운영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기술력도 문제지만 개발할 의지도 전혀 없었다. 그들은 넓은 초원을 떠돌며 가축만 방목해 그것을 주변국으로 판매하고 대신 필요한 철제 무기나 또는 농기구를 구입해 사용하고 있었다.
더구나 그들은 이미 많은 말을 가지고 동쪽으로 이동해 와 있는 상황이라니 그리 멀리 가지 않아도 만날 수 있었다.
최인범은 포로를 호송하기 위해 염창으로 이동하는 척계광에게 4000명을 보내고 남게 된 1300명의 기마병과 경호원들과 같이 몽골로 향했다.
‘화포가 넘어가면 가정제가 더 광증을 부리겠어.’
몽골족에게 화포를 보내면 반드시 알탄 칸에게 넘겨질 것으로 판단했다. 그리되면 매년 만리장성 근처를 침범하는 알탄 칸에게 큰 힘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화포가 몽골로 넘어가면 분명히 알탄 칸은 거용관을 넘어서 북경을 압박하게 될 거야.’
대흥안령산맥을 넘어가면 있는 지두우 지역은 과거 고구려에서 진출했던 지역이다. 과거 조상들이 갔던 길을 간다고 생각하니 조금은 느낌이 달랐다.
‘고구려가 크긴 큰 나라였어.’
새삼스럽게 고구려가 차지한 영토가 방대한 지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인범은 마차를 총동원하고 짐말을 끌고 서쪽으로 3000명의 기마병과 300명의 경호원들이 같이 떠나고 있었다.
드디어 장춘 지역을 지나며 최인범은 금일여에게 지시했다.
“앞으로는 몽골에 의지하지 않고도 필요한 말을 확보할 수 있도록 이곳 장춘군에서 말 목장을 운영하는 것이 좋겠어.”
“알겠습니다.”
이곳은 농사도 지을 수 있는 지역이지만 넓은 초지가 많은 곳이라 목장을 운영해도 충분했다. 그래서 이번에 몽골족을 만나서 최대한 말을 들여와 큰 목장을 만들어 볼 생각이다.
최인범이 과거 고구려가 차지한 대흥안령산맥과 인접한 곳으로 이동하는 중에 멀리 남쪽에서는 그의 지시로 움직이는 사략선단의 활동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한편 현난풍은 산동반도에서 은광을 털고 바다로 철수해 잠시 왜인들과 마찰이 있었다. 그러나 합의가 잘되어 청도의 어촌을 습격하게 되었다.
많은 어선들이 모여 있는 모습을 보자 현난풍은 왜인들의 두목인 노무라에게 지시했다.
“노무라, 배를 원한다니 큰 어선들을 모조리 사용해.”
“넷! 제독님!”
현난풍의 판단에는 황해에서 어선들이 많이 있어야 좋은 일을 기대하기 힘들다. 자신들이 황해의 해역에서 활동하는 것을 숨기기 위해서는 보이는 어선은 반드시 격침시켜야 된다.
그렇다고 해서 오래 시간을 끌어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 제태국에서도 전과 달리 군사들을 보내 해안에서 기다릴 수가 있었다. 그녀가 이끄는 사략선 2척은 빠르게 청도의 해안으로 접근했다.
드디어 사략선이 해안으로 접안하자 200명의 왜인들을 빠르게 배에서 뛰어 내려 내달렸다.
“와! 와!”
어선을 탈취해 자신들이 사용할 생각인 왜인들은 전과 달리 규모가 다소 큰 어선들부터 확보했다. 그리고 일부는 어촌을 약탈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나타난 커다란 배에서 벌거벗은 왜구들이 장검을 들고 공격하자 어촌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왜인들은 어촌의 사람들을 마구 죽이고 있었다.
“키옷!”
사각!
“으아악!”
처음에는 현난풍이 왜인들에게 사람을 함부로 죽이지 말고 포로로 잡으라고 했었다. 그러나 그런 제약에서 풀어주자 왜인들은 전보다 더욱 난폭하게 어촌마을 사람들을 죽이고 있었다. 본래 왜구로 살고 살인을 밥 먹듯이 하던 왜인들이라 본성이 다시 생생하게 드러난 것이다.
‘저런 놈들은 부하로는 적당하지 않아.’
현난풍은 이미 필요한 노군이나 선원들을 충분히 확보했다고 판단하고 왜인들을 적당한 기회에 버리기로 마음먹고 있었다. 태왕께서 이미 어느 정도 귀띔을 해준 지시 사항이다.
민간인 신분이지만 현난풍은 이미 태왕께 충성하기로 마음을 먹고 있으니 지시사항을 성실하게 완수할 결심을 하고 있었다.
‘본래 바둑에서 사석 작전이란 키워서 죽여야 상대방이 눈치 채기가 어려운 거야.’
태왕께서는 이렇게만 조언을 했다.
‘사석 작전은 반드시 돌들의 덩치가 되도록 커야만 그것 때문에 알고도 포기를 못하고 상대방의 작전에 말려가는 거야.’
이미 왜인들을 사석으로 이용할 결심을 했다. 현난풍은 왜인들이 필요하다고 탈취한 어선 이외에는 파괴하기 위해 함장들에게 명령했다.
“어선을 향해 함포 발사!”
“넷!”
왜인들을 시켜 파괴해도 되지만 새로 편성된 선원들에게 함포 사격을 훈련시키기 위해 명령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