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0화
윤원형은 무안에서 염전을 대대적으로 만들어 천일염을 만들고 있다는 소식과 함께 그런 소금을 만들기 위해 백성들을 혹사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무안백성들이 너무 힘들어 탄원서를 제출했다고 하더군.”
“얼마나 힘들게 부려먹었으면 그럴까?”
“인건비를 안주고 부려먹고 나중에 소금이 생산되면 소금으로 나누어 준다고 해서 백성들이 굶어 죽겠다고 난리가 났다네.”
최인범이 풍기군수를 통해 주세붕에게 전달한 천일염 생산 방식은 기존의 소금 생산 방법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방식이다.
천일염은 생산하려면 넓은 갯벌을 복잡한 구조를 지닌 사각형의 평평한 염전을 만들고 땅을 다져 놓았다. 하루에 한 칸씩 이동시키며 태양열로 수분을 증발시켜간다. 그리고 결정 지에 다다르면 도자기를 굽는 기술로 만든 사각형의 바닥재를 깔아놓은 곳에서 수분을 증발시켜 소금을 생산하고 있었다.
이런 새로운 천일염 생산은 기존에 생산 방식인 자염과는 전혀 달랐다. 자염을 생산하려면 큰 가마에 염수를 넣고 불을 때야 하기 때문에 연료 조달이 큰 문제점으로 대두된다. 그러나 새로운 소금 생산 방법은 태양열만 이용하기 때문에 대량생산이 가능했다.
주세붕은 최인범이 말한 그대로 무안군수인 윤원형에게 천일염 생산 기술서를 보내 주었다. 그리고 염포나 기타 남해안에서도 천일염을 생산하도록 알려주었다.
다른 지역은 염전의 규모가 작고 염전을 만드는 과정에서 정상적으로 인건비를 주고 만들어 하는지 마는지 조용한 가운데 천일염이 생산되었다. 그러나 무안군에서는 강제로 거의 노예 수준으로 인건비를 거의 주지 않고 지역의 백성들을 동원해 대규모로 염전을 만들다 보니 문제가 생긴 것이다.
그 때문에 주상은 바로 그쪽으로 암행어사를 보냈다고 했다. 그리고 암행어사는 소문이 모두 사실로 드러나 무안군수를 문책해야 한다고 주상께 보고를 올렸다고 했다.
“그래서 무안군수인 윤원형이 문책을 받았다고 하던가?”
“무슨 소리야 문책은 고사하고 오히려 새로운 방식으로 소금을 대량으로 생산해 나라에 큰 공을 세웠다고 포상을 받아 내년이면 다시 조정으로 돌아온다고 하던데.”
“뭐라? 왜 그런 거지?”
“우리가 뭘 알겠어. 윤 대비가 아마도 손을 쓴 모양이지.”
종전의 자염 생산은 모두 왕실의 왕족이 관리해 생산량의 반을 세금으로 조정에 바치고 반은 일반에게 유통시키는 형태로 운영되고 있었다. 왕족들은 자염생산에 자신들이 대대로 물려받은 노비를 동원해 큰 부를 이루고 있었다.
아무튼 천일염의 생산이 성공을 거두자 전라도 지역에서는 많은 곳에서 새로운 방식의 염전을 만들고 있었다. 주상께서는 기존에 왕족들만 소금을 생산해 판매하던 방식을 버리고 어떤 사람이라도 천일염 생산을 위해 염전을 만들도록 했다.
물론 갯벌을 이용하기 때문에 개인이 투자해서 땅을 늘리는 것이라고 해 국유지를 소유하게 되니 아주 작은 금액만 납부하면 된다.
그 대신 전에는 생산양의 5할을 세금으로 조정에 납부했으나 이제는 6할을 납부해야 되는 점이 달랐다. 염전사업을 하면 떼돈을 번다고 판단하던 양반들이 투자를 했지만 대량으로 소금이 생산되자 가격이 폭락하게 되었다. 그래서 기존의 소금 가격보다 3할 정도의 가격으로 대폭 내려가 버렸다.
백두상단의 최월녀는 염전을 잘 만들어 놓고 도산한 양반을 만나고 있었다.
“염전을 파신다고요?”
“그렇다네. 전에 소금 가격만 생각하고 무리하게 투자를 했다가 가격이 떨어져 도저히 운영을 할 수가 없어 팔아야 되겠어.”
“염전이 있는 곳이 어디죠?”
“한양과 가까운 제물포에 있네.”
“알았어요. 그렇다면 사람을 보내 알아보고 제가 사도록 하죠.”
“빌린 돈이 자꾸 이자가 늘어나니 빨리 사주시게.”
“그렇게 하죠.”
최월녀는 남쪽인 전라도 지역 보다는 천일염 생산 여건이 분리한 경기도 지역의 도산해 버린 염전만을 사들이고 있었다. 대부분 강화, 김포, 인천, 안산에 새로 생긴 천일염을 생산하는 염전들이다.
