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타임트레인-309화 (309/519)

309화

명나라는 태조인 주원장이 홍건적의 난을 계기로 원나라를 북쪽으로 몰아내고 한족이 세운 나라다. 그렇기 때문에 살기가 다소 열악한 만리장성 북쪽 지역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었다.

당시에는 연경이던 국경으로 영락제가 수도를 옮겼을 당시에는 조금 북방민족에게 위세를 부렸다. 하지만 후에 계속 멍청한 황제가 보위를 이어가며 환관들의 농간에 명나라는 국력이 점점 쇠퇴해져 북방유목민들의 눈치만 슬슬 보는 실정이다.

요동지역도 이이제이 수법으로 견제를 한다고 하지만 건주위를 유지하기 위해서 엄청난 은괴를 그들에게 보내고 있었다. 물론 몽골 초원에 있는 북원 세력에게도 명칭이야 하사품이라고 하지만 거액의 뇌물로 다독이는 형편이다.

한족들은 진시황제 이후 만리장성의 북쪽은 자신들의 땅이 아니라는 뜻으로 국경선을 확정해 놓았다. 원나라가 망하고 나자 요동지역은 자신들의 영향력에서 거의 벗어났다.

그곳에 사는 여진족을 관리하는 수장이나 관료들도 모두 한족이 아닌 다른 부족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가정제는 별 생각 없이 전통적으로 항상 채택하고 있는 외교술을 쓰고 있었다. 이이제이 수법으로 조선출신인 최인범을 이용하겠다고 이런 결정을 한 것이다.

자순은 혹시 대신들이 나서서 반대할까 염려해 소피아가 준 은괴를 북경에서 모두 풀어버렸다. 뇌물이 만연한 명나라의 풍토라 자순의 행동은 그들에게는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일 수밖에 없었다.

대신들이 만나 그동안 귀하던 소금이 다소 풍족하게 들어온 문제를 놓고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소금을 운반하기 위해 요동반도 끝의 대흑산산성을 봉토지로 대부마도위께 드리는 거야 당연하지.”

“암, 그곳을 봉토지로 넘겨줘야 소금을 많이 가지고 올 것이 아닌가?”

“소금이 많으면 북쪽도 안정될 수 있고 여러모로 나라를 위하는 길이지.”

“당연하지.”

대신들의 판단처럼 소금이 많아지면 명나라도 큰 이득이 있었다. 그것은 만리장성 북쪽이나 서쪽에서 활동하는 북방유목민들의 준동을 제어할 좋은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북방의 유목민들의 경우 바다와 접하지 않은 지역이라 명나라보다 소금이 더 귀한 처지다. 물론 그들도 암염을 사용하지만 암염이 생산되는 지역은 항상 민족이나 부족들 사이에서 끝없이 쟁탈전이 벌어진다.

여전히 조정에서 영향력이 많은 엄숭에게 뇌물을 주는 것은 기본이다. 청렴하다고 소문난 예부시랑인 서계에게도 뇌물이 보내졌다.

결국 그런 자순의 활발한 외교활동 때문에 가정제는 자신이 장담한 그대로 움직일 수 있었다. 그래서 산동 반도 끝에 있는 대흑산성 주변을 모조리 조선구려진봉황산동군왕인 최인범의 봉토지로 확정하는 문서를 만들어 자순에게 넘겨주었다.

“이 서류를 가지고 가서 그 지역을 잘 관리하라고 대부마도위에게 전하라.”

“폐하! 소신이 책임지고 앞으로 많은 소금을 천진으로 보내겠나이다.”

“태감만 믿으니 돌아가는 즉시 소금을 보내도록 하라.”

“에이.”

뭘 잘 모르니 여전히 봉황성 지역도 명나라의 영토라는 인식이 강하다. 표면적으로 대부마도위가 버티는 지역이니 전보다 영향력이 커졌다고 판단했다. 그 때문에 북경으로 와서 개설하려던 교역 사무소는 별 어려움 없이 예부상서와 만나 쉽게 해결되었다.

예부상서는 다소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같은 나라 안에서 꼭 교역사무소를 열어야 되겠나? 그저 상단을 개설하면 되지 않나?”

“그렇지 않습니다. 엄연히 왕부인데 일반 상인처럼 거래하기는 곤란합니다.”

“흠! 태감의 말에도 일리가 있군.”

자순은 보다 더 명확한 이유를 설명했다.

“거래 규모가 크니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상단이라는 명칭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교역사무소는 조선이나 왜에서 오는 상인들도 이용해야 하기 때문에 단순히 상단이라고 칭하기는 곤란합니다.”

“알았네. 그럼 필요한 곳을 말해 보게 내가 개설하도록 서류를 만들어 주지.”

“감사합니다.”

자순은 본래 목표로 정했던 교역 사무소를 열게 되었다. 북경, 산해관, 천진, 남경, 영파, 항주에 개설하기로 결정되었다. 이미 남경의 헌강왕으로부터 교역에 대한 허가증을 받았지만 황제의 명으로 명나라 조정에서 완전히 공인된 것이다.

산해관이나 천진이야 이미 소피아와 왕미령이 대형 여각을 운영하며 자리를 잡고 있다. 그 때문에 그냥 현판하나만 더 걸면 되니 개설에는 아무런 문제점이 없었다.

남경 지역도 헌강왕이 나서서 건물을 정해서 개설하면 되기 때문에 어떤 문제점도 없었다. 그러나 북경은 새로 건물을 사야 하는 등의 준비가 필요했다.

숙소로 사용하고 있는 북경 반점에 왕미령의 오빠인 왕도정이 나타났다.

“태감, 바로 옆에 있는 저택을 사용하라고 폐하께서 하사하셨습니다.”

“그런가? 특별한 조건은 없고?”

“없습니다. 왕 황후께서 아마 힘을 써주신 것 같습니다.”

“알았네. 그런데 북경에 와서 보니 후추도 귀하고 생필품이 모두 귀하군.”

“그렇습니다. 그나마 간간히 들어오던 후추나 기타 생필품들이 산동지역이 봉쇄되어 원활하게 공급이 잘 안 되고 있습니다.”

이는 진(眞)국의 해군이 포르투갈 범선을 공격해 영파를 비롯해 주산군도로 밀무역선들이 전혀 들어오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왜의 하카타나 또는 나가사키 지역에서 오던 밀무역선도 전혀 오지 못하게 되자 북경도 생필품 조달에 차질이 생긴 것이다.

작은 노점상 형식으로 상점을 열어 팔고 있는 새로운 음식인 합돈거(合豚巨)는 북경을 비롯해 대운하 지역의 도시들에서 인기리에 팔려나가고 있었다. 함돈거는 후세에 세계적으로 널리 판매되고 있는 햄버거를 말하며 물론 조금은 다른 형태의 식품이다.

자순은 왕도정에게 새로운 사업을 제안했다.

“자네는 앞으로 새로 음식점을 개설하게.”

“음식점요?”

“앞으로 천진을 통해 매운 맛이 나는 고춧가루가 들어오게 될 것이니 그것을 이용해 해물을 넣어서 별도로 상점을 개설해서 팔아보게. 그러면 맛이 천하의 일품이라 아주 잘 팔릴 거야. 음식이름은 해물고초면이네.”

“알겠습니다. 이것도 전하께서 개발하신 새로운 음식인가요?”

“당연하지.”

이렇게 해서 함돈거 이외에 새로운 음식인 해물고추면도 대륙에 새로 생기게 되었다. 후세에 한반도에서 인기가 좋은 짬뽕이 해물고초면(海物苦楚麵)으로 작명되어 새로운 음식으로 대륙에 최초로 보급되는 것이다. 해물고초면이라고 작명한 이유는 먹으려면 너무 매워서 고통스럽다는 뜻이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자순이 고추가 아닌 고춧가루를 판매하려는 이유야 아직은 대륙으로 고추의 실체를 알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1차로 가공된 상태로 판매해 고추 종자가 대륙으로 퍼지지 않도록 이런 조치를 취했다.

한편 자금성내의 황후 침전인 교태전에서는 가정제가 황후인 왕미미와 정사를 벌이고 나서 대부마도위가 가져온 소금이나 호피를 놓고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폐하, 대부마도위가 이번에 북경에서 꼭 필요한 소금을 보냈다고요?”

“그렇소. 아무튼 정향 대공주가 무척 마음에 드나 보오.”

“폐하, 그보다 대부마도위는 폐하에 대한 충성심이 높아서 그런 겁니다. 폐하의 명령을 아직까지 단 한 번도 거부하거나 어긴 경우가 없었지요? 더구나 멀고 험하다는 왜로 가서 그들을 완전히 굴복시켰고요.”

듣고 보니 일리가 있는 말이다. 요즈음 들어 동해안에서 왜구들의 준동이 사라져 버렸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대부마도위인 최인범은 이제까지 가정제가 명령하면 군말 없이 조용히 따르고 있었다. 그래서 몽골도 다녀오고 남쪽으로도 돌아 다녔다. 결국 아내도 자기의 수양딸인 정향공주를 맞아 들였다.

“폐하, 조선도 그렇고 왜도 전보다 더 굴종하고 지내는 것은 모두 대부마도위의 공로가 크오니 이번에 보내온 소금가격은 조금 후하게 계산해 보내는 것이 좋다고 사료되옵니다.”

“당연히 그래야지. 사위를 누가 챙기나 장인인 내가 챙겨야지.”