전라도 지역의 무안군 경우는 그래도 소금 가격이 완전히 내려가기 전에 천일염을 생산해 투자금을 일부 회수해 견디고 있다. 하지만 경기도 지역은 늦게 시작해 이제야 처음으로 소금을 생산해 그만 가격 폭락으로 도산한 염전들이 많았다.
백두 상단의 간부들이 모여 행수인 월녀의 이런 투자 방식에 대해 걱정하고 있었다.
“아씨, 어찌 하시려고 그 많은 염전을 사세요. 소금 가격이 폭락했는데요. 전과 달라 이제는 그렇게 돈이 많이 남는 사업은 아닙니다.”
“그거야 잘 알죠. 하지만 기왕에 많은 자금을 들여 만든 염전을 버릴 수는 없지요. 전당포 사업이나 다른 사업에 비해 이제 이득금이 적어진 사업으로 변했어도 저는 염전 사업은 누군가는 꼭 해야 된다고 봅니다.”
다른 사람들은 장려 쌀로 자금을 운용해도 안전하고 이득이 많다고 했지만 월녀는 조신에 꼭 필요한 사업이라고 해서 계속해서 염전을 사들였다.
“생산도 계속하세요.”
“넷!”
월녀가 이렇게 염전을 과감하게 살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미 이런 사태를 예측한 최인범의 지시 때문이다. 그는 염전이 도산할 것도 예측해 경기도 지역의 염전만 사도록 지시했었다.
큰 장사꾼으로 변한 월녀는 오라비의 지시를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다. 하필이면 천일염을 생산하는 염전을 개발하라고 중요한 기술을 그냥 무작위로 살포하게 한 이유도 알 수 있었다.
“역시 오라버니는 뭐든지 뛰어나신 분이야. 이런 사태를 모두 알고 있었어.”
왜로 넘어간 최인범이 귀국하자 경상남도 지역에서는 소금이 남아돌고 있었다. 현물로 받아들인 소금가마 때문에 창고가 모자랄 판국이다. 물론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로 이제는 쌀 가격보다 소금 가격이 더 싸다는 정도로 흔해진 소금이다.
소금을 생산하거나 판매하는 사람들은 죽을 맛이지만 백성들은 소금가격이 대폭 내려가자 좋아하고 있었다. 전에는 소금이 없어서 만들지 못하던 각종 어물로 젓갈도 담그고 새로운 음식들이 생산되고 있었다.
특히 충청남도의 강경이나 광천은 본시 젓갈 생산으로 유명한 곳이지만 소금이 흔해지자 많은 젓갈을 만들어 비축하고 있었다.
한편 추풍령을 지나 금산을 경유해 강경에 도착한 최인범은 강경시장에 젓갈들이 생산되어 유통되는 모습을 살피고 있었다.
“흠! 전에는 버리던 해물도 젓갈로 담가서 판매하고 있군.”
이미 고추도 널리 보급되어 매운 고추를 이용한 새로운 식품들이 벌써 나오고 있었다.
“역시, 전라도와 가까워서 그런지 음식 솜씨는 좋아.”
전라도와 충청도의 경계인 강경은 전라도에서 시집을 오는 여자들이 많았다. 그래서 평소 해먹는 음식이 거의 비슷했다. 새로운 음식을 맛을 보며 다니는 중에 관아에서 보낸 통인이 급하게 다가와 보고했다.
“태대장군님, 부여도호부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그곳에서 병조참판께서 기다리신다고요.”
“그래, 알았어. 바로 부여로 가도록 하지.”
최인범은 부여에서 한정문이 기다린다는 소식에 즉시 왜 그가 자신을 찾는지 짐작했다.
“소금 때문이군.”
최인범은 강경을 떠나 석성현을 경유해 부여로 가게 되는 희여티 고개를 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염창리에 도착하자 그곳에 있는 민만복 대감 집 주변을 잠깐 들렸다.
염창리는 본시 백제시대에 소금창고가 있었다고 해서 마을의 이름이 지어진 곳이다. 민천복 부원군의 형인 민만복이 이곳에 살고 있어 들린 것이다.
오라버니로 월녀를 시집을 보내야 하니 민천복의 조카인 민만복의 아들을 만나기 위해서다. 신랑 후보자인 민청우는 부여 향교로 가서 공부하는 중이라고 했다.
“아직 초시도 못했다니 조금 더 기다려 봐야 되겠군.”
주변에 알아보니 인물도 좋고 집안 전체가 성격도 유하고 월녀가 시집을 가면 별로 구박을 받게 생기지는 않았다. 하지만 민청우가 초시도 통과하지 못했다니 그게 조금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일단 뒤로 미루고 부하들과 같이 빠르게 말을 달려 부여도호부 객사로 가게 되었다. 고을의 양반들이나 일반 백성들이 객사 앞에서 나와 반겨 주었다.
“오셨군요. 태대장군님.”
“다시 만나니 반갑습니다.”
부여는 전에는 현이다가 주상이 왕세자로 방문해 군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주상으로 오르게 되자 다시 도호부로 승격시켜주었다. 그 이유는 부여가 발전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왕으로 자신도 바뀌고 최인범도 왕으로 변했으니 사실상 두 명의 왕이 만난 중요한 곳이라고 해서 승격시킨 것이다.
잠시 객사로 들어가 도호부사와 정식으로 인사도 나누고 나서 최인범은 이제 출입이 금지되는 봉산으로 변한 부소산을 돌아보았다. 나무가 없어 민둥산이던 부소산에는 많은 소나무가 심어져 있어 전보다는 보기가 좋아졌다. 영일루와 사비루를 지나 백화정도 들리고 고란사를 들려 나루터에서 배를 타고 구드래로 가게 되었다.
같이 따라 다니는 철갑웅이 돌아본 소감을 말했다.
“전보다 소나무도 많고 앞으로 여기는 풍류를 즐기려는 사람들이 자주 찾아오겠네요. 고란사도 전에 비해서 많이 커졌고요.”
“그렇게 보이냐?”
“넷!”
구두래 나루에서 내려 바로 옆에 있는 아주 큰 고대광실처럼 지어진 기방으로 가게 되었다. 기방의 이름은 금수장(錦水莊)이다. 본시 금강(錦江)을 금수(錦水)라고도 부르기 때문에 그 이름을 따서 지어진 것 같았다.
‘흠! 잘하면 금수라는 이름이 오히려 욕이 될 수도 있겠어.’
금수(錦水)란 짐승의 무리인 금수(禽獸)와 같은 음이기 때문이다. 하긴 기방이니 사내가 여기로 와서 술 마시고 기녀들과 같이 놀다보면 금수와 같이 변하니 딱히 잘못지은 이름도 아니라는 생각이 문뜩 들었다. 더구나 그러다 문제가 생기면 목이 잘리니 금수장(禽獸葬)이 될 수도 있는 곳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금수장 안으로 들어가 큰 방에 앉으니 산해진미가 푸짐하게 차려져 있자 최인범은 다시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과연 여기가 금수장이란 것은 확실하군.”
그러자 한정문이 역시 따라서 웃으며 응수했다.
“여긴 그런 험한 이름인 금수장이 아니라 주인인 산월의 거문고 솜씨가 뛰어난 곳이라고 해서 금수장(琴秀莊)입니다.”
“그런 깊은 뜻도 있습니까. 그렇다면 내가 큰 결례를 범했군요.”
잠시 객쩍은 농을 주고받고 나서 두 사람은 가볍게 술을 마시며 중요한 대화를 나누었다.
“병조에 소금이 남아돌아 큰 걱정입니다.”
“그렇겠군요. 전에는 소금이 큰 돈거리가 되어 병조로 보내 군비로 썼지만 지금은 군양미 창고만 차지하는 형편이겠네요.”
“그렇습니다. 태대장군님, 뭔가 해결 방법이 있으면 알려 주세요. 주상전하께서도 이 때문에 심려가 매우 큽니다.”
이런 말에 최인범은 빙그레 웃으며 다소 나무라는 투로 물었다.
“왜나 명나라로 사신을 다녀오시고도 도통 뭘 모르시는 군요.”
“예? 그게 무슨?”
“아니? 국내에서 생산량이 남아돌면 자연히 외국으로 내다 팔면 되는 문제를 왜 아무도 생각하지 못해요. 왜로 팔아도 되고 명나라로 팔던 여진에게도 팔면 쉽게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까?”
“귀한 소금을 외국에 팔아요?”
“귀하다니요? 소금 가격이 하락 했으니 이제는 과거를 기준하면 안 됩니다. 아무튼 내가 일일이 간섭할 필요는 없지만 내가 알기로도 지금은 왜나 명나라로 소금을 팔아도 충분히 경쟁이 된다고 봅니다. 그렇다고 헐값으로 팔아 생산비도 안 나오면 곤란하니 생산 원가를 잘 계산해서 외국으로 판매하세요.”
“아, 그렇군요. 태대장군님의 말씀을 듣고 보면 너무 쉬운데 왜 그런 생각을 저희는 못하는지 모르겠네요.”
“그건 과거제도부터 문제가 많아서 그래요. 주구장창 외우기로 일관하는 공부만 했으니 무슨 새로운 발상을 하는 사고력이 퇴화된 겁니다.”
“그렇군요.”
최인범은 사실 소금이 조선에서 많이 생산되면 그것을 왜나 명나라 그리고 여진으로 판매해 조선에게 부를 가져오도록 해준 것이다. 월녀를 통해 도산한 염전들을 매입하게 함으로 개인적으로 재물을 벌 준비는 이미 끝낸 상태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으니 나도 기회에 재물 좀 많이 챙겨야지.’
돈벌이에 관해서는 아주 철저한 최인범이라 그냥 천일염 기술을 조선에 보급해준 것은 아니다.