가정제는 표면적으로 그저 묵묵히 따르고 있고 자신의 이해관계 때문에 순순히 받아들인다는 것은 여전히 모르고 있었다. 더구나 이런 소리를 하는 왕미미의 마음에 어떤 무서운 흑심이 있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침실에서 왕 황후의 은밀한 부추김도 있었다. 그리고 뇌물을 받아먹은 대신들도 나서서 권하게 되어 하사품을 많이 주기로 결정했다.

그런 가운데 편전에서 엄숭이 나서며 새로운 안건에 대해 주청을 드렸다.

“폐하, 산동지역의 반란군을 물리치려면 군마가 많이 필요하니 심양의 건주 본위에서 보유하고 있는 군마도 보내라고 하옵소서.”

“그렇군. 군대를 양성하려면 반드시 군마도 필요하지.”

“최소한 5000필은 보내야 되옵니다.”

“건주 본위로 연락해 5000필의 군마를 봉황성에 넘기라고 교지를 보내시오.”

“예이.”

산동 반도의 제태국이란 왕국까지 만든 반란군 때문에 생활이 어려워진 북경의 대신들은 반대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그래서 명나라 조정에서는 건주 본위가 있는 심양으로 연락해 군마 5000필을 대부마도위에게 넘기라는 명령을 내려 보내게 되었다.

그건 그것이고 소금은 별도의 문제다. 가정제는 황제로 사위인 군왕에게서 진상을 받았다. 그러니 전통방식으로 하사품이란 명목으로 소금가격보다 두 배 가치가 되는 비단이나 기타 약재들을 자순에게 넘겨준 것이다.

자순은 큰 성과를 거두고 여유롭게 북경을 떠나 천진으로 오게 되었다. 안채에서 소피아를 만난 자순은 진지한 표정으로 다시 권했다.

“마마, 이번에 저와 같이 가시기 힘들면 다음에는 꼭 오셔야 하옵니다.”

“알았네. 진 빈이란 후궁이 그렇게 요사하다면 내가 가서 버릇을 고쳐 놔야지. 아무래도 어린 정향 대공주로는 다루기 어렵겠어.”

“마마, 꼭 오셔야 하옵니다. 훗날을 생각하면 무엇보다 급한 중대한 문제이오니 절대로 뒤로 미루시면 아니 되옵니다.”

훗날이라면 당연히 다음 보위를 이을 왕자를 생산해야 된다는 뜻이다.

자순이 북경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봉황성으로 돌아오는 동안·····.

멀리 왜로 떠난 진명하도 나름 외교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었다. 주군이 지시한 그대로 하카타와 나가사키 그리고 시모노세키에 교역 사무소를 개설한 것이다.

야마구치를 근거지로 활동하는 오우치 가문의 요시타카 영주는 점점 위세를 떨치고 있었다. 수많은 호랑이가 동쪽으로 이동하자 동쪽의 영주들은 호환 때문에 세력이 점점 약화되고 있었다.

여전히 난세인 전국시대지만 이제는 크게 세력이 나뉘어 동서로 패가 갈라져 있었다. 동쪽의 영주들은 조선으로나 명나라로 가는 통로가 완전히 막히자 특단의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도 대륙으로 갈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합니다.”

“그럽시다.”

“적은 척수로는 어려우니 우리 같이 가도록 하죠.”

“그게 좋겠군요.”

동쪽의 영주들 전체가 합심하는 형태는 아니다. 2-3개의 영주들이 힘을 합쳐 배를 건조해 멀리 떠날 준비를 했다. 이들은 최인범의 영향력이 적은 아주 먼 길로 새로운 활로를 찾고 있었다.

요시타카는 진국의 외무장관으로 자신을 찾아온 진명하에게 그동안 잡은 호피 10장과 많은 은괴를 넘겨주며 정중하게 말했다.

“봉황성으로 가져가 전하께 드리시오. 이건 요시타카가 태대장군이자 군왕이신 분께 충성을 맹세하는 표시입니다.”

“좋습니다. 돌아가면 전하께 잘 말씀을 드리지요.”

요시타카는 그래도 큰 흐름을 감지하고 재빨리 봉황성의 최인범에게 달라붙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는 본시 한반도 출신이라고 주장하는 입장이라 이런 행동이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최인범의 명령으로 두 외교관이 명나라와 왜에서 성과를 거두는 동안 봉황성에서 주로 군대 양성에 힘을 쓰고 있던 최인범은 새로운 인물을 만나고 있었다.

산동지역에서 살던 일단의 무리들이 배를 타고 집단으로 이주해온 것이다. 이주의 이유는 당연히 반란군이 세운 제태국에서 살기가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다. 본시 산동지역에서 대대로 터를 잡고 살던 사람들이 새로운 집권층의 핍박을 모면하기 위해 이주한 것이다.

이주민중 중요한 인물이라며 명단을 보고 받던 최인범은 화들짝 놀라 응수했다.

“뭐라? 그 사람이 여기로 이주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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